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카> 스피노자 지음, 강영계 옮김, 서광사
스피노자는 자신의 사상과 삶을 일치시킨 철학자이다. 유대공동체로부터 추방되고 지적 자유와 독립을 위해 대학교수직도 마다하고 렌즈 깎는 기술을 익히고 독신을 지키며 엄민한 존재론과 윤리학을 남긴 스피노자의 삶과 이 책의 사상은 정확히 일치한다.
스피노자가 이 책에서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신과 정서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과업을 엄밀한 사유로 인신론적 신론을 해체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에게 신은 자연이며 그 실체에 규명될 뿐이다. 즉 자기원인과 절대무한이다. 거기에 역능(potentia)이 있다. 이러한 실체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이 변용되어 나오는데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이 신을 알 수 있는 것은 이성과 직관적 인식에 의해서이다. 이러므로써 신은 우리가 사는 자연세계과 분리할 수 없는 일체가 된다. 마치 정신과 신체가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더불어 스피노자는 수많은 정서(감정)을 구분한다. 세상에 스피노자처럼 많은 정서를 구분하고 규명하려고 애쓴 철학자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정서의 위대함을 다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성의 불완전함을 다루기 위해 다종다양한 정서를 설명한다. 그에게 정서는 세 가지 종류로 압축된다. 기쁨, 슬픔, 욕망이다. 그리고 정서는 외부사물과 표상의 영향을 받는 수동적인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오류의 가능성이 많다. 대신 스피노자는 이성적 인식을 내세운다. 이성의 지도를 받아 행위할 때 인간이 보다 큰 완전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선악도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기쁨과 슬픔에 의해 구분될 뿐이다. 그러므로 스피노자에게는 선악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보다 그는 실체를 인식하고 실체의 성격에 부합한 삶을 사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데, 그것은 이성의 지도로 가능하다. 정서의 불완전함도 이성의 지도로 조율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자유인이다.
자유인으로 정서에 휘말리지 않고 이성의 지도로 삶을 살았던 스피노자의 삶에 대한 완벽한 해명같이 느껴진다.
욕망은 의지와 더불어 역능의 변용이다. 의지가 의식이라면 욕망은 신체와 의식이 결부된 것으로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욕망전략과 더불어 고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스피노자에게 제일 중요했던 것은 아무래도 그가 말한 표상과 이성 다음의 세 번째 종류의 인식인 직관인식일 것이다. 신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이성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심층생태학을 열었던 아르네 네스가 스피노자를 통해 받아들인 것은 자연(신)의 실체에 대한 직관과 역능일 것이다.
자유인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준 스피노자에게 감사를 보낸다.
= 차례 =
개정판을 내면서
옮긴이의 말
제1부 신에 대하여
제2부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제3부 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제4부 인간의 예속 또는 정서의 힘에 대하여
제5부 지성의 능력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해설 스피노자의 합리주의 철학
옮긴이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