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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는 이들 반박
바실리우스
잠언에 “분노는 슬기로운 자조차도 멸망시킨다”(잠언 15,1 참조)라는 명 쾌한 선언이 있습니다. 또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모든 분노와 격분과 시끄러운 불평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에페 4,31 참조). 주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마태 5,22). [1]
☕ 사탄은 분노를 무기로 사용하여 인간을 파멸시킨다.
이 악덕은 일단 이성을 쫓아내는 데 성공하여 영혼에 대한 지배권을 차지하고 나면 사람을 완전히 야수처럼 만듭니다. 더 이상 이성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사람 구실을 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이 격정으로 인해 일어난 분노의 결과는 독을 지닌 동물들의 독과 같습니다. 그들은 미친 개처럼 난폭해지고, 전갈처럼 덤벼들며, 뱀처럼 물어뜯습니다. 성경도 이 점을 알고 있기에 이 격정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들을 들짐승의 이름으로 부릅니다. 그들은 그들이 지닌 사악함으로 인하여 이미 들짐승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들을 “벙어리 개들”(이사 56,10), “뱀들, 독사의 자식들”(마태 23,33)등으로 부릅니다. 서로 파괴하고 동료 인간들에게 해를 끼치는 데에 열중하는 그들은, 천성적으로 인류에 대한 무자비한 적개심을 품고 있는 들짐승이나 맹독성 야생 동물로 여기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1]
☕ 분노하는 순간은 인간에서 짐승으로 떨어진다.
분노는 혀를 억제하지 못하게 만들어 말을 함부로 하게 만듭니다(야고 1,26 참조). 신체적 폭력, 모욕적인 행위, 욕설, 비난, 구타 그리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나쁜 것이 분노와 격분에서 나옵니다. 분노로 인해 칼은 날카로워지고 인간의 손이 감히 인간의 생명을 앗아 갑니다. 이러한 이유로, 형제들은 형제애를 잃어버렸고, 부모와 자녀는 본연의 유대관계를 잊어버 렸습니다. 화가 난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그다음에는 모든 친구에게 이방인이 됩니다. [1]
산의 급류가 계곡에서 계곡물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는 것처럼, 분노한 사람의 폭력적이고 통제되지 않는 공격은 모든 것을 휩쓸어 갑니다. 분노한 사람들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이도, 고결한 삶도, 혈연관계도, 과거에 자신이 받았던 호의도, 명예에 합당한 그 어떤 것도 존중하지 않습니다. 분노는 일종의 일시적인 광기입니다. [1]
☕ 분노는 광기다. 분노는 인간을 미친개로 만든다.
분노의 희생자인 그들은 종종 공공연한 위험 속으로 곤두박질치곤 합니다. 그들은 복수에 대한 열망 때문에 종종 자기 자신도 잊고 스스로 해를 입힙니다. 그들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사방에서 쇠파리처럼 달려들어 울화가 치미는 것처럼 자신의 성질을 건드린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입힐 때까지 쉬지 않고 화를 냅니다. 때로는 스스로 상처를 입기도 하는데, 어떤 물체를 세차게 던지면 타격을 받은 단단한 물체보다 던져진 것이 오히려 산산조각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1]
☕ 분노는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결국에는 자신을 파괴한다.
하나의 악을 다른 악으로 고치려 하지 말고, 그런 일에서 남을 앞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불의한 싸움에서 이긴 사람은 더 불행합니다. 더 큰 죄를 지니고 떠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악을 악으로 갚지말고, 악을 갚음으로써 악의 빚을 더 늘리지 마십시오. 만일 누군가가 홧김에 그대를 부당하게 대했다면, 침묵함으로써 악을 중단시키십시오. [3]
☕ 악한 싸움은 이겨봐야 죄만 더 쌓을 뿐이다.
사막에서 소리를 지르면, 그 소리가 소리를 지른 사람에게 완벽하게 돌아오듯이 욕은 그 욕을 하는 사람에게 완벽하게 돌아옵니다. 아니, 메아리는 그대로 돌아오지만 욕소리는 뭐가 더 붙어서 돌아옵니다. [3]
☕ 욕은 반사되어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온다.
