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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01:6 충성된 자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25.11.30 주일낮
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충성된 자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옆에 계신 분에게 인사하겠습니다. “충성된 자가 됩시다.”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 사람을 찾으시고 일을 맡기시고 진행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을 수도 있고 천하게 쓰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하실 때 모세도 쓰셨지만 바로왕도 쓰셨습니다. 주연으로도 쓰시지만 조연으로도 쓰시고 악연으로도 쓰십니다. 선한 일에도 쓰시지만 악한 일에도 쓰임받게 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선한 일에,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길 바랍니다. 넘어지게 하는 일이 아니라 일으켜 세우는 일에 쓰임받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야 복된 인생입니다.
내 생각에는 나뿐인 것 같아도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너 말고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도 왜 내게 이런 힘든 일을 맡기셨느냐고 불평할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임한 영이 일흔두 명의 장로에게 똑같이 임하게 하여 예언하게 했습니다. 모세는 그 일로 인해 더 겸손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말씀합니다.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여기서 말하는 ‘내 눈’은 물론 이 시를 지은 다윗입니다만 당연히 하나님의 눈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피십니다. 단지 살피는 것만 아니라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 충성된 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누구일까요? 곧 충성된 자입니다. 충성된 자가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정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충성해야 할까요?
첫째, 작은 일에도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눅16:10이하에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는 달란트를 남긴 종에게 이렇게 칭찬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1). 작은 일에 불의한 자는 큰일에도 불의하다는 것은 작은 일을 소홀히 여기는 자가 큰일에도 소홀하다는 것입니다. 작은 일 하나도, 심부름 하나도 시켜보면 알지 않습니까.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을 보면 큰일도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작은 일은 표도 안 나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큰일만 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작은 일은 했는지, 안 했는지 표도 안 납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일을 할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 일을 하고도 나팔 불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있을 때만, 볼 때만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에서도 율법사나 레위인이 강도 만난 자를 그냥 지나쳤는데 누군가 그를 보고 있었다면 그냥 지나갔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목사가 보고 있지 않아도, 성도가 보고 있지 않아도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사람에게 눈도장 받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정직하고 진실하면 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한 것도 반드시 보상이 있습니다. 런던 켄터베리 교회에 니콜라이라는 사찰집사가 있었습니다. 생활이 어려워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니콜라이 집사는 17살 때부터 교회에서 일을 하며 아무리 사소한 일도 마음과 정성을 다해 처리해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 집사는 교회의 종 치는 일을 했는데,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사람들은 집사님을 신뢰해서 종소리와 시계의 시간이 차이가 나면 종소리에 시계를 맞출 정도였습니다.
니콜라이 집사님은 76세가 될 때까지 교회 일을 하며 종을 쳤습니다. 그의 두 아들은 장성해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아버지를 쉬게 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거절하고 매일 교회에 나가 일을 하고 종을 쳤습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종을 치려 했고, 결국 종을 치러 가는 도중에 임종을 맞았습니다. 작은 일에 평생을 순종했던 니콜라이 집사님의 이야기는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에게까지 들려졌고, 여왕은 이 집사님을 영국 왕실의 무덤에 묻어 주었습니다. 또 여왕이 살아있는 동안은 이 날을 국경일로 지정했습니다(이병철 회장 부부 무덤 곁에 운전기사 위대식). 작은 일에도 충성하면 이처럼 귀하게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께는 크고 작은 일이 없습니다. 모두 주님의 귀한 일입니다.
둘째,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명령대로 준행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눅17장 5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은 믿음을 더해 달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명한 대로 순종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야 믿음도 자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순종하고도 마땅히 할 것을 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충성된 종의 자세,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는 내 온 집에서 충성한 자라고 인정해주셨습니다(민12:7). 왜냐하면 출애굽기 마지막 두 장에서 모세의 행적을 말씀하실 때 “모세는 하나님이 명한대로 행하였더라”는 것을 반복해서 기록합니다. “모세가 그같이 행하되 곧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라고 합니다(출40:16). 모세는 하나님이 세운 종으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받들어 준행하였습니다. 그러니 충성된 자라고 인정받은 것입니다.
