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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동명천제단입니다.
대한제국 애국가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사
성수무강하사
해옥주를 산같이 쌓으시고
위권이 환영에 떨치사
오천만세에 복록이 일신케 하소서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일본제국(日本帝國)으로 한일합방(韓日合邦)이 되기 전, 조선왕조(朝鮮王朝)의 공식적인 종교는 바로 유교(儒敎)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교의 보완적(補完的)이면서 우주 확대적 개념의 종교는 바로 도교(道敎)였으며, 왕실 및 황실의 원찰 개념이면서 동시에 임금을 신과 같은 존재로 승격시켜 높이 모셨던 종교는 바로 불교(佛敎)였습니다. 즉, 일본의 천황(日本天皇)과 같은 수준의 제왕(帝王) 신격화는 바로 불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대한제국(大韓帝國) 성립 이후의 이러한 유교, 도교, 불교의 이념을 종합한 개념이면서 동시에 민족적 정체성을 중시하는 네 번째 종교가 성립하게 되는 것이 바로, 지금의 단군교(檀君敎)였습니다.
1900년대 단군교(檀君敎)가 처음 중광되었을 때의 공식적인 명칭은 유교(儒敎), 도교(道敎), 불교(佛敎)와 대비되는 개념의 본교(本敎)이기도 했습니다.
현재, 단군교(檀君敎)는 대한제국(大韓帝國) 시기였던 1904년 음력 10월 3일을 기점으로 새롭게 중광(重光)된 종교로서, 36년간의 일본제국 통치시대(日本帝國統治時代)를 거치며, 지금까지 121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과거, 단군교가 1910년의 8월 29일 한일합방 이후에는 제국의 독립(帝國獨立)을 위한 충성의 기도(忠誠祈禱)를 하였다고 한다면, 1945년 8울 15일 해방 이후에는 남북 통일(南北統一)을 위해 통일의 기도(統一祈禱)를 하였습니다. 즉, 독립과 통일이라는 가장 숭고한 가치를 위해 민족 유일의 숭조종교(崇祖宗敎)로서 기도했던 것이 바로 단군교(檀君敎)였습니다. 그러나, 1987년 이후의 지금은 저희 기도(祈禱)가 한 가지의 기도를 더 추가(追加)하였습니다. 바로 동서통합(東西統合)의 기도입니다.
독립과 통일, 그리고 통합(Independence, Unification, and Integration).
그러나, 반면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의 대종교 총본사(大倧敎總本司)는 황당하게도 현재 출교자(黜敎者)이면서 또한, 역대 대종교에서 가장 많은 출교 징계(黜敎懲戒)를 받았던 자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스스로 총전교라며 2018년부터 대종교 총본사를 불법으로 점거하였습니다. 그리고 무려 7년이 지난 2025년 현재까지도 총전교(總典敎)를 사칭(詐稱)하며 돌아다니고 있고, 매일 반복되는 분쟁과 아귀다툼이 일상(日常)인 대종교 총본사(大倧敎總本司)는 이미 종교적으로 폐문(閉門)에 가까운 악명을 떨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의 순수(純粹) 민족종교(民族宗敎)인 단군교(檀君敎)는 어떻습니까? 지난 121년동안 올곧게 그리고, 가장 숭고(崇高)하게 이어오고 있는 단군교총본부(檀君敎總本部)만의 핵심 가치(核心價値)인 경봉조신의 문화(敬奉祖神文化)를 세계적으로 영광스럽게 구현(世界具現)시키고 있습니다.
재건회(再建會)는 이러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누구에게 함부로 종교(宗敎)에 대해 언급하거나 또는 정치(政治)에 대해 언급하기 전, 먼저 반드시 스스로 본인들에게 중요하고 또 필요한 것은, 인간으로서 갖고 있는 기본적인 인성(人性)과 양심(良心)을 먼저 우선적으로 지키는 것이, 신(神)과 종교(宗敎)와 국가(國家), 국민(國民)에 대한 기본적인 도리이며, 민족과 인류의 은혜에 첫 번째로 보답하는 길이라고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종교(大倧敎)를 불법 점거하고 온갖 거짓말과 사기로 대종교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종교 지도자를 참칭(僭稱)한다는 말입니까? 어불성설이고 하루라도 먼저 빨리 깨끗하게 물러나는 것이 스스로 신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라고 말씀을 드리며, 옛말에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는 말이 저절로 생각나게 하는 기막힌 2025년의 5월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현재 대통령 선거(21st Presidential Election)의 더불어민주당 후보(The Democratic Party of Korea candidate) 역시 수신(修身) 또는 제가(齊家)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많은 범죄 혐의들로 재판까지 받고 있는 상태에서 출마한, 대한민국 공화국 역사상 전례와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기괴(奇怪)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살펴 본다면, 공산주의 독재 국가들(Communist dictatorships)에서 조차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매우 기이한 현상을 만들고 있는 점에 대해서 먼저 대한민국 공화국 역사에서 매우 불행한 역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현재 자본주의의 대한민국 공화국에서 살고 있는 국민이라면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단죄(斷罪)하시길 충언드리는 바입니다.
