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 중 다음에 다시 와야지 하는 여행지는 여럿이지만 호텔은 딱 두개이다.
이 곳 타트라의 허버트 호텔과 마지막에 묵었던 프라하의 호텔 프라하.
새벽에 일어나 발코니로 나가보니 부지런한 최선생 커플은 벌써 아침 산책 중이다.
우리 팀 중에 가장 잉꼬커플로 최선생 신랑(우리는 그의 이름 끝자를 따서 율사마라 부른다.)은
아직도 최선생을 부를 때 "윤미씨!" 라 하는데
아침 공기를 가르는 윤미씨의 웃음소리와 율사마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창밖으로 타트라 평원의 무한 리필되는 햇살을 보면서 아침을 먹었다.
우리나라 과일과 모양이나 맛이 참 많이 다른 자두와 배
그리고 들러리가 키우는 사과에 비해 형편없이 작고 못생겼고 맛도 없지만
행복하게 자란 것 같은 사과를 많이 먹었다.
호텔을 출발하여 고속도로에 올라 헝가리를 향해 달리는 길 내내 버스 창 밖으로
참 잘생긴 타트라 산이 따라 왔다.
가까운 곳은 그림같은 초원에 소나 양이 느릿느릿 풀을 뜯고
간혹 나타나는 호수와 예쁜 마을이 장거리 버스여행이 지루할까봐 동행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중에
내려서 누리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듯 버스 창밖을 행해 셔터를 눌러댔다.
수도인 브라티슬라바가 있는 슬로바키아 중서부로 갈수록
목가적인 풍경 가운데 한두번씩 공장이나 아파트, 창고, 마트나 빌딩 같은 반갑지 않은 풍경들이 나타났다. 사람들 사는 모습도 우리랑 별반 다를 게 없는 모습들이었고
우리도 서서히 창밖을 보는 것에 지쳐 다들 모자란 잠을 청했다.

국경을 넘어 부다페스트에 이르기 까지 5시간을 버스에 앉아 있어야만 하기에
영화 글루미선데이를 보았다.
2차 대전 무렵 헝가리의 실제 이야기를 영화화했는데 나는 이 영화가 좋아서 3번이나 보았다.
주제곡인 'Gloomy Sunday'는 이 노래를 듣고 147명이나 자살을 하여서
헝가리내 금지곡이 되어버린 것으로 영화보다 자살하는 노래로 더 유명해진 곡이다.
유럽에서는 햇빛의 양이 몹시 적어서 많은 유럽인들이 우울증에 걸려 자살률이 꽤 높다고 한다.
여자주인공 이로나는 여전히 아름답고 매혹적이었으며
처음엔 느끼한 중년남 분위기던 유태인 라즐로 역시 깊은 매력을 지닌 그대로였다.
헝가리 국경을 막 넘어 휴게소에서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커피를 마셨다.
에스프레소 한잔에 1유로, 뚱뚱한 아주머니는 무척 바빴고 거기서 하나투어팀과 노르웨이 여행팀을 만났다.
아우슈비츠에서 만난 적 있는 백랍같은 피부의 노르웨이 아가씨를 또 만났다.
부다페스트의 페스트 지역에 있는 한국식당에 도착한 시각은 두시,
오전내내 버스에 앉아 시달릴 대로 시달린 엉덩이가 시원해 했다.
김치찌개 같은 부대찌개를 맛있게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니까...
부다페스트는 햇빛이 쨍쨍하였고 무척 더웠다.
점심을 먹고 아이리스 촬영지였다는 영웅광장으로 갔다.
드라마에서 이병헌이 총을 맞고 도망치는 곳이라는데 드라마 촬영지에는 관심이 없고
헝가리 건국 이야기를 담은 아르파트 7개 부족장 기마상과 가브리엘 동상이 멋졌다.
건물들마다 처마 혹은 지붕 꼭대기에 조각상을 올리는 것이 이곳의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래도 하늘 높은 곳에서 더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가브리엘상이나
용맹한 기상이 서려있는 기마상은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


