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0 주일예배
본문: 고전 9:24-27
제목: 상을 받도록 달음질하라
1.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임을 알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9:24)
다 달릴지라도 일등 상, 금메달은 한 사람만 받지요.
너희도 이 일등 상을 받도록 달음질하라고 하신다.
우리 앞에 당한 믿음의 경주에서 달리는 자세와 달리는 목표를 말씀해 준다.
상의 목표가 분명하고 확실해야 한다.
방향이 불확실한, 향방 없는 달음질,
허공만 치는 싸움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상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부름의 상이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4)
우리의 상은 하나님이 부르신 사명의 상이요 소명의 상이다. 우리의 푯대이다.
내가 만든 사명, 소망, 야망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이어야 한다.
세상 안에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잡힌 바 된 그것이 아니다.
달려갈려면, 이미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려야 한다.
과거가, 귀한 것이든 추한 것이든 뒤에 것은 잊어버려야 한다.
과거에 매인 사람은 앞으로 달려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의 이러한 신앙의 달음질 자세를 죄와 구원에다 붙이는 자들이 있다.
실존주의자들은 과거에 매이는 것을 죄라 하고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구원이라 한다.
죄와 구원을 가볍게 여기고 소위 철학적 신학자들이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이룬 일, 겪은 일은 그것이 귀한 것이든 추한 것이든,
잊어버려야, 앞으로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공을 세우면 거기 머물지 말라는 노자도 뭔가를 알아차린 것 같다.
말이 아무리 멋 있어도 그것을 살지 못하면 공염불이고 허공을 칠 뿐이다.
광야 연단 중에서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도를 따라 달려가야 한다.
모세와 이스라엘처럼, 구름 기둥 불 기둥을 따라 행진해야 한다.
구름이 떠오르면 행진하고 머물면 진영에 머물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행진하며 직임을 지키는
모세의 광야 행진법을 우리도 배워야 한다.
모세는 40년을 광야에 머물러야 했지만, 그 결과는 40년의 영광이었다.
아브라함은 25년을 기다려야 했지만, 그 결과는 대를 이을 믿음의 후손 이삭이었다.
욥은 모든 재산과 10남매를 잃고 목숨까지 위태한 고난을 겪었지만,
그 결과는 갑절의 축복과 10남매와 백사십년을 더 살며 4대의 손자를 보는 복을 받았다.
요셉도 다윗도 하나님의 광야 행진법에 따라 고난 후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고난의 연단 없이 왕권의 복을 받은 사람들은 멸망으로 끝이 났다.
사울 왕이 그랬고, 솔로몬 왕이 그러했다.
손 쉬운 복과 형통이 우선은 좋은 것 같아도, 끝은 비참하다.
구제할 때 기도할 때 금식할 때 외식하는 자들은 상을 이미 받았다고 하셨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께서 상으로 갚으신다고 하셨다.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것은 상이 크다고 하셨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0-12)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 중에 만들어 쓰시기 때문에 그 상이 크다.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울 때 상이 크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울 때
하나님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상을 주신다.
하나님은 반드시 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사무엘을 받고 드린 후 하는 한나의 찬양 고백이 우리의 찬양 고백이 되어야 한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를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시며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삼상2:1-8)
한나가 경험하고 만난 하나님을 우리도 만나고 경험하기 바란다.
하나님은 감당 못할 시험을 주지 않으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하게 하심을 믿으라.
2. 이기려면 모든 일에 절제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9:25)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는 사람도 다른 모든 일은 최대한 절제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일 외에는 다른 모든 일은 멀리하고 집중한다.
선택할 때부터 다른 모든 것은 ‘없을 무’가 되는 것이다.
태릉 선수촌, 합숙 훈련, 기타 등등은 목표의 메달을 위한 절제이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절제는 썩지 아니할 영원한 면류관을 얻기 위한 절제이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정욕과 자랑으로 취하지 않고 멀리해야 한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거나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은,
다른 모든 일에 절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자기를 위해 땅에다 보물을 쌓는 사람은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해 갈 것이다.
오직 자기를 위해 하늘에다 보물을 쌓아야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고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한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둘 것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는 모든 것을 더해 받을 것이다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는 땅과 보물과 육체를 절제해야 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 성령과 육체, 하나님과 재물, 이 둘은 겸하여 가질 수 없다.
이 둘 다 가진다는 자는 실상은 땅과 육체와 재물만 탐하는 자이다.
땅과 육체와 재물을 절제하지 못하는 자는
달음질 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하는 자이다.
정말 성령으로 거듭나고 말씀으로 거듭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고 버릴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할 것이다.
