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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8월29일(수)맑음
누군가-내가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나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돌이 날아와 나를 맞힐 수 있다. 사실 내가 맞을 돌은 허공에 가득 차있다. 왜? 내가 수 없이 윤회했던 삶 동안 남에게 던진 돌이 그 얼마이랴! 내가 남에게 던졌던 돌이 결국 내게 돌아오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닌가? 거울에 비친 내 눈이 나를 응시하듯, 내가 던진 돌이 내게로 돌아오지 않고 어디로 가겠는가? 남을 향해 던진 돌은 필경 되돌아 자기를 향한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든 이유 없이 날아온 돌에 맞는 것은 전혀 억울할 일이 아니다. ‘이유 없이 맞은 돌’이라지만 사실 이유를 모를 뿐이지 이유가 없는 게 아니다. 돌을 맞으면 날아온 쪽을 쳐다보며 돌 던진 자를 찾아내려 하지 말고, 돌 맞을 짓을 한 게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남을 향해 손가락질 할 게 아니고, 그 손가락을 꼬부려 자신을 향해야 한다.
소냐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말했다. “일어나세요.” 그녀는 그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그는 깜짝 놀라 얼빠진 듯 그녀를 응시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지금 당장 광장에 가서 네거리에 서세요. 무릎을 꿇고 당신이 더럽힌 대지에 입을 맞추세요. 그러고는 사방을 향해 온 세계에 절을 하세요. 그러고 나서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제가 죽였습니다, 하고 말하세요. 그러면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새 생명을 주십니다. 가시겠죠? 가시겠죠?” 소냐는 방패이면서 가면인 에고를 걸치고 있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연민 가득한 마음으로 참회할 것을 권한다. 그렇다. 우리는 먼저 자기 안의 라스콜리니코프를 인정한 다음 소냐를 만나서 그녀의 따뜻한 조언, 지혜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자신의 과오를 알라. 자신의 약점과 소심함과 비겁함을 알라. 내면에서 빛과 그림자가 충돌하고, 양심과 뻔뻔함이 갈등하게 하라. 내면의 갈등이 있어야한다. 양심이 깨어난 자는 선을 향하려는 의지와 불선을 행하려는 충동이 충돌하는 내면의 현장을 체험한다. 이런 심리적 사건은 完德완덕을 지향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직면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너무 빨리 자신을 용서하고 안심하려 든다. 우리는 남에게서 결점 찾아내기를 즐기면서도 자신에게는 너무나 관대하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대로 나는 살아가는가? 남에게 가르친 것을 나는 실천하고 있는가? 날마다 기도문을 외우지만 그에 따라 사는가? 남의 고통과 사회적 관심사에 주의를 주다가 내가 불편해지거나 불안해지면 금방 그만두어버리지 않는가? 결국 나는 자신의 편안과 안심에 안주하려 든다. 나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이렇게 되면 내가 말하는 불교는 나의 에고를 장식하거나 멋있게 보이려는 정신적 허영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불교가 나의 에고 유지 존속을 위해 이용당한다. 에고에 의해 이용당하는 불교는 왜곡되고 오해되어 천박해진다. 이것이 불교의 세속화이다. 오늘 한국에서 불교는 세속화되었다. 불교는 이용당하고 왜곡되고 타락되어 원형의 건전함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불교가 사회적 약자가 된 듯이 보인다. 그러나 불교의 진리가 그리되었겠는가? 불교를 하는 사람들이 불교를 허접하게 만들지만 불교는 여여할 뿐이다. 지금 당장 광장으로 나가 네거리에 서자. 무릎을 꿇고 내가 더럽힌 대지에 입 맞추자. 그러고는 시방을 향해 세상 사람들에게 절을 하자. 그러고 나서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제가 불교의 진리 됨을 훼손했습니다, 라고 고백하자. 그러면 나는 청정범행자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2018년8월30일(목)흐림
화엄사에서 명섭스님 오시다. 해제하고 지나는 길에 들러다. 마침 일광스님과 지견스님도 오시다. 일광스님은 인도 다람살라에서 개최되는 달라이라마 법회에 참석할 예정이라 한다. 학생들이 와서 점심 공양 준비하여 대접하다. 공양 마치고 다과를 나누면서 환담하다. 명섭스님 부산으로 떠나고 일광 지견스님 돌아가다. 하늘이 차츰 어두워지더니 천둥치고 벼락 때리다가 비 내리다.
