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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30분 사당역을 맞추기 위하여 6시에 택시를 타고 경찰병원역에서 내린다,
마음이 불안하다,,혹시나 늦을까봐,,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노래를 듣는다,
햇볕은 고와요 맑은 햇볕은 나뭇잎에 들어가 초록이 되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남부터미날역이다,, 머지않아 교대역이라 정신을 바짝 차린다,
지하철역을 지나 다시 돌아간 적이 한 두번이 아니라서 눈을 크게 뜨고 기지개를 한다,
교대역에서 2호선을 갈아탄다, 이른 아침이라 승객이 적어 마음이 편하다,, 또 잠들까봐 정신을 바짝 차린다,
오늘 새벽 3시에 깬다, 선자령 가고 픈 들뜬 마음과 아파서 민폐를 끼칠까봐 걱정된 마음이 섞여 깊은 잠을 못자게 하고
요즈음 찾아든 이중섭 화가를 쓰느라 이중고를 겪는다,
약을 먹는다, 동충화초, 온갖 영양제,
사과,귤을 놓고 글을 쓴다,
선자령을 가기위해 글 길을 놔야한다,
사당역에 내리니 7시 조금 지나있다, 마음이 좋다, 두런두런 주변을 구경하고 화장실로 가고 여유를 벗삼아 흥얼댄다,
이젠 버스를 찾으니 가을남자분이 계셔 어찌나 반갑던지 이야길 나누고 잡은데 쑥스럽고 피곤하여 잠을 청한다,
수런수런 회원들이 모이고 차는 출발하고 잠은 깊어가고
뒤에선 가을남자님 ,지훈 코고는 소리 정겹고 이슬비님 정담 자장가 되고 옹반장님의 아버지처럼 그윽한 눈빛 자꾸 장난을 치고 싶어
영양제를 보여드리니 안주신다,
"다른 건 다 들여도 그건 안돼요. 체력 떨어질 때 먹어야 할 비상식이거든요."
웃으시며 건네시는데 그 웃음이 그렇게 따스할 수가 없다,
잠을 자다 보니 왼쪽 다리에 통증이 깊다,
둘째 아이 낳고 생긴 산통의 일종인데 한 달에 한번 꼭 좌골신경통으로 병원신세를 졌다,
아침에 약을 먹는다는 것이 하두 챙겨 먹을 약이 많아 놓친거다,
"지훈아~ 다리가 아프니 진통제면 되니 한 개만 가져다 줘! "
"괜찮아"라고 달려오는 꽃구름 언니 엄마같다,
약 먹었으니 괜찮아 질거라고 말하며 잠을 청한다, 이럴땐 잠이 보약임을 오랜 경험으로 알기에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리며 잠이 든다,
오랜 아픔의 시간은 사람을 성숙시킨다,
결혼 후부터 몸이 유난히 안좋아져 거의 밤이 되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세월 길다,
그런데 새벽만 되면 햇빛 쨍쨍해진다,,온갖 일을 새벽에 다 해치운다,
버스가 선자령에 내렸다,
휴게소 이름은 모른다,
우린 먹었다,
황태 해장국, 설렁탕,우거지해장국 세 가지인데 ~~
뽀미님이 참기름 가져다가 깍두기 넣고 비빈 밥 지금도 기억난다,
들꽃작가님이 먼저 비빈다하고 많이 비벼라 흥을 돋으며 우린 맛난 아점을 먹기에 최선을 다했다
내 메뉴는 황태해장국인데 샵님은 설렁탕을 시켜서 두 개 다먹고 싶은 마음에 앞접시에 덜어내니
레지나 언니가 자기꺼에서 가져가란다,
"싫어, 언니 샵님 것이 더 맛나, "
"샵님! 모자랄텐데."
"내 황태해장국 나눠 먹을꺼야,,그럼 두 개 다 먹으니까,,좋잖아,언니나 먹어,"
우리 테이블엔 샵님,꽃구름,?, 나 이렇게 앉았다,
일부러 그 자리를 찾아든 것은 꽃구름 언니가 날 많이 걱정해주셔서다,
먹으라 챙기시고 전화오고 그런 따스한 인연 앞에 보답하고 싶어 그 날 아침 한 공기를 다먹었다,
정말 양이 많았으나 민폐를 끼치지않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보태 먹었다,
깍두기 국물에 말고 또 떠먹고 깍두기 세 접기 가져다가 빨간황태해장국 만들어 먹구
걱정도 되구,,올라갈 때 분명 힘들텐데 싶으면서도 먹으야 가니까 다 먹다가 체한 느낌이 들어 그만둔다,
먹는 걸 안좋아한다, 소화가 안되고 양이 적어서 먹으면 체한다,
캡슐로 먹는 영양제 한 알이면 먹는 것이 해결되길 바래 대학때 이런 약을 개발해보겠다 한때 또 지랄발광을 한 적도 있다,ㅎㅎㅎ~~
우린 걷는다,
산길을 산자령 눈오는 길을 각자의 추억과 함께
다시 생길 추억을 길으러~~
산이 좋다,눈이 좋다, 나무가 아름답다,
하늘이 청아한 쪽빛이다,
구름 한 점 없다,
까마귀가 난다, 둘이 함께 따로 또 같이.
