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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이세벨의 낯을 피하여 하룻 길로 광야를 달려온 엘리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가 광야로 도망오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그의 생애 가운데 가장 위대한 승리를 경험한 직후가 아닙니까? 갈멜산에서 아합왕과 450명의 바알 선지와 아세라 선지자 앞에서 하나님만이 참 신인 것을 증명해 보이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숨막히는 집회, 직장과 사업, 가사와 자녀교육, 습관적인 교회생활 등으로 당신 자신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탈진한 상태가 아닌지요. 엘리야가 휴식을 취한 필요가 있었던 것처럼 당신에게도 영육간의 참다운 휴식이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당. 엘리야는 하나님과 교제를 함으로 영력과 기력을 회복하게 됩니다. 당신도 하나님을 대면함으로 영적 에너지를 재충전해야 합니다.
내 영육의 건강 상태는 어떠한가? 내 영육의 재충전을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신 8:3;대상 16:11) 신 8:3 대상 16:11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2. 마산시민교회가 주님의 전도전략을 따라 제자삼는 사역을 통하여 주님의 지상명령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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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것은 잊고 삽시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참으려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좇아 가노라(빌 3:13, 14)
오늘은 "잊을 것은 잊고 삽시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기억력은 참 좋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수 백 명의 이름을 기억해서 대인관계를 폭넓게 가지기도 하고 수 천 개의 전화번호를 기억해서 일을 효과적이고 신속하게 처리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성경을 거의 외우다시피 통달해서 성경 박사가 되기도 합니다. 성경에도 '조물주 하나님을 기억하라' 고 했으며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라' 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잊어버려야 할 것은 잊어버리는 것도 기억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잊어버리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들일수록 잊어버려야 할 것은 잊어버릴 줄 아는 법을 배운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참한 삶을 사는 이유 중의 하나가 지난 날에 일어난 사건들을 잊어버릴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위대한 치료자라는 말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겐 그것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행복을 잃어버리고, 삶을 무기력하게 하는 요인을 마음 속에 정박시켜 둡니다. 그러나 진정 그들이 마음과 정신의 평안을 원한다면 잊어버리는 방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마귀는 쓸 데 없는 일을 기억나게 하고 성령은 미래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 뿐 아니라 마귀는 잊어야 할 것들을 생각나게 하고 생각해야 될 것은 잊어버리게 해서 잠을 못 이루게 하고 불안하게 만들어 행복을 빼앗아 갑니다. 이에 바울은 "형제들아, 나는 오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3, 14) 고 잊어버리는 것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잊어버려야 하는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들 모두에게는 잊어야 할 죄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라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형태의 사람을 발견할 수 있으나 결코 죄 없는 사람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죄는 일찍이 어려서부터 작용하기 시작해서 일생을 사는 동안 계속 작용합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구원 받은 죄인이고 어떤 이는 멸망 받을 죄인입니다. 모두 똑같은 죄인이지만 어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죄를 사함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고, 어떤 이는 여전히 그 죄의 결과로 멸망에 처해질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구원받은 죄인이라면 마땅히 우리는 주님께서 대속해 주신 과거의 모든 죄를 잊어버려야 합니다. 죄는 우리 인간이 아무리 인간적으로 노력한다 할지라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죄를 완전히 없애버리는 유일한 길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모든 죄를 내려 놓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악된 세상에 찾아 오셔서 '너희 죄를 다 내게 맡겨라. 내가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가겠노라. 나는 너희 죄를 감당할 힘이 있노라. 그 죄를 다 내게 맡기고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하라. 내 피로 너희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주마. 그리고 내가 다 잊어 줄 터이니 너도 잊어버려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수님께 전폭적으로 맡긴 모든 죄를 말끔히 잊어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회심하기 바로 직전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일 영장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내려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은 완전히 죄로 검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오쯤 되어 큰 빛이 그의 주위를 둘러 비추면서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들려오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박해자 사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의 모든 죄를 주님께 내려 놓고 그의 죄를 잊어버릴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는 사실을 믿게 되면 더 이상 전에 지은 죄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모든 죄를 잊어 주시기에 우리 또한 잊어야 합니다. 사 38:17, 18에 보면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라고 했으며, 시 103:12에서는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고맙고 좋으신 분입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잊어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 인정하십니다. 우리가 죄의 길에서 방황하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면 더 이상 우리의 죄를 기억도 하시지 않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뵈올 때 우리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이미 기억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실수 투성이의 존재입니다. 연필 꼭대기에 지우개가 달려 있다는 것은 실수 투성이의 인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어디에 완전한 사람이 있습니까? 어디에 한 번도 실수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온 세상을 다 살필지라도 실수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완전해 보이는 사람도 같이 지내다 보면 실수가 발견되는 것입니다. '야, 저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야. 나는 저 남자와 결혼하겠다' 고 결심하고 결혼해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에게도 결점과 실수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완전과는 너무나 먼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수를 속히 잊어버려야지 그것을 기억해 보았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왜 실수했는가를 생각하여 그것을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지만, 실수한 것 그 자체에 연연하여 그것을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날의 실수를 가지고 아무리 속을 태워도 현재의 환경이 개선되지 않습니다. 