다행히, 작년 2024년은 단군교 중광(檀君敎重光) 120주년이 되는 해였고, 어느덧 두 갑자(甲子)를 지난 2025년은, 새롭게 세 갑자를 향해 올해를 영광(榮光)스럽게 우리는 맞이하며 힘차게 발전하고 있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현재 심각하게 우리나라가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동시에 대한민국 공화국(the Republic of Korea),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라는 남북의 양국(兩國)으로 안타깝게 분단되었고, 1987년 제6공화국 출범(Launch of the 6th Republic in 1987) 이후에는 소위, 삼김(三金)의 김영삼(金泳三), 김종필(金鍾泌), 김대중(金大中)으로 대표되는 삼김시대(三金時代)를 거치며 지금은 뚜렷하게 국민의힘(The People's Power Party)으로 대표되는 경상도 지역(慶尙道地域)과 더불어민주당(The Democratic Party of Korea)으로 대표되는 전라도 지역(全羅道地域)으로 양분되는 동서의 분단까지 극명하게 겪고 있는 상황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남북의 분단 그리고 동서의 분단은 무엇 때문에 일어난 것일까? 원인이 무엇일까?
단군교의 순수 경전들을 살펴보면 끊임없이 인간(人間)에 대한 질문을 지속적으로 설명(說明)하며 탐구(探究)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삼일신고(三一神誥)로 대표되는 단군교 경전의 내용은 오대종지(五大宗旨)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형성되어갔는가에 관해 경봉조신의 문화 유전(inheritance), 그리고 인간의 미래에 대한 근무산업(勤務産業)의 문화(culture)를 명확하고 또 확실하게 답을 주고 계십니다.
한편, 지금까지 인간에 대한 공화국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에 대해서는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of Greece)가 처음 철학적 개념으로 언급한 사회적 동물(Philosophical concept: Man is a social animal)이라는 이름으로 정의한 이래, 현재까지 그대로 세계적인 통용이 되고 있을 정도로 인간의 유명한 이론으로 정립되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동서 양 대륙의 동일 판단(同一判斷) 이유는 무엇일까?
관련해서 저희 재건회(再建會)가 추가적으로 더 크게 주목한 것은, 바로 고려 태조대왕 전하(高麗太祖大王殿下)의 훈요십조(訓要十條)입니다.
1. 불교(佛敎)를 진흥시키되 승려들의 사원(寺院) 쟁탈을 금지할 것.
2. 사원(寺院)의 증축을 경계할 것.
3. 서열에 관계없이 덕망(德望)이 있는 황자(皇子)에게 황위(皇位)를 계승하게 할 것.
4. 중국(中國) 풍속을 억지로 따르지는 말고, 거란(契丹)의 풍속과 언어는 본받지 말 것.
5. 서경(西京)에 일백 일 이상은 머물러 황실(皇室)의 안녕을 도모할 것.
6. 연등회(燃燈會)와 팔관회(八關會) 행사를 증감하지 말고 원래 취지대로 유지할 것.
7. 상벌(賞罰)을 분명히 하고 참소(讒訴)를 멀리하며 간언(諫言)에 귀를 기울여, 백성들의 신망(信望)을 잃지 말 것.
8. 차령산맥 이남이나 공주강 외곽 출신은 반란(叛亂)의 염려가 있으므로 벼슬을 주지 말 것.
9. 백관의 녹봉을 함부로 증감하지 말고, 병졸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매년 무예(武藝)가 특출한 사람에게 적당한 벼슬을 줄 것.
10. 경전(經典)과 역사서(歷史書)를 널리 읽어 옛 일을 교훈삼아 반성하는 자세로 정사(政事)에 임할 것.
이러한 고려 태조대왕 전하(高麗太祖大王殿下)의 십조 유훈(十條遺訓) 중, 특히 여덟 번째 항목의 차령산맥(車嶺山脈) 이남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날 특별하게 일반인들에게도 특히, 많은 관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는, 학자들 사이에서 훈요십조가 흡사 조작(造作)이 되었다는 등 유언비어(流言蜚語)의 한 근거로 횡행(橫行)하였지만, 지금은 보다 과학적인 고증을 하면서 충분하게 십분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사항으로 발견된 상태에 이르고 있습니다.