여러 마리의 새가 난다, 지들 빛깔로 지들 생김새대로,,,
그 아름다움에 취해 헛발질하여 넘어질까 단단히 정신을 추스리길 수도 없이 하는데
" 얘! 저 새 이름이 뭐야? 어떻게 저렇게 앙징맞고 귀여울 수가,, "
사라 언니의 말에
"배가 고파 그런거라우,,"샵님이 응수한다,
"먹을 거를 줘... 짤라서 쪼개서 줘야지.." 촛코렛을 찾은 언니에게 한 말이다,
"부리가 왜 있니? 그냥 줘도 쟤네들은 잘 먹어요." 봄산님이 거든다,
우린 새 한 마리로 이렇게 아름다운 대화를 하며 즐겁고 또 행복했다,
장곡님은 그 장면을 찍기위해 그 큰 카메라를 메고 이 곳까지 왕림하시다니 대단한 열정이시다,
가는 곳마다 장곡님은 찍으시고 일정한 포즈가 아닌 순간에 찍어버리니 자연미를 추구한다,
그 사진술이 맘에 들어 난 기꺼이 모델을 자처했다, 사라언니와 함께,,
또 무수히 많은 여자 회원님들과 함께 그래서 우린 즐거웠다,
제멋대로의 멋을 아는 우리라서,,,,
간식을 먹었다,
각자 앉은 모양대로
홍차로 입가심을
이슬비님의 보쌈 인기쨩이었고
마른안주도 소주,모과주,고량주와 춤을 추고
어여쁘고도 사랑스런 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 중 하나인데 역시 빠지지않더라
나더러는 훈이사랑님이 추워서 못먹는다며 못가져가게 해서 찻속에서 옹달샘,가을남자,지훈,이름모를 멋쟁이 여자 회원님과
나눠먹고 갔는데 산에서 먹으면 더 맛났을 것을 싶었다,
들꽃작가님은 직접 담근 모과주로 맛자랑까지 하고 멋지다,
암튼 우리 훈이사랑님은 내 짐을 줄여주려 갖은 노력을 다했다,
배낭을 꽉 채웠다, 먹을 것과 겨울장비로,,,내 배낭을 보던 훈이사랑님 깜짝 놀라며 다 놓고 가란다,
무거워서 어떻게 갈거냐며 혼자 몸도 버거울 산자령 길이 생각나 적절한 배낭의 무게 조절을 위해 노력한다,
추우면 옷 더 입어야 하니 가져가야지.. 그래요,,그럼 그것만 가지고 가고 물은 왠 세개나 가져가,,한 개면 돼,,그리고 얻어먹어,
피아노님은 달라고 하면 다 줄께..ㅎㅎ 감사하고 고마워서 웃는다,그리고 시키는대로 했다,
가벼워진 가방 무게에 몸은 한컷 편해져서 발이 날아간다,
아이젠을 하란다,
가을남자님이 자기는 안하고 나중에 필요하면 한다해서 나도 그랬다,
끝까지 안하고 내려올 수 있었던건 오랜 걷기로 다져진 훈련의 결과이고 교사란 직업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다보면 위급 상황이 자주 일어나서 그걸 25년 가까이 하다보니 길러진 지혜다,
산은 산이 원하는대로 가면 사고가 안난다,
눈길에선 눈을 타면 된다,
넘어지면 되고
미끄럼을 탔다,
내려오는 내내
몸이 아프니까 빨리 가려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한번도 안넘어지고'
노래를 부른다,
아프니까 견디어야해서고 양말 두 개로 등산화 속에 꽉 들어찬 발이 시려워서다,
수술을 받을때도 그 큰 팔 화상 수술을 받을때도 마치가 안되니 가위소리의 사각사각하는 소리와
잘려나가는 살의 아픔을 잊으려 노래를 했다,
성형외과 과장이 수술하면서 첨 보는 환자란다,
이 아픔속에서 노래를 하다니,,,
팔부위 안쪽은 살이 별루 없어 부풀려서 그 부분을 잘라내면
새로운 살이 돋는데 그 수술을 하기 위해 풍선같은 걸 한 달 정도 달고 있었고
그 부분을 잘라내는 수술이니까 아직은 내 살이라 아픔이 깊었다,
29살 봄엔 전신마치 3번을 하며 7살 적 입은 화상수술을 하던 해였고
그 때 난 6학년 담임이었다
6학년의 3월은 눈코 뜰 겨를없이 바쁜데
그 3월에 어머니께서 한대 성형외과에 아시는 분이 있어 날짜를 잡았다,
끌려가는 망아지처럼 갈 수 밖에 없으나 미안한 맘에 아무에게도 알리지않아,
성형외과 삼인실 병동엔 여자 셋만이 덩그러니 누워서 천정만 치어다 본다,
한 여자는 미스경북 출신으로 나와 같은 나이에 두 아들의 어미였고
또 한 여자는 강릉사는 분인데 담석증으로 일인실에 있다가 병원비가 많이 나와 옮겼으나
내과 병동이 없어 성형외과 병동에 자리를 잡았고 이 분이 내 세째 시누가 되었다,
미스경북 출신은 주식으로 돈을 벌었고 남편이 바람이 나서 그 바람을 잡고자
수술하러 왔다, 유방 200cc란 말에 과장이 놀라
"그 키에는 150cc도 출렁대니 그 정도면 됩니다."
입술은 과장님처럼 도톰하게 해주세요,, 그냥 웃는다, 이렇게 그림까지 그려서 자신의 성형해야 하는
부위를 설명하는 그녀를 보며 난 인생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아주 이뻐서 눈길이 자주 가는 그녀
몸매,얼굴 어디 고쳐야 할 곳이 없는 두 아이의 엄니
나와 동갑인데도 더 어려보이면서도 완숙미를 갖춘 그녀의 남편이 궁금했다,
바람이 날 이유가 없는데도 바람이 나는 그 남편이 못내 이해가 안됐다,
성형외과 의사들이 회진을 돌 때는 일 개 소대 움직이듯
과장 아래 20명 정도 되는 레지던트.인턴이 함께 온다,
그녀의 가슴은 매일 아침 20명 이상의 의사들 앞에 열려진다,
만진다, 처지지는 않았는지 실리콘이 자리를 잘 잡고 있는지.
