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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국 훈독경 제9권 9일
참된 길
날짜 : 1982. 10. 29(금)
장소 : 한국
무엇으로 화합시킬 수 있느냐
오늘은 ‘참된 길’, ‘참된 길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걸 말씀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가슴에 손을 얹고 자아를 가만히 생각하게 되면 일생이 회상될 것입니다. 할아버지면 할아버지 나름대로, 혹은 장년은 장년 나름대로, 청년은 청년 나름대로 그 생각 가운데 모든 군상들이 지나갈 것입니다. 이런 일도 있었고, 이러이러한 일들도 있었을 것인데 그 가운데는 내가 참지 못할 원수도 지나가겠고, 내가 잊지 못할 동지도 지나가겠고, 내가 사랑할 수 있었던 사람도 다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 지나간 나중에 나만 홀로 남아 있을 때,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갈 것이냐? 이렇게 볼 때, 대체로 “아, 그래도 나 좋은 사람이다” 하는 판정이 나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러면 지금까지는 좋았는데 이제부터 어떻게 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 대체로 볼 때 나이는 먹었을망정 “돼먹지 않았구나, 이 녀석” 하게 될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돼먹지 않았으니까 할아버지라도 이 녀석이지요. 자기가 묻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 녀석아, 어떻게 갈 거야” 하면서 자문해 볼 때, “뭐 어떻게 가긴 어떻게 가? 그렇게 가지” 하겠어요? 답변이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쁜 길을 재촉해 가지고 먼 길을 왔을 거예요. 여러분 중에서 혹자는 세 시간 이상 달려왔을 것입니다. 혹은, 저기 섬에서 왔다면 어저께 출발해 가지고 온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바쁜 걸음으로 여기에 와 가지고 이 자리에서 생각해 볼 때, 어떤 때보다도 못해서는 안되겠다 이거예요. 무엇인가 모르게 내가 왔던 걸음이 보람이 있을 뿐만이 아니라 내일의 새로운 길을 결정하고 갈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민족 앞에도 그렇고, 여러분 자신들 앞에도 그렇고, 여러분이 거느리고 있는 가정 혹은 후대의 후손들 앞에 좋을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도(正道)가 뭐냐? 참된 길이 뭐냐? 지금 여러분 자신들을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자신이 자기 자신을 알면서도 “음, 내 하자는 대로 하면 좋겠다. 내 마음대로 되면 좋겠다” 하고 주장합니다. 다 그러지요? 잘나나 못나나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러게 마련입니다. (121-271)
그러면 어떤 절대자가 있어 가지고 “네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할 때는 어떻게 할 거예요. 자신 있어요? 그럴 때는 주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 자기 자신을 가만히 보게 된다면,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의 몸과 마음이 항시 싸우는 것을 느낍니다. 마음도 내 마음이요, 몸도 내 몸인데 어쩌자고 이율배반적인 입장에서 싸우고 있어요? 이게 문제입니다. 그렇게 싸우는 내가 한 여성과 결혼했다면 어떻겠어요? 그 여성은 어떠하냐? 여성도 몸 마음이 완전히 하나된 여성이냐? 아니에요. 그 여성도 몸 마음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만나 가지고 “사랑한다, 사랑하자” 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그러면 몇 패냐 이거예요. 아내하고 남편 두 사람이 앉아 가지고 있는데 서로서로 몸 마음이 갈라진 대로 말하면 네 패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네 패가 서로서로 자기의 이익을 주장합니다. 몸뚱이는 몸뚱이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주장하면서 서로의 이익을 원하는 입장에서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어떻게 되겠어요? 이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부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아들딸들도 셋, 넷, 다섯이 되게 되면 전부 다 2패씩이라구요. 다섯 명이 되어서 어머니 아버지까지 합하면 일곱 명이니까 열 네 패당이 됩니다.