예수님도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하나님의 보냄 받은 종, 인자로 오셨을 때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예'하고 '아니라' 하지 않았습니다. 히3:5에서 예수님의 충성에 대해 말씀하실 때도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또한 모세는 장래의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라고 합니다. 명한대로 준행하는 것이 바로 충성입니다. 요12:49,50입니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이처럼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을 모두 명령으로 받아 순종했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빌2:5,6). 예수님은 진실로 충성된 아들이자, 또한 신실한 종이었습니다.
노아도 왜 충성된 자라고 합니까?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합니다(창6:22). 아브라함을 왜 충성된 자라고 합니까?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합니다(창22:18).
명령을 들었을 때 못할 이유, 안 되는 이유를 찾으면 수없이 많습니다. 처자식이 있어 못하고, 하던 일이 있어 못하고, 시간 없어 못하고, 피곤해서 못하고, 하고 싶은데 없어서 못하는 등등. 그러나 충성된 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못할 이유, 안 되는 이유를 포기해버리고 순종한 자들이 바로 충성된 자입니다.
셋째,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맡은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고전4:1에 “맡은 자가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습니다. 영국의 한 왕자가 사냥을 갔다가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맸습니다. 그러다 왕자는 우연히 한 목동을 만나 자신이 왕자임을 밝히고 길 안내를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목동은 “안 됩니다. 저는 주인의 양을 치는 목자입니다. 주인의 양떼를 지키는 것이 내 임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왕자는 많은 돈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목동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왕자는 안내해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목동은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죽을지언정 양들을 두고 여기를 떠날 수 없습니다. 다만 가는 길을 설명해 드리지요. 여기서 산을 세 번 넘은 후에 서쪽으로 계곡을 따라가면 넓은 길이 나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왕자는 설명한 대로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후에 그 왕자가 왕이 되었을 때 그 목동을 불러 왕궁의 일을 맡겼고 이후에 재무대신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이 아버지의 양을 칠 때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시78:70에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양을 지키려고 곰과 사자와 싸우는 것을 하나님은 지켜보셨습니다. 그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하나님은 보시고 자기 백성을 인도할 왕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처음 초심이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이 충성됨입니다. 주의 일하다가도 마음이 얼마나 변하는지 모릅니다.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변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구원받은 은총에 감사하고 기뻐했지만 어느새 불평과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이번 일만 해결되면 더 충성하고 더 감사하고 더 많이 일하겠다고 하지만 막상 이루어지면 내가 언제 그랬냐고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주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떠내려 보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한결같듯 우리도 한결같아야 합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미국인만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존경받는 대통령입니다. 그가 초등학교 3학년을 중퇴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 그 어린 나이에 21일 동안 작정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도 다윗처럼 일생동안 하나님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 되겠으니 사람들이 저 때문에 깜짝 놀랄만한 일을 하게 해 주십시오.” 그가 40년 전에 드린 이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은 링컨 대통령이 한 업적으로 놀라게 되고 그의 불우한 환경들을 알고서 더 놀라게 되지 않습니까. 그는 처음 사회에 나가 구두닦기를 할 때나 대통령이 되었을 때도 하나님 앞에 변함없이 한결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했으며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했고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려고 기도했고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우선한 대통령이었습니다. 대통령이기 전에 하나님께 신실하고 충성된 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충성된 자를 찾으시는데 보상도 약속하십니다. 그것은 나와 함께 살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랑 사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사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충성된 자에게 함께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충성된 자는 이처럼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나라에서도,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충성된 자가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충성된 자가 사랑을 받는 것은 차별이 아닙니다. 충성된 자는 어디서든 존귀하게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편애도, 차별도 아닙니다.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기서 완전하다는 것은 흠이 없고 순결한 것인데 곧 충성된 자를 일컬어 완전한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충성된 자가 나를 따르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충성된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충성된 자가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충성된 주님의 일꾼 되길 축복합니다. 주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인정받는 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두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되길 소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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