젊고 잘 생긴 성형외과 의사 기억난다,
그 녀석은 이 여자를 무시한다,
마치 자기들이 돈의 놀이개가 된 듯한 느낌인지 회진와서도 비웃는 웃음으로 그녀를 째려본다,
난 내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다,
가슴을 열어젖힌 스물 아홉의 그녀의 모습이 꼭 나 같아서 쪽팔린다,
눈을 어디 둬야 할지 몰라 얼굴이 빨개진다,
내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참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매일 아침 이뤄지는 회진은 고역이었다,
그녀도 그것이 고통이기는 매일반 이었을텐데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생각과
남편의 마음을 잡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소박한 소망이 그녀의 수치심을 잠재웠으리라,
그녀는 거울만 본다,
먹지도 않고 빨대로 미움만 빨아먹고
거울만 본다,
언니만 와있다, 아무에게도 전화가 없고
그녀의 언니들은 둘을 봤는데
6째 언니인가 정말 미인이더라, 7공주집인데 딸많은 집안의 딸이 어여쁘다더니 참말이더라,
맏언니는 그냥 수수했는데 그 언니만이 동생을 지켜주었다,
몰래하는 수술이라 알려지면 아니되어 철저히 혼자인 그녀가
난 무척 안스러워서 말나눔 오래했다,
아들이 보고 싶어 울기도 하는 그녀는 아들과 전화하고 난 후 쓸쓸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 대구로 놀러와, 사과 맛있거든,, 대접 할께,"
예나 지금이나 난 들어주기만 할 뿐 질문을 안한다,
말하는 이가 하고 싶은만큼만 해야 후회가 적을 것이고 또 제대로 말할테니까,,궁금해도 참으려 노력하고
내 말이 정답일 수도 없기에 난 말이 없다,
논어를 알았다,
대학 3학년 가을에 지행일치가 나온다,
난 무서웠다,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된다니,,
이 말이 내 입을 더 무겁게 했고 실어증까지 걸린 세월 있다,
그만하고
이렇게 멀쩡한 그녀가 성형의 노예가 된 건 남자들 때문이고 본인 자신 때문이기도 하다,
남자의 마음을 잡는 방법이 외모가 달라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건 그녀의 잘못이고
현대 계열사의 며느리이니 남편은 열 여자 싫지 않은거다,남편의 잘못은 이것이고,,참 가슴이 아렸다,
스물 아홉 그 어린 나이에 벌써 두 아이나 생산했는데도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지 못해
성형을 하는 그녀를 보는 것이.
한국에서 여자의 삶은 언제나 악세사리 정도였다,
허난설헌도, 명성왕후도,천경자도, 현대의 모든 여성들도,,
난 그래 결혼이 싫었고 스물 아홉까지 홀로였다,
할 공부가 많았고 하필 직업이 교사였다,
교사란 모든 공부를 다해둬야 아이들이 물을 때 대답해 줄 수 있는거다,
난 사학쪽 전공을 하고 싶어 아빠께 첨으로 고대 사학과 가겠단 말했다가 그냥 서울자로 시작하는 곳으로 가라해서
서울교대쪽으로 바뀐거다,
이때부터 인생은 꼬여간다,
하고싶은 걸 못하니 병이 난다,
2년 다니고 휴학을 했다,
아빠께서 해놓은 거고 난 자퇴였다,
안맞는거다,교대의 교육과정이
책 밖에 아니좋아하는데 교대는 가자마자서부터 실기였다,
서예 70장 써서 내고 오르간 몇 곡 치고등 이런 식의 실기교육은 내겐 서글픔이었다,
교대를 서성이다가 결국 6년 반만에 졸업하고 아니 졸업이 아니고 그냥 내보낸거다,
지겹단다, 교수님들이 날 그만 보고 싶다고,,지금 같은 교대체제에선 절대 샘이 될 수 없으니
시대를 잘 타고난 덕에 샘하고 있는거다,
대학 일학년은 알바와 운동, 써클 활동과 미팅으로 견디었다,
책세일을 했고 전집류로 관공서를 뚫었다,
발이 부르트고 무거운 전집류를 운반하느라 팔이 부러질 것 같고 그래도
난 150만원을 벌겠다는 목표를 이루기위해 뛰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학교 끝나고 나면 뛰었다,
돈을 벌 이유는 아무 것도 없었다, 풍부하고 넉넉한 집안에서 자랐고 공부만 하길 바라는 것이 부모님의 바램이었기에..
백오십을 두 달 만엔가 벌었고
하나뿐인 남동생 골든 마이를, 부모님껜 빨간 네이 한 벌씩 두 언니에겐 갖고 싶은 거 가지라고 현금으로 막내 여동생은 가장
설움이 많은 녀석이라 모두 줬다,
이젠 알바도 졸업을 하니 할 일이 없었다,
테니스를 쳤다, 강의는 피아노 (빼먹는 거)치고 맨날 코트에만 써클실만 전전했다,
코트에선 육체를 다졌고 써클실에선 정신을 키웠다,
니이체,키에르케고르,칸트등의 실존주의 철학과 서양철학사개론,미학등 모든 책을 섭렵했고
알든 모르든 뽐으로라도 들고 다녔다,
그리고 미팅을 이백 번 넘게 했다,
남자를 사귈려는 생각은 없고 사람을 알고 싶었다,
남들은 아름답게 하고 나가는데 난 청바지와 티쪼가리와 테니스 라켓을 메고 나갔다,
소지품으로 짝을 정하는데 친구들은 열쇠고리.볼펜.손수건등 자신의 특징을 나타내기에 여념이 없는데 난 티슈를 뽑아놓는다심
심지어 맘에 드는 남자에겐 같이 차 마실래? 제안까지 한다,
그러나 누구도 나도 차를 마시고 싶지않았다,
미팅에선 주로 말나눔하며 격론을 벌이다가 들어왔다,
지금도 연대 깜씨는 잊혀지지 않는다,
운사 써클친구인 민구 친구를 소개해줬고 명동 새로나 백화점 커피숍이었다,
약간 어두운 조명에 지하인 그 곳으로 가니 까만 남자 아이가 있다,
나 조길남, 넌 깜씨...
그때 드라마 흥선대원군 하고 있었다,
이하응 어떻게 생각해,,쇄국 정책 말이야.
그게 있어 우리 민족을 지킬 수 있었지.