그러한 패를 무엇으로 화합시킬 수 있느냐? 옛날에 가화만사성이라고 했는데 내 자신이 화합할 수 있는 기반, 내 상대가 화합할 수 있는 기반, 우리 아들딸이 화합할 수 있는 기반이 어디에 있느냐? 아들보고 물어 보면 자신 있다고 그러겠어요? 아내한테 물어 보면 자신 있다고 하겠어요? 여러분 자신들에게 물어 보게 될 때 자신 있느냐 이거예요.
오늘날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금 더 진화하면 이 몸과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가망성이 있겠어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가망성이 있겠어요? 그러한 가망성은 없습니다. 태초에 인류조상의 몸 속에 있던 소성이 씨로 뿌려져서 나무의 뿌리처럼 연이어져 가지고 줄기를 통해서 가지나 잎과 같은 나로 이어졌으니까 이 가지나 잎은 뿌리와 줄기의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태초의 인류조상도 이 싸움을 초월하지 못했습니다. 이 싸움권 내에서 허덕이다가 한 세상을 살고, 비탄의 탄식과 더불어 운명길을 간 것입니다. (121-274)
진화를 통해서 인간이 이렇게 발전되어 나왔다면
대개의 사람들은 탄식권 내에서 사라져 가고 흘러가 버리고 맙니다. 현세에서 승리한 사람도 그 기반에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는 힘듭니다. 그게 상식이에요. 그러니까 심각하게 결정해야 될 문제입니다. 남자가 자기의 아내를 택할 때 잘못 결정하면 일생이 깨져 나갑니다. 며느리를 얻을 때 잘못 결정하면 다 깨져 나가는 거예요. 집안을 망칠 수 있습니다. 동네의 이장 하나도 나쁜 사람으로 세워 놓으면, 공산주의자를 선출해 놓으면 동네가 공산당이 되어 버립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참된 결정의 기준이 무엇이냐?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면 우리 종지시조(宗之始祖)가 본래부터 그렇게 되었던 사람이었느냐? 어째서 몸과 마음이 하나 못 되는 인간이 되었어요? 그게 문제입니다. 철학에서도 문제가 되는 거예요. 모순된 투쟁의 역사를 볼 때, 오늘날 인간들이 변증법적인 논리를 인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인정하는 것도 개인의 모순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진화를 통해서 인간이 이렇게 발전되어 나왔다면, 제아무리 인간이 투쟁하고 노력했댔자 유토피아적 평화의 세계니 자유세계니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말 자체가 흘러가는 망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근본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 하는 그 근본을 밝혀야 됩니다. 이러한 나, 그러한 개인입니다. 그러한 개인들이 합해 가지고 살아가는 가정이 그러하고, 사회가 그러하고, 국가가 그러합니다.
대한민국만 해도 그렇잖아요? 남한만 해도 3천8백만 명이지요? 이제 2000년이 되면 남북을 통해서 6천만 명이 넘는 국민을 지니게 되는데, 그 가운데 몸 마음이 하나되어 가지고 통일적인 기조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누가 갖고 있겠느냐? 없다 이거예요. 마찬가지로, 전체가 싸우고 있는 삼천만 민중의 터전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통일은 어디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냐? 개인의 몸 마음도 통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6천만이나 모여서 통일을 이루겠다는 것은 망상입니다. (121-275)
담을 무엇으로 헐 것이냐
지금의 여러분을 넓혀서 보게 된다면 내 몸과 마음에 담벽을 쌓고, 또 여러분의 아내와 남편의 헐 수 없는 담벽을 해결해 보다가 비운의 한날을 맞이하여 이혼이라는 명패를 들고 해결할 수 있는 방편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 이거예요. 부모와 자식지간에 막혀진 담벽이 얼마나 험하면 천만 년 사랑하고 싶은 애절한 부모의 사랑을 박차고 아들딸들이 집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느냐 이겁니다. 부자지간의 그 담을 무엇으로 헐 것이냐 이거예요. 그런 높은 담들이 쌓여 있습니다.