즉, 훈요십조의 내용은 특히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of Greece)가 말한 사회적 동물이라는 내용과 매우 일맥상통(一脈相通)하고 있음을 살펴 볼 수 있겠는데, 관련해서 우리가 지금도 흔히 전라도 지역과 경상도 지역을 각각 여행하면 비교적 쉽게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자연 풍광에서 먼저 확연한 차이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할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전라도 지역은 위의 사진 세 번째(Third)와 네 번째(Fourth)의 사진처럼 넓은 평야가 일단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일반적이고, 산이라고 하는 것도 비교적 낮은 구릉이며, 돌산보다는 보다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흙산들을 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경상도 지역은 위의 사진 중 열한 번째(Eleventh), 열두 번째(Twelfth), 열세 번째(Thirteenth), 열네 번째(Fourteenth)처럼 높은 산과 산들의 중첩된 풍경을 일반적으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흙산보다는 거친 돌산을 더 많이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자연 풍경속에서 사람들이 일천 년(一千年) 이상 대를 이어 거주하며, 뿌리를 내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정신적 문화유산(精神的文化遺産)인, 신라(新羅)와 백제(百濟) 아니겠습니까?
바로, 인성(人性)의 불가피한 변화(不可避變化)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인간은 오감(五感) 중 시각(視覺)을 통해 판단할 수 있는 분야의 근거가 거의 80% 이상일 정도로, 시각을 통한 정보 습득과 가치 판단은 인간 본연의 주된 생각으로 굳어져 오랜 세월 누적이 되어 올 수 밖에 없었고, 또 실제로 반영이 되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시각적인 유전전개(遺傳展開)는 전라도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수평적인 사고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구조로 가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이 결국 대한민국 공화국에서 전라도가 특별히 좌파적 성지로 남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경상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수직적 사고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에서 결국 상하관계(上下關係)를 중시하는 우파적 성지로 남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대한민국 공화국 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Communism and Capitalism) 대립의 시작(The beginning of the confrontation)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소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는 분야은, 바로 인간 사회에서 질서(秩序) 이상으로 더 중요한 가치를 찾기는 힘들것이다라는 점입니다. 일만년의 인류 역사는 고유의 질서 문화가 존재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연속성(連續性)과 영구성(永久性)으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와 질서, 문화를 무너뜨리자고 내세운 이론이 이른바, 좌파들의 마르크스레닌주의(Marxism-Leninism) 즉, 1938년 10월 1일 볼셰비키당사[History of the Communist Party of the Soviet Union(Bolsheviks)]를 통해 본격적으로 공산주의(communism)와 사회주의(socialism)의 이념이 채택하여 발전을 시켰지만, 정작 지금까지 이러한 좌파 개념으로 국가를 개조한 나라들 중 성공한 사례는 존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끊임없이 좌파들이 주장하는 공산주의는 무슨 이유로 주장하는 것일까?
과거, 1945년 해방 이후의 북한 지역 경우, 처음 공산주의 이념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을 건국할 때, 많은 사람들은 김일성의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Free confiscation and free distribution of land)와 무상 교육, 무상 의료, 무상 복지(Free education, free medical care, free welfare)에 열광하였고, 인민 해방(People's Liberation)이라는 말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여 전쟁(1950. 6. 25.)까지 벌였습니다. 그러나, 휴전(ceasefire) 이후에도 가면 갈수록 인민 해방이라는 말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점점 개인적 의견은 묵살되고, 끊임없이 그리고 점점 가중되는 자유 통제와 감시 및 검열(Constant freedom control, surveillance and censorship)로 이어지면서, 결국 지금은 자유가 없는 노예(slave)가 되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공화국에서 좌파를 지향하는 국민과 야당들은 이러한 공산주의가 갖는 비극적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모른 척하고, 오히려 남한까지 북한의 무상 복지같은 거짓된 모습으로 실현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역사적 진리와 진실은 가려지거나 부인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부자들의 돈을 빼앗아 서로 나눠먹자는 식의 무식하고 개념없는 행동은 소위, 지금도 민주주의(democracy)라는 이름을 내세워 좌파들은 현재까지 새로운 방식의 입법(立法)을 통해 끊임없이 공산주의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상대편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하며 강압적으로 짓밟고 있습니다. 과연 현재 대한민국 공화국이 자유가 존재하는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까?