2018년8월31일(금)비
새벽에 맑아질까 하여 창문 열어놓았더니 비 소리 들려와 다시 닫다. 아침 내내 추적추적 비 내리다. 송안과 가서 눈병 시술하다. 시술한 오른쪽 눈에 피가 흘러 안대를 하다. 애꾸눈이 되어 세상을 보니 원근감이 분명하지 않아 걷는데 지장이 생긴다. 대상境이 나타나는 방식이 우리가 인식하는 감각기관能의 기능과 구조에 의존한다. 대상은 인식기능에 의존하고 境由能境, 인식기능은 대상에 의존한다 能由境能. 인식기능이 없으면 대상이 인식되지 않고, 대상이 없으면 인식기능이 작용하지 않는다. 대상도 없고 인식기능도 정지한다면 空, 淸淨, 戱論寂滅희론적멸이다.
저녁에 요가 정진하다. 밤에 비 내리다.
2018년9월1일(토)맑음
새벽에 줄기차게 비오다. 경진스님 와서 점심 공양하다. 저녁에 선학사 대위스님을 찾아 차를 마시다. 승려결의대회와 관오사 모임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다.
2018년9월2일(일)흐림
아침에 대구에서 정주보살 오다. 법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러 오다. 평소에 마음의 호숫가에서 올린 법문을 듣는다고 한다. 정주보살이 어제 밤새 만들어온 약밥을 점심으로 함께 먹다. 수행에 관해 상담하고 환해진 마음으로 돌아가다.
한사람이 꿀 때는 꿈이지만 모두 함께 꿈꾸면 현실이 된다. 연기하는 사람도 관객도 모두 미리 짜고 벌이는 실제상황을 리얼리티 쇼Reality Show라고 하는 데, 여기엔 핵심을 찌르는 무엇이 있다. 현실이 쇼인지 실제인지는 그 현실을 경험하는 사람의 인식수준에 달렸다. 현실을 어떻게 받아드리느냐에 따라 딱딱하고 굳은 돌덩어리로 만들 수도 있고, 말랑말랑하고 유연한 밀가루반죽으로 만들 수도 있다. 똑 같은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천국을 경험하고 어떤 사람은 지옥을 경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똑 같은 상황이라도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체험되는 게 아니다. 모든 법은 본래 연기 즉 공(이런 의미에서 꿈이라 하는데)인줄 알고 보라고 했다. 제대로 알고 보면 꿈이 바로 현실인 것이다.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 얻는 것과 잃는 것, 기분 좋음과 언짢음이 拈一放一염일방일이다. 하나를 잡으면 하나를 놓으라는 말이다. 두 가지를 모두 잡을 순 없는 것이다. 그런 줄 알고 그 하나를 잡으면, 잡은 걸 놓기가 쉬워진다. 잡은 하나를 놓으면 다른 하나가 얻어지게 마련인데 그걸 믿지 못한다. 세상사 언제나 一得一失일득일실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버리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인생만사 항상 좋은 일만 있고 언짢은 일이 없기를 바란다면 아직 응석받이가 아닌가?
밤이 늦은 시각에 밖에서 꽥 꽥 악을 쓰는 여자 소리가 들려온다. 얼핏 넘겨버리려 했지만 악쓰는 소리가 꽤 지속되길 래 문을 열고 나가보았다. 옆 빌라에 사는 중년 여자와 늙은 여자가 서로를 향해 악을 쓰면서 고래고개 소리를 지른다. 그 패악질이 얼마나 소란스러웠으면 누가 신고했는지 경찰차까지 출동했다.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벌이는 한여름 밤의 푸닥거리다. 사람들이 악을 품고 악에 바쳐서 악바리로 살아간다. 서로를 향해 악을 뿜어대니 자기 가슴에서 솟아오른 가시로 남을 찌르는 여기가 刀山도산(칼산)지옥이다. 진瞋, 분忿, 노怒, 원怨, 증憎, 에恚, 모두 분노를 표현하는 한자이다. 분노의 색깔과 열기와 사나움과 무서움을 새겨본다. 몇 몇 구경꾼들은 집밖으로 나와 눈을 두리번거리며 뭔 일인가 살피고, 어둠속에 숨어서 귀를 세우고 엿듣는다. 서로가 서로를 구경하고 구경시켜주기도 하면서 원숭이 짓을 잘도 한다. 여기 욕계에 감로수가 내려 분노의 열기를 식혀주기를!
