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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매니아 군대/병기 [질문]일본 조총의위력!!~
앞을향해 추천 0 조회 1,078 09.06.14 12:27 댓글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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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6.14 12:32

    첫댓글 이 게시물은 질문/답변 게시판으로 이동될 것입니다.

  • 09.06.14 13:15

    당시 임란초기 조선이 허무하게 밀렸던건 오랜 평화로 인한 군기 문란등도 있지만 군사체제였던 제승방략의 탓도 크다고 알고있습니다. 게다가 조총 사거리도 국궁보다 훨씬 짧고 파괴력도 낮았다고... 조총은 그저 빵빵 거리는 심리효과.

  • 09.06.14 13:13

    조총... 그러니까 철포는 불과 수십년 사이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전래 직후 모방생산 할 때의 자폭용(!) 도구에서 노부나가 전성기 무렵의 대량운용이 가능할 정도로 안정화된 시기, 그리고 임란 후 에도시대 철포가 규격이나 성능적으로 아주 많이 다르다는 거죠. 한 예로, 오오즈츠 같은 대형(구경이 20mm가 넘어가는 녀석...;;) 철포는 거의 대포처럼 쓰였거든요. (진짜 대포를 생산할 기술력이 안 되서...;;) 게다가 표준화도 되지 않은 산업화 이전시대라 모조리 수제작인 까닭에 지역마다, 장인마다 모두 제각각으로 만드는 거라 어느 것을 기준삼기도 애매하죠.

  • 09.06.14 13:15

    임란 후 에도시대 철포의 경우 유럽산 화승격발식 총화기 보다 우수하다는 평가가 있긴 한데, 그걸 임란 이전에 대입해도 되는지는 의문인지라...;; (에도시대로 가면 유럽의 경우 부싯돌 격발식 총화기 등장 후의 시대라 의미가... 없죠.)

  • 09.06.14 13:41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꿈꾸었던 중국황제를 넘어 인도를 지배할거라는 소리가 마냥 헛소리는 아니라고 합디다.//마냥 헛소립지요. 인프라 X인 섬나라가 무슨 아시아를 관통하는 대원정을 한다고 ㅋ 그냥 애초에 조선 칠 생각 뿐이었을 것이오.

  • 09.06.14 21:49

    그쵸; 조선칠때도 그렇게 쉽게 못쳤잖습니까. 거기다가 조금 전쟁 오래 끈다싶으니까 휴전협정크리 시전 ㅋㅋㅋ

  • 09.06.15 06:35

    아니 저도 예전에 책을 보니 그럴 생각이 있긴 있었던거 같긴한데 그냥 히데요시 지 혼자만의 망상이었을뿐입니다.

  • 09.06.14 13:52

    만주에서의 대규모 전투가 일어나면기병에게 캐발릴걸요 삼단총포술은 허구이고 기병전경험이 적으니까요

  • 09.06.14 14:06

    밀집대형이라 날씨가 좋은날에는 경기병에게 발리는게 밀집대형입니다. 조총도 그렇게 좋지도 않은데다가, 봉건시대 전투와 다른 대규모 전투가 되어서 조총특기도(쏘던 사람 맨 뒤로 가면서 장전하고 줄서듯이 쏘는것) 안될듯 하군요.

  • 09.06.14 14:39

    명나라 영토가 워낙에 넓어서 가다가 중간에 지쳐 지게됩니다

  • 09.06.14 14:47

    초 구식 머스켓을 본고장 유럽 아해들이 뭐가 아쉬워서 수입해 갑니까?