아니 쇄국 정책이 우리나라를 좁고 협소하게 만들어 민족의 앞길을 막은거야,
깜씨가 눈을 깜박이며 내 이야기는 독설이란다,
그건 우리나라를 외세로부터 지키기 위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절절한 노력인데 넌 그걸 매도한다고,,
민비의 아픔을 아니?
무능한 남편과 시아버지 사이에 낀 그녀의 탁월함을 너는 아니?
우린 싸우고 헤어졌다,
난 별로 안싸우고 말을 안하는데 갠 내 이야기에 정면으로 칼질을 해대며 재단을 하고 자기만의 생각이 옳다고 윽박질러서
싸웠다,,난 너같은 애하곤 달라 민구에게 우리 만난거 없던 일로 할테니 잘 가라,그리고 제발 연대생같이 살아,
이름은 연대인데 사고는 왜 삼류대도 아니냐?
이런 나의 비아냥거림은 걘 심한 상처를 입었는지 주먹질을 하려해서 메롱하고 도망갔다,
그리고 그만이었고 다시는 미팅을 신뢰하지않고 써클활동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주로 서울대,연고대등 타 대학 노래패,사물놀이패,공부하는패등 다양한 써클놀이에 흥겨웠다,
특히 서울대는 우리 학교랑 가까워서 사물놀이 즐거웠고
이대는 친구가 다녀서 자주 가서 그 곳이 내 학교인거 처럼 누릴거 다 누렸고
성대도 친구가 다녀 축제등 놀고 먹는 인생의 전형을 걸었다,
그러다 모두 재미를 잃었다,
차라리 누구처럼 동생공부를 시켜야해서 돈을 벌어야된다든가 하는 타당한 이유라도 있음했다,
대학 2학년은 음악으로 견뎠다,
명동,종로,인사동이 내 구역이었다,
종로 이가 고려다방에서 판순이를 했다,
오후 2시부터 8시까지다,
그냥 음악을 틀고 책본다,
송창식을,양희은을,박인희을,정태춘과 박은옥을 우리 시대의 노랫말이 아름다운 가수의 곡을 올려놓고
상념에 빠져 있거나 책을 읽는데 쪽지가 날아든다,
"새장 속에 갖힌 그녀여~ 차 한 잔 들어요,,시간되면 식사라도,,"
고려다방은 주로 군인들이 많이 온다,
이름모를 군인이 보내온 편지를 의미없이 치어다보며 한 켠에 놓아둔다,
차도 시간을 모르고 식어간다,
8시가 되면 어김없이 퇴근하는데 괴로운건 지배인과의 식사시간이다,
남의 밥을 잘 못먹는데다 워낙 말이 없어 지배인이랑 밥먹는데 숨소리까지 들린다,
그 어색함이 싫어 밥먹었다 거짓말하고 암튼 인간을 안좋아했다,,엄마,아빠 가족을 빼놓고는
언제나 조용이다,,
대학 2학년까진 할 일이 있어 살았고 겨울 방학이 끝난 후 학교를 안갔다,
아빠는 휴학계를 제출했고 난 그냥 잠만 잤다,
끝없이 쏟아지는 잠나라로 빠져들어갔고 배고프면 밥통을 끼고 먹었고
아님 며칠을 굶었다,
그런 날 보던 울 엄마는 배밭으로 날 데려갔다,
"아가, 넌 겨자색 노란 저고리가 가장 잘 어울렸단다, 조씨 집안 세째인 네 아가야~ 넌 누구나 다 좋아했어,잘 웃고 동생에게 양보도 잘했으니까,,"
엄만 내 곁에만 계셨다,.
정신과를 갔다,
중곡동에 있는 국립정신병워~
의사가 그런다, 왜 왔냐구,,모른다,고 엄마가 가자해서 왔다구,
약을 준다, 먹으라고,,안먹고 안갔다,
굿을 했다, 수도없이,, 일억원짜리란다, 엄마 말이 날 키우느니 차라리란다,
말을 안하니 속을 알 수 없고 먹지 않고 쓰기만 하니 대책이 없단다,
절엘 갔다, 충청도에 있는 아빠 친구분이 아는 구인사라는 절~~
일주일을 머무는데 한 겨울에 찬 물에 목욕하고
밤새 잠을 자면 안되고
높은 산에 위치한 큰 스님 계신 곳을 다녀와야하는 곳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는데 우굴우굴 모여서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밥을 먹고 불경을 하는
이들이 넘 싫어서 밥도 안먹는데 엄마는 옆사람 반찬까지 가져와 잘 드시면서 먹으란다,
엄마 반찬이 아니면 잘 안먹는거 알면서도 또 챙기신다, 싱싱한 배추쌈으로
밤이 되니 젊은 스님이 죽비 비슷한 걸 들고 신도들 사이를 걸어다닌다,
잠을 자면 그 앞을 툭 치는데 그래도 안 일어나면 등을 때린다, 아주 살살,,
내 등을 쳤다, 안 일어난다, 또 쳤다, 엄만 기억이 안난다, 아빠도,언제나 함께 였으나
아파! 왜 때려,,난 잘거야,,잘 거란 말이야,
소리치니 스님이 깜짝 놀랬는가보다, 막대기를 잡으며 왜 때리냐고 스물 넘은 처녀가 몸을 뒤척이며 우니
기막힌지 쓱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그 후로 난 밤마다 편히 잤다,
목욕을 한다, 아주 시리고도 시린 우물물로,,
엄마,아빠는 밖에서 망을 본다,
난 아주 순종적인 자식이라 하란대로는 다 해본다, 아픈것은 아닌데 흥미있는 것이 없어서,
차갑다 살이 어는 것 같다, 뿌린다, 시린 물을 차악착~~ 착~
수건줘,,엄마,, 아빠 수건,,그러길 일주일 동안하고 담엔 큰 스님 계신 곳을 그많은 계단길을 거쳐 올라가서 무덤 하나 보고 내려오길 일주일,, 그러니 큰 스님이 만나준다,
왜 왔어?