여러분의 개인에서부터, 가정으로부터, 또 회사면 회사의 사장과 종업원들간에 담벽이 헤아릴 수 없이 높다 이거예요. 외면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는 하나되어 있는 것 같지만 그 이익을 분배할 때는 그 담이 문제가 됩니다. 더 나아가서, 주권자와 국민의 사이에 담벽이 너무나 높아요. 가면 갈수록 더 높아진다 이거예요. 대한민국과 아시아에 있는 국가들간에 있는 담이 대한민국의 주권자와 국민의 사이에 막혀진 담보다도 더 높더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와중에서 여러분은 자기 주장, “내 관을 갖고 있다” 그러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전세계로 확대되면 어떻겠어요? 요즘에는 여러분이 알다시피 민주와 공산세계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담들이 막혀 있다 이거예요. 열이면 열 전부 다 반대입니다. 백이면 백 전부 다 상충이에요. 그 담이 얼마나 높은지 40억 인류가 보조를 맞추어도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높습니다. 그 담을 무엇으로 때려부수느냐? 그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담을 부술 수 있는 이론과 사상체계를 제시해라 이거예요. 그거 이미 다 실험을 필했습니다. 오늘날 민주세계가 세계를 하나로 만들겠다고 야단하고, 공산세계도 세계를 제패하려고 야단하지만 다 실험을 필했습니다.
미국이 끌고 나오던 자유세계의 국가들에서는 날이 가면 갈수록 “양키 고우 홈(Yankee, go home)” 하면서 손가락질을 합니다. 가라 이거예요. 필요 없다 이겁니다. 국가들마다 전부 다 그렇습니다. 공산세계도 그렇잖아요. 중공과 소련이 결속되고 단결해 가지고 세계로 진출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민족주의의 관념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자기권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문제의 양상이 전개되는 실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 종교를 보게 되면 종교도 제멋대로입니다. 하나님은 한 하나님일텐데 감리교의 하나님이 다르고, 장로교의 하나님이 다르고, 천주교의 하나님이 다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라는 관념이 철저하다면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목적은 하나이니 만큼 그 목적을 향하는 방향이 같아야 됩니다. 그런데 수많은 교파들이 갈라져 가지고 싸우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눈하고 코가 싸우면 되겠어요? 오관은 하나의 나라는 인격 앞에 통솔되어 가면서 전체의 목적에 협조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분파적인 종교들이 있다면 그 분파적인 모든 종교가 하나님의 전체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될 수 있어야 할 것인데 싸우고만 있다구요. 그 담을 누가 헐 것이냐? 종교와 하나님의 사이에 막혀 있는 본연의 담을 어떻게 할 것이냐? 절대적인 신을 믿던 자리를 떠나서 상대적인 자리로 낙후한 종교들이 어디로 갈 것이냐? 그것들은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121-276)
말세의 현상
하나님이 계신다면 처음부터 하나될 수 있는 몸 마음을 만들어야 할 것이었는데 오늘날 하나될 수 있는 몸 마음이 되지 못한 것을 볼 때 하나님이 잘못되셨든가,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잘못되셨을 까닭은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에게 타락이라는 제3술어가 생겨났다는 거예요. 무엇이 잘못되었습니다. 고장났어요. 그러면 고장난 것을 고치면 어떻게 되느냐? 고치면 되지요. 이렇게 됩니다.
모두 다 몸 마음이 싸우는 사람들이 모여서 확대된 것이 가정이요, 사회요, 남북이요, 세계의 인류라고 한다면 그 싸움의 해결책이 어디에 있느냐? 미국의 정치적인 방향에 있는 것이 아니요, 정책적인 방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경제정책에 있는 것이 아니요, 군사정책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에게 있느냐 하면 나에게 있습니다. 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나를 낳아 준 어머니 아버지한테 암만 물어 봐야 몰라요. 내 마음과 몸이 싸우는 걸 스톱시켜 놓고 “야, 마음아! 네 근본에 대해서 좀 얘기해 다오” 해도 모릅니다. 얘기를 안 한다 이거예요. 몸뚱이도 모릅니다. 그러면 누가 아느냐? 나도 모른다구요. 누가 알아요? 누가 아느냐? 철학자가 아느냐? 철학자도 모릅니다. 오늘날 민주세계를 지도하는 어떤 위인이 알아요? 다 모른다 이거예요. 단 한 가지 길이 있다면, 신이 있다면 신한테 물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진짜 있느냐? 하나님이 살아 있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을 붙들고 “당신은 이와 같이 잘못된 내용을 알 것입니다. 당신이 전지전능하시다면 인간이 완성될 수 있는 기반을 못 닦은 원인이 어디 있어요” 하고 물어 봐야 됩니다. 심각한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런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 봤어요?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121-278)
그러면 여기에 서 있는 사람은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이냐? 어떤 사람이냐 이거예요. 역사 이래에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누구보다도 심각했던 대표적인 사람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실례의 말이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이거예요. 그 하나님과 나의 관계, 그 관계의 한계점이 어디냐? 나는 대한민국의 사람이니까 대한민국이 한계예요? 하나님은 대한민국의 기준을 넘어서 초월적인 경지의 하나님이 되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주가 필요로 합니다. 그런 하나님이 있느냐?
