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마담은 시제 같다던데 나는 김해서 묘사를 지냈는데 시제에 대한 여러 종류 용어가 있는데
도체 축문 정도는 읽을 줄 알아야 하는데 도체 음율을 모르니 답답하고
상여 나갈시 앞에서 이세상의 많은 고통과 슬픔을 삭이고 저세상에 가서는 복운을 비는 상여 소리꾼(가객) 음율을 음미 하면 참 구슬픈데
우리시대는 그래도 조금 보고 익히지 못해도 우리의 풍습 아닌가
한시대 보내면서 알아서 참석만 하면 어른들이 하겠지 하지만 언제가는 우리몫 아닌가
어떤 집안은 제실에서 지내는 곳도 있고 .직접 산소에 가서 시제=묘사 지내는 집안도 있고 .
현대. 시대 따라 해야 한다지만 그래도 풍습이고
관습이니 샤마니즘 이란 뜻을 버리고 ,하나의 기원 지금 내가 있는것도 윗분들 은덕이라 생각 하고 제사 지내고 인척들 얼굴 보고 하는게 아닌가 싶다.남마담 말 따라 예전 어릴시는 먼곳서 오는 묘사꾼들 뒤산가 묘사 지낸후 꼬마들에게 나누어 주는 시루떡 쪼가리가 얼마나 맛있던가
제실에서 묘사 지내고 뒷산 올라가 몇군데 묘지 돌아보고 내려 오다가 바지 가랑이가 잔 나무 줄기에 걸려 양복 바지가 찢어져
바늘 ,실 구하기도 곤란해 .부산 까지 떨어진 바지 가랑이를 여자 파타롱 처럼 해 가지고 집에 까지 왔다
산에 가면 바지에 이물질에 걸려 넘어 지지 않도록 각반 처럼 반 양말스타킹도 있고. 일본 왜넘 순사 처럼 당꾸 주봉=무렵 관절 아랫 부분에 바지를 좁게해 단추을 달고 하였지
특히 건축일이나 하는 사람들 많이 입었지 .선진 유럽 문화을 익히 알던 일본군들 바지를 2차 대전시 독일군 바지보고 패션화 하였지
어찌보면 실용적 이랄가
그런 주봉을 산에 가면 착용 해야 하는데 ....묘사 가는데 아래가 좁은 등산 바지 입고 가기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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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이 참전 용사에게는 제일 후한 대접 하지 않나 싶다.군대신 외화벌이 한 사람을 그런 은덕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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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친구는 오키나와 섬에가서 자식들 불려서 70주년 생일 하였다는데 나는 내년 어디로 갈가
북해도 눈속에서 뜨거운 온천수에 들어갈가
개요리도 무제한 먹고
쓰가루해협을 사이에 둔 북해도 하코다데항 불빛 쳐다보면서 3 마일밖에서 주먹만한 눈덩이리 휘몰아 치던 험한 날씨 속에서 운반선에 명태 대구 전제 작업도 많아 했지.전제후 다시 캄차카 반도연안으로 베링해 알라사카만으로 작업하려 가고. 당시는 일본 가기도 어려운 시대라
네무로 항 입구에 명태 대구 산란지라 얼청 큰넘도 많아 잡고 에리모싸키곶 등대.어항 구시로항 참 좋은데 혼자 여행가기가 두렵다
일본말도 까먹고
남마담 북극 항로 시 북해도북단- 사할린 사이 소야 해협도 겨울 유빙도 보려 가고싶다
자유여행 말고는 페케지로 가면 그곳 가기도 어렵고

중국성도 펜더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