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瑞山) 6쪽마늘과 장모님 사랑
2017 06 22일
서울 홍대입구에서
김 나그네가
여보! 여보! 어떻게 해요?
좀 전에 누구와 장시간 통화하고 난 마누라님이 거실로 나오시더니 난감한 표정이시다. 마누라님의 전화 통화 내용을 대충 전해 듣고 나서 사위는 마눌님에게 물었다. 오늘이 음력으로 며칠이요? 음력 5월17일 인데요. 왜? 그래요!
6월11일은 일요일인데, 오후 3시경 인지라 외출 스케쥴이 없기에 컴PC에 무얼 쓰고 있던 차였다. 고양이 세수하듯이 대충 채비 하고서, 아들준호의 협조로 핸드폰 문자로 전해 받은 “버스예매티켓의 QR 마크”를 타고 갈 스산 가는 오후 5시 고속버스안의 개찰기(Ticket Reader)에 들이미니 모니터에 35, 36 이라는 좌석위치가 뜨며 탑승 완료된 표기가 떴다.
스산에 6시40분 정도에 도착 하니 부석면 갈마리 로 직접 가는 시내버스는 이미 끊기었고, 처갓집 근처 부석시장까지 가는 버스가 있는데 한참 빙 돌아서 간단다. 부석면의 도비산 뒤의 인지면의 애정리 산동리 지산리 등등을 지나는 코스로 서산 공군비행장(서산시 고북면) 옆 뒷동네 들(野)이다. 전에 서산 A지구 B지구로 나뉘어 바다를 메워 간척지로 만든 A지구의 간척답(논)을 지나서 부석시장에 도착하였다. 부부는 오랜만에 “동~구~밖 과~수~원~길~” 동요를 풍경에 맞게 둘이 부르며 논길을 따라서 가는데, 웬 차가 와서 뿡뿡거리면서 “타시란다”. “가만히 보니 걸어가시게 놔들 수 가 없더란다”. 지나가는 우리를 보고서 처가의 먼 친척댁 아주머니께서 일부러 손수 차를 몰고 와서 처가집까지 바래다 주셨다.
“으이구! 글쎄! 내가 다시 전화혀서 얘기 했잖여! 오지 말라구우~! 전화해 놓구나니 주책 핀 것처럼 내리 속상혀서 다시 전화 혔잖여! 딸내미 헌티~~!, 괜히 봬(부아,화) 풀이 했나벼~!”
장모님은 밭에서 우리부부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시고는 잰걸음으로 나오시면서 사위의 손을 잡으신다. “저녁 먹어야지! 그러니~~! 워처게 헌댜~~~!”
장모님의 허리춤에 찬 ‘밭에서 앉아서 일하는 둥글 방석’이 오리처럼 흔들리는 것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시골 농가의 수입의 반은 논에서 벼를 키워 나오고, 반은 밭에서 보리, 밀, 콩, 수수를 주곡으로 키워 먹고 살았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천하에 으뜸-農者天下之大本” 이라는 세월이 있었다. 그러다가 상대적으로 쌀값, 수매가격이 싸져서(떨어져서) 이제는 밭작물을 주로 하고 더러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농작물과 화훼(花卉)와 특작물을 재배하여 수익을 얻고 있다.
그중에서 10월에 심은 후 비닐과 짚으로 덮고 나서 한겨울을 나고서 물 좀 주고 6월에 수확을 하는 작물이 마늘과 생강농사이다. 현 상황의 마늘을 소개 하면... 1. 심하게 아리고 매운것은 중국산 이고 2. 6월 초순에 캐는 마늘 조금 매운 것은 한국산 스페인종자 이고 3. 6월 중순 넘어 캐는 마늘 좀 향긋한 맛이 나며 부드럽고 보관을 오래 할 수 있어 12월까지 먹어도 되는 것이 한국 재래종 서산 6쪽(더러는 7쪽도) 마늘이다. 소출(양-무게)이 적은 것이 흠이다. 값이 35% 더 비싸다.
그런데 이 마늘수확은 비온 뒤에 조그만 쇠창(꼬챙이)을 이용하여 축축한 땅에서 마늘통을 뽑아 놓는 것이 제일 수월하다. 뽑힌 채 그대로 밭에서 일주일 정도 놔두었다가, 짚으로 1접에 100개씩 묶어서 걸어놓고 먹거나 팔아서 돈을 사던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마늘 PVC 망을 이용하기에 대를 잘라서 마늘통만 망에 담아서 파는 것이다.