오스카 와일드의 <옥중기De Profundis>를 숙고하다. “이 세상의 가장 큰 죄는 두뇌 속에서 일어나는 것.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타인에게도 일어나리라. 나는 어떤 법칙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법칙의 예외를 위해서 만들어진 인간 중 하나”
그의 말을 법의 관점으로 이해한다면 <두뇌 속에 새겨진 죄>의 인자란 설일체유부에 따르면 대번뇌지법, 소번뇌지법, 부정지법이라는 심리적인 요소이다.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kleśa-mahā-bhūmika dharmā)은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의 법체계에서, 심소법(心所法 46가지) 그룹(位)의 6가지 세부 그룹인 대지법(大地法 10가지), 대선지법(大善地法 10가지),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6가지),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2가지),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10가지), 부정지법(不定地法 8가지) 가운데 하나이다. 대번뇌지법이란 일체의 염오심(染污心, 즉 번뇌에 물들어 흐려진 마음心王)과 ‘두루 함께(大)’ 일어나며, 모든 염오심에서 ‘항상(大)’ 발견되는 마음작용(心所심소법)을 말한다. ‘대(大)’는 번뇌가 심하다는 의미가 아니며, 해당 마음작용이 번뇌에 물든 마음과 ‘두루 함께(大), ‘항상(大)’ 발견된다는 의미이다. 대번뇌지법에는 6가지가 있다. 치(癡무지), 방일(放逸), 해태(懈怠), 불신(不信), 혼침(昏沈), 도거(掉擧)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산스크리트어: parītta-kleśa-bhūmika dharmā)에는 10가지 마음작용이 있다. 분(忿), 부(覆), 간(慳), 질(嫉), 뇌(惱), 해(害), 한(恨), 첨(諂), 광(誑), 교(憍)
부정지법(不定地法, 산스크리트어: aniyata-bhūmikā dharmā)에는 8가지 마음요소가 있다.
심(尋), 사(伺), 수면(睡眠), 악작(惡作), 탐(貪), 진(瞋), 만(慢), 의(疑)
도합24가지 마음작용 요소가 두뇌 속에 새겨진 불선법의 요인으로 이것이 발동하면 사고작용(意業), 언어행위(口業), 신체행위(身業)로 나타나서 현실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나에게도 일어나는 일은 남에게도 일어난다.>는 것은 인과응보란 보편적인 법칙으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된다는 의미이다. 내가 불완전한 인간임을 이해하면 다른 사람도 나와 마찬가지로 불완전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말하자면 易地思之역지사지라,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하면 이해하고 연민을 보내면서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법칙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법칙의 예외를 위해서 만들어진 인간 중 하나>라는 생각은 어마어마한 자만에서 나온 발상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을 초인Extra-ordinary man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19세기 빅토리아시대의 도덕과 사회규범을 깔아뭉개면서 예외인, 아웃사이더를 자처한 댄디 맨 dandy man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감옥에 갇혔다가 짧은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저녁에 월요강의하다. 마치고 경상대병원 영안실로 가서 명안 법우의 돌아가신 모친을 위해 독경해주다.
2018년9월4일(화)맑음
오전 10시에 영안실로 가서 학생들과 함께 독경해주다. 돌아와 요가하다. 오후6:30경 불교방송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스님과의 대화에 초대되어 대담하다. 준비한 것보다 훨씬 단순한 질문이어서 좀 싱거웠다. 저녁에 요가와 위빠사나 명상하다.
2018년9월5일(수)맑음
서울대 총불회 동문회에서 발행하는 에세이집에 약력과 사진을 보냈다.
둥근 연못가 정원 Round Lakeside Garden
길을 찾는 나그네여, 여기야말로 당신이 찾던 안식처라
여기에 우리가 추구해야할 최고의 선인 열반과 보리행이 있노라
이 글귀를 새겨서 문에 달았으면 한다. 저녁에 붓다의 심리학을 강의하다. 학생들에게 명상노트를 쓰면서 자아성찰을 하라고 하다. 비영리단체 등록을 위한 모임을 갖다.
2018년9월6일(목)맑음
눈이 트이고 마음이 열리는 한시 두 수를 감상하다.
1. 복사꽃 그림에 부쳐/석도石濤(淸, 1642년~1707)
武陵溪口燦如霞, 무릉계구찬여하 무릉계곡 초입머리 노을처럼 찬란한데
一棹尋之興更賖, 일도심지흥갱사 쪽배로 찾아드니 흥겨움 그지없네,
歸向吾廬情未已; 귀향오려정미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쉬움이 남아서
筆含春雨寫桃花. 필함춘우사도화 봄비에 붓을 적셔 복사꽃을 그린다네.
*賖: 사, 멀다, 아득하다.
