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을 가지고 성산과는 완전 동서로 반대편에 있는 안덕면을 갈 일이 있어서 태균이와 같이 나섰습니다. 오후 2시반에 출발했는데 심하지는 않지만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계속 뿌려대니 출발이 늦어졌습니다. 일요일 시작은 날이 밝자, 4월 마지막 고사리꺾기를 했습니다. 야외작업용 선캡을 쓰니 영락없는 농부아줌마같습니다.
그 동안 채취한 양 정도면 충분하니 더이상 할 필요도 없습니다. 행복은 멀리있지 않다는 것을 고사리채취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집 가까운 곳에 고사리가 지천으로 있다는 것, 그리고 채취현장에서도 눈은 멀리까지 훑곤 하지만 언제나 고사리는 바로 발 밑에 있곤 하다는 것! 그것이 생애 처음 해본 고사리 채취 후일견입니다.
그렇게 새순을 빼앗기고도 결국 살아남아 들판 가득히 채운 고사리들이 위대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사람들이 그토록 매달렸어도 겨우 솎아내는 정도의 자연원리가 다행입니다. 너른 벌판을 초록으로 물들인 고사리들의 향연에 박수를 보냅니다.
아침식사에 고사리볶아주니 태균이가 잘 먹습니다. 태균이는 야채를 잘 먹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침에 편육을 했는데 온갖 쌈채 한바구니를 비우니 이런 식성은 다행입니다. 자라돔 생젓에도 마늘을 꽤 많이 넣어주는데 모자랄 정도로 마늘도 잘 먹고. 제주도에 온 후에 갈치속젓에서 자라돔젓갈로 쌈장을 바꾸었습니다.
아침 식사 전 해프닝, 새로 사온 자라돔 젓갈 뚜껑이 얼마나 단단히 잠겨있는지 둘이 아무리 낑낑대며 돌려대도 요지부동. 쌈을 먹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 속에 태균이가 스스로 해본다고 하는데, 손으로 안되니 이까지 동원하지만 될 리가 없고. 뚜껑을 뜨거운 물에 충분히 데워서 겨우 마무리. 젓갈뚜껑 무사히 열린 것도 태균이에게 큰 기쁨!
서쪽에 온 김에 간만에 새별오름에도 올라가봅니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샤려니숲과 함께 가장 많이 알려진 명소이다보니 안개비가 꽤 촉촉히 흩뿌려대는데도 오름을 오르는 팀들이 꽤 있습니다. 늦가을에 오름가득 은빛 억새들의 향연이 기가 막힌 곳! 지금은 안개와 억새의 시든 줄기들이 잔뜩이라 고즈녁한 고요함만이 가득합니다.
오름이 많이 가파르니 태균이 빨리 오지못하고 몇 번의 재촉 속에 겨우 마무리! 준이는 집에 있겠다해서 둘만 나오니 간만의 모자데이트가 정겹습니다. 차타고 다닐 때는 운동해야 한다고 연실 제스츄어로 표현하면서도 막상 운동현장에서는 꾀를 부리곤 합니다.
새별오름을 오르고 있는데 유럽 벨루시아에서 개최된 한국민속공예 대전에 작품 출시하고 전시 중인 도예하는 선배가 톡으로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새로 작품들을 준비했다더니 사진으로 보니 놀랍습니다. 선배의 작품 중에 불경을 새긴 접시를 참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유럽의 입맛을 가미한 듯, 접시문양이 오묘합니다.
태균이 물레 열심히 해서 그릇모양이라도 만들어내면 도와주겠노라 했으니 열심히 시켜보아야 되겠습니다. 이 참에 또 날아온 그림 한 점, 전직 기자출신 대학동기가 은퇴하면서 어렸을 때부터의 꿈을 다시 되살리고 있는데 솜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고교 때 엄청 빠져들었던 섬머셋 몸의 소설 '달과 6펜스 The Moon & Sixpence'는 제 마음의 영원한 고전입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겠지만 폴 고갱의 삶을 모티브로 했던 그 소설 속 화가는 달을 좇아 40대가 넘어 자신의 안락한 삶과 가정을 버린 자유와 예술추구자입니다. 뭐 그런 극적인 삶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은퇴 후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삶들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가까운 주변의 인물들이 거의 동시에 보내 준 소식들을 보니 제가 가진 예술성은 제주도를 즐기는 것, 바로 그것인 듯 싶습니다. 안개가 잔뜩한 오늘 제주도는 저의 예술성을 뒤흔들어 놓기 딱인듯 싶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교래리에서 발견한 맛집칼국수! 딱 우리 취향이라 태균이가 어찌나 잘 먹는지... 문어와 전복, 새우 등의 해물이 끝내주는 국물맛과의 조화가 기가 막혔네요. 김치만 좀더 칼국수집 겉절이 버젼이었으면 금상첨화였을 듯 합니다.
첫댓글 일기 볼 때마다 부럽고, 환상적입니다.
전 4월 13일 부터 본가에서 밭 개간을 하고 있습니다.
카페도 길게 못 접하고요.
도예 무늬가 용암 같기도 천지창조 같기도 합니다.
신비롭네요.
응달고사리가 눈앞에 삼삼 제겐 고사리가 첫째 관심사입니다.
여긴 고사리가 안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