농부가 지난 해 농사 잘못 지은 것을 금년에 후회한다고 해서 금년의 농사가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거울삼아 금년의 농사를 바로 짓도록 노력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상인이 지난 해 물건 잘못 사온 것 때문에 금년에 한탄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빨리 그 생각을 털어버리고 금년에 물건을 바로 사오도록 노력하는 것이 유익한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방법이 우리의 전 생애를 성공으로 이끄는 최선의 정책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실수는 가끔 큰 성공의 전주곡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실수했을지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올바른 길을 걷게 되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됩니다. 우리는 실수를 보다 큰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선용해야 합니다. 노력하다 실패하면 한탄하지만 말고 또 다시 시도해 보고 또 실패하면 다시 또 일어나 시도해 보아야 합니다. 미국의 어느 목사님이 목사가 되기 전 젊었을 때 그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의 지시에 따라 어느 주일 강단에서 공중 기도를 했는데 그만 자기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쩔쩔매다가 큰 창피를 당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되면 그 실수한 것을 두고 두고 부끄럽게 생각하여 다시는 기도하지 않겠다고 하며 공중 기도하는 것을 두려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날 밤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다시 한 번만 나에게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주 수요일에 다시 또 목사님으로부터 기도를 하라는 지시를 받고 그때 준비를 잘했다가 기도를 은혜스럽게 잘 하고 은혜로운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실수했다고 낙망하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그 실수한 것을 속히 잊고 실수를 극복하여 승리로 이용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감정이 있고 얼마간의 이기심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누가 내게 거슬리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즉시 화를 내고 내내 언짢아 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거슬리는 언짢은 일들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마음에 품고 있으면 그것은 나의 삶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칩니다. 특히 주님의 사랑으로 모든 이들을 감싸 안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것들을 꼭 잊어야 합니다. 이런 사소한 일들을 마음에 담아 두게 되면 그 틈을 탄 사단의 시험을 받고 신앙적 실패를 당하게 됩니다. 고로 언짢은 일들은 곧 잊어버리고 털어버려야 합니다. 자기의 연약함을 기억하면서 남의 실수를 용서해줘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사나 어느 교인의 언짢은 말 한 마디와 행동 하나 때문에 신앙 생활을 그만 두고 교회 출석을 그만 두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사람의 잘못을 주님께 항의 하십니까? 마치 암세포 하나가 온 몸의 생명을 좀먹어 들어가듯이 우리의 잊지 못하는 악한 감정이 우리의 행복과 영력을 좀먹어 버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소한 말다툼이나 오해로 인해 언짢게 된 마음과 일들을 잊어 버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도리어 자신을 언짢게 한 자들의 실수를 덮어주고 사랑으로 감싸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햇빛과 비를 주신 것처럼 모든 소유를 얻을 능력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능력으로 우리가 소유를 얻는 것이지 우리의 잘난 재주 가지고 모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하나님의 것 중에 일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께서 하루 아침에라도 다 거두어 가실 수 있는 것입니다. 재물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재물은 우리의 종이 되어야지 주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재물은 악한 주인이 되거나 선한 종이 됩니다. 그런데 재물을 선한 종으로 다스리기 위한 최대의 방법은 재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이는 우리의 최대 관심사이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풍자 만화를 봤더니 어떤 한 사람이 극장 앞에 가서 표를 사는데 그 극장에서 제일 비싼 자리의 표를 두 장 사면서 12불을 지불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주일날 교회에 가서는 헌금대가 자기 앞에 돌아오니까 5전 짜리 동전을 마지 못해 집어 넣으면서 얼굴을 잔뜩 찌푸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른 데 쓸 때는 넉넉하게 쓰면서 하나님께 드린 것은 꼬박 계산하고 기억하는 것은 바른 신앙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진 것을 아낌 없이 기쁜 마음으로 드리되, 드린 것을 다시는 기억지 말아야 합니다. 기억하며 아까와 하거나 드린 만큼 축복으로 돌려받아야 한다고 기대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이미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것은 하늘 나라의 영원한 보화로 쌓여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드린 것에 비교도 안 되는 복되고 영원한 상급과 축복이 이미 예비되어 있기에 우리는 드린 것에 대해 어떤 기억도 계산도 할 필요가 없으며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착한 일하는 것은 빛의 자녀들인 우리 성도들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누가 내 이웃입니까?' 하는 질문에 예수께서는 강도 만난 사람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면서 제사장도 그냥 지나가고 레위인도 그냥 지나가 버렸는데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다가 돌봐주고 치료해 주고 주막에 데려다가 살려 주었다는 말씀을 하시며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다 우리의 이웃이라고 하셨습니다(눅 10:29-37). 사도 바울은 자기는 모든 사람에게 빚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한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넘치게 받아 구원받은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그는 "모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갈 6:10) 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 (마 25:40)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한 선행을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자랑하고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마땅히 행해야 할 선행을 했을 뿐이므로 그것을 기억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착한 일을 행한 후에는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다" (눅 17:10) 라고 생각하고 곧 그 일에 대해서 잊어버려야 합니다.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마 6:3) 는 것은 내가 한 일을 곧 잊어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어느 시인은 '고상한 행동을 하고 나서 그것을 하루 종일 꿈꾸지 말라' 고 했습니다. 칭찬들을 일을 하고 나서 그것을 하루 종일 기억하고 있다든지 칭찬을 오래 기억하고 있으면 그만큼 하늘에서 받을 상과 칭찬이 줄어듭니다.
'여인에게서 난 자는 모든 환난으로 가득차 있다' 고 했습니다. 고해와 같은 이 세상을 사는 우리는 모두 아픔과 슬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햇빛도 잠시 후면 캄캄한 어두움으로 가리우게 됩니다. 이 캄캄한 슬픔을 당할 때 우리는 어떻게 그 슬픔을 잊을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께 그 슬픔을 가져오는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슬픔을 온전히 위로해 주시고 담당해 주실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고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