지난주 6월3일에는 둘째처남과 사위부부가 와서 마늘 자르기 일을 했었는데, 특히 같이 묻어온 딸내미 즉 큰 외손녀가 하루 종일 그리고 밤까지 의외로 꾀부림도 없이 나서서 시골 농부 어른 몫보다 부지런히 더 많이 하는 바람에 좋은 날이었다고 외삼촌도 칭찬을 많이 하시었다. 다음날 일요일 사위 하고 외손녀가 좋아하는 냉면을 유명한 부석시장 냉면집에서 두 처남 포함 8식구에게 한턱 쏘셨었다. 그리고 그날은 기분이 좋으셨던지 데이트를 하고 싶으시다 면서 부석사 방문차 도비산을 오르시면서 옛날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50여 년 전 시부모님 몰래 일을 끝내고 밤길에 아끼던 쌀 몇 움큼 머리에 이고서 고개를 넘어 사찰과 암자에 다니시던 이야기와 시모(엄마) 없이 자라는 6남매 시누이와 시동생과 살면서 성가시키고 땅을 넓히던 일 등등등…….
갯것(해산물)을 캐다가(잡아다가) 스산장에 팔아서 식구 먹여 살리던 전설의 이야기가 내내 이어졌었다. 장모님과 두 아들 둘째와 셋째 처남들과의 맞다! 틀리다! 진실 추억의 대화도 재미있었다.
그 즈음 1984년 초 예비사위 견우가 해외 근무 중 휴가 왔다가 친조카와 처음 부석에 놀러 온 사연, 남겨진 명함과 어찌하여 서울에서 견우는 직녀와 선을 보게 된 이야기와, 선보고 네 번째는 식장에서 직녀를 보고 3개월 만에 초스피드로 결혼한 뒷이야기도 포함 되었다. 그사이 예비사위가 홍콩 과 말레이로 출장을 가서 애태우던 일등 몰랐던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처의 막내 서산 고모는 중신을 여러 번 했는데 모두다 무조건 싫다 하더니, 어느 핸섬하신 현재의 고모부를 보더니 무조건 오케이라 하면서 가마 타고 가서 팔자 고치셨다고 농담도 하셨다.
오늘 6월11일 일요일 밤 밭에 있는 우리 부부의 사명은 “마늘을 망에 담아 마당에 옮기기” 이다. 장모님께서 딸내미한테 전화를 하신 내용은 이러 하다 했다. "지난주 짤라 놓은 마늘이 6월6일 현충일에 비가 약간 오는 바람에 준비 해드린 비닐로 덮어서 비에 젖지는 아니 했는데, 그 다음 부터 수목금토 4일간 마늘이 바싹 마르니 부서지면 상품이 안 될까 봐 걱정이시더란다."
평년 몇 년 동안은 온식구가 모여서 마늘도 뽑고 놀기도 했었는데, 올해는 장모님께서 중국인들을 인력회사를 통해서 불러다가 마늘을 뽑았는데 4명이 와서 오전에는 열심히 하더니 오후 부터는 “하오! 하오! 뿌하오!” 모르는 말을 하면서 꾀를 부려서 힘들었다 하셨다. 12만원 지불에 10만원만 중국인이 받는 것이다. 점심 대접 하고, 마늘 자르다 보니 중국담배 빈갑이 보였었다.
술을 좋아 하시다가 서방님이 저세상으로 먼저가신 후 십오륙 년을 혼자서 대농사(밭 4000평, 논 3000평정도)를 지으셨는데, 올해는 부쩍 힘이 부치시고 신경이 예민해 지셔서 불안해서 전화 하셨단다. 서산읍내에 사는 큰아들에게는 늘 있는 비상시국이었겠지만 이번에는 아들들에게는 연락을 안 하셨단다.
지금의 농.어촌의 어른들중 막내가 75세 정도인것이 현실이다. 이 현상은 도시의 청년 일자리만큼이나 중요하고 시급 한 일인데 아무도 대변해 주지 못하고 있고, 언론도 국회도 이슈화 해주지 못한다. 정부에서는 입도 뻥끗 안하는 일자리 보다 더 해답 없는 현실이다. 장모님은 작년에 다리 수술하셔서 걷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하시다 그럼에도 농사를 손에서 놓지 못하신다. 임대를 주라는 아들들의 권유도 있다. 서울 사는 두째 처남은 서울에서 대한민국에서는 큰 건설회사의 전기부 간부로 근무하면서 거의 매주라 할 만큼 금요일 토요일 을 이용하여 부석을 찾아서 엄마를 돕는 멋쟁이 이다.
저녁 9시가 넘어 가니 거의 끝이 났다. 대략 세어보니 80여개 망이니 한(1) 개망에 20KG(200개) 이니 160접 정도 되나 보다. 저쪽 비닐하우스에 있는 것도 40접 정도이다. 금액으로야 농협에서 시세를 얼마로 해서 구매해 주느냐 이고 다른 중개상들이 얼마 쳐주느냐? 이다. 중개상은 26,000원/100개1접 정도라고 시세를 흘리고 다니고 농협관계자는 한 30,000원 정도 될려나? 하고서 사전홍보를 한단다. 6쪽은 하순에나 캐야한다.