헝가리는 서양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훈족,
또는 중국의 한나라 때 왕소군이 시집갔던 북방민족인 흉노족의 휴예라고 하는데
문자가 없어 기록된 역사가 없기에 확인할 수는 없지만
거리에서 만나는 여자들의 키가 유난히 크고 체격이 좋은 것이 흉노족의 후예라는 말에 공감을 하게 하였다.
어쨌든 헝가리는 유럽의 나라중 유일하게 아시아계의 후예로 음식도 비교적 우리 입에 잘 맞고
언어도 우리와 어순의 배열이 비슷한 알타이어계라고 한다.
그래서 다른 유럽인들이 헝가리말을 배우는데 무척 힘이 든다고 한다.
영웅광장에서 가까운 시민공원내에 있는 온천에 갔는데
나는 온천이 내키지 않아서 인근의 시민공원을 산책하였다.
온천으로 쓰이는 건물 자체가 오각형의 고풍스러운 건물로
뒤편 뷔페로 쓰이는 쪽은 어느 성주의 궁궐이라 해도 좋을만큼 아름다웠다.
공원을 가로질러 조그만 냇물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자 오래된 성이 나타났는데
안내판이 헝가리어로 되어 있어서 성이름은 물론 이 성의 주인이었던 인물의 동상을 봐도 읽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농업박물관으로 쓰인다.
날이 더워 아이스크림이나 생수 한병 사려해도 유로화를 받는 곳이 없어서
우리 버스가 올때까지 갈증과 더위를 참을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온천 뒤편 뷔페 식당으로 쓰이는 건물 , 뒤쪽 두개의 탑머리가 보이는 쪽이 온천 건물이다.
노래로만 듣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지난 주 동유럽 일대에 내린 폭우로 푸르지 않은 물이 거세게 흘렀지만
우리는 다뉴브(도나우) 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40분 가량 유람을 하였다.
강 양쪽의 아름다운 건축물, 특히 바로크양식의 전형인 국회의사당 건물과 강건너 어부의 요새
그리고 곳곳에 솟아있는 성당의 첨탑이 오후 햇살 속에서 햇살만큼이나 빛나고 있었다.

국회의사당, 이스트반 성당과 함께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 페스트지역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다뉴브강에서 제일 오래된 다리 공사중이었는데 아차 이름을 잊어버렸다.

다뉴브 강(2,850 km)은 유럽에서 볼가 강(3,690 km) 다음으로 긴 강으로
독일의 알프스 지역에서 발원하여 헝가리 그리고 발칸의 여러나라를 지나 지나 흑해로 흘러 들어 간다.
부다페스트는 다뉴브 강에 의해 본래 부다 지역과 페스트 지역으로 나뉜 것을 8 개의 다리로 이어 놓은 것이란다.
부다는 '물', 또는 '온천'을 의미하는데 온천이 150 개가 넘는다고 한다.
유람선에서 내려 성 이스트반(슈테판 혹은 스테파노)성당으로 향하였다.
성당 안에 들어 가 보니 이스트반의 오른 손목을 잘라 미이라로 만들어 놓은 함이 있고
예수의 십자가상이 보였는데 이 에수상은 보는 위치에 따라서 왼팔과 오른 팔의 두께가 달라 보였다.
벽을 장식한 대리석이나 벽면과 지붕의 황금 장식, 돔 내부 천정의 벽화가 아름답고 세련되었다.
이 이스트반 성당은 건국 896년을 기리기 위하여 96m 높이로 지었는데
저지대 평지인 페스트 지역의 모든 건물은 이 높이 이상 지을 수가 없어
상대적으로 높은 부다지역의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면 어디서나 이 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금으로 장식된 성이스트반 성당 내부 돔 천정
성당을 보고 기념품 가게에 들러 이곳의 특산물인 악마의 발톱 로션과 토카 와인 1병을 사고
중세 특선요리를 한다는 식당으로 가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그리 비싼 집은 아니지만 역사가 오래되었고
특이하게 써빙하는 사람들 복장이나 실내 장식이 중세풍이고
실내도 전기가 없던 시절답게 어두컴컴하였다.
고기와 감자와 채소를 모두 커다란 접시에 한꺼번에 담아 손으로 덜어먹는 르네상스 특식이
역시나 좀 짰지만 맛있었다.
오후 다섯시 이후에 일을 하면 고용주가 엄청난 세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직장이 다섯시쯤 끝난다.
그래서인지 저녁을 먹고 부다지역으로 가려고 다리를 건너는데 차가 많이 밀렸다.
어부의 요새는 19 세기 시민군이 왕궁을 지키고 있을 때
도나우 강의 어부들이 기습하는 적을 막기 위해 요새를 방어 했던 성이다.
고깔 모양의 탑과 기마병 조각이 여럿 있는데
이중 십자가 주교봉을 든 기마병의 모습을 한 이가 최초의 헝가리 왕 이스트반 1세(슈테판 1세)이며
헝가리의 국부로 카톨릭에서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어부의 요새 언덕에서 건너다보는 국회 의사당

이곳에도 이스트반 왕의 기마상이...