보라구요! 오늘날 공산세계를 보게 되면 민족 때문에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중공과 소련이 갈라져 있는데, 서로 하나 못 되는 중공과 소련을 중심삼은 사상은 민족과 국가를 넘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에 의해서 세계의 제패가 가능하냐 하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요즘의 민주세계를 보더라도 어때요? 과거에 민주주의의 초기시대에는 전부 다 신 앞에 평등을 주장하고 나왔습니다. 절대적인 신을 주체로 한 대상적인 입장에서 자유이론을 중심삼은 민주주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 가지고는 어때요? 신을 다 내버렸습니다. 신은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만 보더라도 “우리 민주주의면 제일이지, 종교와 무슨 관련이 있어” 합니다. 미국의 건국정신은 새로운 종교의 이념을 중심삼고 국가를 세우는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대학교에서 “하나님을 치워 버려”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자유세계가 하나님을 추방해 버렸다구요.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전세계의 종말 현상이 뭐냐 이거예요. 하나님을 제거해 버린 것입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그들의 심통을 바라보고 계시고 뭐든 샅샅이 관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앞에서 욕심을 가지고 싸우고, 권력을 가지고 싸우고, 돈을 가지고 싸우고 그럴 수 있어요? 예수님이 가르치신 성경의 본질과 180도 이탈된 자리에서 하나님의 탈을 쓰고 그 자체를 옹호하는 교회들의 실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한 교회들에서는 하나님을 추방해 버렸습니다. 여러분도 마음속으로 “신이야 있거나 없거나 그저 이렇게 살면 되는 거야” 그럴 거라구요.
이렇게 볼 때, 지구성에서 하나님이 완전히 추방당할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하나님이 만약에 빛을 가지셨다면, 빛을 갖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지구성은 빛 되시는 하나님을 추방해서 깜깜한 천지가 되었다고 하자구요. 이 깜깜한 천지에서 뭘 하느냐? 서로 붙들고 힘내기를 하고, 서로 붙들고 야단하는 혼란상이 벌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와중에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가 주장하는 노선이 있지요? 여러분 각자가 주장하는 길, 그 다음에 민주주의의 길, 그 다음에는 공산주의의 길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무슨 길이 있느냐 하면 종교 믿는 사람들의 길이 있어요. 가르면, 네 가지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 그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신들이 주장하는 길이나, 공산주의가 주장하는 길이나, 민주주의가 주장하는 길이나, 종교가 주장하는 길이 전부 다 절대적인 하나님을 중심삼은 어떤 길을 표방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추방해 버리고 미국이면 미국의 어떠한 누구, 정당이면 정당의 주장을 따라가는 판국이니 말세의 현상이다 이거예요. 이와 같이 혼란스러운 와중에서 평화의 세계를 그린다는 작자들이 있으면 미치광이라구요. 통일을 꿈꾸는 작자들이 있으면 정신병자들이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121-280)
신이 있다면
그래도 우리가 남북을 통일하자고 하는데, 그렇게 남북을 통일하면 평화의 세계가 올 수 있어요? 남북을 통일하고 나면 어떻게 할 거예요? 중공이 “삼천리 반도는 한국 사람들의 것이니까 너희들만 잘살아라” 하고 놔 둬요? 소련이 놔 둬요, 일본이 놔 둬요, 미국이 놔 둬요? 한국은 비참한 자리에 처해 있습니다. 남북을 통일하면 더 무서운 투쟁의 대상이 나타난다구요. 그래, 어떻게 하겠어요?