분노는 분쟁을 일으키고, 분쟁은 폭언을 낳고, 폭언은 주먹질을 낳고, 주먹질은 상처를 낳고, 상처는 종종 죽음을 초래합니다. [3]
누가 그대를 모욕했습니까? 그를 축복해 주십시오. 그가 그대를 때렸습니까? 참으십시오. 그가 그대를 경멸하고 무시했습니까? 그대는 흙으로 만들어졌으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창세 3,19 참조). [3]
☕ 분노를 참기는 어렵지만 자신을 위해서라도 참아야 한다.
그대가 적의 조롱에 굴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면, 그대의 원수는 자신의 복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대는 다른 사람의 광기를 그대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는 기회로 삼아 인내의 위대한 왕관을 스스로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그대가 내 말을 듣는다면, 그대는 그대에게 가해지는 모욕에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입니다. 만일 그가 그대를 평범한 사람, 천한 사람,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부른다면, 그때 그대는 그대 자신을 흙과 재라고 부르십시오. 그대는 우리 조상 아브라함만큼 위대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자기 자신을 이렇게 말했습니다(창세 18,27 참조). 만일 그대의 적이 그대를 멍청하고, 거지이며, 쓸모없는 자라고 말한다면, 그대는 다윗처럼 자신을 똥구덩이에서 태어난 ‘벌레’(시편 22,7 참조)라고 말하십시오. 여기에 모세의 고귀한 행실도 추가하십시오. 모세는 아론과 미르얌에게 욕을 먹었을 때, 하느님께 그들을 비난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민수 12,1 이하 참조). 그대는 성도들, 하느님의 벗들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악의 영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까? [3]
☕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아래로의 영성이다. 모욕과 조롱을 뛰어넘는다.
그대는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싶은 유혹이 들 때마다, 인내심을 발휘하여 하느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분노에 굴복하여 그분의 적에게로 달려갈 것인지 시험받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대는 그대의 이성이 좋은 몫을 선택할 기회를 주십시오. 그대는 적에게 온유함의 본보기를 보여 줌으로써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를 경멸함으로써 더 가혹한 복수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3]
☕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싶다면 하느님 편에 설 것인지, 사탄의 편에 설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폭언은 그에게 하늘나라의 문을 닫아 버립니다. 폭언하는 자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1코린 6,10 참조). 반면에, 그대의 침묵은 그대에게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줍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마태 10,22)이기 때문입니다. [4]
☕ 욕설은 하느님 나라의 언어로 부적절하다. 화가 나면 차라리 침묵하라.
만일 그대가 적과 함께 모욕을 주고받으면서 싸운다면, 나중에 뭐라고 변명을 할 것입니까? 그가 그대를 화나게 했다고요? 그 변명으로 용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여자가 자신을 유혹하여 불륜을 저지르게 했다면서, 책임을 여자에게 돌리는 남자는 죄가 작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적수가 없으면 왕관도 없고, 적이 없으면 쳐부술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4]
☕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사실을 넘어서는 칭찬에 뿌듯해하지도 말고 그대에게 해당하지 않는 모욕에 대해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4]
☕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면 칭찬도 모욕도 흔들릴 필요가 없다.
비난받을 만한 것은 가난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가난을 당당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입니다.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2코린 8,9 참조) 주님을 생각하십시오. [4]
☕ 가난은 죄가 아니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만일 그대가 어리석고 무지하다는 말을 듣는다면, 참된 지혜를 모독한 유대인들의 모욕을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사마리아인이고 마귀 들린 자다”(요한 8,48 참조). 만약 그대가 화난 행동을 한다면, 그대는 그대가 들은 욕이 사실임을 증명할 것입니다. 분노보다 더 어리석은 것이 무엇입니까? 만일 그대가 화내지 않고 침착을 유지한다면, 그대는 무례한 가해자에게 그대의 자제력을 실제로 보여줌으로써 그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4]
☕ 주님도 모욕과 조롱을 당하셨다.
