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 유익종 & photo by 모모수계
https://youtu.be/AeC0BJVOWKs
음악편집:체칠리아
[오늘의 사건]
1945년 1월 30일
독일 초호화 여객선 빌헬름 구스틀로프호, 소련 해군 잠수함에 격침
독일 초호화 여객선 빌헬름 구스틀로프호, 소련 해군 잠수함에 격침
1945년 1월 30일 아침 동프러시안 가드니아. 초대형 유람선이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한 채 유유히 항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날 밤 발트해 한복판에 있었던 유람선이 갑자기 바다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1937년 5월 빌헬름 구스틀로프호의 진수식이 열렸다.
나치 독일은 국민들의 심신 단련과 휴양을 목적으로 이 배를 제작했는데
당시 폭스바겐의 비틀 자동차, 국민 라디오와 함께 나치 선전도구로 이용되었다.
빌헬름 구스틀로프호는 안락하고 쾌적한 해외여행을 위한 각종 운동시설, 대형수영장 등
다양한 위락시설들이 마련되어 있어 배 안에는 연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1929년 9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빌헬름 구스틀로프호는
더 이상 출항 할 수 없게 되었다.
빌헬름 구스틀로프호가 발트해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배 안에서는
신음소리와 절규만이 가득했다. 빌헬름 구스틀로프호가 부상병을 나르는
병원선으로 그 목적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독일군의 패색이 짙어졌고,
그동안 독일군의 만행에 시달렸던 소련군은 군인들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민간인들까지 학살했다. 이에 독일의 칼 되니츠 총통은 부상병과 민간인 200만 명을
독일 서부의 안전한 곳에 이주시키기 위한 ‘한니발 작전’을 명령했고
당시 여객선이나 화물선, 군함 등 모든 종류의 배가 이 작전에 총동원되었다.
빌헬름 구스틀로프호도 피난민 구출작전에 투입되었다.
전쟁의 공포에 떨었던 피난민들에게 빌헬름 구스틀로프호는
자신들의 목숨을 지켜줄 마지막 희망이자 구원의 배였다.
당시 승무원이었던 하인츠 쉰의 증언에 따르면 총승객은 10,582명이었고,
그중 8,956명이 피난민이었으며, 대부분이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빌헬름 구스틀로프호에는 총 4명의 함장이 타고 있었는데, 당시 최고 연장자였던
프리드리히 패터슨의 의견에 따라 빌헬름 구스틀로프호는 발트해의 깊은 바다를 항로로 삼았고,
항해등을 켠 채 운항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항해등을 켠 채로 달린 빌헬름 구스틀로프호는 어두운 밤에도
너무 쉽게 눈에 뜨였고 결국 출항한 지 하루도 못되어 소련 잠수함 S-13호에 의해 발견되었다.
S-13호는 4발의 어뢰를 발사시켰고 그중 3발이 명중했다.
어뢰를 맞은 빌헬름 구스틀로프호는 아비규환이 되었고 어뢰 공격을 당한 후
1시간 10여분 만에 침몰했다. 배에 타고 있던 피난민들은 어뢰에 직접적인 충격으로
사망하거나 발트의 차가운 바닷물에 빠져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100,000여 명이 넘는 피난민 중 9,343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는 최대
해상사고로 알려진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의 사망자보다 무려 6배나 많았다
. 전쟁이 끝난 후 빌헬름 구스틀로프호의 비극은 침묵 속에 묻히고 말았다.
그리고 사고 발생 57년 후인 2002년 독일의 대표작가 귄터 그라스의 ‘게걸음으로
가다’가 발표되면서 그동안 금기시 되어오던 빌헬름 구스틀로프호 사건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이 소실이 아니었다면 빌헬름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은 영원히 수장되었을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안타깝게 죽어갔던 빌헬름 구스틀로프호의 피난민들은
지금도 그 비극을 간직한 채 북위 55도 7분, 동경
17도 41분, 수심 60m 해역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
[오늘의 인물]
1988년 1월 30일
소설가 소영(素影) 박화성 별세
소설가 소영(素影) 박화성 별세
박화성은 1904년 4월 16일 목포에서 부친 박운단과 어머니 김운선 사이의 4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나 1988년 1월 30일 아침 6시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5세였다.
박화성은 1915년 목포에 있는 정명여학교(貞明女學校)를 거쳐 1918년 서울의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그 뒤 충청남도 천안과 아산에 있는 보통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1922년 전라남도 영광중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3년여를 영광에 머무르는 동안 시조작가 조운(曺雲) 등과 사귀면서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하였다.
1925년 ‘추석전야(秋夕前夜)’가 이광수(李光洙)에 의해 ‘조선문단(朝鮮文壇)’에 추천되었다.
그러나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상경, 1926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신학년제 4년)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여자대학(日本女子大學) 영문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김국진(金國鎭)과의 혼인 문제 등 개인사정으로 1929년 3학년을 수료하고 귀국했다.
1932년 ‘하수도공사(下水道工事)’가 이광수에 의해 ‘동광(東光)’에 다시 추천되어 작가 생활을 재개했다.
그 해 첫 장편소설 ‘백화(白花)’를 동아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그 뒤 1938년까지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동안 20여 편에 이르는 소설을 발표했다.
거의가 일제의 침탈로 고통받는 도시 노동자나 서민
그리고 농민을 다룬 것이어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약자의 편에 서기를 표방하고 줄기차게 이어온 그녀의 작품 활동도 1938년
‘중굿날’을 발표하고는 조국 광복까지 침묵을 지키기에 이른다.
이 무렵 그녀는 출옥한 뒤 간도(間島)로 가버린 김국진과 이혼하고
천독근(千篤根)과 재혼하였다. 광복이 되자 1946년 ‘민성’에 단편 ‘봄 안개’를 발표하면서
또다시 왕성한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세계는 광복 전의 그것과 너무나도 다른 것이었다.