만약에 남북을 통일해 가지고 북한의 김일성과 괴뢰들을 싹 쓸어버리고 “남북통일의 깃발을 꽂았다, 만세! 대한민국 승리 만세” 하면 그걸로 끝나요? 더 높은 담을 무엇으로 헐 거예요? 10억이 넘는 중공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자주성이 있어요? 약자는 서러운 운명을 피하지 못합니다. 이건 역사적인 진리입니다. 일본도 한국을 거쳐야 대륙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사람들끼리 움직여 나가는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망과 탄식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신이 있다는 것을 아는 개인이 생겨나고, 그러한 민족이 생겨나고 국가가 생겨나는 한 세계는 달라질 것입니다. 신이 있다면 그렇겠지만, 신이 없다면 이것으로 다 끝장입니다. 신이 있다는 것을 아는 개인, 그 다음에는 신이 있다는 것을 아는 민족이나 국가가 될 때는 그들이 가는 길하고 그렇지 못한 입장에서 가는 길은 다를 것입니다.
빽으로 볼 때, 오늘날 대한민국은 미국 빽에 목을 걸고 있는 불쌍한 처지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진짜 살아 계신다면 미국을 차 버리고 하나님 혼자서도 넉넉하다는 거예요. 미국을 차 버린다고 진짜 차 버리는 것은 아니에요. 차 버리더라도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왜 그러하냐? 미국의 꼭대기를 누르실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소련도 무서워할 것 없다 이거예요. 소련의 꼭대기도 악당같이 나쁜 짓 하면 오늘 저녁에 데려간다 이거예요. (121-282)
아무튼 인간세계에 참된 길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인간들끼리 가는 데는 참된 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왜 그 길이 있을 수 없느냐? 본질적으로 마음과 몸이 싸우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이 붙들고 싸우는데 수천 년 붙들고 싸워도 그 싸움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를 통한다는 사람들이나 철학자들은 세계관이 어떻고 우주관과 인생관이 어떻다고 하면서 야단들입니다.
그러니까 평화의 세계라는 것을 오늘날 인간만으로 꿈꾼다는 자체는 부정적이다 이거예요. 왜 그러하냐? 여러분의 몸 마음을 두고 물어 봐요! 그 싸움이 얼마나 치열해요! 그래서 여기에 서 있는 사람도 수양노정에 설 때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이라는 것이 표어였습니다. 이놈의 몸뚱이가 얼마나 지독하고 센지 모릅니다. 이건 언제나 길을 가로막기 마련입니다. 우주를 주관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를 주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본질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평화니 통일이니 하면서 하나의 세계를 꿈꾼다는 것은 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이 있다면, 그것이 가능합니다. (121-284)
정도라는 것이 무슨 말이냐
신이 있다면 참된 길을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알 것입니다. 그러면 신이 아는 참된 길하고 우리가 아는 참된 길은 무엇이 달라요? 신이 갈 수 있는 참된 길하고 인간이 갈 수 있는 참된 길이 어떻게 다르겠어요? 그 두 길이 같겠어요, 다르겠어요? 이게 문제가 됩니다. 같아요, 달라요? 그건 같아야 됩니다. 왜 같아야 되느냐? 참된 길을 통해서 찾고자 하는 것이 뭐냐? 평화의 세계, 행복의 세계, 만민평등의 세계입니다. 신이 있다면 그 신이 지향하는 길도 평화의 세계, 행복의 세계, 평등의 세계로 향하는 길입니다.
