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무
아내는 시장 안을 기웃거리며 잘생긴 총각을 찾고 있다. 그 뒤를 체육복 차림인 내가 뒷짐을 지고 어슬렁어슬렁 따라가고 있다. 아내는 하이에나 같은 눈으로 구석구석 표적을 겨눈다. 분명 생경한 느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랜 세월 나를 관통하던 그 눈빛이다. 내가 장바구니와 함께 시장까지 딸려 나온 건 무거운 짐을 들고 와야 하는 목적도 있지만, 홀로서기 일환으로 시장에서 물건 고르는 방법을 배우기 위함이다. 특히,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총각무를 사러 간다기에 구미가 더 당겼다. 한입 베어 물면 아삭한 식감과 더불어 입안을 흥건하게 적셔 주는 무의 향. 시큼한 향이 나는 잘 익은 우거지 맛은 또 어떤가.
내가 보기에는 그놈이나 이놈이나 별반 차이를 모르겠다. 상인들은 한결같이 자식 자랑하듯 자기 무가 최고라고 호객한다. 아내는 무를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그냥 나오기 일쑤였다. 나는 저렇게 까지는 못할 것 같다. 상인들 보기가 민망하지만, 그렇다고 아내를 나무랄 수는 없다. 아내는 혹시 모를 바람 든 무를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자주 만져 보는 걸로 봐서 아내도 구분하는데 특별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여러 군데 발품을 팔아야 조금은 알 수 있다고 한다. 생김새도 훑어보고, 크기도 봐야 하고 만져도 봐야 좋은 놈을 고를 확률이 높아진다며 걸음걸이를 재촉한다.
아내가 무를 고르는 것을 보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재작년에 아내가 총각무 김치를 한 단 담았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아내는 대단한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난생처음 어머니가 해주시던 바로 그 맛을 만들어 낸 것이다. 입맛이 비슷한 딸과 나는 일주일 내내 싸우지 않고 그것만 가지고도 밥 한 그릇을 해치웠다. 김장 김치가 동이 나거나, 아니면 푹 삭아 초가 된 시점이라 신선한 맛이 입맛을 돋우는 역할도 했으리라. 더 담아 먹고 싶었으나, 무의 출하 시기가 지나 버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총각무는 아무렇게나 생겨도 다 맛있는 줄 알았다. 재작년의 아쉬움 때문에 작년엔 욕심을 좀 부렸다. 열 단 정도 담아서 원 없이 먹어보자고 했다. 아내 말에 있는 힘껏 손뼉을 친 것 같다. 아뿔싸! 재작년과 똑같이 양념해서 김치냉장고에 빼곡히 저장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익지 않았다. 숨도 죽지 않고 뻣뻣하게 굴더니만 시간이 지날수록 벌건 거품만 토해냈다. 괜한 욕심을 부려 아까운 양념만 버렸다는 생각이 그 해 김장철이 될 때까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설렁설렁 따라다닌 내 눈에도 겉모습은 조금 구분이 된다. 황토가 그대로 묻어 있는 놈, 하얗게 씻어 놓은 놈, 껍질을 벗겨놓은 놈. 크기가 핫도그처럼 큰 놈, 떡볶이처럼 조금은 작아 보이는 놈.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닌 모양이다. 속까지 알아맞혀야 낙점한다니, 표정만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아내의 속마음 같아 계산이 서지 않는다. 황토가 묻어 있는 것은 촌스럽지만 맛깔스럽고, 하얀 몸뚱이를 내놓고 있는 것은 뭔가 꿍꿍이속이 있을 거라며, 아내는 황토가 묻어 있는 총각무를 두 단 샀다.
어릴 때부터 젓갈이 많이 들어간 어머니 음식에 나는 길들어 왔다. 아내는 젓갈 들어간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 당연히 음식에 젓갈을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다. 기껏 사용해야 밋밋한 새우젓 정도다. 그러니 아내가 만드는 음식이 입에 잘 맞을 리 없다. 그러함에도 아내가 용기를 내어 젓갈을 넣어 김치를 담그는 것은 순전히 나를 위한 배려다. 아쉬운 것은 아내가 치대면서 맛을 보지 않기에 숙성되기 전까지는 진짜 맛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기대를 해본다. 아내가 내 입맛에 맞게 맛을 낸 경험을 믿기 때문이다. 물론 작년처럼 숙성이 제대로 안 된 때도 있었지만, 그때는 무를 잘 못 골라 그런 것 아니었겠냐는 생각이 든다.
예전과 달리 오늘은 우리 부부가 같이 상견례를 했기에 근심은 접어 두기로 했다. 아내의 말대로 긍정의 힘을 믿어본다. 결혼 전에는 어머니가 김치 담그던 모습을 옆에서 자주 봐왔다. 아마도 옆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슬쩍 훔쳐봤다는 것이 더 합당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맛을 내는 데 일조를 한 것인 양 아내에게 떠벌렸다. 이왕 허풍을 친 김에 내가 뭐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은근슬쩍 도우미를 자청했다. 무의 껍질을 벗기는데 벌써 시큼한 그 맛이 생각나서 침이 고인다. 빨리 먹어보고 싶은 욕심에 손이 미끄럼을 탄다.
거실에 서 있지만 마음은 부엌에 가 있다. 여차하면 달려갈 태세다. 이번만큼은 이방인이 되고 싶지 않다. 아내의 얼굴이 불그스름하다. 낯선 이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두려움 반 기대 반이다. 아내는 커다란 함지박에서 벌거벗은 놈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조심스럽게 어루만진다. 이놈들은 내가 껍질을 벗길 때는 별 반응이 없더니만 아내가 손을 갖다 대니 금방 생기가 돈다. “고놈들 참 튼실하게 생겼다.” 아내의 그 말이 기대치를 한껏 더 올린다.
사람 속이나 무 속은 알 수 없는가 보다. 크고 튼실한 놈이라 물도 많고 맛도 괜찮을 거라고 여겼는데, 아내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내는 사람이나 무나 바람 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며 무를 칼로 댕강댕강 잘라 낸다. 모처럼 나한테 식재료 고르는 방법을 가르쳐주려고 했는데, 아내는 그게 더 섭섭한 모양이다. 내가 다가가니 함지박을 두드리는 아내의 액션이 더 커진다. 꼭 무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투덜대며 시장에 따라다닌 것이 영향을 미쳤을까.
‘ 단디 조심해야겠다.’ 삭둑삭둑 잘려 나가는 총각무가 괜히 안쓰럽다. 될 수 있으면 오늘은 아내 옆에서 얼쩡거리지 말아야겠다. 옆에서 한마디 거들다가는 그놈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내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다. 물건 보는 눈은 미숙하지만, 경험상 이럴 땐 삼십육계가 최고다. 허겁지겁 현관문을 여는 내 뒤로 아내의 말이 들려온다. “어디가? 이놈도 같이 데리고 가야지”
바깥에도 바람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