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번 대표팀 명단을 살펴보죠.
박주영
(김신욱)
손흥민 구자철 이청용
(지동원) (김보경) (이근호)
기성용
(하대성) 한국영
(박종우)
윤석영 김영권 홍정호 이 용
(박주호) (곽태휘) (황석호) (김창수)
정성룡
(김승규, 이범영)
굵은 글씨는 런던 올림픽 출전자, 밑줄은 런던행이 유력했으나 부상으로 교체된 선수입니다.
예. 홍감독은 자신에게 익숙한 선수/포메이션/전술을 들고 나왔습니다.
월드컵 1년 남기고 성과를 내려니 익숙한 전술을 플랜 A로 설정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저 플랜 A가 잘 돌아가려면 기성용이 공격을 전개하고 박주영이 킬러본능을 발휘하며, 이 둘의 부족한 수비가담을 DM출신 구자철의 활동량과 홀딩 한국영의 4백 보호로 커버해야 합니다.
2012년 런던에선 플랜 A가 잘 돌아갔으나, 2년 뒤 브라질에선 문제가 생깁니다. 박주영과 구자철의 부진이지요.
박주영은 70분을 뛸 체력 자체가 안되었고, 구자철은 성장이 멈춘 게 아닌가 하는 걱정마저 들 정도였죠.
박주영의 백업은 김신욱인데, 2차전을 통해 보면 김신욱의 높이를 이용한 뻥축구 외에는 김신욱 활용법이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리고 구자철의 백업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됩니다. 김보경이나 이근호가 AM 봐 줄수는 있으나 그래되면 박주영 기성용의 수비가담 부재가 심각해지고 한국영에게 과부하가 걸리죠.
즉, 홍명보 식 4231은 센터라인 4명의 폼이 모두 절정이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다만 그렇지 않다면...
따라서 플랜 B가 필요합니다. 한 골이 필요한 상황, 혹은 한 골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20-30분 정도 쓸 수 있는 전술이 아닌, 런던식 4231을 대신해 70분을 쓸 수 있는 전술이요.
하지만 플랜 B가 존재하느냐는 질문에는... '없다'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그 증거는 엔트리 구성에 있습니다.
위에 적은 엔트리 구성은, GK를 제외하곤 모두 포지션 당 2배수로 뽑았습니다. 1, 2차전을 통해 드러난 것 처럼 주전/백업 구분은 확실했고요.
즉, 런던식 4231 이외의 포메이션이나 전술은 없었다는 것이지요.
알제리와의 후반 막판 10여분이나 오늘 후반 45분을 특수한 상황(공격적으로 나갈 필요성 + 숫적 우세) 하에 442포메이션을 들고 나왔습니다. 한국영 대신 지동원 or 이근호를 넣어서요.
하지만 11:11에서 구자철 기성용을 CM으로 두면 중원이 탈탈 털리겠죠. 전반부터는 쓸 수 없는 전술이고요.
다른 전술/포메이션을 쓰고 싶어도 워낙 4231 최적화로 엔트리를 구성했고, 결정적으로 멀티포지션이 가능한 선수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수 교체도 꼬이게 되죠.
오늘 경기를 복기해보면, 하프타임에 한국영<>이근호로 442로 전환합니다.
65분에 김신욱을 교체합니다. 김신욱이 지쳤으니까 이건 이해 가능한데 문제는 누구를 넣습니까?
대신 들어온 김보경은 스트라이커가 절대 아니죠. 그렇다고 스트라이커 숫자 맞춘다고 박주영을?
75분에 손흥민<>지동원... 손흥민보다는 이청용을 빼는 게 나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구자철이 더 문제였죠. 지친게 눈에 보였으니...
근데 구자철은 뺄 수가 없습니다. 구자철 대신 CM 봐 줄수 았는 선수는 하대성 박종우 박주호 3명인데 하대성은 부상이고 구자철보다는 더 수비적인 선수들이죠. 골이 필요한 상황에 이런 교체는 안되는 거고...
결과는? 공수간격 벌어지면서 역습을 맞았죠. 그 결과 수적 우위에도 패배...
이번 대회의 졸전은 플랜 A만 믿고 가다가 핵심 선수들의 부진으로 모든 게 꼬인게 원인입니다.
플랜 A가 꼬이자 망해버린 것은 플랜 B가 없었기 때문이고요.
플랜 B가 없던 이유는 1년 만에 다양한 전술을 준비할 역량이 없는 감독을 선임한 탓입니다.
