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독립운동 총서 4권 독립군의 전투 편에 이범석 장군의 회고록 우등불의 일부가 써져 있기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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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적발견
청산리는 만산준령(萬山峻嶺) 중의 한 계곡 분지(盆地)로 그 길이는 80여리에 달했다. 폭은 제일 좁은 곳이 4, 5리 제일 넓은 곳이 8, 9리나 된다. 청산리 서북쪽은 비교적 수림이 적고 동남쪽으로 갈수록 울창했다. 동남간은 푸른 활엽수림과 침엽수림에 뒤덮이고, 도처에 30길 높이의 송백, 떡갈나무, 벗나무가 꽉 차있었다. 하늘을 가린 나뭇잎들은 마치 겹겹이 닫힌 암흑의 문처럼 모든 광명을 가로막고 있었다.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땅에 해마다 떨어진 낙엽이 쌓여서 그 두께만도 두어치 가량 되었다.
그 위를 밟으면 스프링 없는 소파 위를 걷는 것 같기도 했고, 또는 부드러운 모래 위를 디디는 것 같기도 하여 마치 깊은 함정에 빠져 밑 없는 수렁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만 났다. 청산리에는 도처에 크고 작은 골짜기가 있었다.
그것은 멋진 유격전의 무대로 알맞는 곳이었으니 여기야말로 망국국민이 침략자에게 피묻은 원한을 갚기에 최적지, 피의 값을 찾을 최후의 시각은 마침내 오고야 말았다.
음력 9월 7일 (양력 10월 18일) 오후 4시쯤 싸늘한 기운이 가득히 담긴 조용한 오후였다.
우리들이 바로 청산리 골짜기를 향하여 행진하고 있을 때 문득 우리의 시야에 나타난 것은 광대무변한 광야 저쪽에서 장사(長蛇)의 대열이 구불구불 꿈틀거리며 운동하는 모양이었다.
'적이다!'
그 찰나 우리들의 맥박은 정지되고 혈액은 동결되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전신의 피는 다시 용솟음치는 샘처럼 힘차게 돌기 시작하였다.
적은 각 병종(兵種)의 혼성종대로서 바야흐로 충신장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었다. 그 대열은 흡사 꿈틀거리는 독용처럼 교만하고 흉악하게 보였다. 용의 꼬리는 하늘을 뒤덮은 사연(沙煙) 속에 묻혀 있었다.
나중에 노획된 적의 문서에서 발견된 사실이지만 이 적의 대부대는 그 때 아즈마 지대(東支隊)라 칭하는 적 제37여단을 기간으로 하고, 기병 제27연대 외에 야포병(野砲兵) 제 25연대를 배속시켜서 37여단장 아즈마 소장이 인솔한 것이었다.
적도 우리를 발견한 모양이다. 적과 아군의 사이는 불과 10리 거리였다.
열화(熱火)와 같은 복수심이 타올랐다. 온몸의 피는 더욱 뜨거워지고 빨리 흐르기 시작하였다. 우리들의 눈앞에는 오직 피비린내 나는 붉은 글자가 보일 뿐이었다.
'전투!'
우선 유리한 지점을 차지해야 했다. 우리는 전위대에 명령하여 급히 쑹린핑(松林坪) 북방고지를 점령토록 하였다. 만일 적이 들어오면 우리들은 되도록 저녁 어스름 속에서 전투를 벌이도록 하였다. 그것은 우리가 지형상 유리한 태세하에서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려는 것이었다.
이어서 우리 주력부대는 급행군으로 청산리 골짜기로 들어갔다. 우리가 쑹린핑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황혼이 너울거리고 있었다.
(2)전투 준비
우리는 즉시 식량을 준비하고 부대를 둘로 나누었다.
비교적 훈련정도가 낮은 보병 3분의 2와 비전투원으로서 제1제대(第一梯隊)를 조직하여 이를 총지휘 김좌진 장군 예하에 두었다. 그리고 이들을 전장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여 필요없는 희생자를 내지 않도록 하였다.
동시에 사관훈련소 졸업생을 기간으로 하여 거기에 보병 3분의 1과 박격포, 기관총을 보강한 제2제대(梯隊)를 조직하고, 이를 나의 지휘하에 두어 우리 뒤를 추격하는 적과 싸울 준비를 하였다. 황혼이 되어 제 2제대는 공지 부근에 도착하였다. 밤에는 빠이언핑 남방 푸른 숲 속에 노영하면서 전초진지를 포진하였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어느 때라도 전쟁을 맞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9월 10일 새벽 5시 제 1제대에 배속된 보병대는 나의 제 2제대 후방 8백미터 거리에서 쓰팡띵즈(西方頂子) 기슭에 예비대로 공치(控置)돼 있었다.
일선 사관훈련생들은 삼림 '공지'를 이용하여 다음과 같이 배치되었다.
우측지구의 1개 중대는 이민화(李敏華)가, 좌측지구의 1개 중대는 한근원(韓根源)이 지휘하기로 하였다. 정면 2개 중대 김훈(金勳)-후일 운남사관학교(雲南士官學校) 18기생, 황포군관학교(黃포軍官學校, 백과사전에서는 黃織軍官學校로 나옴) 교관- 으로 우중대를, 이교성(李敎成)으로 좌중대를 지휘케 하고, 나는 정면에서 전국(全局)을 살폈다.
우리들이 매복한 진지는 '공지'를 둘렀나 산허리였으며 거기에는 각종 천연 방위물이 있었다. 즉 몇 아름드리의 쓰러진 나무가 앞을 가로막고 거기에 산이 쌓였으며, 다시 그 위를 담요처럼 두터운 청태(靑苔)가 덮어서 가장 알맞는 천연적 엄폐물을 만들고 있었다. 기습을 감행하기 전에 우리들의 위치가 적에게 먼저 발견되지 않고 번개같은 동작으로 적에게 불의의 타격을 주기 위하여 나는 동지들에게 다음과 같은 주의를 주었다.
1.배낭은 모두 벗어서 진지 후방 예비대에 둘 것, 각자의 짐은 될 수 있는 대로 덜어야 한다.
2.진지에 진입할 때는 위장(僞裝)을 충분히 할 것.
3.한 사람 앞에 2백발의 탄약을 탄대에서 꺼내서 손 가까이 놓을 것, 그렇지 않고 몸에서 탄환을 꺼내느라고 사격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4.사격전에는 누구를 막론하고 흡연, 담화를 금할 것, 경거 망동하여 적에게 발견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5.사격개시는 나의 총성을 신호로 할 것, 그 이전에는 누구라도 마음대로 총을 쏘아서는 안된다.
주의사항을 전달한 다음에 나는 동지들에게 마지막 훈시를 하였다. 마디마디 피맺힌 목소리로.
"청산리 산맥은 장백산의 주맥(主脈)이요, 우리 조상의 발상지이다. 지금 이 순간 수천 수만의 눈동자가 우리를 주시할 것이요, 무수한 자손의 눈동자도 또한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들의 혈관 속에 아직도 단군의 피가 말라붙지 않았다면 우리는 마땅히 한 몸을 희생의 제단에 올려놓고 2천만 동포의 원한을 풀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용감히 싸울 때 하늘에 계신 천백세 조상의 영은 반드시 우리를 보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