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장애우가 쳐준 종소리
지난 25일 금요일 아침 9시경 복지관의 목욕탕을 찾았다. 탕 안에 들어서니 몇 사람 되지 않는 장애우들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반갑습니다’는 인사말이 맞았다. 인사를 한 장애우는 활동보호자가 끌어주는 수동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만 하는 중증 장애우. 그는 목욕탕 문을 열고 들어서는 자기 세면대 앞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본 모양이다.
그 옆 자리에 앉아 머리를 감고 세면을 한 뒤 면도를 하려 할 때다. 그가 내 뒤로 옮겨 앉는 것이다. 내 등을 닦아 주겠다고 어눌하게 말하며 활짝 웃으며 쳐다보았다. 활동보호자의 도움을 얻어야만 목욕을 하는 그가 내 등을 닦아주겠다는 것이다. 내가 닦겠다고 했으나 그는 웃으며 내 타월과 비누를 가져가 휠체어에 앉은 불편한 몸, 힘없는 손으로 등을 닦아주는 것이다. 얼마나 닦았을까. 그는 타월을 넘겨주며 다 닦았다며 다시 한 번 활짝, 수동휠체어를 후진시켜 나가려는 몸짓.
시원히 닦아 줄 수 없는 내 처지지만 등을 닦아주겠다고 하자 보호자가 닦아주었다는 손짓 몸짓에 ‘고맙습니다!’ ‘신난다!’를 연발하며 나갔다.
이 날 저녁 아파트 경비실 경비 아저씨로부터 전화. 택배물이 보관되어 있다고 알리는. 택배물의 크기나 무게도 모르기에 다음 날 아침에 찾을까 했으나 무더운 여름 장마철 택배물이라 걱정되는 점도 있어 찾아오기로 하고 내려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지하주차장 현관 입구 문 쪽으로 가는 데 현관문 창을 통해 밖에 이웃 주부가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부는 카터에 짐을 싣고 들어오던 길. 그녀는 내가 경비실에 택배물을 찾으러 간다는 말을 듣고는 자신이 찾아온다며 곧 되돌아 나갔다.
잠시 후 그녀가 찾아온 택배물은 다브로이드 크기로 포징된 것이어서 우선 안심. 포장지 겉에 붙은 상표와 발신인을 보니 짐작이 갔다. 며칠 전 집에 들렀던 마리아가 말한 여름 철 파자마 한 벌이 배송된 것이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며 낭군의 근황을 물었더니 고향에 내려가 심어놓은 농작물 관리를 하느라 무더위 속에 땀을 흘리고 있다며 구순을 앞두신 시아버지는 물론 시어머니 두 분 모두 여전히 다 건강하신 것을 축복으로 여긴다며 우리 내외의 건강도 빌어주었다.
오래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있었던 기억이 생생한 일이다. 대학병원에 입원 가료 중일 때 이른 아침 병실에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문병하러 온 것이다. 아저씨는 얼마 전 다니던 정든 국영기업체에서 구조조정으로 밀려났으나 다니던 업체에서 아파트에 경비자리를 마련해준 것이다. 바로 그 경비아저씨다. 입주민 나의 병실을 찾아 문병을 왔던 경비 아저씨는 얼마 후 다니던 기업체의 부름을 받고 다시 다니게 되었다. 들리는 말은 그의 성실함과 근면함이 그를 다시 찾게 했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재물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를 무재 칠시(無財 七施)라 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첫째는 眼施-부드럽고 즐거운 눈길로 남을 대하는 것이다. 둘째는 和眼施-부드럽고 즐거운 얼굴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다. 셋째는 言辭施-언제나 좋은 말과 부드러운 말씨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넷째는 身施-언제나 몸을 움직여 일어나 맞이하며 정성껏 대하는 일이다. 다섯째는 心施-타인이나 다른 존재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고 넉넉함으로 대하는 일이다. 여섯째는 牀座施-언제나 자기 자리를 양보함으로써 베푸는 것이다. 일곱째는 房舍施-자신의 집을 타인에게 하룻밤 숙소로 제공하거나 쉴 만한 공간을 내주는 일이다.
법정스님이 한 말씀이 새롭다. ‘내가 나를 만듭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은 우리 정신에 깊은 자국을 남깁니다. 그것은 마음 밭에 뿌리는 씨앗과 같아서 이다음에 반드시 그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어떤 나를 만들 것인가는 나 자신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2014. 7. 26 .)
첫댓글 휠체어 장애우가 처준 종소리를 들으며 보면서 천국이 따로 없고 불국토가 따로 없네, 물질 만능시대에 매 마른 가믐에 단비같은 글이네.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재칠시 안에 법정스님이 말한 보다 나은 나를 만드는 생각,말 행동 지침이 다 들어 있네요. 잠시 멈췄던 "박천규 춘하추동"이 다시 활발히 돌아가게 되어 너무너무 기쁘다오.
그리운 두 얼굴의 과분하고 따뜻한 댓글에 감사!
요즈음에는 지난일들은 말할것도 없고 어제일들도 자주 깜밖 깜밖하는일이 다반사이라네
그런데 천규는 언제나 맑은 머리와 생각으로 지난일들이나 글들을 정확히 구사하는것을 보면서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을 하였네.
우리가 장애인을 대할때 가장 중요한 태도는 그들을 장애인이라는 동정심이나 측은심으로 대하지 말고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고 했는데 때를 밀어준 그 장애인이 바로 자신에 대해
아무런 자애감을 느끼지 안했기 때문에 때를 밀어 줬을 것 같은 생각이 드네. 아무튼 천규는 인복이 많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