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 다 늙었으니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물러
가자고 내 마음과 의논을 하니, 이 임금을 버리고 어디
로 간단 말이냐, 그러니까 마음아, 너는 남아 있거라 이
몸만 먼저 물러가겠다.
작자가 77세때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날 때 임금과 나라
를 생각하며 지은 글이다.
송순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호는 면앙정이다.
송순이 살았던 연산조에서 선조조 사이에는 정치적 사회
적 변동이 극심했던 격동기였다.무오, 갑자, 기묘, 을사
사화.. 이른바 4대 사회가 잇달아 일어나고 김인로의 음
해, 대소윤의 정쟁, 양재역 혈서사건등 수많은 사건들이
송순과 관련되어 귀향도 갔다가 다시 풀려나고 피출되고
다시 귀향가는 정치적 역경이 많았다. 그러면서 송순은
그 유명한 <면앙정가> 를 썼고 선조 1년 한성부 좌윤이
되어 <명종실록>을 찬수하고 우참찬이 된뒤에 50년 관직
생활을 은퇴하였다.
그는 성격이 너그러웠으며 특히 음률에도 능하여 가야금
을 잘 탓고 풍류를 아는 호기로운 재상으로 일컬어졌다
고 한다.
관리로서 학문으로서 문인으로서의 영역이 넓었던 그는
성수침이 "온 세상의 선비가 모두 송순의 문하로 모여들
었다"고 말할만큼 친구나 후배가 아주 많았다고 한다.
말년에 그는 고향인 담양에 은거하고 석림정사와 면앙정
을 짓고 시를 쓰며 지냈다.
그의 문집 <면앙집>에는 단가 20여 수와 면앙정가 9수,
한시 520수등 많은 작품이 전하고 있다.
풍상이 섞어친날에 갓피온 황국화를
금분에 가득담아 옥당에 보내오니
도리야 꽃이 온양 말아 임의 뜻을 알괘라
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리는 날에 막 피어난 노란 국화를
좋은 화분에 가득 담아 홍문관에 보내시니
복숭아 꽃이나 오얏꽃들은 꽃인 체도 하지 말아라
임금님께서 국화꽃을 내려 주신 뜻을 알겠구나
금분(金盆) : 좋은 화분. 도리(桃李) : 복사꽃과 오얏꽃
명종 임금이 어느 날 궁정에 핀 국화를 옥당관에게 하사
하며 시를 지으라 했으나, 옥당관은 미처 시를 짓지 못
하였다. 마침 참찬(參贊)으로서 숙직을 하고 있던 송순
에게 부탁하여 지어바치니 시조를 본 명종은 매우 기뻐
하여 송순을 크게 칭찬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내니,
나 한 간 달 한 간에 청풍 한 간 맡겨두고,
강산은 들 일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노라
초려삼간(草廬三間) : 아주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집
이 작품은 작자 미상으로 보는 이도 있으나, 면앙정잡가에
실려 있는 것으로 미루어 송 순(宋純)의 작품으로 간주하
는 것이 옳을 것같다. 어쨌든 이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는
자연과 인간과의 친화(親和)를 그리는 풍류나 호기는 범상
치 않음을 본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우리 전래의 격언은 십 년이란
기간이 결코 짧지 않으며,마음만 먹으면 최소한 이 기간에
는 품은 뜻도 펴봄직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그런데,
이 작품의 지은이는 이러한 기간 동안 자기가 이루려한 뜻
이란 세상의 부귀 공명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초가 삼간을
마련하는 것을 그 보람으로 하였다. 그것도 처자식 거느리
고 살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자연과 좀 더 가까이 벗하고
지내기 위해서 말이다.
얼른 생각하기에는 너무 욕심이 없고, 무책임한 감마저 들
지만, 곰곰이 되새겨 보면, 이미 가정도 세상도 다 떠나갔
거나 멀어져 버린 쓸쓸한 그의 면모를 엿볼 수 있어서 도
리어 허허함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러한 심
경을 결코 서러워하거나 탓하지 않고, 차곡차곡 정성 들여
한 간 한 간 초가삼간을 짓는 마음의 여유를 보여 주었고,
이를 완성함으로 청풍명월(淸風明月)을 몸 가까이 불러 들
여 벗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자기 자신은 남 보기보다는 쓸
쓸하거나 외로운 게 아니다라고 폭넓은 마음의 여유를 보
여 주었다.
특히 종장의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노라' 한
대목에서 보여 주는 넘치는 여유는 그가 얼마나 자연에 묻
혀 자연의 철학을 몸에 익혔는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꽃이 진다 하고 새들아 슬퍼마라
바람에 흩날리니 꽃의 탓 아니로다
가노라 희짓는 봄을 새와 무슴하리요
희짓는 : 휘젓는, 희롱하는. 새와 : 시기하여.
새들아, 꽃이 저 앉을 자리가 없다하여 너무 슬퍼 말라. 모
진 바람이 꽃을 떨어뜨리는 것이니 꽃에 무슨 죄가 있으랴.
떠나간다고 휘젓는 봄을 시기하여 무엇하겠는가.
여기서 꽃이라는 말과 새들이란 명사, 그리고 바람, 봄이라
는 어휘들이 지니는 은유(隱諭)의 그림자에 눈을 돌려야 만
이 이 작품이 갖는 참 뜻과 그 실마리를 찾아 낼 수가 있다.
아울러 지은이 송 순이 처해 있던 시대와 그의 벼슬을 둘러
싸고 벌어진 당쟁(黨爭)의 단면을 훑어볼 필요가 있겠다.
잡느냐 놓치느냐에 따라 정의(正義)의 음양이 그 얼굴을 바
꾸던 시대, 말하자면 지배하느냐 지배당하느냐를 두고 다투
던 처절한 당쟁은 송 순이 살던 선조 시대에도 걷힐 줄 몰
랐다. 당쟁의 파문은 당대 사회의 각계 각층에 지대한 상처
를 남김을 또한 그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그토록 허다한 옥사와 사화(士禍)는 너무나 가혹했고,그 연
좌의 범위는 직계존속은 물론, 내·외척에 이르기까지 마련
이어서 그만큼 사회 불안의 폭을 크게 하기가 일쑤였다. 환
로(宦路)에 나가서 정치의 포부를 펴던 사람치고 당쟁의 화
를 입지 않은 사람이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이 시조의 소재는 이른바 명종(明宗) 즉위년(卽位年)에 일
어난 을사사화(乙巳士禍)가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지은이는 이때 이에 연좌되어 파직 유배의 몸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조에 동원된 은유들은 그 사회의 참극과 무
관할 수가 없다.
꽃이 진다는 속뜻은 을사사화 때 죽은 죄 없는 선비들을 가
리키는 말이고, 새들은 세상을 바로 보는 뜻 있는 사람들의
총칭이며, 바람은 을사사화로 일어난 모진 풍화이다.
희짓는 봄은 당시 사화를 꾸며서 성공한 득세파, 이를테면
집권세력을 말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사관불출(辭官不出)로 어지러운 세상과 담을 쌓았
지만, 이 불의의 사화가 하나의 역사의 계절임을 달관하고
사필귀정(事必歸正)에 마음을 가라앉힌 그 태연자약한 모습
이 새들아 슬퍼마라는 구절에서 확연히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