그렇게 결단하는 것이야말로 상 외에 다른 모든 것을 절제하는 것이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는 변화가 없으면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바뀔 수가 없다.
사랑과 화평으로 의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하나님 나라 천국을 살 수 없다.
부름의 상 외에 모든 다른 것을 절제하지 못한다면,
부름의 상은 일찍암치 멀어진 거나 다름 없다.
그러면서도 교회 생활에 흔연스럽게 만족하고 있다면,
마지막에는 이스라엘과 같은 운명으로 끝이 나고 말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과 재물과 세상을 우상으로 숭배하고
그러면서도 천연덕스럽게 하나님께 제사는 잘 드리고 하다가
하나님은 그들을 멸망으로 끝을 내었고,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이스라엘 백성과 지금의 교회와 내가 다르다고 생각하며
안심을 할 수 있는지, 평강을 누릴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한다.
예나 지금이나 거짓 선지자들의 사탕발림에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결과이다.
유대교회는 대제사장, 거짓 선지자들이 온 백성들의 우상이었고,
로마교회는 교황과 고위직들이 온 신도들의 우상이었고,
개혁교회와 청교도는 루터 칼빈 어거스틴이 신도들의 우상이 되었다.
초대교회와 발도인들에게는 이런 우상들이 없었다.
오직 성경, 오직 성령을 따라,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만을 알기로 작정하였다.
하나님께 받은 믿음을 따라 사랑으로 역사하며 삶의 실천으로 의의 열매들을 맺었다.
주님은 인간 우상들을 향해,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23:33).
그 우상들을 따르고 그들을 좋게 여기고 있다면,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부름의 상 외에 다른 모든 것에 절제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에 사로잡혀 따르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놀라운 일인지를,
이제라도 눈을 뜨고 분별하여 알고, 그들을 떠나고 인사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3.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하라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9:27)
남에게는 하지 말라고 그렇게 권면하던 사람이
자기는 그렇게 하고 있다면, 그것처럼 우습고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롬2:3)
유대교회와 백성들이 율법이 없었나요? 제사가 없었나요?
로마교회와 신도들이 성경이 없었나요? 미사가 없었나요?
개혁교회와 신도들이 성경이 없었나요? 예배가 없었나요?
그런데, 왜 그들이 맺는 열매는 초대교회와 발도인들이 맺는 열매와 전혀 다를까요?
발도인들은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가르친 전통을 그대로 지켰다.
그러면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초대교회의 가르친 전통을 그대로 지켰을까요?
그들은 결코 초대교회의 전통을 찾아가지 않았고,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
자기들의 교리체계를 세우고 전파하고 가르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교리책 쓰기에 급급하였고 추종자들 가르치는 것에 급급하였다.
참 교회는 발도인들 알비인들 바울인들 위그노들을 통해서 계속 이어져 오고 있었다.
로마교회의 잔인한 핍박과 학살과 화형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은 이들을 찾아가지 않았다. 뿌리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발도인들이 종교개혁의 소문을 듣고 대표를 파견하여 만났을 때,
뿌리로 여기고 반기지도 않고, 배우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잘난 교리를 가르치려고만 하였다.
로마교회가 규정한 것처럼 그들을 이단으로만 생각했다.
나중에 겨우 교리가 같은 것으로 인정했지만, 초대교회를 이어온 뿌리인 것을 거부했다.
그들은 이미 13세기에 발도인들이 이룬 폭발적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를 악용하였다.
발달한 인쇄술에 힘입어 책들 보급하는 데 급급했고,
로마교회를 무너뜨리고 그 대체 세력이 되는 데 급급했다.
그들은 초대교회의 줄기가 아니고 로마교회의 줄기로서 그 대체 세력에 불과했다.
1500년 가까운 초대교회의 살아 있는 역사를 발굴하여 발표하는 사람들도
16세기 종교개혁과 루터와 칼빈 어거스틴에 직결시키며 안심하고 있다.
주님 말씀대로 열매를 보며 그들을 알려고 하지 않고 큰 세력에 맹종하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뿌리와 영 줄기를 따른 사람들은, 발도인들, 알비인들, 바울인들, 위그노들이었지,
16세기 종교개혁 세력들이 결코 아니었다. 진리의 영이 아니고 미혹의 영인 것이다.
개신교 5백년 동안 우리는 속아 왔다. 이제는, 그들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고
모든 이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만 복종하여야 한다.
이 역사적 사실에 나를 쳐 복종시키지 않으면, 계속 미혹의 영을 따라 가게 되는 것이고,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하게 될 것이다.
반복되는 지성주의에, 바리새인의 의에, 그만 속아야 한다. 상을 받도록 달음질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