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7월 1일 일요일 비
비다. 정말 세차게 쏟아진다. 올 해 쏟아진 비 중에서 가장 거창했다.
새벽에 눈을 뜨고 창 밖의 빗소리를 들어 본다. ‘야, 대단하다’ 오늘 할 일을 점검해 본다. 물론 매실따기지. ‘저 비를 맞으며 딸 수 있을까 ?’
허나 어쩔 수 없게 됐다.
내일부터는 태풍 쁘라삐룬이 서산에 상륙한다니 이 건 보나마나 엄청난 피해를 줄 거다. 6년 만에 직접 닥치는 태풍인데다 이름마저 ‘비의 신’이라니 말 해 뭣 하겠나 ? 더군다나 바로 옆 서산이라니 이건 직격탄이다.
그나마 달랑 몇 개 붙어있는 매실마저 날아가고 깨지고 말 것이다.
미리 주문 받은 매실이라도 따서 신용을 지켜야 할 것 아닌가.
게다가 아산 유치원에서는 목요일 수업을 화요일로 앞당겨 주시지 않았나.
이 건 내 명예를 걸고라도 지켜드려야 한다. 마음을 굳게 먹었지.
내키지 않는 마음 다 잡고서 아침을 먹고, 우비, 장화로 완전 무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이럴 때 원군이 절실히 필요한 때인데....
어제 끈기있가 나를 도와준 우리 큰 아들은 곤히 자고 있다. 어제 처음 해 본 매실따기로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다. 한 번 쳐다보고 뒤돌아섰다.
이런 날씨에 자식을 앞세울 수 없다. 어제 한 것만으로도 제 할 일은 다했지.
홀로 나서는 나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세차게 쏟아 붓는 빗줄기. 이런 날에 누가 일하러 나서겠나. 미친 사람이 따로 없지.
저건너 밭에 들어서니 천둥 번개까지 합세하여 겁을 준다. “어서 들어 가” 호통 소리도 요란하더라. 기를 팍 죽이는 거 있지.
‘까짓 거 할 테면 하라지’ 고개를 발딱 들고 매실을 따기 시작했다.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 내리 붓는 빗줄기가 우비 틈을 비집고 들어서더니 금방 온 몸을 흠뻑 적시고, 장화 속은 벌써 물에 잠겨 찌걱댄다. ‘대단하다’
젖은 몸이 으스스해질 무렵 오기가 발동한다. ‘몸을 빨리 움직여야 열이 난다’
정신을 집중하며 손놀림을 빠르게 했지. 누가 이기나 경쟁하는 거지.
앞치마에 한가득 찰 때마다 자루에 쏟고 다시 덤벼드는 거지. 그 때쯤 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온 신경이 매실딴 데만 집중되는 거지.
세 푸대를 채우고, 언뜻 돌아서는 내 눈 앞에 넓적한 어깨가 보인다. 갑자기 나타난 모양이라 깜짝 놀랐지. ‘누군가 ?’ 하아 우리 큰아들이네.
“얘. 충희야. 너 언제 왔어 ?” “조금 아까. 아빠를 불렀더니 대답이 없대” 천둥 소리에 못들었나 보다. “이 빗속에 왜 나왔어 ? 집에서 쉬지” “괜찮아요. 오늘까지 아빠를 도와드리기로 했잖아.” 허 참 가슴이 짱하는 거 있지.
덩치가 커서 맞지않는 우비 밖으로 튀어나올 듯 솟아있는 똥배도 미워보이지 않더라. 가슴이 뭉클 했지. ‘우리 아들 장하다’
‘그래. 해 봐라. 이런 시련도 이겨낼 수 있어야지’
그 때부터 마음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물동이로 쏟아붓듯 내리는 폭우 속에서 두 부자는 묵묵히 매실을 땄지.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잖아.
오전, 오후 작업은 계속됐다. ‘큰아들, 너는 무슨 일을 해도 먹고 살겠구나’ 마음이 든든해지는 거 있지. 아직 애들인줄만 알았더니....
마음이 가벼워지니까 일하는 것도 재미있어졌다. 부지런히 일을 했지
하루 종일 일하고 얻은 것은 매실 300kg. 그보다 몇 백배 소중한 것을 얻었지. 내 아들을 믿을 수 있게 됐다는 거....
안사람도 매실을 선별하고, 매실청 담글 것을 닦아놓고, 틈틈이 친정엄마를 도와 비에 쓰러진 참깨를 세우기 위해 말뚝을 박고, 줄을 띄우는 등 한 순간도 쉴 수가 없었다. 참 용감한 가족이지.
오늘같은 폭우 속에서도 종일 일을 한 가족은 우리 말고는 아마 청양군내에서도 없을 거다. 어두워질 때까지 일을 하면서도 힘든 줄을 몰랐다.
이 게 단합된 힘일 거다.
매실 40자루를 싣고 대전으로 향했다. 오다가 10자루를 배달하고, 나머지는 내일 아산으로 배달을 간다.
집에 도착하자 모두들 그제서야 피로를 느끼는가 보다.
하여간 잘했어 모두들.... 우리 가족이 힘을 합치면 얼마나 커다란 일을 이룰 수 있는지 느꼈을 테지. 모두들에 고마웠다.
많이 피곤하다. 일찍 자고 내일 배달을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