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발표작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을 읽다
예병태
가파른 향산 절벽 남방의 한계에서
바위틈 구석구석 생명줄 구겨 넣어
오로지 하늘을 향해 수신修身해 온 긴 세월
암벽에서 목 축이기 어찌 그리 쉬웠으랴
고사목 친구 보며 결기 세운 나날들
보이네, 생인손 앓던 민초들의 지난 삶
더디게 자랐기에 몸은 더 견고하고
바람을 이겼기에 바라춤을 추는구나
들리네, 맥박이 뛰는 저 상록常綠의 함성이
벼랑에서 손을 잡고 장엄히 선 천여 그루
기후와 각종 개발로 생존 위협 받지만
제1호 천연기념물을 감동으로 지키리
신작
나의 추성부도秋聲賦圖
창에 비친 내 얼굴이 이방인처럼 낯설고
젊음의 혈기들은 어느새 낙엽 되어
스산한 가을바람에 이리저리 뒹굴고
낭랑했던 음성도 목쉰 학의 울음으로
고동치던 맥박도 부정맥인 고목으로
귀에는 철 잊은 매미가 엔딩곡을 불러도
그나마 마음속엔 지면紙面이 남아 있어
초가를 둘러싼 죽竹 갈필로 댓잎 치면
그 님은 산을 둘러놓고 달을 둥실 띄운다
*중국 송나라 구양수가 지은 ‘추성부秋聲賦’를 단원 김홍도가 그림으로 그려낸 ‘시의도詩意圖’.
상사화
일몰 무렵 긴 햇살 따라
잦아드는 기다림
연서 적은 잎들 모아
까치놀에 불사르고
꽃대궁
긴 붓 세워 쓰는
비백飛白의 붉은 연가
<대구시조> 2023. 제27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