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6월 셋째 일요일을 아버지의 날(father’s day)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금년은 6월 16일 이 아버지의 날이었습니다. 지난 18일 박세리 선수가 아버지를 사문서 위조 등의 협의로 경찰에 고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보였던 기자회견때 애잔한 모습이 아직도 필자의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을 당신을 위해서 이번주에는 보통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그리운 아버지에 대한 회상과 자녀로서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권면하는 귀한 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째글, 그리운 아버지에 대한 회상.
“나의 아버지는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적도 없고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특별한 일을 하지도 않은분이다.
고전문학을 읽지도 않았고, 명화를 감상할 줄도 모른다. 야구도 해본적이 없고, 볼링을 해도 누구를 이겨 본적이 없다.
가난한 집에서 태여나 성실하게 일생동안 일 했지만 아버지는 그래도 여전히 가난했다. 자식을 위해 어떤 명예도 부(富)도 남기지 못한 나의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자긍심이 높았고, 항상 배우려는 마음을 잊지 않았으며, 어떤 채무도 자식들에게 남기지 않았다.
선량한 사람, 가정적인 아버지, 성실한 남편이 되고자 했던 마음이외에 아무도 모르게 가진 꿈이 있었을 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사셨다.
아버지는 깊이 후회한다 거나 뭔가를 두려워한다 거나, 혹은 회의 적인 생각에 잠겨 있어도 그것을 함부로 표현하는 적이 없었다.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을 쓸쓸하게 하는 잃어버린 꿈에 관한 아쉬움이 있었을 법하지만, 아버지는 한번도 가족들에게 내색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자신에게 주어진 행로를 따라가셨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 나는 아버지가 내게 너무 많은 수수께끼를 남겨 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보통사람 눈에는 결코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말해질 수 없는 아버지, 너무나 평범해서, 때로는 연약해 보이기까지 했던 분이 왜 이렇게 내 일생을 지배하는 커다란 나무가 되어 존재하는 것일까.
아버지의 그 무엇이 이토록 강렬하게 나를 움직이는것 일까. 지금까지 내 삶의 대부분을 움직여 왔으면서도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될 것을 알기에, 나는 ‘아버지의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졌다.
그러나 이 책을 펴내면서,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아버지 옆에서 그렇게도 오랫동안, 그렇게도 깊이 아버지를 사랑하며 살았는데도 이 책이 아버지에 대한 회상 정도를 모아 놓는 글 밖에는 되지 않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할지라도 나는 아버지를 추억하는 이 시간이 즐겁다. 고통스런 일과 마주쳤을 때, 아버지의 음성을 듣기위해 허공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행복하다.
아버지와 함께한 많은 날들이 내게 있음으로 해서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나는 감사한다. 아버지가 걸었던 삶의 행로를 따라 걷는 나의 발자국이 아버지의 그것을 닮았음에 나는 기쁘다.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없다.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지만 아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거인보다도 큰 발자국을 남기고자 했던 이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위해,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사랑하는 모든 아들딸들을 위해 이 책을 바친다.”
위에 인용한 글은 한때 남캘리포니아대학 교육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사랑하며 배우며”의 저자인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레오 버스카글리아(Leo Buscaglia)의 저서 “아버지라는 이름의 큰 나무(Papa, my father)” 중 서문의 일부입니다.
박세리 선수가 누적된 채무에 대한 중압감과 공포 때문에 아버지를 고소했다고 실토하는 고뇌에 찬 기자 회견의 장면을 보면서 이세상 아버지들은 비록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녀들에게 금전적인 부담을 끼치는 일은 일체 삼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증법에 비추어 봐도 가족간 금전 거래는 증여세가 부과된다는 점에서 건강한 가족구성원의 생계는 각각 독립채산 방식으로 유지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글은 부모에 대한(자녀)의 의무에 관한 글입니다.
성경 집회서 3장에 기술된 부모에 대한 (자녀의)의무를 재조명해봅니다:
“애들아, 아버지의 훈계를 들어라.
그대로 실천하면 구원을 받으리라.
주님께서는 자녀들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보장하셨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 진다.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아버지를 공경하고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상전처럼 섬긴다.
말과 행동으로 네 아버지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그의 축복을 받으리라.
아버지의 축복은 자녀들의 집안을 튼튼하게 해주고
어머니의 저주는 집안을 뿌리째 뽑는다.
아버지를 욕되게 하여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지 마라.
아버지의 치욕이 네 게 영광이 될 수 없다.
사람의 영광은 제 아버지의 명예에서 나오고
어머니가 불명예스러우면 그 자녀들은 비난거리가 된다.
애아,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내 힘을 다하여라.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혀 지지 않으니
내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내가 재난을 당했을 때 내가 기억되리니
네 죄가 따뜻한 날 서리처럼 녹아 내리리라.
아버지를 버리는 자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와 같고
자기 어머니를 화나게 하는 자는 주님께 저주를 받는다.”
위의 인용문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발간한 성경에서 가져왔습니다.
박세리 선수가 아버지의 거듭되는 사업 실패로 인한 과도한 채무문제 때문에 불가피하게 의절(義絶)을 할 수밖에 없었던 고뇌에 찬 결단에 대해서 동시대를 살아 가는 아버지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심심한 위로를 보냅니다. 박세리 선수의 경우를 보면서 아버지도 사람인 이상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거듭된 실수로 딸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점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한사람의 아버지는 백명의 교장보다 낫다는 선인들의 말을 믿고 싶은 것이 또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선량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There is probably no more terrible instant of enlightenment than the one in which you discover your father is a man with human fresh. Frank Herbert
네 아버지가 인간의 육신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보다 더 충격적인 순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프랭크 허버트(미국과학소설작가, 1920-1986)
One father is more than a hundred schoolmasters. George Herbert
한사람의 아버지는 백명의 교장선생님보다 낫다. 조지 허버트(영국시인, 1593-1633)
공자께서 말한 君君,臣臣,父父,子子(군주는 군주 답고, 신하는 신하 답고, 아비는 아비 답고, 자식은 자식 다워야 합니다) 가 국가 공동체 질서의 기본 모형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세상에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없습니다. 비록 시대가 변해도 자녀들 삶의 본보기로서의 그 이름에 충실한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며 그 사명을 다해 주실 것을 바라 마지 않습니다.
글을 마치며 사족(蛇足)을 달아 봅니다. 박세리 선수의 경우를 보면서 이세상 모든 아버지들은 비록 아버지 눈에는 어려 보이지만 장성한 자녀들의 충언을 들으면 예기치 않은 실수를 줄일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교훈을 되새겼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