딸애가 대학생인데 먹지도 자지도 않고 쓰기만 하고 읽기만 해서요,
남자가 있었나요?
마늘 먹여,,,그만이다,
어디로 가면 장사가 잘되나요? 엄만 여적 장사로 뼈가 굵은 분이신데 병원 식당을 계약해놔서 본전 생각에 물으셨던거 같다,
동남쪽으로 가,,,
그런 똘중이 날 치료한다고,,목 뒤가 삼겹살이고 몸은 뒤룩이다 못해 멧돼지다,
난 혐오스러워서 불교에서 멀어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제대로 된 스님이 있는 곳이 절이고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남편의 조상이 구인사를 세웠단다,
이런 우연이 또 있을꼬? 암튼 인생은 인연의 실줄날줄인가보다,
그러다 정독도서관을 다녔다,
엄마,아빤 최선을 다했으나 알 길없는 딸의 병을 방치하셨고
난 내가 아는 방법인 또 읽기로 갔다.
정독도서관길엔
인사동 옛물건이 있고
인사동 고가구가 있고
인사동 미술관이 있고
정동도서관 가는 길엔
경복궁이 있고
금호미술관이 있고
아트선재가 있고
프랑스문화원이 있어 알랑들롱의 고독한 눈매를 사랑했고
정동도서관 가는 길엔
옛 고택의 멋스러움이
정동도서관 뜨락의 온갖 꽃들의 잔치가
온갖 새들의 속삭임,하늘빛,바람소리,방아찧은 토끼가 이쏘
8시에 문학열람실이 문을 여는데 새벽 여섯 버스를 타고 종로 삼가역에 내린다,
걷는다, 무작정 풍문여고를 지나고 아트선재앞에서 하늘을 본다,
한 숨 쉬어간다,오르막길이 나오고 아직 문이 안열렸다,
내리막길을 단숨에 뛰어내려와 북청동 칼국수 집을 지나 경복궁길 걷는다,
그 고즈녁한 돌담을 보며 은행나무 사랑가를 듣고
알랑들롱의 모든 고독의 영화를 그리워하고
학고재 미술관의 서예전시를 사랑하고
이렇게 대학 2학년 휴학기간은 흘러갔다,
도서관에 들어가면 가장 구석진 자리가 내 자리다,
해가 잘 드는 그 곳에 자리를 잡으면 일어섬이 없다,
홀로 밥 먹기 싫어 점심시간 지난 시간에 가서 차 한잔이나 우유 한 컵 먹고
정원으로 나간다,
하늘을 보며 바람을 볼에 느끼다 다시 찾아든다,
알베르 카뮈.헤르만 헷세,앙드레지드, 중광스님.니코스카잔차키스등 무수히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내 애인이다,
읽고 난 후 집에 가선 쓴다,
아빠는 언제나 버스정류장에 나와 계신다,
버스에서 내리는 날 꼭 안으며" 세째 왔니? 우리 조씨 집안 세쨋딸 왔니?' 하신다,
그러던 해 어느 해 서울에 비가 잔뜩와서 언니가 사는 자양동이 물에 잠겼고 서울이 물바다가 되었다,
아홉시가 되어도 들어오지않는 세쨋 딸 걱정에 뉴슬 보니 물난리로 서울이 고장이났다,
걱정이 된 아빠께선 그 억수로 퍼붓는 비를 달랑 우산 지붕하나로 버팅기시다 정류장에서 내리는 날 깨지게 안으셨고 난 놀라
소릴 질렀다,
"네가 죽은 줄 알았다, 물난리에 혹시 떠내려간나 얼마나 속이 졸이던지 집에 있을 수가 있어야지,"
"아니 제가 왜 죽어요,, 아빠도 참,,,죽길 바라신거 아니세요,, 전 절대로 안죽슴다,,ㅎㅎㅎ~~"
예나 지금이나 단순하기 짝이 없는 난 하나밖에 생각을 못해 그냥 밥먹으면 즐거웠고 걸으면 기뻤고 누가 가다가 차라도 태워주면 더 좋았다,
그 날이후로 난 급속도로 행복을 알아갔고 다시 학교로 가야겠는데 자퇴를 했으니 공부를 해야겠어서 재수 한다 했더니
"아빠가 휴학처리 햇으니 가고프면 가거라,"
다시 학교로 돌아가니 모든 것이 아름답고 충만이더라,
이젠 진짜로 책을 보고 공부를 했고 동양철학이었다,
원은 풍만한 여인네의 젖가슴이었고 어머니의 사랑이었으나 사각은 정확함이었다,
안맞춰지지않으니 정확함이고 원은 틈새가 벌어지니 여백미가 있어 원만함이더라,
이런 동양철학 공부에 매료되어 또 달린다, 브레이크가 없다,
먹지도 자지도는 아니라도 교수,선배를 쫓아다니며 몰입한다,
귀찮은지 서울교대 국어과 정교수님은 선배 두 명을 소개해줬다.