금일 언급하고 있는, 대종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총전교 사칭이 '정상이 아닌 불법(Illegal, not normal)이었다'는 법원의 판결까지 나왔음에도 여전히 부인하고 묵살하며, 엉뚱한 대종교 총본사(大倧敎總本司)의 점거행위는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재단법인 대종교 유지재단(Daejonggyo Maintenance Foundation) 역시 등록된 이사들 중 상당수는 이미 고령으로 사망을 하였음에도 현재 등록 이사로 등재되어 있는 상태로 유지되고 있고, 2009년 이후 이사회나 재단 감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불가피하게 남은 일부 이사들이 임시 이사회를 열어서 등록 이사를 교체를 하니까, 이번에는 고소를 하여 또 취소시키는 행위까지 벌이고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대종교라는 종교가 정상적인 종교 단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 황당한 것은 정작, 관리감독해야 할 문화체육관광부(The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는 전혀 상황 파악도 못하고 황당한 무능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심한 대한민국 공화국이며, 심각한 직무유기(職務遺棄) 상황에 있습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남북으로 분단된 것은, 1차적으로 외세에 의한 분단이 첫 번째 이유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평안도의 경우도 전라도 지역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매우 큰 평야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은 새롭게 눈여겨볼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나의 눈높이와 같은 위치에 사람들을 보면, 차츰 나와 동일한 사람으로 보게 되고 따라서, 위아래가 없는 망나니적 사고를 가질 수 밖에 없는데 역시 평안도 지역 사람들의 이른바, 수평적 사고는 결국, 평등만을 강조하는 좌파적 이념으로 발전되어, 일찍부터 과거 고려시대(高麗時代)부터 확인할 수 있는 왕실(王室)과 조정(朝廷)의 반대라는 대규모 반란 사건(叛亂事件)을 만들어내는 반역의 유산(叛逆遺産)을 만들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고구려시대(高句麗時代)에는 연남생의 반역(淵男生之亂)을 시작으로, 고려시대(高麗時代)의 묘청의 난(妙淸之亂)을 비롯한 조위총의 난(趙位寵之亂), 그리고 조선(朝鮮時代)의 이괄의 난(李适之亂), 홍경래의 난(洪景來之亂), 그리고 조선 후기에는 평등을 강조하는 천주교(The Catholic Church)와 같은 외세 종교의 빠른 전파 등과 함께, 역사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건들을 보면, 모두 평안도 지역(平安道地域)의 평양(平壤)을 중심으로 발생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또 설상가상으로, 해방 이후에는, 빠르게 소련(the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의 사주(使嗾)를 받은 공산주의 국가(communist country)로 발전하였습니다. 반면, 산악지역(山岳地域)인 함경도 지역(咸鏡道地域)은 지금 경복궁(景福宮)에서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를 확인할 수 있듯, 과거 임진왜란(壬辰倭亂)에서 국왕(國王)와 민족(民族)을 위한 투쟁을 통해 일본군을 완전히 궤멸(潰滅)시킨 자랑스러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1945년 민족해방(民族解放)의 역사적 상황에서 안타깝게도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남북으로 분단이 되며 고착화 된 결정적 배경은, 조선후기부터 시작된 평안도 지역의 천주교 유입과 함께 좌파적 성향의 만연(蔓延)이 수많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통합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남북 분단의 고착화라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 결정적 계기였으며, 현재까지도 정확히 80년째 남북은 분단이 되어 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의 분단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념을 제외시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이러한 배경이 처음부터 일본과 같은 방식의 대한황실(大韓皇室)의 복원(復原)을 통한 입헌군주국(立憲君主國)이 아닌, 엉뚱하게 남한만의 미국식 대통령제(American style presidential system)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공화국(the Republic of Korea)의 건국이 이루어진 것이 결정적 실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후, 수십 차례의 선거 등을 통해 드러난 민심의 향배(向背) 역시, 1987년 대통령 선거부터 남한도 정확히 다시 또 동서로 가르는 형태의 정치 지형들이 등장하는 것을 우리는 또 목격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공화국 이전의 삼국 시대를 봐도 전통적으로 전라도 지역은 백제(百濟), 그리고 경상도 지역은 신라(新羅)가 통치를 하는 시대를 겪었고, 오랜 세월 수많은 전쟁 끝에 결국, 최종적으로 신라에 의해 백제는 멸망되었습니다. 그런데, 3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국민의 인식 사이에는 동서 분단이라는 고착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전라도와 충청도 그리고 경기도는 상대적으로 평야가 주된 자연 풍경인 관계로 사람들의 인식도 수평적 사고, 즉 평등 지향적인 사고로 갈 수 밖에 없는 구조였고 따라서, 1894년부터 시작된 동학농민운동(Donghak Peasant Movement)을 비롯한 농민반란도 주로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에서 발생이 되었습니다. 반면, 경상도 지역은 산악 지역이 상대적 대부분이며 더불어서 수직적 사고 역시, 상하관계에 대한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인식과 견해가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보다는 고착화되고 체계화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안동지역(安東地域)을 중심으로 하는 고려시대(高麗時代)에 고려와 후백제가 가장 큰 전투를 벌였던 고창 전투(古昌戰鬪) 이후 유교 문화(儒敎文化)가 비교적 경상도 지역에 온전히 남아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며, 과거 삼국시대에도 고구려(高句麗)와 백제(百濟)의 끊임없는 압박 속에서도 신라(新羅)라는 작은 왕국을 결코 굴복시킬 수 없었던 이유도 결국 이러한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정신에서 기인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불교적 측면(佛敎的側面)에서 본다면, 한국 불교(韓國佛敎) 세 곳의 성지 중 불보사찰(佛寶寺刹)과 법보사찰(法寶寺刹)은 경상도 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승보사찰(僧寶寺刹)은 전라도에 위치한 것도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보면 지금 더불어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좌파 세력의 본거지가 전라도 지역을 위수 지역으로 하고 우파 세력의 본거지가 경상도 지역을 위수 지역으로 하는 것은, 이러한 자연 지형적 영향을 바탕으로 고려태조 시대부터 명시적(明示的)으로 내재된 사람들의 인식과 문화, 사고의 차이까지도 만들어내고 있는 결과라고 판단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고려 태조대왕 전하(高麗太祖大王殿下)의 훈요십조(訓要十條) 역시, 결코 조작된 것이 아닌 이미 후삼국시대부터 확인된 사실적이고 문화적인 유산을 논리적으로 명분화(明文化)시킨 것이며, 당시 상황에 대한 고려 태조대왕 전하(高麗太祖大王殿下)의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견해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욱 재미있는 것은 고려시대를 지나 조선시대로 왔을 때도 역시 동일한 전개 양상을 볼 수 있겠는데, 조선 후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하는 신흥 종교(新興宗敎)들의 탄생되는 지역이 모두 공교롭게도 전라도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너무 공교롭지 않습니까? 이러한 이유는 무엇일까?