  • 09.06.14 17:19

    인터넷에서 검증되지 이야기로 철포의 위력을 막연히 평가절하하는 경우가 많은데, 분명한 것은 임진왜란 초반부터 조선은 항왜로부터 그 철포를 필사적으로 도입하여 대량 운영했다는 것입니다. 19세기초 철포의 보유는 10만정이 넘을만큼 보편화되었으며 홍경래의 난때 반란군들도 철포부대를 대량으로 운영했습니다. 그 사실은 활과 비교해 별볼일 없다느니따위로 쉽게 말할 부분은 아니라는 겁니다. 다네가시마에 최초 수입된 아퀴버스는 초기모델이지만, 짧은 기간에 퍼져서 자체적으로 철포를 개량하여 매우 다양한 구경과 위력을 가진 철포를 보유했습니다. 또 포르투칼, 네덜란드와 지속적으로 교류를 유지했습니다.(특히 군사방면에서)

  • 09.06.14 17:17

    철포가 활을 대신한 것을 철포가 대량생산에 적합하고 배우기 쉬워서였다,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진짜 근본적인 차이는 이 둘의 전술적 위력에 있다고봅니다.(단지 그때문이라면 전장에서 궁수부대가 철포부대를 압도했겠지요.) 활은 근거리에서 직사가 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로 곡사무기입니다. 아주 가까운 거리가 아닌한 45도 각도로 곡사를 해야 합니다. 그에 반해 총은 직사무기로 적의 정면을 향해 화력을 퍼부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소규모 전투가 아닌, 대규모 집단전투에서 철포는 활에 비할 바가 아닐만큼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기에 수천년간 활을 사용했던 아메리카 인디언조차 활을 버리고 필사적으로 총을 장비했던 것이죠

  • 09.06.14 17:17

    한편으로, 다 아시는 얘기지만 임진왜란의 패전은 단순히 조총이라는 무기 하나로 결정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리플 한줄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책 한권 쓸만한 분량이죠^^. 이순신이 없었다면 승패가 어찌되었을 것인지는 간단히 말할 수는 없지만, 임진왜란에서 그의 역할은 그야말로 더이상 말이 필요없지요.

  • 09.06.14 16:47

    유럽 애들이 일본에서 기념품이라면 몰라도, 전투용으로 굳이 조총을 수입해 갈 이유는 없을 거 같군요. 일단 총이라는 물건이 바닷바람에 강한 것도 아니고... 굳이 일본에서 공수해 갈 필요가 있을 정도로 일제가 우수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해서 일제가 값이 쌀리도 없고(수송비 때문에라도)... 이순신이 없었다면 조선 정부 정도는 뒤엎을 수 있었을 지 몰라도, 1차대전 직전에 합병한 것처럼 합병하기는 솔직히 무리.

  • 09.06.14 19:24

    임란 당시에 일본의 조총이 유럽 전체의 조총 보다 수가 많았다.. 고 한건 어디서 들었.. 그때 당시 조선은 어쩔수 없었다고 봅니다. 전국시대 전쟁전쟁을 하였는대 그들의 교리를 조선이 못 따라 갔죠~

  • 작성자 09.06.14 23:02

    그니깐요. 만약에 이순신이 없다면은 전라도 먹었지요. 수륙양용으로 가면 전라도 걍 먹는거지요. 그렇게 되면 그나마 남아있던 조선군과 명군의 군량은 어디서 나옵니까? 그러면 일단 조선 합병 크리 타지요. 그리고 서울가는데 일주일 걸렸습니다. 북경이라고 오래갈거 갔습니까? 실례로 당시 명은 전쟁크리 엄청 탔습니다. 일본뿐만아니라 타타르왕조와도 일전을 벌여야했습니다. 명연합군대장 이여송은 임진왜란때 죽은게아니라 돌아가자마자 토번(티베트)과 싸우다가 전사하였습니다. 그만큼 명은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군대와 싸운다고 정신없었구요.

  • 작성자 09.06.14 23:10

    또 진주성 전투가 벌어질때 조명 연합군은 부산으로 쳐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일본애들의 전투력을 알았기 때문이죠. 부산에 진주해 있던 모든 일본병력들이 전라도를 털기위해 진주성 싸움에 올인하고 있을때 조차말이죠. 한번 크게 대였으니 못들어 간것이겠죠. 그정도 전투력을 가진 일본이 명을 먹는게 헛소리라구요? 만주의 누르하치는 명국력의 1/100일때도 명을 먹었는데 말이죠. 누르하치는 족장에 불과했으나 청태조가 되었지요. 그런데 이같은 상황을 일본에 적용시키는것은 무리일까요?

