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박사]
여러 해 전에 영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특히 관심이 있는 윈스턴 처칠 (Winston Churchill)의 생가 블레넘 궁(Blenheim Palace)도 둘러 보았고 그 곳에서 과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처칠 가문의 가족 묘지에도 가 보았다.
처칠은 다사다난한 한평생을 살았고 그가 거친 관직만도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그의 자리가 마련돼 있는 웨스트민스트 애비(Westminster Abbey)에 묻히기를 거절하였고 초라한 교회당 뒤뜰에 묻힐 것을 요구하여 지금은
소박한 묘소에 누워 있다.
방문하고 놀란 것은 그의 묘비에는 이름과 숫자 1874~1965만이 적혀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에서 처칠의 위대함을 또 한 번 느꼈다. 웨스트민스터 애비의 장지를 거절한 것은 자기 자신이 그런 곳에 묻힐 만큼 대단하거나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고 묘비에 자신의 이름과 생년, 사망 연도 만을 적은 것은 그것이 인간의 길임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듯 여겨졌다. 1874년 전에도 1964년 이후인 지금도 그는 살아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시간을 초월하여 오늘도 살아있는지 모른다.
셰익스피어(Shakespeare)가 "Thus I come and thus I go" (이렇게 왔다 이렇게 가는 것을) 라고 말한 것처럼 오고가는 것은 인생이지만 시간만은 영원히 살아있어 우리들을 지켜본다. 미국 작가 윌리엄 딘 하웰즈 (Willian Dean Howells)도 우리에게 일러준다. "Eternity and I are one" (영원과 나는 하나이다). 제한된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산다는 것은 얼마나 멋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