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리 퀴리’ⓒ스틸컷
어렸을 적 보았던 위인전에 늘 단골로 등장하던 ‘마리 퀴리’. ‘마리’라는 그의 이름은 지워지고, ‘퀴리 부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위인전 속에서 마리 퀴리는 폴란드 출신의 프랑스 과학자로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위대한 인물로 그려졌다. 그가 어린 시절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폴란드에서 모국어를 쓸 수 없어 장학사에게 러시아어로 말하고 슬퍼했다는 대목을, 일제의 지배를 받았던 우리 역사와 연결해 슬퍼하며 읽기도 했다.
하지만, 마리 퀴리를 다룬 위인전은 두 번의 노벨상에 초점을 맞출 뿐 그가 발견해 낸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그 미래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준 것인지, 여성참정권도 없던 그 시절 여성이 이룬 얼마나 힘겨운 도전이었는지, 폴란드 출신이 프랑스에서 성공을 거두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잘 보여주지 못했다. 영화 ‘마리 퀴리’는 그렇게 그동안 가려져 있던 마리 퀴리의 본 모습을 만날 수 있도록 이끄는 작품이다.
영화는 1934년 연구실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향하는 마리 퀴리가 지난날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소르본느 대학에 다니는 몇 안 되는 여성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는, 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연구실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한다. 그런 어려움을 겪던 시절, 미래 남편이 될 피에르 퀴리를 만나 함께 연구하게 된다. 마리 퀴리는 남편을 만나기 전 이미 방사성(放射性, Radioactive) 물질을 연구하기 위한 계획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부부는 노력을 쏟아 라듐과 폴로늄을 찾아낸다.
영화 ‘마리 퀴리’ⓒ스틸컷
피치블렌드 광석에서 정제 과정을 거쳐 찾아낸 ‘라듐’은 마리 퀴리의 손에 든 작은 병 속에서 영롱한 초록빛을 사방으로 쏘아댄다. 방사성 물질의 발견이라고 하는 사건은, 인류에게 있어 그동안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던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한다. 영화는 라듐의 발견과 함께 단순한 전기영화의 형식을 벗어난다. 방사성 물질이 바꿔놓은 미래를 번갈아 등장시키면서 마리 퀴리의 발견이 가져다준 긍정적 효과와 함께, 그 발견이 가져다 준 끔찍한 미래까지 함께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마리 퀴리의 이야기를 다룬 전기영화이자, 방사성 물질이 가져다준 미래에 대한 탐구와 반성의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이 영화의 원제목은 그래서 ‘마리 퀴리’가 아니라 ‘Radioactive’(방사성)이다.
라듐을 발견하고, 방사성이란 단어를 최초로 만든 이는 마리 퀴리였다. 인류 모두를 위해 라듐이 쓰이길 원했던 마리 퀴리와 남편은 특허 출원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방사성 물질은 방사성 소금, 방사성 성냥, 방사성 치약 등 방사성 물질의 위험을 이미 아는 오늘의 우리로선 경악할 수밖에 없는 상품들로 만들어져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영화에서 피에르는 마차 사고로 죽지만, 죽기 전 이미 피폭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었으며 마리 퀴리도 마찬가지였다. 피에르는 노벨상 수상 소감을 통해 이 발견이 인류에게 해를 끼치기보다는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지만, 그의 그런 바람은 핵무기 개발 등 뒤이은 끔찍한 미래들로 조금씩 무너져버리고 만다.
영화 ‘마리 퀴리’ⓒ스틸컷
피에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혼자가 된 마리 퀴리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고, 이 사실이 신문에 대서특필되며 곤경에 처한다. 인종차별적인 분위기까지 형성돼 대중들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노벨 물리학상에 이어 화학상을 받았고,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휴대용 엑스레이 촬영 장비를 개발해 수많은 목숨을 구해냈다.
영화는 마리 퀴리를 단순히 영웅으로 그리기보다는 입체적인 인물, 살아있는 인물로 복원해냈다. 마르잔 사드라피 감독은 “‘마리’가 항상 착하지만은 않다는 점이 좋았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사회적 규범에 관계없이 직설적으로 말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면서 정형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물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또 “세상에서 그리는 여성 대부분은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 딸, 자매다. 항상 누군가의 무엇으로 표현된다. 이번에 ‘마리’가 ‘피에르’의 뮤즈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두 사람은 각각 빛나는 영혼이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든 천재 과학자 ‘마리 퀴리’는 로자먼드 파이크가 맡았고, 마리 퀴리의 동료 과학자이자 남편 ‘피에르 퀴리’는 샘 라일리가, 마리 퀴리의 연구를 이어간 딸 ‘이렌 퀴리’는 안야 테일러 조이가 각각 연기했다. 이 영화는 11월 18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