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인생에 정답이 있는 줄 알았다. 부모가 알려주는 대로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살다 보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웬걸. 열심히 살지 않아도 배우자를 잘(?) 만나서, 투자를 잘해서, 지도교수를 잘 만나서, 원래도 금수저여서, 어느새 나와 점점 격차가 벌어지는 이들이 수두룩빽빽했다. 바르게 성실히 살아온 이보다 한순간 인기몰이로 성공한 연예인, 정치인들을 보며 인생에 정답이 있기는커녕 ‘인생은 타이밍이구나’ 하는 생각만 들 뿐이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만 해도 육아에 정답이 있는 줄 알았다. 임신 앱에서 알려주는 주별 성장 속도와 엇비슷하게 자라는 아이를 보며, 삐뽀삐뽀 119나 유명한 육아서적에서 알려주는 대로 잘만 하면 아이를 완벽하게 잘 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첫째를 키우며 얻은 소중한 육아 필살기 (재우기, 먹이기, 젖떼기 등) 가 둘째, 셋째에게 전혀 먹히지 않는 걸 보며, ‘아! 육아에도 정답이 없구나’ 했다. 일부 얻어걸리는 게 있긴 했지만 말이다.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타인의 육아에 절대 함부로 입방정을 떨지 말자 생각하게 된다.
올 3월이면 첫째는 중딩, 막내는 초딩이 된다. 드디어 집에 유아가 없다. 최소 초딩 이상이다. (야호! 이제 자질구레한 장난감들이여 안녕~)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공부 걱정보단 배정 후보지 학교의 교복에 먼저 관심 쏟는 극E의 첫째,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타지로 3학년 전학을 가게 된 수줍은 둘째, 예비초답지 않은 말빨을 탑재한 (그러나 글자는 그리는) 장난꾸러기 막내까지, 세 아이의 신학기를 앞두고 서로 걱정 반 기대 반이다. 그동안 매일 놀이터에서 기초 체력 탄탄히 다져온 우리 아이들도 이번 겨울방학에는 엉덩이 근육도 좀 붙여야 할까 살짝 고민도 해 본다. 그러다가도, 아니야 아직은 괜찮을 거야 하고 다시 중심 잡아본다.
우리 부모 세대 덕목인 ‘성실과 노력’이 내게 그다지 먹히지 않았는데, 이 아이들에게 통할 리 있나.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질텐데. 챗GPT와 인공지능이, 파파고 번역 서비스가 이리도 환상적인데, 꼭 내 손으로 글을 쓸 줄 알고, 내 입으로 말할 줄 알아야 할까 싶다. 1초면 검색할 수 있는 영어 단어, 수학 공식 하나 더 외우는 시간에 차라리 이 신세계를 맛보여 주는 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찾아보는 시간을 주는 게 더 신나는 일이지 않을까. 그 이후는 아이들이 알아서 척척 해낼지도 모른다.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아이폰 기능을 알아서 잘 쓰는 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적지 않은 시간 HR (인사/교육) 업무를 해오며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보수적인 제조업 기반 우리 회사도 묵묵한 성실형보다는 자기만의 색깔과 포트폴리오를 가진 이를 더 선호하는데, 하물며 다른 기업들은 더 그럴 테지. 아니 우리 애들은 나처럼 직장인보단 다른 일을 하며 살았으면 싶기도 하다. 그래, 뭐든 하기 나름일 것이다.
문득 얼마 전 읽은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한 대목이 떠올라, 옮겨와 본다.
“어차피 정답은 하나밖에 없다. 스스로 생각해낸 답이 지금 이 순간의 정답이다. 정답을 안고 살아가며, 부딪치며, 실험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안다. 그러다 지금껏 품어왔던 정답이 실은 오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정답을 안고 살아나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인생.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안에서 정답은 계속 바뀐다.”
위에서 한 내 말을 정정한다. 인생이나 육아에 정답이 없다는 말보단, 누구에게나 맞는, 유일하고도 불변한 정답이 없을 뿐이다. 나 역시 지금은 이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워야지 생각하지만, 원치는 않지만, 이 답이 틀린 답임을 깨닫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때 다시 그 순간에 맞는 답을 찾으면 될 뿐이다.
’24년 2월 지금의 나는, 우리 아이들이 눈 양쪽을 가린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게 할 생각이 없다. 다른 길은 몰라 그저 앞 사람이 갔던 그 좁디좁고, 끝이 보이는 길 하나에 집착하며 고생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채찍질 당하며 열심히 달려간 그 길이 막다른 골목이라 좌절하고 슬퍼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거나,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이왕이면 우리 아이가 만들어 간 그 길이 수십 가지 갈래에다가 드넓은 세상으로 쭉쭉 뻗어 나가는 길이면 더욱 좋겠지. 상상만 해도 즐겁다. 꿈은 이루어진다.
첫댓글 틀린 답임을 깨닫는 순간이 오면,
그 순간에 맞는 답을 찾으면 되니 오늘 하루도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야죠~^^
꿈은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