증산도(甑山道), 대종교(大倧敎), 원불교(圓佛敎), 보천교(普天敎), 갱정유도(更定儒道) 등 기타 엄청나게 많은데, 이러한 종교들을 보면 공교롭게도 하나같이 모두 전라도 지역이 주요 근거지였으며, 종교들의 성격도 모두 동일하게 무극의 평등 사상(無極的平等思想)을 지향하기 때문에 비슷비슷한 내용으로 점철(點綴)되고 있었으며, 이미 일본제국 통치시대(日本帝國統治時代)의 일본제국 관리들조차 우후죽순(雨後竹筍) 늘어나는 신흥 종교들에 너무 놀라서 일본인들도 기겁(氣怯)할 정도로 오만 가지 해괴(駭怪)한 종교들의 난립(亂立)은 설상가상적 상황이었습니다. 과연, 이러한 종교들을 민족 종교의 이름으로 호칭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지금의 대한민국 공화국에서 우리는 어떤 점을 지향하고 목표로 하며, 무엇을 가장 궁극의 가치로 생각할 것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과연 무엇이 자유나 평등이냐의 불가분의 관계를 어떻게 종결지을 것인가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지금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참고로 또 한가지 안타까운 점에 대해 언급을 하겠습니다.
바로 대종교 총본사(大倧敎總本司)에 걸려있는 소위, 천진(天眞)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현재 대종교 총본사(大倧敎總本司)에는 천진이라는 이름으로 걸려있는 하나의 큰 초상화를 볼 수 있고, 경배식(敬拜式) 때마다 신도들이 열심히 초상화를 향해 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대종교의 그림을 대외적(對外的)으로 단군 영정(檀君影幀)으로 소개가 되어 있지만, 대내적(對內的)으로 대종교에서는 한배검(桓倍儉)을 모신 천진(天眞)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종교에서 궁극의 최고 신을 호칭하는 이름은 한배검(桓倍儉)입니다.
한배검(桓倍儉)은 환인(桓因), 환웅(桓雄), 환검(桓儉)을 하나로 합사(合祀)된 신, 즉 삼신일체(三神一體)로 묘사를 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환검은 원래 이름이 단군(檀君)이었는데 발음상 환인, 환웅과 일치하지 않다보니까, 일체성이 없다는 이유로 결국 단군을 환씨(桓氏)의 개념으로 변칙적(變則的)으로 명칭 변경하여 환검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대종교만의 이름으로 정의한 후, 이러한 환인, 환웅, 환검을 다시 하나의 신으로 합사하여 만든 신이 바로 한배검(桓倍儉)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한배검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바로 천진이라는 것이 대종교의 설명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처럼 단군 영정은 아닌 것입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천진의 모본이 되는 초상화가 있는데, 바로 과거 부여 천진전에 있던 부여 천진전 단군화상(扶餘天眞殿檀君畵像)입니다. 대종교측의 설명을 보면, 부여 천진전 단군화상(가로 34cm, 세로 53cm)을 모본으로 그게 확대 모사한 그림이 바로 대종교의 천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부여 천진전 단군화상의 경우 입수 경로가 매우 불분명한 점이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백과사전에 보면, 단순하게 얘기해서 대종교 신도였던 강우가 황해도 소위 구월산 삼성사(九月山三聖祠)에서 그림을 가져와 아들에게 물려주었고, 아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여 천진전 단군화상과 똑같은 그림이 동아일보에서 1922년 11월 21일자 '오늘은 개천성정' 기사와 함께 '단군천제의 영정'이라는 설명을 붙인 사진으로 게재(揭載)가 되어 있는데, 공교로운 점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전하는 부여 천진전 단군화상의 재질이 바로 중국산 인조비단 즉, 레이온(Viscose Rayon)이라고 하는 섬유 재질(Textile material)인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정말 맞는 말일까?