정,원 두 선배는 그 당시 동양철학쪽으로 공부줄이 있었고 나보다 잘하니까 함께 했는데
국어과,미술과 선배들과 주로 어울렸다,
원선배는 나보다 5년 정도 나이가 많으나 학번은 한 ㅎ학번 위였고 학원강사도 하고 고생줄과 사회경험이 풍부했다,
선배는 일주일에 한번씩 논어 강의를 해줬고 서울교대 뭇여성들의 맘속에 영원한 연인이었다,
선배는 미술과 선배를 좋아했으나 이 선배는 서울대생을 사랑했고 무척 좋은 집안의 여자였다,
서울교대 남학생들은 어려운 환경에 머리가 좋은 편이고 여대생들은 집안도 좋고 머리도 좋았다,
캠퍼스커플은 주로 남학생에게 유리한거고 여자들은 약간의 밑지는 장사였다,
오르간실 연애가 성행했다,
오르간 한 대가 들어갈 정도의 좁은 공간에 남녀 둘이 들어가 할 수 있는 달달한 연애를 다하는 그 곳~
여자가 먼저 들어가 남자에게 신호를 보내든가 반대로 하든가 암튼 그 곳은 연애의 요람이었으나
난 단 한번도 그 곳의 잇점을 못써봤고 내가 그 곳에 찾아든 이유는 누구의 간섭없이 책읽기에 안성맞춤이고
음악동 그 곳의 풍광이 아름다워서다,
원선배랑은 공부쪽으로 친했다,
선배는 살갑게 후배에게 잘 가르쳐 주었다,
유나다방에서 써클실에서 장소마다 공부를 했다,
미안한 맘이 들어 모두 보는 앞에서 노란 개나리 조화와 목캔디를 선물했다,
모두 강의를 듣기위해 모인 아침 시간인데 선배 목 아플거 같아서 목캔디 갖다 놨고
겨울이라 노오란 조화 개나릴 보면 기분이 상큼해져서 강의를 잘해줄 거 같은 생각뿐이었다,
그 후로 선배와 내가 사귄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무 관심이 없다,
진실은 언젠가는 알게 되니까,,
선배가 어느 날 편지를 했다,
Heart amd heart 와 以心傳心 으로 된 화선지에 붓글씨로 세로로 된 편지를 받고 이건 뭘까 생각도 안하고 그냥 후배의
공부에 대한 열정이 대견하여 보낸 격려 편지려니 생각하고 그냥 집에 뒀다,
그런 후 선배랑 매일 만나다 싶어 하며 동양철학 공부의 깊이를 더해갔고 선배는 장자를 보면 가슴이 탁 트인다 했으나
난 논어만도 버겁고 모든 동양철학이 생경해서 홀로 생각하는 것만도 힘겨웠다,
선배랑 토요일 오후 세 시 애플이라는 레스토랑에서 만나 공부하기로했다, 그 전에 도서실에서 신나게 공부하며
모르는 거 줄긋고 신났다,
세 시 정각에 애플에 가니 없다,
누군가 날 찾는 이 있다,
외대 영문과 형! 대학 2학년때 여대생 다섯이서 강릉 경포대갈려고 청량리에서 영동선을 탔다.
새벽 4시에 바닷물 철썩이는 소리를 들었고 바다가 까망임을 그때 알았다,
우린 8시간을 걸려 경포대에 다달았고 갈대 숲에서 사진을 찍었다,
뽀빠이처럼 상체는 부푼 오리털 잠바에 머리는 빠끌빠끌 퍼머머리를 한 나는 모든 남성들의 혐오대상 1호였으리라,
머리도 내가 깎고 세수도 안하고 그냥 자연인인 날 남자들은 무관심이었다,
우린 산에를 갔고 설악산의 밤이 그렇게 빨리 찾아오는 줄 몰라 놀라 뛰어 내려오는데
외대생을 만났고 서울에 와서 미팅 주선을 하며 꾸준히 만났다,
내 친구는 그 형과 내가 사귀는 줄 알았단다,
박형은 내게 제안을 했다,
알바를 주선해 주겠다고,, 바이올린 전공할 학생이라 공부는 못하니 기본만 해주란다,
입주이고 50만원리며 파격적인 조건이라 고민해본다며 아빠께 말씀 드리니 일언지하에 공부하란다,
그 아까운 알바자리까지 버리니 난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뭐든 아빠,엄마가 결정하는 내 인생 어디까지일까? 그런데 그냥 순종함이 내 역할이라 그냥 한다,
진작 반항을 알려주었더라면 이렇게까지 깊은 병이 되지는 않았을 것을,,,
우린 만나면 내가 말을 많이 했다,
대화의 주제는 언제나 논어였다,
형! 논어에 일이관지가 나와,, 그게 뭔 뜻일까? 형은 그 하나가 뭐라 생각해,
글쎄...뭘까? 나도 몰라서 그걸 찾기위해 공부하는거지,,
내 친구를 소개해주고 싶다, 신부인데 너랑 말통함이 될거 같다,
그 형 친구 소개 받음도 없이 난 학교에서 사라졌다,
형은 우연을 가장하여 서울교대 다방을 ,카페를. 테니스코트를 ,도서관을 서성이다 갔고
우연히 만나게 되면 왠일? 하면 지나가다 왔단다,
난 그 말을 그대로 믿었고,,,
지금도 가장 미안한 형 중 한명이다,
형은 4년 후 헤럴드 여기자랑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우리 다섯 여대생은 형 결혼식에 갔다,
난 정말 기뻤다,
형이 좋은 여자 만나 결혼하는걸 보니 축하해주고 싶어 내가 사라졌던 기간에 뭘 했는지 40장의 편지로 적어 축하해 주었다,
결론은 형이 좋은 여자 만나서 기쁘고 잘 살으란 내용이었다,
글 쓰다보니 내 과거와 만난거고,,그런데 결혼하고 신혼여행 가서 전화가 왔다,
가장 절친인 친구집가서 놀고 있는데 형이 그 집으로 전화를 했다,
"신혼여행 잘 갔어요? 근데 왠 전화를 다?"