2. 만망晩望: 저물녘에 바라보다/삼혹호三酷好 이규보李奎報(고려,1168~1241)
李杜啁啾後, 이두조추후 노래하던 이백과 두보가 간 뒤에
乾坤寂寞中; 건곤적막중 천지는 적막에 휩싸였느니
江山自閑暇, 강산자한가 강산이 저 혼자 심심해서
片月掛長空. 편월괘장공 긴 하늘에 조각달 걸어두었군
가을이 왔나? 여름더위夏暑가 머리를 숙이고 물러나니 가을 구름秋雲이 청량함을 실어온다. 며칠 뒤 초승달 떠오르면 가을밤 얼굴에 눈썹이 생겨 秋月揚明輝추월양명휘 분위기를 자아내겠지. 이태백도 가을 달秋月을 노래했고, 두보도 그랬는데, 두 분 가신지 오래되어 일월의 天工천공을 찬양하는 풍류도 쇠퇴해졌다. 음풍농월의 풍취가 각박해지니 천지자연도 따라서 적막해졌다. 세상인심이야 朝變夕改조변석개러니와 自然法爾자연법이의 운행이사 그침이 있으리오. 산하대지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제 멋을 알아 가을밤 살랑바람 삽삽하게 일렁일 때 벽공에다 조각달을 매달아 즐길 줄 안다. 자연은 심심해도 저 혼자 잘 논다. 혼자서 잘 노는 것이 自足자족이다. 自遊자유 自樂자락의 경지가 이 아닌가? 자연법신의 자수용삼매 경계라.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 시인이라면 안빈낙도의 유가적 처세에 무위자연하는 도가적 아취와 불교적 안목을 갖춘 이가 틀림없다. 백운거사가 그런 분이시다. 흰 구름 밟고 가신 이규보 선생의 호가 白雲居士백운거사이다. 시와 술 그리고 거문고를 너무 좋아해서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 자호했다. 자신이 감각적 대상에 惑혹해있음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있으니 반조하는 마음 빛心光이 어두워질 리 있겠는가?
神光不昧신광이 불매하여 萬古徽猷만고에 휘유하니. (徽휘: 아름답다,빛난다/猷유:감탄사)
마음 빛은 결코 어두워지지 않아 언제나 싱싱하게 감응하느니.
無解空器무해공기에 大道充滿대도충만하여라!
안다는 작용(行과 識)이 쉬어진 텅 빈 그릇에 대도여, 가득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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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李杜; 이백李白(701~762)과 두보杜甫(712~770)
啁;울 조, 새가 지저귐, 새 울음소리. 벌레가 욺, 벌레 울음소리, 비웃을 조.
‘조’ 일 때는 평성平聲 효운肴韻, ‘주’ 일 때는 평성平聲 우운尤韻
추啾;울 추, 새와 벌레 같은 것이 작은 소리로 욺, 떠들썩할 추
조추啁啾: 시로 읊다, 노래하다
건곤乾坤: 하늘과 땅, 천지天地, 감여堪輿
2018년9월6일(목)흐림, 비
밤 10:30 대견스님 의정부에서 오시다. 객실에 유하다.
2018년9월7일(금)비온 뒤 흐림
아침 간단히 먹음. 학생들 와서 점심 공양 차려 함께 먹다. 선학산 전망대 올라 전경을 조망하다. 대견스님은 선학산이 풍수지리적으로 진주의 중심이라 하면서 진주선원의 자리가 吉길하다고 하시다. 대위스님 계시는 선학사에 들러 작설차 마시고 환담하다. 시우 찻집에 들러 말차 한 사발씩 들고 하루를 매듭짓다. 내일 있을 대장내시경을 위해 장세척용 물 3 병을 마시다.
2018년9월8일(토)흐림
아침 거르고 장세척용 물 3 병을 마시다. <속 편한 내과>에서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다. 마취에서 깨어날 때 맨 처음 눈에 띈 것이 두 분 학생의 모습이었다. ‘스님, 깨어나셨어요!’ ‘아, 도리천에 태어났네. 잘못 태어났구나.’라는 생각이 첫 생각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누워 쉬다.
2018년9월9일(일)맑음
가을 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지는 날. 점심 공양하고 다솔사 솔숲 그늘에 앉아 차를 마시다. 졸졸 흐르는 갯물이 늙은 소나무의 손발을 씻겨주는데, 솔잎 사이로 스며든 햇빛이 물비늘에 반사되어 아롱거린다. 도랑가에 핀 물봉선화와 양달개비가 송송이 한들거린다. 버섯향기 흐르는 공기에 가슴이 아늑해지고 반숙된 햇볕이 어깨를 감싸준다. ‘지금 여기에 있음’조차 잊는다. 한 잔에 또 한 잔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니 빨간 고추잠자리 풀끝에 앉는다. 흰 구름 가벼이 하늘을 나는데 우리는 벼 익는 들녘을 달려간다. 선물인 듯 가을을 받는다.
첫댓글 혼자서도 잘 노는 자연과 같이 유가적 처세 ,도가적 아취, 거기에다 불교적 안목을 갖출수 있기를ᆢ부처님전에 서원해 봅니다. 스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