  • 09.06.15 08:54

    여명/잘 못 아시는데 일본은 주력무기가 조총도 일본도도 아니며 장창입니다. 그리고 화승총이 날씨가 습하면 쏘지 못한다는 것도 잘못 아는 것이며(다 해결했음) 그랬다면 바다에서 어찌 일본군이 총을 쏘아댔겠습니까?

  • 09.06.15 12:53

    다 해결된 건 아닙니다. 아편전쟁때의 영국군도 비올때 총을 못 사용해서 중국 농민들한테 포위되었었는데요;;.. 그리고 바다에서 쏘는 거랑 비가 오는 거랑은 차이가 많죠;

  • 09.06.14 23:43

    정복은 전투력만 높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전투력 높은 알렉산드로스 제국, 알렉산드로스 사후에 몇일이나 갔습니까? 비슷한 사례로 피루스 대왕의 에페이로스, 피루스라는 명장이 있는데 왜 좆뉴비 로마꼬꼬마한테 털렸습니까? 세계 최강 미군이 왜 북한에서 퇴각했을까요?

  • 09.06.15 06:51

    글쎄 싸우는건 잘한다쳐도 그 인도까지의 길이 그리 편하진 않을텐데요. 조선 하삼도야 탄금대정도만 빼면 산탈일도 그리 없는 노년기지형이지만 평양이북은 틀릴뿐더러 중국내륙이야 뭐 말다했고 고비사막, 아 그리고 에베레스트산맥이 오늘날의 중, 인도국경 인근일텐데요. 게다가 당시 일본의 조선,항해술이 인도나 중국내륙까지 병참을 도맡을 정도로 막강했다고 보기도 어렵군요. 저도 예전에 일본어떤 역사가가 히데요시의 뭐 어쩌구저쩌구 칭송하는건 봤습니다만 걍 망상 정도로 이해하심 될겁니다. 전쟁은 총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거란걸 망각한 오료입죠. 그리고 누르하치랑 왜군은 일단 기동력부터 비교불가입니다.

  • 09.06.15 08:53

    누르하치가 명을 정복한 것은 만주기병의 막강함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명이 내전상태에서 북경마저 함락되어 정권이 무너졌고 산해관에 주둔한 오삼계와 명의 최정예부대가 청군에 가세했기 때문입니다.

  • 09.06.15 10:08

    원래 조총이 처음 전래되었을당시 그 전략적 가치를 기존 활의 대채수단으로 보면 조총은 별볼일이 없는 무기이지요. 특히 기마부대 대응용으로는... 그러나 당시 일본은 활의 성능이 워낙 빈약했기에 조총이 충분히 활을 대채할 무기로 도입된거고 우리나라는 정 반대이지요. 그러던 것이 일본의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조총의 활용방법과 그 방향에 일대 혁신이 있었고 기기 자체도 발전을 해나가지요. 그러면서 단순히 활의 대채수단이 아닌... 각기 다른 가치가 확립되고요. 임진왜란때까지 조총을 활의 대채수단이지만 그보다 못한 존재 정도로 인식하던 우리가 왜군의 조총에 당황한 이유도 여기있겠지요.(탄금대 패배)

  • 09.06.15 10:10

    임란 초기때 조선군이 일방적으로 밀렷던 것은 이미 조선의 국방력이 와해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군적이 가짜로 조작된 상태라 당시 신립이 도성에 도착하여 인수받은 부대가 장부상으로는 1~2만이지만 실제 인원은 10명남짓이엇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또 노인과 장애인... 나머지는 다 중복기입과 가공의 인물들로 채워진 것이랍니다. 그런 상태가 전국적으로 진행되어 있었으니 밀리는게 당연하지요.