월드컵 1년 전에 감독을 교체한 이유는 전임 최강희 감독이 '나 여기까지만 할란다'라고 해서 그런거구요.
그럼에도 최강희 감독을 선임했던 건 협회가 최강희 감독과 사전에 충분한 교감이 없이 급하게 선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급하게 최강희 감독을 억지로 대표팀에 앉힌 것은 조광래 감독을 여론에 밀려 자른 탓이구요.
조광래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건 10년 월드컵 직후입니다. 여론이 뭐라하건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으면 브라질에서 잘 조직된 만화축구를 볼 수도 있었겠죠. 조광래의 만화축구가 비현실적이라 느꼈으면 아예 다른 감독을 물색했어야 했구요.
(만화축구를 옹호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4년 맞춰 본 만화축구가 1년 맞춘 런던식 4231보다는 낫다고 볼 뿐입니다)
조광래 감독을 경질했을 때 월드컵은 2년 반 정도 남았습니다. 허정무 감독도 그 정도 기간 준비하고 월드컵을 치렀죠.
이 때 최강희 감독을 잘 설득하여 월드컵까지 맡기든지, 아니면 다른 감독을 알아봤어야 합니다.
하지만 기간제 감독을 선임하여 예선을 치르고 정작 본선을 이끌 감독은 본선 1년 전에 정한다는 병크를 터트립니다.
딱 1년 줄테니 아시안 컵도 아시안 게임도 아닌 월드컵에서 성적을 내라는 미션은 퍼거슨이나 무리뉴가 와도 힘들죠.
그런데 선임한 감독은 성인팀을 이끈 적이 단 한번도 없는 홍명보입니다.
초보감독이 1년 준비한 결과는 여러분께서 보신 바와 같죠.
엔트리 선정할 때 쯤에 박주영 때문에 말이 많았습니다. 홍 감독의 '원칙'에 위배된 선수를 선발한다고요. 그러면서 나온 말이 '그냥 의지고 뭐고 핑계대지 말고 자신의 전술에 부합하는 선수니 뽑았다고 해라'라는 말이었죠.
이 말은 축구협회에 그대로 돌려주고 싶습니다. '이번 월드컵을 굳이 홍 감독에게 맡기고 싶으면 올림픽 기다리지 말고 그냥 조광래 경질하고 선임하든가 아님 10 월드컵 직후에 선임하든가 해라'라구요.
이번 결과는 홍감독이 당연히 책임져야 합니다. 시간부족이건 뭐건 졸전이고 탈락인건 엄연한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홍감독이 이런 처지에 몰린 건 상당 부분은 축구협회의 병맛 행정 탓입니다.
그 엉터리 행정이 한국축구의 레전드를 이런 처지로 몰아놓은 겁니다.
그들은 이 결과에 책임을 질까요? 기술위원장이나 기타 간부들... 사임하거나 경질당하고 교체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런 병맛 행정이 이번으로 종식이 될까요? 아예 협회장에 다른 사람이 들어앉아도 개혁이 되긴 할까요?
국가대표팀 감독을 선정하려면 먼저 후보군을 정리하고 컨택을 한 다음, 맡을 의사가 있는 사람의 대표팀 운영 계획을 들어보고 그것이 현 대표급 선수들의 스타일과 부합할 것인지를 따져본 다음 결정을 해야겠죠. 적어도 제 생각엔, 이런 과정이 너무 당연합니다.
협회의 간부들은 이런 판단을 내릴 능력이 있긴 할까요? 의지는 있을까요?
그럴 능력과 의지가 있음을 새 감독 선임 과정에서 증명하길 바랄 뿐입니다.
PS. 전 축구보다는 야구를 더 좋아합니다.
어릴 적에 이만수의 홈런을 보고 야구팬이 되었죠. 이만수는 저의 영웅이었어요.
시간은 흐르고 저의 영웅은 감독이 됩니다. 비록 고향팀은 아니지만요.
그리고... 감독으로서의 평가는 여러분들, 특히 SK 팬분들이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종목도 다르고 경력이나 선임과정 같은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은퇴하고 지도자가 된 어릴 적 영웅들이 망가져가는 게 안타까워서 적어보았습니다.
물론 이렇게 된 건 본인의 역량 문제가 크겠지만, 이들을 들끓는 여론에 희생양으로 던져놓고 자리보전에 힘쓸 누군가에 대한 분노도 있고요.
