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거의 밤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다가 동 틀 무렵에서야 지쳐 잠들고는 정오까지 자는게 패턴처럼 되어버렸다.
다시 출근이라도 해야하게 되면 어쩌려고 이럴까. 나는 확실히 야행성인가보다.
나는 밤을 좋아하긴 하지만 불안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조용한 밤에는, 밖에 나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깊은 밤에는 혼자서 생각만 많아지거든..그래서 잠들지 못하나보다.
돈이 떨어져간다. 그래도 예상보다 잘 버티고 있다. 나야 뭐 워낙 사치같은것에 관심이 없으니.
하지만 마음은 갑갑하다. 다시 조직으로 돌아가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혼자 버틸만한 기술도 재주도 없으니.
개인적으로 수출입을 해보겠다고 뭔가 벌이고 있긴 한데, 이것도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과연 할수나 있을지. 그리고 내가 잘 아는 분야가 없다. 소싱을 하는 기술을 아는 것도 아니고,,그냥 검색해보고, 카페에 글 올려보고, 연락 오면 만나보고, 그게 다이다. 그래도 그간에 작은 회사들에서 어떻게 일을 진행시켜왔는지 대충 경험해봐서 이미 가입되어 있는 카페도 있었고, 또 운이 좋아서 바이어 하나와도 연락중이긴 하다만. 매출로 이어지는 건 또 다른 일이긴 하다. 그리고 난 무엇보다 지금...너무 지쳐있고 의욕이 상실된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달려야만 한다는 것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
그래도 회사생활을 하면서 정해진 시간에 나가고 정해진 시간에 잠들고 정해진 일을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그런 삶은 아직 아니어서 버틸만은 하다. 돈이 문제지. 이건 모두의 문제이겠지..? 누군들 그 짜증나는 회사생활 하고싶어 하겠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힘들었다. 나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룰에 맞춰서 일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뭐 그렇게 창의적이지는 않다. 다만 이해하는 방식이 조금 다른것은 같다. 그것은, 모르겠다. 선천적인것인지 아니면 내가 사람들과 함께 팀으로써 무언가를 의견교환을 하며 자라오지 못했기 때문인지 모르겠고. 아주 오랜 습관과도 같은 것 같고, 습관이 오래되면 그것은 거의 선천적인 것이나 다름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
꿈을 많이 꾼다.
아빠와 같이 식당? 같은곳에 있는데 내 친구가 어딘가로 떠났고, 그 친구가 나에게 여행하는 곳의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사진을 보는데 모두 바다 사진이었다. 바다에 까맣게 박혀있는 바위 같은 것들이 찍혀있는 사진들. 풍경. 왜였을까,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아빠에게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고 했다. 아빠는 화장실까지 따라와서 괜찮냐고 물었다. 난 괜찮다고 말하고는 혼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막 꿈이 뒤숭숭하게 이런저런 장면으로 바뀌었다가, 우리 여자들끼리 단합해서 전 회사 대표님을 죽이는 장면을 꿨다. 우리 여자들은 총으로 대표를 쐈고, 대표는 나가떨어졌다.
그러다가 또 장면이 바뀌어, 엄마와 함께 있었는데 엄마가 갖고싶은 명품 가방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가방이 딱 두 군데 백화점에서만 판다고 했다. 하나는 홍대쪽, 다른 하나는 꽤 먼 곳이었다.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정자동? 이라고 했나? 암튼. 둘이 정 반대 방향이어서 일단은 어느 한 쪽으로 정해서 가야 했다. 거리 상으로는 지금 있는 곳에서 홍대가 훨 가깝긴 했다. 그런데 가방이 둘 다 있을지, 한 쪽만 있을지, 어디에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엄마랑 나는 우선 홍대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장면은 또 바뀌어서, 두 번째 회사 동료들과 함께 미니버스를 타고 언덕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버스 안은 조금 침울했다. 거기 있는 동료들은 나와 작별 인사를 준비하는 분위기였고, 버스는 언덕을 다 내려와 정류장에 닿았다. 나는 내렸다. 동료 중에 이제는 아이엄마인 아이가 자기 딸을 데리고 같이 내려줬다. 나머지 동료들은 다 버스 안에 있었다. 나는 배웅해준 그 친구와 버스에 남아있는 나머지 동료들에게도 작별인사를 하고 뒤돌아 갔다.
...
그러고 일어났는데 그냥, 뭔가 심정적으로 되게 서글펐다. 슬프고..다운되고. 의욕도 없고...지금 내가 혼자 사업을 해보겠다고 하는 게 또 뜬구름 잡는 건 아닌가, 난 뭘 위해서 사업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그리고 왜 회사는 그렇게 싫은건가 등등...많은 생각이 들었다. 힘도 없고..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월세 방, 이 곳은 내년 5월이면 계약이 끝날텐데 그 이후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진정 결혼같은건 내 인생에 없는걸까 등등...결혼은 둘째치고 다시 연애다운 연애를 할 수는 있을까도 모르겠고. 더 이상 내가 누군지를 모르겠다. 나는 연약하고 약한 사람인건가, 아니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두려워 하는 사람인건가. 아직도 모르겠다, 그것에 대한 답은.