  • 09.06.15 10:13

    또 민심의 이반도 막대하여 민중들이 목숨걸고 싸울 생각을 안합니다. 막말로 차라리 이 사회가 완전 뒤집혀서 변화가 오면 그게 더 희망적이다 라고 생각하는 민중들이 대다수가 되어버리니... 해서 창을 거꾸로 드는 경우도 많았으며... 극초기 의병들의 경우 지주에게 땅을떼이지 않기 위해 가구마다 할당량을 받고 강제로 나온 사람들이 대다수 였다는군요. 이정도면 국방력은 물론 민심이반까지 극심한 상태이니 초기에 밀리는것은 당연하겠지요. 단히 조총의 위력을 과장할 필요는 없을것이라 생각합니다.

  • 09.06.15 12:07

    조총의 위력-맞으면 아픕니다.

  • 09.06.15 13:14

    조총은 일본군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조총의 뛰어난 성능이나 '신무기'라는 무기의 우위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의 약점으로 알려져있던 장병기의 단점을 조총으로 상쇄한 것입니다. 고려나 조선의 전술을 보시면 알겠지만 계속해서 활,화약무기 등의 장병기를 이용한 원거리 사격이라는 이점을 사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에서 그것이 깨지게 됩니다. 이점이 조총이 일본군에게 가져다 준 이점입니다. 다만 이것은 상대적 우위로서 나중에 청이 준가르등을 정복할때, 총을 보유한 적을 상대로 기병전술(총이 아닌 활 사용)을 훌륭히 수행해서 격파한 점을 볼때 너무 절대시 하시면 안 됩니다.

  • 09.06.15 15:27

    조총 그때는 꽤 쎗죠. 근데 초기형 총이니까 연사력,파괴력,사정거리문제 등등이 있었죠

  • 09.06.15 15:48

    빵야빵야

  • 09.06.15 18:54

    궁수는 조달에 어려움이 많죠. 게다가 활이라는게 그렇게 뚝딱 만들어지는것은 아닙니다. 물론 장궁같은거는 숙련된 장인이 하루면 뚝딱 만들어낸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합성궁인 조선의 각궁은 다릅니다. 일단 재료도 비싸고 활도 수명이 있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화살도 꽤 비싸더군요. 해서 꽤 고급무기입니다. 거기다가 관리도 꽤 어렵습니다. 장마철에는 방에 불을 피우고 습도를 맞춰줘야 한다더군요. 전투시에도 관리를 잘 해야합니다. 조선이 엘프의 나라로 불리기는 하지만 활을 사용하는 계층은 양반이 유흥거리정도로 사용하고 무관의 필수과목일뿐 누구나 활을 쏠수 있었던건 아닙니다.

  • 09.06.15 18:57

    해서 임란후에 조선도 조총의 수요가 늘기 시작합니다. 해서 조선후기에는 삼수병이라고 해서 궁수 포수 창수가 하나의 부대를 이루더군요. 원래 조선은 화포를 사랑했습니다. 이름은 기억이 잘 안나지만 손으로 쏠수있는 작은 대포도 꽤 많은수르 확보하고 있었고 조선 초기에는 사용해서 꽤 많은 전과도 올린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럭셔리하다는 신기전을 가진 나라가 조선이니까요. 그런데 재미있는것은 조선수군이 화포를 쓸때 사용하는 화약이 양이 매우 적다고 하더군요. 해서 조선수군과 당시 유럽해군을 비교할때 많은 논란이 있었죠.

  • 09.06.26 23:21

    원래 조총이 유럽의 사냥총이라고 하더군요 그걸 일본이 복제해 대량생산 결국은 조선은 사냥총에 완전히 당한거라고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kbs역사스페셜인가 한번 나왔습니다. 일본의 조총에 대해서 나름 굉장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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