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김훈 최질의 난이라고 하는 현종때의 무신정변에 대해서 엄밀히 말하면 이사건이 1차무신정변이고 훗날 정중부등이 일으킨 1170년의 무신정변은 2차 무신정변이라고 표현해야 타당할것입니다.
일단 이 사건에 대한 원인으로 일반적으로 해석한다면 경군영업전에 대한 무신들의 권리박탈을 원인으로 삼는데 여기서 상당한 의문이 있습니다.
고려시대 관료들에게 토지를 지급한것은 문무관이 모두 동일하고 오히려 같은 품계라도 문관이 더 많은 토지를 지급받았다라는 것을 감안하면 문관들에게 줄 녹봉이 부족하다고 무관것을 압수하거나 일정수익을 빼았아간다는 것 자체가 도무지 말이 안됩니다.
김훈 최질이 정3품 상장군이었다라고 한다면 같은 정3품이라도 문관이라면 이들보다 더 많은 토지를 지급받았슬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관들의 경군영업전보다 더 많은 토지를 지급받은 정3품 문관이나 그 이상의 고위 문관들의 이익이 더 컸슬 터인데 녹봉이 부족하다면 이들에 대한 책임과 부담을 더 부겁게 부과해야 정석입니다.
하지만 현재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해석은 무관들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킨것이 원인으로 보고 있죠.
제 추론상으로는 무관들의 불만 핵심은 왜 자신들에게만 부담을 가중시키고 자신들보다 더 고위의 문관들은 부담의 책임을 안지우는 것에 대한 불만이 폭팔한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경제적 요인외에도 정치적으로도 무관들의 문관 고위직 승진불가등에 대한 불만도 거론되기는 합니다.
둘을 종합한다면 경제적으로도 무관들에 대한 차등대우 및 문관들의 책임 회파, 고위직 문관독점등이 결합된 요인으로 보아야 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