누가 그대를 때렸나요? 주님도 그렇게 맞으셨습니다. 누가 그대한테 침을 뱉었나요? 주님께서도 같은 일을 겪으셨습니다. “그분은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돌리지 않았기”(이사 50,6 참조) 때문입니다. 그대가 억울하게 누명을 썼나요? 그대의 재판관이신 그분도 그랬습니다. 그들이 그대의 옷을 찢었습니까? 그들은 내 주님이신 그분의 옷을 벗기고 그분의 옷을 서로 나누어 가졌습니다(마태 27,31.35 참조). 그대는 사형 선고를 받지도 않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지도 않았습니다. 그대가 주님처럼 될 수 있으려면 아직 많은 것을 더 빼앗겨야 합니다. [4]
☕ 주님을 닮아가려면 주님이 겪으신 수모도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힘센 다윗이 시므이의 분노를 얼마나 부드럽게 견디어 냈습니까? 다윗은 화를 내지 않고 하느님께로 자신의 생각을 돌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명하셨다”(2사무 16,10 참조). 그래서 시므이가 다윗을 피비린내 나는 자이며 악인이라고 욕했을 때, 다윗은 화내지 않고 마땅히 받아야 할 비난을 받은 것처럼 겸손했습니다. [5]
그대는 이 두 가지 결점에서 벗어나십시오. 하나는 그대 자신을 큰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는 결점이고, 하나는 다른 사람을 그대보다 많이 못하다고 생각하는 결점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모욕을 당할 때조차, 결코 우리 안에서 분노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5]
☕ 나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그대의 원수가 그대를 욕해도, 그대는 욕하지 마십시오, 그가 하는 말을 철학을 연습하는 훈련장으로 생각하십시오. 만일 그대가 찔리지 않았다면, 그대는 상처를 입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만일 그대의 영혼이 어떤 상처를 입었다면, 그대 자신 안에 상처를 가두어 두십시오. 시편 저자가 “제 마음이 안에서 괴롭습니다”(시편 143,4 참조)라고 말하는 것은, 그가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마치 해안가에서 부서져 가라앉는 파도처럼 억누르
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5]
창조주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우리 자신을 위한 죄의 기회로 삼지 맙시다. [6]
☕ 하느님이 주신 재능을 나쁜 곳에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은 분노에 이유 없이 굴복하는 자는 단죄하시겠다고 위협하시지만, 필요한 경우에 약으로 사용되는 분노에 대해서는 막지 않으십니다. “나는 너와 뱀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라”(창세 3,15). 그리고 “미디안인들이 너를 그들의 원수로 찾게 하여라”(민수 25,17 참조)라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분노를 무기로 사용하라고 가르칩니다. [6]
☕ 악한 일에는 분노해야 한다. 그것이 의노(義怒)다.
주님께서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행동으로 직접 보여 주신 겸손을 배우십시오. 주님께서는 언젠가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마르 9,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을 때린 자를 온화하고 침착하게 참아 주셨습니다(요한 18,22-23 참조)[7]
그분은 당신을 때린, 살아 있는 그 사람을 지옥에 던지지 않으셨습니다. 그 불경한 자에게는 땅이 저절로 열렸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분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훈계하고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악을 이야기하였다면, 그 악의 증거를 대 보아라. 그러나 옳게 이야기 하였다면, 왜 나를 치느냐?”(요한 18,23 참조) [7]
☕ 주님은 겸손의 스승이다.
만일, 주님의 명령에 따라, 그대가 스스로 꼴찌가 되는 데 익숙해졌다면, 어떤 상황에서 그대의 존엄성이 모욕당했다는 이유로 불쾌감을 느끼겠습니까? 만일 어린아이가 그대에게 욕하면, 그대는 그 아이의 욕을 웃어넘길 것이고, 만일 미친 사람에게 모욕을 당하면, 그대는 그를 증오하기보다 오히려 동정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그 사람이 한 말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욕한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우리의 교만 때문입니다. [7]
분노는 영혼의 병이며, 이성을 뒤덮은 어두운 안개입니다. 분노는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친척들의 결속을 잊게 만들고, 분쟁의 원인이 되는 재난 그 자체입니다. 그것은 우리 영혼에 태어난 사악한 마귀이며, 뻔뻔스러운 임차인처럼 우리 내면을 미리 점령하여 성령께서 들어오실 입구를 막아 버립니다. 반목과 분노의 폭발, 음모와 경쟁이 영혼에 끊임없는 동요를 일으킬 때마다, 온순함의 영은 안식을 취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복된 바오로의 훈계에 따라, 모든 분노와 격분과 소란을 모든 악의와 함께 내버리고(에페 4,31 참조), 온유한 이들에게 약속된 축복받은 희망을 기다리며 서로에게 친절하고 동정심을 가지도록 합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마태 5,5)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7]
☕ 분노는 영혼의 병이다. 치유해야 한다. 분노를 품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순 없지 않은가?
첫댓글 "화가 난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그다음에는 모든 친구에게 이방인이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분노는 슬기로운 자조차도 멸망 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