흥미로운 점은 레이온이라는 섬유 재질은 1924년에 세계 최초로 정식 명칭이 된 이래, 동아시아에서 레이온을 가장 먼저 생산한 것은 일본 시가현(Shiga Prefecture, Japan)에서 1927년에 레이온 공장을 운영한 것이 최초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까지 레이온이 알려진 시기라고 한다면 보편적으로 1930년대에 해당된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1922년에 동아일보에 게재된 사진은 어떻게 된 것일까?
당시 동아일보에서 명확한 출처를 밝히지 않아서,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동일한 그림 두 개가 쌍둥이처럼 존재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고, 따라서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라고 하는 부여 천진전 단군화상은 재질이 레이온 재질이 아닐 가능성이 높거나, 만약 레이온 재질이 맞다면 그림을 그린 재질의 소재를 중국의 수입상(輸入商)으로부터 다른 나라의 것을 수입하여 입수한 섬유 재질에 그림을 그렸을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미궁으로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은, 1920년대부터 몇 점 발견되는 모사본(模寫本)의 존재 유무입니다. 지금까지 전하는 몇 가지의 전언(傳言)에 의하면, 부여 천진전 단군화상과 동일한 유형의 그림이 몇 점 존재하였다는 내용으로 조금 확인이 되고 있는데, 다만, 한가지 이러한 견해는 저희 재건회(再建會)만의 추정입니다만, 1922년의 동아일보 단군영정은 레이온 소재가 아닌 원본에 가까운 원래 초상화 또는 1920년대 대종교 측에서 사진본으로 유포시킨 자료를 동아일보측에서 게재했을 가능성이 높고, 이러한 동아일보 단군영정을 모사하여 현재까지 부여 천진전에 보관된 것이 바로 레이온 소재의 단군영정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도 현재까지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서 단지 본 카페(cafe)에서 가설(假說)만 남깁니다.
무엇보다, 저희가 이러한 가설을 하더라도 부인할 수 없는 가장 큰 의문은, 강우의 아들이 전하고 있는 부여 천진전 단군화상은 정말 구월산 삼성사에서 가져온 것이 맞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과연 부여 천진전 단군화상이라는 초상화는 누구를 그린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일례로, 구월산 삼성사에 대해 최초로 소개된 1472년 성종대왕 실록(成宗大王實錄)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옛날에는 목상(木像)이 있었다고 하지만, 태종대왕 시기(太宗大王時期) 파(罷)하였다고 하고, 이후에는 환인, 환웅, 단군의 위패만 존재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계십니다. 이후 삼성사와 관련하여 확인되는 내용도 1781년과 1789년 모두 정조대왕 시기(正祖大王時期)인데, 역시 삼신의 위패만 언급하고 계시며 또한 고종태황제 시기(高宗太皇帝時期)의 실록에도 역시 다른 별도(別途)의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여전히 위패만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는 평양의 숭령전(崇靈殿) 역시 동일하게 영정이 아닌, 위패로 모셨음은 역사적 자료 등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고, 또 결정적으로 일본제국 통치시대(日本帝國統治時代) 당시 남겨진 사진 자료를 봐도 영정이 모셔져 있을 가능성은 불가능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단군 영정 자체는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이 되므로, 강우의 아들이 소개한 부여 천진전 단군화상은 결코 단군 영정이라고 할 수 없고, 따라서 부여 천진전 단군화상이라는 명칭도 수정해야 할 것으로 저희 재건회(再建會)는 제안을 드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부여 천진전 단군화상의 문제와 관련하여 고증학적 견해(考證學的見解)로 생각해본다면, 우선적으로 먼저 육하원칙(5 W's and 1 H)에 의해서 확인이 가능한 문제와 관계가 있을텐데, 소위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who, when, where, what, how, why)'의 단순한 여섯 가지 기본적인 원칙에 단 한 개라도 설명이 되는 사항이 있는가에 관해서 대종교측은 스스로 명확하게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대종교측은 천진과 관련한 문제에 관해 국민에게 명확한 답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종교 총본사의 천진은 이른바, 부여 천진전 단군화상을 단지 모사하여 확대한 그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즉, 모사본(模寫本)입니다. 따라서, 단군 영정의 출처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 전혀 답변을 하지 못하고 계속 입다물고, 무작정 신도들에게 단지, 천진(天眞)이므로 숭배(崇拜)를 해야 한다는 식의 헛소리만 계속한다면 스스로 종교 단체적 지위의 모든 것을 스스로 버리고 폐문(閉門)해야 할 것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국가유산청도 현재 부여 천진전 단군화상과 관련하여 문화재로 지정을 하였는데, 문화재로 지정을 하려면 최소한 근거에 대한 명확한 정보가 필요할텐데, 국가유산청의 설명에 의하면 단지, '대종교의 신도였던 항일운동가 강우가 황해도에서 이 그림을 가져와 그의 아들에게 물려주었으며, 지금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보관중이다.'