모든 것,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이 그냥 한바탕 꿈이었던 것만 같다. 일장춘몽? 호접지몽? 백일몽? 아무튼 소설 구운몽이 생각났다. 어찌되었든 현실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이지 않나. 그냥 세차디 세찬 소나기처럼 지나간 한바탕 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꿈에서 깨고 나니 지금의 현실은 너무 많은 것이 늦어버려서 그 무게를 감당하는 것이 버거워서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내가 엄청 대단한 일들을 해낼 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엄청나고 대단한 나를 세상이 몰라준다고 생각했다. 나를 몰라본 세상이 싫었고 미웠고 사람들도 미웠다. 분명 나는 아예 무능력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해낼 사람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대단한 일'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뭔지도 모르겠다. 그냥 나는 유명하고 돈 많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그것은 나에게 돌아와야 할, 당연한 것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아닐수가 없다. 하지만 난 그것을 기대했고, 그러지 않은 세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며, 그걸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 내 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이미 감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걸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그렇게까지 능력있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기본이 너무 부족하다. 그런데 뭔가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을 풍기는 것을 무기로 살아왔다. 하지만 까놓고 보면 나는 그런 척 하며 살아왔던 것 뿐이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상담할 때 선생님이 그랬다. 보여주기 위해서 일을 해 왔다면, 실제적인 업무 능력의 발전보다는 가시적인 퍼포먼스만 보여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그런 이야기는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힘든 비판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신 걸 거다. 그런 가능성이 있는게 아니라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늘 잘 해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일을 하러 가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고 전투였다.
그래서 그랬나보다. 어제 티비 프로그램에서 서장훈이 나와서 이야기 하는걸 들었는데, 자기에게 있어서 프로가 된 후 농구는, 매 경기 경기가 너 아니면 내가 죽는 검투사와도 같은 전투이며 전쟁이었다고. 자기는 늘 잘하는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에, 잘 해야 본전이었기 때문에 까탈스러운 습관도 생기고 그렇게 변해갔다고. 그에게는 매 경기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과도 직결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은퇴를 생각할 즈음 너무너무 정신적으로 지쳐있었다고. 그렇게 27년을 달렸더니 너무 지쳐있더라 하고 이야기 하는데...난 그 만큼 대단한 업적을 세운 것도 아니고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지만.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울고 있었다. 그냥 그 마음이 어떤건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다고 나는..매일 매일을 그렇게 전장에 나가는 전사처럼 지냈을까. 한 치라도 수가 틀리게 되면 적군의 칼에 맞아 죽을 것처럼, 그냥 일상으로 기록되어야 할 모든 일들을 나는..죽을동 살동 하며 버틴 것이다. 이제 그럴 힘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해낼 수 있는 소스도 바닥났다. 없다. 차근히 쌓아오지 않은 것들은, '척' 하는 것은 언젠간 들키게 마련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 안다. 다 알고 말고..
다 좋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돌아보는 것도. 그런데 너무 늦었다. 너무 늦어버렸다. 좀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좋았을 걸. 좀 더 일찍 놓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걸.
아동바동 사는게 이제는 싫다. 그렇지만 너무 늦었다 정말로...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이전처럼 회사 사무실 소속으로 돌아가서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고 정해진 룰에 맞춰 일을 하는 것이...아직은 싫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에서부터 서서히 죽어가는 느낌이 든다. 나는 좀 더 시간과 공간에 자유로운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그렇다면 난 잘 생각해봐야 한다. 회사 소속이지만 시간...까지는 그렇지 못하더라도 공간만이라도 자유로운 근무라면 괜찮다. 이건 정말로 운이 좋아야 한다.
그리고 이전처럼 아동바동 일 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무슨 일을 해도 그럴까? 똑같은 업무를 한다고 해도, 내가 그렇게 전투적이지 않으면 되는걸까...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이전처럼 하고싶지는 절대절대 않다는 것이다. 그건 스스로 말라 죽는 행위같다.
그리고 난 의외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프로젝트 성으로 어떤 건을 이끌어 성사시키고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업무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일들을 하는 것은 늘 재밌고 성취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럴 때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이건 정확히 모르겠다. 친구들과 만날때와는 또 다르다. 난 친구들과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크게 흥미를 느껴본 적이 없는데다 그런 방식으로 살아온 적이 별로 없어서 그런건지...어떤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그걸 이루기 위해서 사람들끼리 협력하고 모여서 만들어가면서 성취해 내는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참 재미있고 그것보다 재미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내 사업을 하고 싶다고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다만.....그런 큰 그림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젝트인지를 스스로가 잘 모르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조금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나에게 줬으면 좋겠다. 그게 뭔지 알아낼 때까지....내가 또 다시 조직에 들어가지 않아도 스스로의 프로젝트가 뭔지 구체화 될 수 있는 시간을......조직에 들어가면 아마도 그 일에 내가 잠식될 가능성이 크니까.
약간의...운이 좀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난 좀 운명 같은걸 믿는 편인데, 내가 이런 괴로움을 겪으면서, 또 그 괴로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부던히 발버둥 치면서 느낀 건, 어떤 거대한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이쪽으로 가라고 푸시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이런 건 없을지도 모르지.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싶은지도..어쩌면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힘들어진 나를 어떻게든 위로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건 좀 더 큰 그림을 위한 필연이라면서....
하지만 분명 희한한 점들도 있지만. 내가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해 낼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은 그냥 너무너무 소진되고 지쳐서, 마음 편하게 막 엄청 신경쓰고 중대한 일이 아닌,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소소한 일을 하면서 마음 편하게, 내가 누군지 또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찬찬히 살피고 싶은 것 같다. 그리고 좀 더 주변과 소통하고..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듣고. 그 동안 뭔지 모를 그 '대단한 업적'을 위해서 아무것도 보지 않고 내 거의 대부분의 삶을 희생하면서 살아왔다면...이제는 그 '대단한 업적'은 한낮의 꿈과도 같은 거라는 걸 알기에 그것보다는 곁에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싶기도 하다. 어떨 때 스스로가 '이건 나다'하고 규정할 수 있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기를 원하는지...그런 것들을 좀 더 지켜보면서.
그럴 수 있는...조금의 여유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엄청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그럴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