어둠속에 가라앉는 다뉴브 강과 부다페스트 시내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성벽, 성당 한가운데 생뚱스러운 현대식 건물이 버티고 있어
뭐냐고 물어보니 힐튼호텔이란다.
듣는 순간 모두가 혀를 차며 실소를 했는데
헝가리가 사회주의 체제를 버리고 자유경제체제를 선언했을 때 나라 살림이 어려워
헝가리 정부가 부담해야 할 문화 예술 국제교류 부담금을 힐튼이 대신 내주기로 하고
여기에 호텔을 건립했다고 한다.
다만 주변의 유적지에 어울리는 건물을 짓기로 약속을 하고.
하지만 호텔 건물은 벼베기 봉사활동에 비싼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참여한 사모님처럼
그 자체가 폭력이었다. 우리가 투덜거리자 가이드가 말했다.
"이 힐튼호텔을 볼 때마다 헝가리 사람들 가슴에 피눈물이 흐릅니다."
어부의 요새 언덕을 내려오는데 시가지는 이미 어두워 지고 있었다.
부다페스트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겔레르트 언덕에 올라가 유명한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보았다.
아름다웠지만 야경 보기를 썩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그냥 한강의 야경이나 별반 차이를 모르겠다.
동유럽이라하면 대개 서유럽보다 경제나 문화 예술면에서 후진국이라 생각하는데
헝가리는 남한보다 면적이 약간 작고 인구는 1,000만 밖에 안되지만
1896년에 유럽에서 두번째로 지하철이 생긴 나라다.
헝가리의 GNP는 약 16,000 불로 우리나라와 수준이 비슷하지만
교육, 의료, 연금 등의 복지 면을 비교하면 우리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산다.
교육비가 거의 들지 않고 대학 학비도 일년에 백만원이 채 들지 않으니 말이다.
파프리카 씨에서 비타민 C를 추출하고 성냥, 볼펜, 전자교환기 시스템을 발명한
그래서 10번이나 노벨상을 받은 나라다.
유로화의 가치가 자국통화에 비해 높게 평가되어있어서 도입을 미루고 있으며
우리네 주상복합아파트와 같은 형태가 대부분인 주택에는 발코니가 달려있고
더위, 추위, 소음 등을 차단하기 위하여 창문에 덧문이나 셔터를 달았는데
현지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벽에 단열재가 들어있지 않고 통풍이 잘 안되어 더위에는 집이 찜통인데
에어컨 설치비만 백만원을 웃돌아 요즘 제일 잘 팔리는 것이 이동식 에어컨이라한다.
호텔로 이동하는데 토마스 아저씨가 안절부절이다.
부다로 다리를 건널 때 차가 많이 밀려 시간이 많이 호텔로 돌아가는 시간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에서는 우리가 탄 버스같은 장거리 투어버스(LDT-long distance tour)에
하루 최고 운행거리와 시간을 정해놓고, 이를 어기거나 휴식없이 2시간 30분을 초과 운행하면
버스기사의 라이센스를 박탈하고 회사에 무거운 과태료를 물린다
형식적으로 그곳에 있기만 하는 국경검문소에서 간혹 타코미터를 확인하는데
내일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을 때 걸리면 큰일이라고
한 번도 서두르지 않던 토마스가 안절부절이니 우리 모두가 괜히 미안해지고 마음이 바빠졌다.
늦은 시간에 비엔나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가까운 홀리데이 인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첫댓글 아무도 꼬리를 안달아주셔서 제가 먼저 달아요. 모두가 침묵하시면 속으로 "흥"하시는것 같아 슬퍼요. ㅠ ㅠ
에고...이제야 봣어요. 목인님 여행후기까지 곁들여주시니 사진만 덩그라니 올라온 거 보다 훨씬 보기 좋아요. 멋진여행 하셧네요. 전 언제 이런데 가보나.......부러움 가득~~
저도 사실 이번엔 방학도 너무 짧고 들러리도 시간이 안되고 못갈것 같았는데 확 저질러버렸어요. 여울님 담에 같이 가요.
고속도로에서 입경하며 남산의 Hyatt Hotel을 볼 때마다 콧잔등이에 반창고 붙인것 같다는 생각을 늘......
Hungary하면 괜히 배고픈 나라라는 생각이 늘 있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
집시가 원래 Hungary, Rumania가 홈 그라운드 아닌가요?
목인씨! 정말 부럽습니다!
서양사람들이 나이 먹으면 " 너 뭐 할래? " 하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 여행!
여행은 인간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 번 일깨우는 정말 소중한 기회..........
목인씨! 내가 언젠가 호주 해안선 일주 자전거 여행을 할 거라는 걸 아시지요~~~
창해님 호주 일주여행에 따라 갈려고 계 붓고 있는 것 아시죠?
침 질~질 흘리며 읽느라 꼬리 달 새도 없어유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