이런 문제를 앞에 놓고 볼 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갈래 길에서 허덕이고 세계의 혼란상을 모면할 수 없었던 비운에 사무친 내 자신을 어떻게 할 것이냐? 비약해야 됩니다. 뛰어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줄이라도 있으면 그 줄을 붙들고 넘어가야 되는 거예요. 두 방법이 있습니다. 내 자력으로 넘을 수 있는 힘이 있거든 저쪽에서 던져 주는 줄을 붙들고 넘어갈 수 있는 다른 하나의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이 있다면 최후의 단말마적인 비운의 절망에서 허덕이는 인간들을 대해 가지고 “아무리 그래 봐라! 어디 두고 보자” 하면서 내버려두었다가 전부 다 죽게 되어서 씨알머리가 없어질 것 같을 때 할수없이 줄을 던져 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줄을 던져 주는데, 그 줄을 또 알 수가 있어야지요. 그것이 하나님이 던져 주시는 줄인지 알 수 있어요? 그런 게 문제가 됩니다.
신이 있다면, 반드시 이러한 비운의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하나의 구도의 방편으로 줄을 던져 줄 것입니다. 그 줄이라는 건 어떤 길을 통해서 던져지느냐?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종교를 볼 때, 그래도 종교가 하나님을 숭상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종교를 통해서 어떤 줄이 던져질 것입니다. (121-288)
그렇지만 지금의 기성교회가 가는 길하고 반대요, 공산주의자들이 가는 길하고 반대요, 민주세계가 가는 길과 반대일 것입니다. 그냥 지금처럼 따라가면 얼마나 좋아요! 그러면 다 망하게 되어 있다구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줄을 던져 주시더라도 반대쪽으로 던져 주셔야 됩니다. 그래서 그쪽으로 길을 리더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으로부터 반대를 받게 될 것입니다. 엄마 아빠도 보고 “야, 너 못 가! 그만둬” 할 것이고, 여편네나 자식들마저도 “아이구! 여보, 안돼! 아버지, 안돼” 할 것이고, 그 나라의 주권자도 “아이구! 안 된다, 이 자식아” 하면서 말을 안 들으면 감옥에 가두고 별의별 짓을 다 할 것입니다. 그렇게 그 사람을 따라가는 곳에는 풍상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가야 할 정도, 가정적으로 가야 할 정도, 종족적으로 가야 할 정도, 민족적으로 가야 할 정도, 국가적으로 가야 할 정도, 그 다음에 국가를 넘어 세계가 가야 할 정도가 있고 세계를 넘어서 천주가 가야 할 정도가 있습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새로운 술어를 쓰는데 천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주라는 말은 영계까지 합해 가지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세계와 천주가 갈 수 있는 정도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도라는 것이 무슨 말이냐? 정도는 하나다, 바른길은 하나다 이거예요. 내 손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집도 사 주고, 수많은 사람들에 양복도 해주고, 수많은 것들을 다 했지만 부모님한테 손수건 하나 안 사 줬어요. 불효예요, 불효. 그런 불효가 없어요. 왜정 때 일본서 오게 되면 경찰서에서 벌써 나를 호출하는 거예요. 그럴 때 어머니가 찾아와서 눈물을 흘리게 되면 난 청천벽력같이 호령한 거예요. “당신 아들인 문 아무개라는 사람은 졸장부가 아니요. 나는 어머니보다도 세계와 하나님의 슬픔을 풀기 위해서 이 길에 와 있소” 했습니다.
어머니가 천릿길을 멀다 않고 미숫가루하고 뭘 가지고 왔습니다. 그 미숫가루를 가져오게 되면 감옥에 있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효자가 못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그것을 배고픈 자식이 두고 먹기를 바랐지요. 그건 어머니의 바램이었지 나는 그렇게 못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지고 오자마자 다 나누어주고, 옷도 다 나누어주고, 명주 바지도 다 나누어주고 나는 홑으로 넓적다리가 보이는 바지를 입고 다녔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와 보고 얼마나 기가 막혔겠어요! 그러니까 통곡을 하면서 “이제 나 다시는 안 오겠다” 그러더라구요. 그렇게 안 올 수 있으면 안 와도 된다는 것이었어요. 내가 잘못한 것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나 거기서 배불러 가지고 편안하게 잠자거나 배고픈 사람들 앞에서 먹고 싶은 자극을 주는 짓을 못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불효한 사람이었지요. 형제 앞에 있어서는 불의한 사람이었습니다. (121-289)
안팎이 하나되어 정도의 다리를 놓는 게 인류의 단 하나의 길
그렇지만 나라를 위하여 왜놈들과 선두에서 싸웠습니다. 지금도 이 나라를 위하여 선두에서 공산당과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난 친여당이 아니요, 친야당도 아닙니다. 공산당이 이 나라의 원수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있는 한 공산당은 내 손으로 청산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미국 젊은이와 일본 젊은이들을 묶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살 길이 없어요. 그걸 볼 때, 본국에 있는 승공연합의 여러분이 우리 민족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됩니다.