장편소설에 의욕적이었던 그녀의 작품세계는 흔히 대중성을 도입하여
서민들의 세대의식이나 남녀 간의 애정문제 등을 다룬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광복 후 주요 작품으로는 단편소설에 ‘광풍(狂風) 속에서’(서울신문, 1948)·
‘샌님 마님’(現代文學, 1965) 등이 있고, 장편소설에 ‘고개를 넘으면’(한국일보, 1955∼1956)·
‘사랑’(한국일보, 1956∼1957)·‘벼랑에 피는 꽃’(聯合新聞, 1957∼1958)·
‘바람뉘’(女苑, 1958∼1959) 등이 있다. 1958년 목포시문화상, 1966년
한국문학상, 1970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84년 3·1 문화상 등을 받았다.
그 해, 오늘 무슨 일이... 총 55건
ㆍ2011년 · 김재순 前 성심여대 총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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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2010년 · 길창덕 화백 별세
ㆍ2009년 · 북한 "남북 기본합의서 NLL조항 폐기"
ㆍ2005년 · 이라크의 첫 자유 총선거
ㆍ2000년 · 케냐항공 소속 에어버스 A310기 아비장 이륙 후 바다추락. 169명 사망
ㆍ2000년 · 에밀레 박물관장 조자용 씨 별세
ㆍ1999년 · 강원 동계아시안게임 개막
ㆍ1996년 · 아프리카 잠비아주재 북한대사관 현성일 3등 서기관 서울 도착
ㆍ1994년 · 국산주전산기 III 개발 완료
ㆍ1992년 · 이재형 前 국회의장 별세
ㆍ1992년 · KT(구 한국통신), 국제영상회의 시스템 서비스 발표
ㆍ1992년 · 북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전협정 서명 및 핵사찰 실시
ㆍ1991년 · 미국의 물리학자 바딘 사망 - 1956년 트랜지스터 발명, 1972년 초전도이론 개발로 노벨상 수상
ㆍ1988년 · 소설가 소영(素影) 박화성 별세
ㆍ1984년 · 일본, 세계최초의 256KS램 개발 성공
ㆍ1980년 · 북한, 총리회담 예비접촉 수락
ㆍ1975년 · 독일 작곡가 보리스 블라허 사망
ㆍ1974년 · 한일대륙붕협정 체결
ㆍ1972년 · ‘피의 일요일’, 북아일랜드 사태 격화
ㆍ1971년 · 한국-피지 국교 수립
ㆍ1969년 · 이희승 등 140명, 한글전용반대 성명
ㆍ1967년 · 조달기금법안 통과, 한국외환은행 발족
ㆍ1964년 · 미국 달 위성 레인저 6호 발사 성공
ㆍ1964년 · 베트남 군부쿠데타(2차)로 웬만 장군 집권
ㆍ1959년 · 오스트리아의 자동차 공학자 포르셰 사망
ㆍ1959년 · 일본 외상, 국무회의에서 재일교포 북송을 발표
ㆍ1958년 · 독일의 항공기 설계자 하인켈 사망
ㆍ1958년 · 김포공항 국제공항으로 정식 지정
ㆍ1954년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발족
ㆍ1953년 · 부산 국제시장 대화재
ㆍ1952년 ·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가입
ㆍ1951년 · 폴크스바겐 원형의 설계자이자 포르셰의 창업자 페르디난트 포르셰 사망
ㆍ1949년 · 중국군 북경 입성
ㆍ1948년 ·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 초판 간행
ㆍ1948년 · 미국 비행기 발명가 오빌 라이트 사망
ㆍ1948년 · 마하트마 간디 피살
ㆍ1948년 · 한국, 첫 동계올림픽(제5회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 참가
ㆍ1939년 · 조선일보, 조선 여성백과사전 `청규박물지`의 첫 발견을 보도
ㆍ1933년 · 히틀러 독일 수상에 취임
ㆍ1927년 · 스웨덴 올로프 팔메 수상 출생
ㆍ1924년 · 제1차 국공합작(중국 국민당 제1회 전국대표자대회에서 집행부에 공산당원이 선출)
ㆍ1919년 ·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출생
ㆍ1913년 · 발칸동맹, 대 터키 강화 담판 결렬
ㆍ1909년 · 미국-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 공동보호협정 체결
ㆍ1902년 · 제1차 영일동맹 조인
ㆍ1902년 · 시베리아철도 (블라디보스토크 - 하바롭스크 구간) 개통
ㆍ1899년 · 대한천일은행(현 상업은행) 창립
ㆍ1895년 · 러시아 황제 전제정치 선언
ㆍ1882년 · 미국 26대 대통령 데오도르 루스벨트 출생
ㆍ1878년 · 러시아, 터키 휴전조약 체결
ㆍ1781년 · 독일 시인 샤미소 출생
ㆍ1649년 · 영국 국왕 찰스 1세 처형
ㆍ1637년 · 병자호란 때 인조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 항복
ㆍ1621년 · 조선, 무과에서 대리시험이 공공연히 자행
[출처 : 조선닷컴]
첫댓글 유익종의 들꽃을 즐감 하며
독일 초호화 여객선 빌헬름 구스틀로프호,
소련 해군 잠수함에 격침, 아무리 나치의 배라 하지만
민간인과 부상병이 있는 배를 침몰 시키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닐까 싶네요
소설가 소영(素影) 박화성 별세 함자는 들었지만
그 분의 작품은 보지 못한 것 같네요
그 외 좋은 자료를 게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참으로 포근하네요
건강하시고 행복한 한주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