여보, 정미 아빠? 아까 서울에서 “오늘이 음력 며칠이냐고” 왜? 물었어요?
마침 하늘을 보니 음력 17일이니 보름달 같은 달이 하늘에서 우리를 비춰 주는데, 마당과 접한 밭 끝에 세워져 있는 250촉(w) 보안등이 있어서 보름달의 고마움을 모르고 있었다. 국내와 전 세계 해외를 돌면서 일하던 가닥이 있는 사위의 속 갈량은 ‘무조건 우선 내려가서 달빛을 이용하여 밤새 일하고 아침에 올라와서 회사출근에 지각 좀 하련다’ 였었다. 장인께서 저세상으로 가시기전 어느날 보안등이 밤에는 농작물에 방해가 된다고 소문이 나서 동네 사람 모두다 보이콧(퇴짜) 한 것을 장인만 보안등 설치를 신청해서 세워져 서있는 보안등이 오늘날 남겨진 마누라만 보안등 덕을 본다고 장모님이 회상을 하셨다.
“ 그놈의 술땜이 먼저 일찍간 영감텡이……. 으이구~~”
10시에 차려진 늦은 저녁은 꿀맛이다. 무짠지와 간장꽃게 두 마리와 된장국등이 일품요리였다. 사위에게 뭘 못 차려 주셨다고 불안해하신다. (사위의 특별식은 장모님의 “서산 게꾹지”이다.) 곁들인 수박 물고 나서 잠을 청했는데도 좋은 공기 덕인가 커피독인가 잠이 안와서 서울에서 하던 대로 12시가 되어서 잠에 들었다.
아침 일찍 5시반 핸드폰 알람에 눈을 떠서 밖의 밭을 보니 어부인이신 쉰살 넘은 딸내미는 어제 저녁 일하던 밭을 헤매이며 더듬고 있었다. 조그마하다고 상품이 아니라고 해서 담지 않은 조그만 마늘들을 소쿠리에 주워 담고 있었다.
아침 일찍 출근 전 거의 매일 아침 마다 본가의 어머님한테 들르는 심성 고운 큰아들, 사위의 큰처남이 트럭차를 운전해서 밭에서 마늘을 실어 옮겼다. 매형! 병원에 가야 하는 것 아니유? 심한데유! 중상인데유! 아녀! 처남~! 조용히 하셔! 엄마, 장모님 아시면 또 걱정 많이 하셔! 둘이 마늘 자루를 차에서 내려서 마당에 쌓다가 파렛트 받침대에 사위의 다리가 껴서 살점이 많이 떨어져서 피가 나고 복숭아뼈가 보이는 상처를 입게 되었다.
서울로 오는 길에 처남이 서산 정류장가지 바래다주는 코스에 며칠 전 준공한 현대자동차그룹의 회사중 하나인 Mobis의 세계제일의 "부석 자동차 주행 시험장"을 거쳐서 태안기업신도시 골프장을 거쳐서 서산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8시 반 차를 타고서 서울 강남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 할 즈음 장모님으로부터 딸내미한테 전화가 왔었다. 장모님은 서울의 철없는 딸내미에게 30여년 넘게 사는 동안 싫은 소리 낮은 소리 어느 것 한마디도 하시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여겨진다.
딸내미 배낭 뒷주머니에 장모님의 사랑이 담겨 있었다, “많이 뭇 늣써! 차비허구~~~ 서울 가서 둘이 냉면이나 사먹으라구~~! 늣써! 쬐끔!” 전해주는 말씀에 사랑이 있었다. 먹먹함도 있었다.
사위는 처의 할아버님의 함자(이름) 봉(鳳)자 학(鶴)자 를 따서 "鳳鶴會" 라는 처가의 장인6남매의 아들딸25(25*짝=45여명)여명을 위한 모임을 2002년도에 만들어 선임이 되어 운영을 잘하고 있다. 특징 이라면 가족모임 이지만 커다란 모임기를 만들어서 매년 모임시 기(旗)를 세우고 프랭카드도 붙이고 행사를 치른다.
서울사위도 막내였지만 90세 까지 사신 어머님을 30여년 넘게 모셔 봐서 효도와 불효를 조금은 안다. 새벽녘 문안차 모친 방의 문을 열었는데 미동도 없으시고 숨소리도 안 들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동거하지 못하더라도 서산 시내에 살면서 7km의 원격 거리에서 부석의 어머님을 챙기는 큰 처남에게 감사함을 늘 전한다.
그리고 사위는 뼈가 보이는 중상임에도 병원도 안가고 약을 안 바르고도 행운스럽게도 평소 연구 해놓고 임상 실험을 마친 목초액만 다리에 바르고서도 3일 만에 염증 없이 완전 치료 되었다.
목초액 만세! 계피가루 만세! 천연소금 만세!
‘언제라도 무슨 비상의 전화가 다시 부석에서 서산에서 오더라도 달려가리라!!’ 마음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