나의 다른 영웅들도 이들의 전철을 밟게되라고 생각하니 더 우울하네요.
첫댓글 필력이 좋으시네요, 구구절절 옳은 말씀입니다. 우리나라 소위 체육쪽 협회라는 것들 어떻게 안될까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긴글인데 술술 읽히네요.
당연히 협회가 젤 나쁜놈들입니다. . 근데 홍감독은 총알받이 하다 잘린 다른 감독들과 같진 않으니까요. 그래서 더 욕먹는거고.
물론입니다. 이 지경에 이른 건 본인 책임이지요. 당연히 비판받고 물러나야 학요. 다만 선수가 못하면 교체하면 되고, 감독이 못하면 경질하면 됩니다. 근데 협회가 무능하면 누가 개혁을 할까요? 협회가 변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홍명보가 계속 등장할 겁니다.
@원더KIDDy 협회를 바꿀 방법이 없으니... 그래서 많은 분들이 외국감독을 선호하는 큰 이유가 협회의 제약을 덜 받지 않을까해서겠지요. 근데 히딩크같은 깡이 아닌담에야 휘둘릴수밖에 없으니 짜증나네요.
@[부정선거]청순가련 애초에 자신들의 뜻에 휘둘리지 않는 감독을 선호하지 않으니... 홍 감독이 물러난다 해도(사임/경질없이 계약기간 다 채운다 해도 놀랍지 않습니다) 다음 감독이 제대로 된 인물일지, 얼마나 자기 뜻을 펼지 의문이죠.
이번 최대의 실수는 이명주를 안뽑았다는데 있습니다. 구자철 대체자가 없는 공미... 할말을 잃었습니다.
엔트리 문제는 말햐봐야 입만 아플 뿐이지요... 기성용의 수비력이 발전 없는 것도 큽니다. 명색이 DM인데... 그러다보니 구자철은 박주영 뒤에서 커버쳐주고 기성용 앞에서 쉴드쳐주고... 컨디션이 정상이어도 힘든데 지금 폼으론 답이 없죠.
잘 생각하고 잘 쓰신 글입니다만, 홍명보 = 축협인 걸 떼어놓고 보면 모든 게 다 처음부터 꼬여서요.
더 무서운 얘길 해드릴까요?
홍감독이 청대 올대 국대까지 3년이 넘는 감독경력 동안 사용한 포메이션은 단 하나라는 점!
ㅎㄷㄷㄷ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오싹해지네요 ㅋㅋㅋㅋ
손흥민 쉐도우도 생각해볼 카드 아닐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구자철이 공미감은 아닙니다.
축협의 병맛 행정에 대한 코멘트 적극공감합니다.
우리가 지금 MB감독, 밥줘, 정성룡을 집중해서 까고 있지만, 여기에만 집중해 축협을 잊으면 절대 안됩니다.
국대 축구 운영에 대한 큰 스케치가 잘되야 색칠을 잘해 좋은 그림을 완성하는데, 스케치는 쓰레기 급으로 개판이고, 그렇다고 색칠할 물감이나 붓 등 자원 지원을 잘해주는 것도 아니고, 이건 뭐 전적으로 일당백의 천재 감독이나 천재 선수 능력만으로 그림 다 그리고 작품 완성하라는 소리죠. 그런 인물이 있다고 해도 쉽지 않고요. 정황상 좋은 국대가 절대 나올 수 없습니다.
적어도 이명주를 엔트리에 포함했어야 됬네요 그리고 윤석영의 크로스는 정말 문제인듯 보고차도 엉뚱한데료..... 김진수가 부상만 아니였더라도 괞찮을텐데요
이명주는 참 아쉽고... 풀백은 참 걱정입니다, 좌영표 우종국이 국대 최대 강점인 시기가 엊그제같은데 어느새...
완전 공감해요
어떻게보면 그리스와의 평가전에서 박주영이 골을 넣지 말았어야했는데...;;;;
그거랑은 별 상관없었을 거에요. 어차피 뽑았을 겁니다.
가나전 4실점한 골키퍼를 주전으로 쓰는거 보면 달라지지 않았을것 같습니다.
공감합니다.
2010년 이후부터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까지의 축구협회를 살펴보면 2013년에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비리 직원 논란이 있었던 조중연 회장이 물러나고 2013년 초에 그당시 프로축구연맹 총재인 정몽규가 당선된 것이죠.
이것이 뭐 단일선상에서 보면 별것 아니지만, 축구협회의 수장이 교체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일수도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