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두 여인의 만남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여인과
아이를 가지면 안 되는 혼인을 앞둔 여인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아이를 가진 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경험해 보지 못했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이 둘만의 공통점이 친척이라는
관계를 뛰어 넘어 주님을 통해 믿음으로부터 오는 은총 안에서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서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려 하지 않아도, 그리고 이해시키려 하지 않아도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또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넘치는 은총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렇게 서로 감사의 마음을 나누고 그 기쁨을 함께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기쁨의 표현이 오늘 복음에서는 엘리사벳의 입을 통해 먼저 나오게 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엘리사벳의 이 고백은 깊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고,
흉내 낼 수 없는 마리아의 임신입니다.
어쩌면 어느 누구도 따라 하기 싫은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가장 복된 여인이라고 칭송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받아들인 마리아의 믿음이 어느 누구도 따라하거나 흉내 낼 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볼 수 있는 눈을
엘리사벳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성모님과 함께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대림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는 우리도 진정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그 탄생을 통해 인류의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엘리사벳처럼 성모님의 믿음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만 합니다.
엘리사벳처럼 성모님께서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신 분이라는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 고백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분의 삶을 따르고자 하는 열망이 타올라야 합니다.
사실 주님께 순명을 서약한 순간부터 인간적으로는 고통과 슬픔의 삶을 사신 성모님이셨지만,
그분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구세주로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믿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서는 엘리사벳처럼
우리도 성모님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성모님을 알아본다는 것은 우리도 성모님이 주님의 부르심에 순명과 믿음으로 시작된
고난의 길, 고통의 길 그밖에 세상이 주는 많은 아픔까지도 주님을 위해 순명하는 마음으로
믿음의 신앙을 지키며 살아갈 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 처하더라도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도 성모님처럼
이제 곧 오실 아기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실 수 있습니다.
이제 성모님께서 한없이 자신을 낮추셨고 비우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 앞에서
내 실속을 채우며 따지기보다 내 것을 비우고 주님을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