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송강동이라는 동네
어은동에서 22년을 살다 내가 이사를 온 곳은 용산동이란 곳으로 이곳은 대덕 테크노밸리라는 칭호를 부여한 특구가 있는 관평동과 이웃하고 또 그 옆에는 내가 즐겨 찾는 송강동이란 동네가 존재한다. 아파트와 좁은 골목이 뒤섞여 정연하지 못한 어수룩한 송강동이란 이웃동네. 나는 관평동을 건너 띄고 이 동네를 자주 간다. 계획화된 관평동이나 우리 동네는 걷는 사람도 보기 힘들고 올망졸망한 떡볶이나 오뎅, 만두집 통닭집 같은 옹색한 풍경을 볼 수가 없다.
땅값이 비싸 적은 돈 푼을 만지작거려선 이문이 남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은 딱 짚어 말하기는 그렇지만 어딘가 안양의 옛 냄새가 난다. 아낙네의 웅성거림, 아이들 칭얼거림이나 구부정한 노인들이 북적이는 흔한 풍경은 송강동에서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으며 사람사는 고유의 향취가 살아 숨 쉬는 것만 같다. 나는 그러니까 사람구경에 덧붙여 재래시장도 껴 있는 비교적 싼 물가를 찾아 이곳에 오는 폭도 된다.
즐겨가는 통닭집 또한 이 동네에 있다. 친근한 냄새와 시시콜콜한 동네 풍경이 종전 살던 동네와 닮아 늘 하는 수작처럼 익숙해서 찾게도 된다. 길 편에는 통닭집이 무려 다섯이 넘고 피자집 또한 다섯은 족히 된다. 고만고만한 영세 상인들이 오토바이 두세대 놓고 동네를 누비며 먹고 산다. 그런 요즘 통닭집 부부는 풀이 많이 죽어 있다. 신세타령을 들어봤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처음 동네가 들어설 무렵엔 무척 신이 난 그들이었다. 개발지구라고 동네 땅 값이 오르자 통닭도 덩달아 잘 팔렸었다. 나도 그때쯤 그들을 처음 만났었다. 그의 아내는 잘 나가는 그때 점포를 팔았어야 한다고 남편을 늘 몰아 부친다.
그런 그들에게 암운이 드리운 것은 관평동과 송강동 사이에 롯데마트라는 유통매장이 들어서고부터다. 어디고 요즘은 신시가지에는 노란색 칠한 눈길 끄는 큰 유통매장이 꼭 생겨난다. 온 동네사람들이 어느 참 그곳으로 몰려든다. 실은 나 역시도 가끔 들르는 편리한 최신식의 장소다. 큰 매장만큼 통도 남다르다. 어느 날 통 큰 치킨이 나오더니 통 큰 피자가 등장했다.
10년 터득한 바싹 튀기는 기술이라고 아무리 외쳐본들 통 큰 가격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일본만 해도 큰 매장은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 동네주변은 작은 슈퍼나 재래시장이 나름 먹고들 사는데 마냥 아쉬운 노릇이다. 다수의 자존과 자립 문제는 사회구조의 큰 취약성이 아닐 수 없다.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노름 마냥 밑돈 두둑한 치들에겐 별 수가 없다. 돈은 손이 큰 한 곳에 몰려들기 마련이고 꼴등은커녕 2등이나 3등에게도 차지가 안 돌아간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현실, 1%의 특권층에 맞춰져 있는 정치·경제적 지배구조는 심한 우려를 낳는다.
오늘도 나는 곳을 찾았다. 통닭을 튀기던 아줌마가 갑자기 고개를 밖으로 내민다. 왜 그런지 나는 익히 잘 안다. 오토바이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그 소리는 폐색 짙은 여음이다. 그래봐야 고작 몇 마리 차이 일 것인데 경쟁이 아니라 장사를 그만 두어야 할 단정으로 지금은 받아들인다. 배달을 마친 그녀 남편이 들어왔다. 황금 시간 때 밀린 주문이 그를 늘 기다렸는데 요즘은 전혀 그러하지 않다. 그렇지만 세상구조가 그러한 것을 그 누구를 탓할 것인가. 이제는 큰 유통매장을 나무랄 수도 없다. FTA 무역협정통과는 동질의 보다 큰 현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유명 매장이 들어오면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쓰나미가 일어날지 모른다.이제는 그들과 잘 싸워 달라 부탁을 해야 할 처지이다. 세상이 너무 복잡하다 싶은데 알고 보면 돈이면 다 되는 아주 단순 명료함이 있다. 예전엔 열심히만 하면 먹고는 살았는데 요즘은 그러하지 않다.