형은 우는 것 같았다, "미안하다,," 그 말만 하더니 말이 없었다,
형, 이 좋은 날 왜 그래,,뭐가 미안해, ,잘 살구 다시는 전화하지 말구,,난 형이 그렇게 아름답고 훌륭한 여자랑 결혼해 참 기분이 좋고 반가워,,나도 존경스럽고 훌륭한 김구나 백기완 같은 분하고 결혼할거야,, 그러니 행복하게나,,"
전화를 끊고 난 아무 생각이 없다,,그냥 즐거웠다,,예식하고 남은 음식을 친구집에서 먹으며 음악을 들었으니까,,
You are the answer tomorrow~~~
이렇게 즐거울 수가 ,세상은 넓고도 아름다운 것이다,
내가 학교에서 사라져 다시 4학년이 되는 해에 자퇴를 한 건 영수선배 때문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선배는 동생 면회를 갔다 봉고차가 커브를 도는데 머리를 부딪쳐 그만이었단다,
인생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있나 싶었고 5년 세월 흐른 뒤에야 동문 선배로부터 첫 학교 근무때 들었다,
그때 내 마음은 그냥 담담했고 저 세상 어딘가 가서 영혼만이라도 행복하길 바랬다,
토요일 오후 3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공부하려고 했는데 모르는 것 잔뜩 빨간 펜으로 그어 갔는데
산자령은 사랑이더라,
그 곳에 설움,슬픔,아픔이 없더라,
꽃은 없으나 봄을 알리는 산수유가 있었고
매화꽃 올망졸망 귀여운 송이 말걸어오고
개나리 노란 향내음 귓가에 쟁쟁하고
진달래전 내 미각 돋우고
아!
선자령 그 곳엔
여름을 알리는
오월의 신선한 장미향이 있었고
한국의 노란장미라고 이름붙여주던 웅쿠시 작가의 고운 멜로디가 있었고
아프리카 공화국 민중시인 매튜할아버지 따스한 아빠의 사랑이 그립고
아! 2008년 알프문학 그때의 고운 추억 가슴속 심장 뛰게 하고
해바라기 일하러 나간 누나 기다리는 동생의 추억이 있었고
꽃사과 챙글챙글 빨알간 빛으로 익어가고 있고
청포도 알알이 영글어가는 늦더위의 수고가 있고
아!
선자령 그 곳엔
가을을 알리는
노오랗고 팥죽색으로 얼룩진 국화꽃향 묻어나고
사과꽃 흰빛의 사랑이
배꽃 흐드러지게 날리는 바람의 속삭임이
밤꽃 숫내향 개울가에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아~
선자령 그 곳엔
아이의 천진난만한 눈매의 고움이 눈꽃으로 피어나고
엄마의 무우 숭숭 썰어넣은 된장국의 시원함이 눈꽃으로 피고
아빠의 코고는 늦잠소리에 놀란 테레비의 서글픔이 눈꽃으로 피어나고
딸 알바하여 가족사랑함이 눈꽃 군상으로 피어나 선자령 이골저골에 춤추고 있고
아~ 선자령엔 없는 것이 없더라,
그런 선자령을 총총히 바삐 걸어야해서 아픔이더라,
봄산님은 더 천천히 걸아야하는 체질인지 다리를 질척이는 모습이 자주 보이더라,
그 꼴이 뵈기 싫어 훈이 사랑옆에 갔고 그 것이 화를 부른 것인지 사랑하는 내 인생아! 회원 누군가가 쓰러져 있다고 전하는 어떤 아주머니말에 훈이사랑은 봄산님인걸 직감하고 지훈과 달려갔다,
다리에 마비가 와서 울부짖었단다,
살려달라고 공포가 밀려와서 겁이 나더라고,
아~~ 그 미안한 마음을 어이할꼬?
자기 몸하나 못 가누며 술은 왜 먹는 걸까? 이해가 안되는 사람 중의 일 순위 회원님이 봄산님이었다,
아침부터 술냄새를 풍기고 입금도 안하고 달려오는 회원을 샵님은 얼마나 곤혼스러웠을까나?
여행자보험도 안들었는데 아프단다,
언제나 일은 준비하지 않은 데에서 터져버린다,
샵님은 힘들고 괴롭고 지치나 지혜로웠다,
모두 내려 보내고 지훈과 둘이 남아 당당히 119 구급차로 봄산님을 구출하는 쾌거를 이룬 날~
역시 리더는 아무나가 아니다,
자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위기 대처 능력이 상당했고 내려가야하는 우리는 우리대로 불안을 안고 갔다,
내 옆에 함께 가던 훈이사랑님은 베낭을 가을남자께 맡겨서 걸음에 씽씽카를 달았다, 그 무거운 베낭을 두 개나 들다니.
왜 이리 빨리 간거야,내가 들어야 하는데,,그러면서도 내려오는게 아니었어,함께 엎어야해..그렇게 헬기를 아무때나 뜨게 하는게 아니고 어쩌구 저쩌구,,어떡하지,,걱정줄이 늘어지고
다 까먹는 난 또산자령의 풍광이 아름다워 즐길 시간이 모자라 사진 찍어주고 찍고 하며 행복하기만 하다,
"일단 우리가 자리를 떴으면 그들의 몫이니 그냥 두고 우린 우리 자리에서 행복하면 된다,
도와줄 수도 다시 갈 수도 없는데 우리가 못 즐기면 괜히 봄산님이 미안해하니 우리끼리 행복합시다,"
아님 다시 가서 그 옆에 있던가?
레지나 언니는 어제 나와 힘겨웠다,
내 몸을 걱정하는 언니는 봄산님옆에서 떨어져 빨리 내려가라고 말한다,
난 아니었다, 봄산님이 갑자기 무거운 내 가방을 들어줬고 에라 잘됐다 싶어 그냥 맨몸으로 등산을 했기에
미안해서 그 옆에서 말 조금 들어주고 잡은데 레지나 언니는 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자기가 상담 공부를 했다며 이런 경우는 엄하게 해서 정린차리게 해야한다고,,그 정신차림이란 다른 것이 아니고
말을 안하게해서 에너지를 아끼는거다, 거기다가 술 먹어서 말을 하면 119대원들에게 책을 잡히게 된다는거다,
나도 교사다,
상담공부랑 온갖 공부를 조금은 했다,
환자가 말을 할 때는 우리끼리 있을 땐 들어줘야한다,
그래야 아픔과 추위를 덜 느끼고 불안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윽박지르거나 화를 내는건 서로에게 도움이 안된다,
어제 처음으로 레지나 언니와 다른 의견을 말했다, 그러나 어른이니 미안하다 말한다,
허나 상담은 그 사람에 맞게 해야하고 어른은 어른으로 대접을 해줘야 한다,
봄산님 연세가 잘은 모르나 나보다 많다,
그리고 그 나이만큼 살은 사람은 자기 방어능력도 있고 나름의 철학이 있을 것이니 우린 그냥 그 날 사고에 대해서만
도와주면 그만이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던가 말던가는 별개의 문제이고
훈이 사랑님처럼 확실하게 말을 하면 된다,
"등산갈 때 술은 절대 안됩니다."