라는 단순한 설명이 전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누가 가져왔는가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림을 그린 주체와 대상이 무엇이었는가가 중요한데 과연, 무엇 때문에 시기적으로 언제 어떤 곳에서 누가 그림을 그렸으며, 대상이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그렸느냐는 구체적인 설명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국가유산청에서도 문화재로 지정한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한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저희 재건회(再建會)가 추정하는 바는 대한민국 공화국의 불교 사찰들을 방문하면 항상 보게 되는 것이 삼신각(三神閣)입니다. 각 사찰에 있는 삼신각은 사실 용도가 배산(背山)이라고 할 수 있는 산신령(山神靈)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만든 것이 원래 목적이고, 여기에 기타 다른 의례 용품(儀禮用品)을 설치하는 것은 각 사찰마다 재량 사항(裁量事項)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례 용품 중 다수는 그림들이 사실 주를 이루고 있는데, 부여 친진전 화상도 이러한 민간에서 사적으로 숭배하고 있는 신령에 대한 기도 목적의 민간 그림이 부여 천진전과 국립 부여박물관까지 흘러들어간 것이 아닌가 추정이 되며, 또 한가지 추측은 조선시대 후기에 제작된 삼재도회(三才圖會), 역대군신도상(歷代君臣圖像) 등을 보면 중국의 신화적 인물들의 초상화 양식을 볼 수 있는데, 흡사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소위 단군 영정도 매우 유사한 형태로 한일합방 이후, 온갖 신흥종교들이 난립할 때 신앙의 개념 차원으로 인위적으로 그려졌다고 보여집니다. 다시 말해서, 결론적으로 본다면 지금 부여 천진전 단군화상도 실제로 단군 영정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매우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여전히 대종교 총본사는 천진이라는 이름하에 경배를 드리고 신도들은 열심히 절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여러 분이 보시기에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더욱 공교로운 점은, 대종교신원경(大倧敎神圓經)이라는 경전을 보면, 원래 대종교의 경배식은 전면에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제의(祭儀)를 드린다고 기록되어 있고, 뿐만 아니라 1909년 음력 1월 15일의 최초 대종교를 만들 당시에도 단군 영정이 아닌 위패를 모시고 경배식을 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당시까지 단군 영정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지만, 이후 1910년 9월 21일에 나철이 갑자기 단군 대황조(檀君大皇祖)의 위패(位牌)를 없애고 대신 단군 영정으로 교체하면서 소위 대종교에서는 단군 영정이 경배의 대상으로 전환됩니다. 즉, 애당초 대종교가 만들어질 때부터 천진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욱 엽기적이고 황당한 것은, 대종교 총본사의 천진을 모본으로 다시 현정회(顯正會)에서 제작한 단군 영정이 소위, 국가 표준 영정으로 선정되기까지 한 점인데, 정말 코미디(comedy)가 아닐 수 없고, 이러한 상황은 증산도를 비롯한 다른 종교,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대한민국 공화국의 단군 영정들이 모두 이러한 부여 천진전 단군화상을 모본으로 비슷한 양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점은 실소(失笑)에 가깝게 너무 안타깝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참고로, 부여 천진전 단군화상은 2023년부터 정림사지박물관으로 보관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재건회(再建會)가 특히 당부(當付)하며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신앙심(信仰心)과 공경심(恭敬心)은 종교에 있어서 무엇보다 가장 소중하고 또, 매우 중요한 가치로 존중받아야 하고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십분 동의를 합니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그리고 무턱대고 무조건 믿는 식의 무식한 방식은 절대적으로 지양해야 할 종교의 악습(惡習)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더욱이, 종교를 폭력을 동원하여 불법적으로 점거하며 많은 신도들에게 사기 등의 정신적 피해를 준 것도 부족하여, 대종교라는 종교의 기존 역사까지 부정시키며, 마음대로 자기들의 역사까지 조작하는 짓은 파렴치(破廉恥)의 극단적 전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만행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대종교는 깊이 반성하며, 신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되도록 빨리 깨끗이 물러나는 것이 기타 종교들에 대한 예의라고 할 수 있고, 국가와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조선왕조(朝鮮王朝)가 회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 고종태황제 폐하(高宗太皇帝陛下)의 경복궁(景福宮)밖으로 이어를 계획하고 실행하려던 마지막 불꽃같은 시기, 바로 시종원 시종(侍從院侍從) 임최수(林最洙)와 함께 참령(參領)이었던 이도철 장군(李道徹將軍)이 함께 주도한 춘생문 사건(春生門事件)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장충단(獎忠壇)에 제향된 많은 충신들 중, 특별히 춘생문 사건의 순국자들을 충신으로 제향한 이유는 바로, 마지막 조선왕조의 불꽃을 살리려는 최후의 노력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고종태황제 