열심히 일하는 것과 돈을 버는 이치는 같지가 않다. 참다웠던 인류의 역사는 제각기 땅을 일구고 소출을 얻은 기쁨이 충만하던 성실한 시대가 아니었을까. 생긴 지 10년을 겨우 넘긴 송강 마을이 어느 새 구닥다리가 되어 버린 요즘. 밀려나는 세상풍경 속에 선 나 역시도 어쩔 수 없이 무참하게 헐벗다 이내 사라질 것이란 두려움을 같이 느낀다. 아니 이미 밀려나 허름한 동네 어귀에서 같이 맴돌고 있기도 하다. 결국 아날로그 타입 소박한 인심은 규격화 된 대형 포장지에 밀려 이제 모두 사라질 모양이다
1. 송강동 1톤 트럭
좁다란 골목길에 못 보던 1톤 소형트럭이 하나 늘었다. 후미진 동네 끝 낡은 청승이 햇수를 실감나게 하고 혹여 버린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고물차를 닮은 허룩한 한 사내를 이후 자주 보았다.
그를 보자 "큰돈이 안 들어가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 언젠가 본 기사 한 대목이 불쑥 떠올랐다. 1톤 트럭은 '서민 트럭'이라 불린다. 사람들이 몰리는 길목에 세우기만 하면 바로 가게가 된다.
거리에서 과일 채소를 팔거나 , 택배 식자재 등 배달 일을 하는 서민 자영업자들의 손발 역할을 한다. 1톤 트럭의 주인은 생계형 자영업자들이 대부분이다. 임대료가 버거운 영세업자들에게 1천만원대 1톤 트럭은 든든한 생계 수단이다.
그는 무슨 일을 하는 걸까. 1톤 트럭은 서민경제 온도와 직결된다. 요즘 1톤 트럭이 시중에 동이 났다고 한다. 트럭 판매가 늘어나는 건 경기부진과 고용불안의 결과이기도 하다.
1톤 트럭이 세워진 동네가 허접한 변두리이듯 영세한 삶은 차량도 중고시장 쪽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마땅히 재취업할 곳이 없어 식당 분식점 프랜차이즈 같은 자영업을 택하는 요즈음이다.
중고차 매매가 많다는 건 사려는 쪽 뿐만 아니라 팔려는 쪽도 많다는 사실인데, 이 역시 위태로운 자영업의 현실을 반영하는 단면이다. 경기부진으로 물동량이 줄어 트럭 자체를 처분하는 경우도 허다한 것이다.
실직자들은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자영업을 택하지만 워낙 생존이 낮은 업종이라, 결국 자영업을 하던 이들이 소유하던 소형트럭을 내놓고 다시 자영업을 하려는 이들이 이를 되사는 상황이 악순환처럼 반복되고 있기도 한 셈이다.
그의 차가 시동이 잘 안 걸린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다가갔다. “좀 밀어드릴까요.” 겨우 시동을 건 그가 아무 도움도 안 주었는데도 연실 고맙다고 한다. 얇은 옷 츄리링 차림이 가난을 말하는듯 하다. 야채시장이라도 향하는 길일까. 배추 시래기 잔무리가 축 늘어져 걸쳐 있었다.
그의 한숨과 꿈을 싣고 달리는 1톤 소형 트럭. “차 아직 씩씩한데요.” 그에게 힘주어 말을 건넸다. 다니는 트럭보다 서있는 트럭이 많다는 현실에 그의 애마는 씩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대적인 운명이다 싶었다.
경기가 안 좋은데도 없어서 못 파는 1톤 트럭의 이례적인 인기는 그나마 이것도 아니면 생계 꾸릴 방법이 없는 서민들의 우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콜록콜록 감기라도 걸린 양 덜덜거리며 떠나는 골골한 몰골이 수상하여 내심 걱정이 앞섰다.
그런 차는 그날 이후 내 기대와는 달리 눈에 띄지 않았다. 주인도 같이. 잠시 병원에 간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인데 아주 떠나 버린 것은 아닐까. “눈 내리고 추워지면 아마 더는 못 버틸거야.” 나도 모르게 나오는 헛말이다. 잿빛 하늘이 잔뜩 찌푸린 것이 예보대로 오늘은 눈을 뿌릴 험한 기세이다. 아! 세상은 겨울처럼 너무 춥다. 개인 소득이 2만불이 넘는다는데 돈은 누가 다 지니고 산단 말인가. 알다가도 모를 세상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