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고등학교 2학년 교실.
에어컨도 없는 찜통 교실에서 여름방학 보충수업이 끝나고 오후 자습시간이었다. 소설을 읽던 한 학생이 감독 선생님에게 걸렸다. 소설책은 사정없이 날아가고 학생의 뺨에는 여러 차례 불꽃이 튀었다. 소설 읽을 시간에
영어·
수학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가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체벌이 일상처럼 벌어지던 시절이었지만 그 장면은 두고두고 학생들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카이스트에 들어간 영재들이 잇따라 자살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영재들을 자살로 몰아간 원인 가운데 하나가 무자비한 영어 수업이란다. '로봇영재' 고(故) 조 모 군은 친구들에게 "영어로 진행되는 미적분학 수업을 따라가기가 벅차다"고 자주 고민을 토로했다. 카이스트는 100% 영어
강의로 불릴 만큼 영어의 비중이 크다. 교양과목인
일본어까지 영어로 강의하는 판이다. 수업의 이해도는 떨어지고, 교수와 학생 간 정이 사라져도 막무가내이다. 이 학교 교수협의회가
조사한 결과, 전면 영어 강의 제도 유지에 찬성한 교수는 전체 응답자의 10%, 학생은 13%에 불과했는 데도 말이다. 카이스트뿐만 아니라 전국 유명 대학들도 경쟁적으로 영어 강의를 늘리고 있다. 포스텍은 2013년까지 영어 공용화 캠퍼스를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 유명 대학은 '
글로벌 경쟁력', '세계와의 소통'을 위해서 프랑스에서 박사를 딴 사람도, 동양철학 과목까지도 영어 강의를 강요 중이다. 이것 또한 학생들이 잘되라는 좋은 뜻일 게다. 체벌은 사라졌지만 다른 형태로 바뀐 폭력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소설가 신경숙 씨가 쓴 장편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은 소설의 내용도 좋지만
번역이 잘 된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이 소설을 번역한 김지영 씨는 물론 영어를 썩 잘한다. 영어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책벌레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요즈음 대학들의 주장과 같은 논리라면 소설도 영어로 써야 한다. 하지만 영어로 소설을 써서 독자들과 소통할 작가가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있을까. 아니 이 세상 어느 작가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글을 쓰나. 우리 문학의 세계화는 김 씨처럼 훌륭한
번역가를 양성하면 될 일이다.
'오렌지'가 아니라'어륀지'라는 영어 발음으로 상징되는 현 정부의 영어 몰입 정책이 실시되는 동안 우리나라는 점점 더 영어에 미쳐가고 있다.
한국사의 고교 필수과목 탈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2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0년에 영어 사교육비로 무려 7조 원이 쓰였다. 부산시의 지난해 예산인 7조 8천억 원과 맞먹는다. 자식들을 조기
유학이나 단기
연수라도 보내는 부모들만 나무랄 수는 없다. 잘나가는 사람들은 영어를 다 잘하는 것 같으니 없는 돈을 쪼개 영어라도 배워 오라는 뜻이 담겨서 그렇다.
하지만 결말은 슬프다. 영어 때문에 과학영재들이 시들고, 책 볼 시간이 없어서 서점은 문을 닫고, 아버지는 기러기가 되어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 영어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지금처럼 전 국민이 영어를 잘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묻고 싶다. 로봇을 잘 만드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언어에 재능이 있는 사람도 따로 있다.
원어민처럼 영어를 해야 하는 일에는 외국어 전문가를 많이 길러서 활용하면 안 될까.
영어 교육에 들어가는 그 막대한 돈을 외국 사람들이 우리말을 배우는 데 좀 더 지원해주면서 말이다. 우리는 식민지 국민이 아니다. nleader@
첫댓글 옛날에 한자에 미친 놈들이 많았습니다. 이제 영어에 환장한 놈들이 많습니다. 이게 대한민국이란 나라입니다. 중국의 속국, 일본의 식민지, 지금은 미국의 발바닥 밑에 있는 나라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숨길 수도 없습니다.
고맙게 잘 읽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