폐하(高宗太皇帝陛下)께서는 충성의 춘생문 사건 순국자들에 대해 제향하셨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의 망나니같은 배신자들의 등장으로 결국, 조선왕조를 결국 회생시키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었지만, 동서고금 모든 작전과 계획의 실패가 항상 배신자들의 등장으로 실패했던 경험을 생각한다면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대해서 처음부터 내란이라며 중지시켜야 한다고 떠들며, 마지막까지 더불어민주당의 의견을 충실히 받들어 국민의힘에서 출당 및 제명시키야 한다며 떠드는 인물이 여전히 현재까지도 당내에서 활동하며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까지 나왔던 것을 생각을 한다면, 과거 춘생문 사건 당시 애국 인사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헌신에 대해 오히려 뒤통수를 친 친위대 장교 안경수와 친위대 대대장(親衛隊大隊長) 이진호(李軫鎬)와 무엇이 다른지 스스로 설명을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친위대 장교였던 안경수가 당시 외부대신(外部大臣)이었던 김윤식에게 밀고를 했다는 이러한 내용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바로, 조선의 독립을 철저히 방해하고, 조선의 독립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이고 결국, 김윤식(金允植)과 어윤중(魚允中)이 고종태황제 폐하의 이어를 막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삼척동자도 쉽게 알 수 있는 친일의 대표적이고 원조적인 대답이라고 할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해서, 을미사변 이후의 본격적인 일본제국의 조선 지배 유지를 옹호한다는 결정적 뜻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 현재 민족문제연구소(The Center for Historical Truth and Justice)에서 편찬한 친일인명사전(The Dictionary of Pro-Japanese Collaborators)에는 김윤식이 독립청원서인 대일본장서(對日本長書)를 일본제국 정부에 보냈다는 이유로 사전 등록에서 제외시켰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매우 자멸적 발언이라고 보여집니다.
즉, 민족문제연구소측에서 단지 김윤식의 전체 인생 중 극히 일부 마지막으로 대일본장서에 자신의 이름만 등록하였다는 이유로 친일인명사전에서 제외시킨다는 것은 솔직히 김윤식의 인생이 과연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었고, 추구하는 이상이 무엇이었는가라고 하는 김윤식 인식의 전체 세계를 먼저 인지하고 평가하는 것이 김윤식의 친일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사실상 졸렬하고 기이한 인식이다는 평가를 피해가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독립문의 독립문 현판 글을 써줬다는 이유로 이완용을 친일 인사가 아니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실소만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대통령 선거에서 주목되는 내용 중 하나가 바로 비상계엄이 과연 사과할 일이며, 용서받지 못할 행위인가에 대한 후보들의 사과 유무로 선거 유세에서 계속 발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인식은 인류 역사에서 과연 원인이 없는 결과가 어떻게 있을 수 있으며, 뿐만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이 한 비상계엄이 사심(私心)의 영역에서 발표했다고 볼 수 있느냐에 관한 지금과 당시의 시각, 진실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마치 6.25 전쟁을 일으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에 대해서는 미화(美化)하고 전쟁에서 역부족(力不足) 상태에서 패퇴하여 후퇴한 이승만을 역적(逆賊)이라고 비난(非難)하는 좌파들의 시각과 매우 유사함을 우리는 또 목격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희 재건회가 현재 대한민국 공화국내에서 일어나는 좌파와 우파간 소모적인 다툼, 그리고 동서 양도(東西兩道)의 정치적 대립에 대해 언급하고 싶은 마음은 사실 추호도 없습니다. 모두 입헌군주제(立憲君主制)가 아닌 대통령 중심제(presidential system)를 1948년에 채택한 것이 지금의 불행을 만든 원인, 원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6.25 전쟁(Korean War)과 남북분단(Division of North and South) 그리고 지금의 대통령의 탄핵 문제(The issue of impeachment of the president) 등, 알고 보면 모든 원인은 공화주의에 입각한 대통령 중심제(presidential system based on republicanism)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2025년 6월 3일에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처럼 거짓과 속임의 범죄 세계에서 불행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자유와 평등이 공존하며 국민의 행복이 넘치는 자본주의의 대한민국 국가로 남느냐에 관한 문제는 오로지 6월 3일의 선거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부디 재건회를 비롯한 모든 국민의 현명하고 올바른 정의의 선택을 하시길 충언(忠言)드리는 바입니다.
대한제국 만세! 존왕양이 만세!
감사합니다.
대한제국 재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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