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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0장
시편 10편은 악인의 특징을 통해 악의 외피가 아니라 중심을 벗겨 냅니다. 악의 시작은 행동이 아니라 거리입니다. 하나님을 밀어내고 내가 중심이 되는, 욕망을 축복으로 착각하고, 하나님 없이도 충분하다고 여깁니다. 그러고도 흔들림 없다는 확신 속에서 삽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공주야!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면 왜 세상에 악이 성행하고 의인이 핍박을 당하는지에 대한 주제는 자주 떠오르는 화두이다.
Psalm 10 sheds the center of evil, not its outer skin, through the characteristics of evil. The beginning of evil is distance, not action. I think it is enough without God to push out God and mistake desire as a blessing, where I am the center. Even then, I live in the conviction that there is no shaking. "Why do you hide in trouble, O Lord?" Princess! If God is alive and God governs, the topic of why evil prevails in the world and righteousness is persecuted is a topic that comes to mind of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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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탄식대로 하나님은 때때로 아주 멀리 숨어계신 듯 보인다. 자기 백성을 잊었고(관심이 없고), 얼굴을 가렸고, 영원히 보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심지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악인들의 교만한 조롱이 맞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이것은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우리가 자주 맞닥뜨리는 현실이다. 하지만 “여호와여”라고 시작하는 시인의 탄식은 눈앞의 팍팍한 삶과 멸시의 소리에 대한 저항의 외침이다. 현실 이면에 있는 참된 현실을 신뢰하는 외침으로 봐야 할 것이다.
As the poet lamented, God sometimes seems to be hiding very far away. It is sometimes considered true that the arrogant mockery of the musicians who have forgotten their people (not interested), covered their faces, will not see them forever, and even are nothing more than nothing. This is not an exceptional situation, but a reality that we often encounter. However, the poet's sigh, which begins with "Blessed," is a cry of resistance to the harsh life and the sound of contempt in front of him. It should be seen as a cry of trust in the true reality behind the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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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침묵하시는 동안 악인들은 번성한다. 아무도 그들의 불의한 권력과 계획을 저지하지 못한다. 심지어 하나님마저 삼판하실 수 없을 만큼 강해 보일 때도 있다. 아무도 자신들을 흔들수 없고 대대로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자신만만했다. 위협적인 말과무자비한 행동으로 무죄한 자, 외로운 자(불운한 자), 가난한 자(가련한 자), 고아를엿보고 죽였다. 마치 숨어서 먹이를 노리는 굶주린 사자처럼, 악인들은 하나님이 보시지 않고 심판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제 멋대로 횡포를 부렸다.
While God is silent, the wicked thrive. No one can stop their unjust power and plans. Even God sometimes seems strong enough to not be able to judge. He was confident in himself that no one could shake them and would suffer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He peeped and killed the innocent, the lonely (the unlucky), the poor (the poor), and the orphan with threatening words and merciless actions. Like a hungry lion seeking food by hiding, the wicked acted violently, thinking that God did not see and ju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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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야, 주변을 돌아봐, 분명 이 전쟁 같은 경쟁에서 떠밀려 고통당하는 이웃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만약 우리 마저 이들을 외면 한다면 악인들에게 동조하는 것과 같다. 시인은 하나님이 ‘잊었고(11)’‘감찰하지 않으시고(4) ‘, ’보지 않으신다(5,11)‘는 악인의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해달라고 요청한다. ‘외로운 자(8,10)’와 ‘고아에게서 멀리 계신 분(1)’이 아니라 가까이서 도우시는 하나님임을 보여 달라고 간구한다.
Princess, look around, there must be a neighbor who is suffering from being pushed around in this war-like competition. If even we turn away from them, it's like sympathizing with the musicians. The poet asks God to prove the villain's idea wrong, saying, "Forgot (11)," "Not watching (4)," and "Not watching (5,11). I ask you to show me that you are not a lonely man (8,10) and "A man (1) far from the orphan," but a God who helps clos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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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자를 끈질기게 ‘괴롭히는(압박하는,20)’ 악인들이 오히려 하나님도 남지 않을 때까지 ‘찾아 달라’(=감찰하다)고 기도한다. ‘하나님이 없다 하는 이들에게(5)‘ 영원토록 하나님이왕이심을 증명해달라는 기도다. ’심판조차 미치지 못하는 듯했던 이들(5)‘을 심판하시고 아무도 자신들을 흔들 수 없다고 자신만만해하던(6) 이들을 멸망시킴으로, 자신들은 ‘대대로’ 환란을 당하지 않을 것이고(6)
The musicians who persistently "pain" the weak (oppressing, 20) pray that they will "find" (=examine) until there is no God left. It is a prayer to those who say that "there is no God (5)" to prove that God is king forever. By judging those (5) who seemed to be unable to even judge and destroying those who were confident that no one could shake them (6), they will not be disturbed "for generations" (6) and they will not be disturbed "for generations"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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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영원히‘보지 않을 것(11)이라는 악인들의 말과는 달리 하나님만이 영원무궁토록 왕이심을 보여 달라고 간구한다. 내가 붙들고 있는 안정은 하나님인가, 아니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내 계산인가? 내가 이웃을 깔보거나 무시한 일?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한다고 했는데 외로운 나는 왜 걱정만 하는가? 숨어 계시는 하나님은 정말 침묵하시는가?