이 나라에 하나님이 찾아오시게 하려면 여러분은 민족을 사랑할 수 있는 종족적 자리에 서 있어야 됩니다. 김씨면 김씨의 문중이 합해 가지고 이 나라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안팎이 하나될 수 있는 기반 위에 사랑의 기둥이 세워집니다. 마음과 몸 사이에 기둥이 세워지고, 어머니와 아들딸이 사랑하는 데 하나의 기둥이 세워지고, 가정과 종족이 사랑하는 사이에 기둥이 세워지고, 종족과 민족이 사랑하는 사이에 기둥이 세워지고, 민족과 국가가 사랑하는 사이에 대한민국이 살 수 있는 사랑의 기둥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과 세계가 사랑하는 그 사이에 사랑의 교량이 걸린다고 보는 거예요. 세계와 영계의 사이에 하나님께로 향하는 다리가 놓인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랑의 교각이 그렇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내가 말하는 참사랑의 정도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남편과 아내, 친구와 내가 하나 안 되면 다리가 안 걸립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도 다리를 놓아야 됩니다. 마음이 울 때 몸도 울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체험을 해봤어요? 하나님의 슬픈 사실을 느끼게 될 때는 마음의 통곡이 우러나와야 된다구요. 마음이 슬프면 울려고 안 해도 눈물이 납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러한 남성과 여성이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참다운 정도의 다리를 놓는 기둥이 세워집니다. 그 기둥을 세우고 다리를 놓아서 건너간 후에는 다시 올 필요가 없습니다. 그걸 놓아야만 여러분의 후손들도 그 길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121-292)
영계에 가면 그렇습니다. 이 땅 위에서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저나라에 가서 질식해요. 호흡이 맞지를 않습니다. 지상생활은 뭐냐? 그 세계에 들어가서 호흡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훈련장입니다. 그리고 가정은 교재입니다. 할아버지 연령의 사람이 있으면 자기 할아버지보다도 더 사랑하겠다고 생각해야 되고, 어머니 아버지의 연령이 된 사람이 있으면 흑인이든 백인이든 가리지 말고 어디에 가든지 환영해야 됩니다. 젊은이가 있거든 자기 아들딸같이 사랑해야 된다 이거예요.
어디 가다가 점심을 못 먹고 사는 아이가 있으면, 지갑에 돈이 있으면 자기 아들과 같이 사 줘야 된다는 거예요. 윗옷이라도 벗어 팔아서 사 줘야 됩니다. 자기 자식이라면 옷을 저당 잡히더라도 사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에요. 그러한 생활무대가 여러분의 가정적인 차원을 능가할 수 있는 데서부터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정도가 연결됩니다.
그렇게 하려고 일생 동안 뒤넘이치고, 몰리고, 쫓기고, 욕먹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따라온다 이거예요. 백인들도 따라오고, 흑인들도 따라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레버런 문이 여기서 땅 끝에 있는 사람과 결혼시켜 줄 때 그 결혼상대가 흑인이 될지 일본 사람이 될지를 모른다구요. 그렇지만 모든 것을 초월해 가지고 국경을 넘어서 하늘나라가 원하는 정도의 길을 찾아오는 놀라운 운동이 지구상에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본국에 있는 여러분이 이 정도를 가려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시킬 수 있는 중심적인 존재들이 되기를 바라서 오늘 이러한 말씀을 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121-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