사라언니처럼 술먹고 올려면 오지 마라,,봄산님~
이러면 된다,,
우린 성인이다,
따라서 성인의 대화를 하길 원한다,
봄산님은 참으로 미안한지 자꾸 말을 한다,
그만 말을 하면 좋으련만
밥먹는 내내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옮겨 다니며 말을 하고
술을 따르고 아무도 그 술,말 들어주고 싶어하지않는데도 쓸쓸히 자꾸 말을 하고 술을 따르고
아무도 오늘 자신의 행동이 미안해서이고 어쨌든 뭔가 복잡한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싶어 그랬을 것이라 짐작만 할 뿐이고
급기야는 모자란 밥값을 치른다고 펑을 쳐대고
레지나 언니는 당연하다는 듯이 내라 소리지르고 난 아예 돈을 뺏어다가 훈이사랑님을 드리니
"그건 우리 카페 룰이 아닙니다, 우린 각자 조금씩 나눠내기입니다,"
"봄산 안도하는 숨 좀 봐라,,"샵님의 적절한 유머에 우리 모두 쓰러졌다,
이렇게 밤은 깊어가는데
산자령은 깊어갈 줄을 모르고 새록새록 기억나니
글 길이 바쁜 난 어이할까나?
살림을 해야하는 난 어찌해야 할지
교회를 가야하는 난 ?
에라 가던 길 가자,,산자령이다,,지금 이 순간은 산자령 밖에 못쓰겠다,
드뎌 정상이 다다른 우리~
아니 정상이 아닌데 정상이라 하여 그 기쁨을 누구에게 전할까 가슴 뛰던 그 순간 지금 기억나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흐른다,
아! 드뎌 완주를 했구나,
좌골 신경통을 이겨내고
3시간의 잠 속에서
선자령이 내 품에 아니 내 품에 선자령이 들어찼구나,
그 감격에 겨워 퍼질러 앉고 잡은데 훈이 사랑님 조금 더 가야한단다,
이런 허무가 이런 힘겨움이 하지만 군말없이 다시 감이 함께 함이다,
이젠 정말 선자령이란 글씨가 바위가 커다랗게 비석으로 되어있고
옆엔 작은 비석으로 선자령이라 되어있다,
옛 것과 새 것의 조화~
우린 옛것에서 사진 찍기 즐겁고
옹달샘님과 장곡님 두 분 사진사님의 사진찍기 봉사로 작품에 작품을 더해갔다,
내 인생아에 없는 건 무엇일까
다 있다,
아니 음악이 없다,
누군가 산을 걷는 내내 육성의 생음악을
걷는 내내 들려준다면 가장 아름다운 산행이 될 것이다.
틈틈이 호흡을 고르는 동안의 산의 소리를 들으면 될것이고
인간과 산의 절묘한 소리의 조화만 있다면
사랑하는 내 인생아엔 모두 다 있다,
내려오는 길 정현숙님!
노래 부르는 날 보며 우리 회원님 중 진짜로 노래를 잘 하는 분이 있다며 바로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란다,
"한 곡 땡기시죠?"
어떤 곡으로 해야 할지 몰라서요,
아니 뭐든 다 되시고 정말 분위기 좋게 잘 부르셔놓고 말한 사람 성의도 없이 안하실거예요.. 정현숙님의 가위질에
할 수 없이 하긴 해야겠는데 마땅히 떠오르지 않자
훈이사랑님이 무슨 노래인가를 하며 " 이런 분위기 맞죠?" 했더니 아니란다,, ㅜㅜ~~
"자! 칠갑산 해보세요,, 콩팥메는 아낙네야 베적삼에 눈물 젖는다,, 홀어머니 두고~~"
내가 먼저 흥얼거리니 하신다, 이런 그런데 하필 가장 어려운 오르막길이 나타나서 노래가 중단되고 담엔 꼭 들려주시지요,
우리 내 인생아의 가수로 초대합니다, 산길을 걸으며 노래하는 낭만을 되찾는 그날을 위해 그날을 위해 냉수를 마시자,
아! 한 잔의 냉수에 산자령 눈꽃을 띄우고
아!두 잔의 냉수에 나물캐러 들에 나온 순이는 노랫가락 정갈하게 퍼지고
아! 세 잔의 냉수에 인생의 힘겨움과 시름을 떠내려보내고
아! 네 잔의 냉수에 인생의 사랑을 담은 나룻배를 띄워보내고
아! 다섯 잔의 냉수에 우리 각자의 인생수첩을 들고 나룻배를 오르자,,,오르자,,,오르자,,
아! 그리운 선자령에서의 추억은 끝이 없는데 교회를 가야한다,
갖다 와서 다시 가야하리..2부를 쓸 힘을 주시길,,,주님이시여~~
우리 모두
아~~어디까지 썼더라, 기억이 없네..다시 스쿠르바를 위로 올린다,
난 그래 힘들고 지치고 어려울 때마다 노래를 불렀다,
이어폰 없이 혼자 아는 노래를 불렀다,
대학때,여고,여중,초등시절 알았떤 노래를 음유시인처럼 부른다,
메니저 (남편 )가 부른다,
차키를 가져다 달라고 조금 후 연결 가야지.. 맛나고 새록새록 기억이 나는 어제의 일들 사랑이다,
첫댓글 후아~~~선자령...이름만으로도 뭔가 이야기가 가득 할 것 같은데..역시 그러네요^^ 2부 기대할게요..
근데 이런 긴 글이 누가 되지 않을지 걱정됩니다,ㅇ~~~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