Contrary to the words of the musicians that God will not see his people "forever" (11), God longs for him to show his kingly spirit forever. Is the stability I hold on to God or is it my calculation that has no choice but to collapse? What did I look down on or ignore my neighbors? Why do I worry about being lonely when I said that a lonely man relies on the Lord? Is the hidden God really sil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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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기도(1-2)
악인에 대한 고발(3-11)
a.악인의 교만:3-6
b.악인의 포악한 행위:7-11
시인의 간청과 확신(12-18)
a.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을 구하는 시인의 기도:12-14
b.하나님의 판결에 관한 시인의 확신: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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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어찌하여(1a)
멀리 서시며(1b)
어찌하여 환난 때에(1c)
숨으시나이까?(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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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자가 교만하여(2a)
가련한 자를(2b)
심히 군박하오니(2c)
저희로(2d)
자기의 베푼 꾀에(2e)
빠지게 하소서(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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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은(3a)
그 마음의 소욕을(3b)
자랑하며(3c)
탐리하는 자는(3d)
여호와를 배반하여(3e)
멸시 하나이다(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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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은(4a)
그 교만한 얼굴로(4b)
말하기를(4c)
여호와께서 이를(4d)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4e)
그 모든 사상에(4f)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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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길은(5a)
언제든지 견고하고(5b)
주의 심판은 높아서(5c)
저의 안력이(5d)
미치지 못하오며(5e)
저는 그 모든 대적을(5f)
멸시하며(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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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에 이르기를(6a)
나는 요동치 아니하며(6b)
대대로 환난을 당치(6c)
아니하리라 하나이다(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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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입에는(7a)
저주와 궤휼과(7b)
포학이 충만하며(7c)
혀 밑에는 잔해와(7d)
죄악이 있나이다(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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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8a)
향촌 유벽한 곳에 앉으며(8b)
그 은밀한 곳에서(8c)
무죄한 자를 죽이며(8d)
그 눈은 외로운 자를(8e)
엿보나이다(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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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가 그 굴혈에(9a)
엎드림 같이(9b)
저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9c)
가련한 자를(9d)
잡으려고 기다리며(9e)
자기 그물을 끌어(9f)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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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구푸려 엎드리니(10a)
그 강포로 인하여(10b)
외로운 자가 넘어지나이다(1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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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마음에 이르기를(11a)
하나님이 잊으셨고(11b)
그 얼굴을 가리셨으니(11c)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11d)
하나이다(1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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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12a)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12b)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1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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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악인이(13a)
하나님을 멸시하여(13b)
그 마음에 이르기를(13c)
주는 감찰치 아니하리라(13d)
하나이까?(1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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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는 보셨나이다(14a)
잔해와 원한을(14b)
감찰하시고(14c)
주의 손으로(14d)
갚으려 하시오니(14e)
외로운 자가(14f)
주를 의지하나이다(14g)
주는 벌써부터(14h)
고아를(14i)
도우시는 자니이다(14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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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팔을 꺾으소서(15a)
악한 자의 악을(15b)
없기까지 찾으소서(1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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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는(16a)
영원무궁토록 왕이시니(16b)
열방이 주의 땅에서(16c)
멸망하였나이다(1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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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주는(17a)
겸손한 자의 소원을(17b)
들으셨으니(17c)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17d)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1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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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와 압박당하는(18a)
자를 위하여(18b)
심판하사(18c)
세상에 속한 자로(18d)
다시는 위협치(18e)
못하게 하리다(1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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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계시는 하나님_ the hidden God
번성하는 악인- a thriving villain
증명하시는 하나님_ The God who pro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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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까이에서 공의를 집행하시는 주님, 믿음과 도덕성이 내게 더 이상 안전보장을 해주지 않을 때 신앙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없는 사람처럼 산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라며 내 멋대로 산 것을 용서하옵소서. 스스로 군림하려고 하는 횡포자들을 용납지 않으시는 주님, 당신이 내 인생의 목표이기에 거룩함을 지키며 살게 도와주옵소서.
O Lord, who administers justice near me, When faith and morality no longer give me a security guarantee, I confess that I live
like a man without God even though I say I believe. Forgive me for living my own way, saying, "God has covered my face and do not see me forever." O Lord, who does not tolerate tyranny who tries to rule himself, Help me live with holiness because you are my life's goal.
2026.7.10.fri. Clay
신학 비평//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낄 때, 나는 하나님의 부재를 믿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가? 시편 10편은 악인의 성공보다 악인의 신앙을 먼저 드러냅니다. 악인의 가장 큰 죄는 폭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없다"(4절)는 삶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입술의 선언보다 삶의 방식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 없이도 안전하고, 하나님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인간은 자기 자신을 왕으로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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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이 점을 "악의 시작은 행동이 아니라 거리"라고 표현한 것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욕망은 기준이 되고, 교만은 확신이 되며, 약자는 이용의 대상이 됩니다. 시편은 악인의 행동보다 그 마음의 중심을 먼저 고발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통찰은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시인은 "어찌하여 숨으시나이까?"라고 탄식하지만, 기도의 끝에서는 "주께서는 보셨나이다"(14절)라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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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하나님이 즉시 행동하시는 것을 보는 데 있지 않고, 보이지 않아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약한 자와 고아와 외로운 자를 기억하시는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악인의 번영을 부러워하기보다, 하나님의 공의를 기다리며 약자의 편에 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숨어 계시는 하나님을 가장 분명하게 증언하는 길입니다. 시편 10편은 하나님의 침묵을 묻는 시가 아니라, 침묵 속에서도 여전히 보고 계시는 왕을 끝까지 신뢰하는 믿음의 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