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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는 용문산과 백운봉, 매봉 가는 도중 매바위에서
백리에 사람 소리 들리지 않고 百里無人響
산 깊어 들리느니 새 울음소리 山深但鳥啼
중 만나 앞길을 물어보고는 逢僧問前路
중 가자 다시금 길을 잃었네 僧去路還迷
――― 강백년(姜栢年, 1603~1681), 『금강산 가는 길에(金剛途中)』
▶ 산행일시 : 2013년 12월 28일(토), 맑음, 추운 날
▶ 산행거리 : 도상 23.0㎞
▶ 산행시간 : 8시간 57분
▶ 갈 때 : 양재역에서 5번 출구로 나와 08번 마을버스 타고 괜히 양재역 부근을 한 바퀴
돌고 서울추모공원 입구에서 내림(10번 출구로 나와 08번 마을버스를 타야 했
음)
▶ 올 때 : 경기대 정문에서 공용주차장 아래로 걸어 나와, 37번 버스 타고 장안문 느림보
타운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강남역 가는 3000번 버스 탐(잠실역을 가려면 경기
대 정문에서 후문으로 가서 1007-1번 버스를 탔어야 했음)
▶ 시간별 구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 따랐음)
06 : 50 - 양재역
07 : 23 - 서울추모공원 입구, 산행시작
08 : 10 - 옥녀봉(376m)
08 : 38 - △494.8m봉, 헬기장
08 : 54 - 매봉(582m)
09 : 10 - 망경대(望京臺, 616m) 아래 암봉
09 : 27 - 석기봉(石基峰, 583m)
09 : 54 - 이수봉(二壽峰, 547m)
10 : 35 - 국사봉(國思峰, 542m)
11 : 06 - 하오고개(학현)
11 : 35 - △367.1m봉
12 : 42 - 바라산(望山, 428m)
13 : 41 - 백운산(白雲山, △562.5m)
14 : 20 - 광교산(光敎山 시루봉, △582m)
14 : 44 - 종루봉(비로봉, 490m)
15 : 27 - 형제봉(448m)
15 : 50 - 천년수
16 : 20 - 경기대 정문 앞, 산행종료
1. 앞은 의왕 모락산, 뒤는 안양 군포의 수리산 슬기봉과 태을봉(오른쪽)
▶ 청계산 옥녀봉(376m), 매봉(582m), 망경대(望京臺, 616m), 석기봉(石基峰, 583m)
늘 들머리에서 애먹는다. 네이버 길찾기에서 목적지를 예전 기억의 ‘양재동 트럭터미널’로 했
더니 ‘양재역 5번 출구, 361m 도보’로 권하기에 그대로 했는데 트럭터미널은 물론 암만 가도
옥녀봉 자락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불 켜진 주유소 문 두드려 청계산 옥녀봉 가는 길
을 물었다. 버스 타고 20분 정도 가야 할 거리라고 한다.
08번 마을버스가 양재역 10번 출입구에서 옥녀봉 들머리로 간다. 20분 가까이 걸린다. 서울
추모공원 입구. 길 건너 긴 데크계단이 나 있다. 오가는 사람 없고 이정표나 등산안내도가 보
이지 않아 혹시 이 동네 근린공원이 아닌가 불안했지만 오래도록 산길이 이어져 맘 놓는다.
△194.4m봉 직전 안부이리라. ┬자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다. 옥녀봉 1600m, 구 화물터미널
1000m.
길 좋다. 동네 뒷산 산책길이다. 내 내달아 이는 바람이 맵다. 오늘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까
지 내려간다고 했다. 춥다. 비둔하지만 여느 때와는 달리 윈드쟈켓을 껴입고 후드도 뒤집어쓴
다. 호주머니 속 달군 보온대 만지작하며 종종걸음 한다. 매봉 왼쪽 검은 능선으로 해가 불쑥
솟고 숲속 나뭇가지 사이로 비스듬히 방사하는 햇살이 눈부시다.
서울 근교 산행은 특히 청계산은 오늘처럼 절정의 추위이거나 눈이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궂
은 날이 한적하니 아주 좋다. 날이 좋으면 남부여대한 길 메운 행렬에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가 없을뿐더러 저마다 휴대한 고성의 기계음과 트림일 듯한 걸쭉한 탁주 냄새가 진동하여 난
장이 따로 없다.
옥녀봉. 너른 공터다. 발돋움하여 관악산 전모 살펴보고 물러난다. 원터골 갈림길을 연속해서
지나고 목제계단 오름길이 시작된다. 계단 세는 수고를 덜었다. 계단에 번호판을 붙여놓았다.
헬기장인 △494.8m봉 지나고 돌문바위 한 바퀴 돌고 매바위를 오른다. 매바위는 청계산 최고
경점 중 하나인데 오늘은 박무로 흐렸다. 계단번호 1483번에서 매봉이다. 중간의 데크계단이
나 돌계단은 제외한 숫자다.
매봉.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올랐다. 모두 중무장하였다. 포장마차도 출근하였다. 청계산 주봉
인 망경대가 군부대 철조망에 갇히는 바람에 이 매봉이 청계산 노릇한다. 매봉 지나면서 간간
이 암릉이 나타난다. 왼쪽 사면 아래로 우회로가 주등로이지만 선답의 발자국 따라 직등한다.
┤자 갈림길인 혈읍재를 지나고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혈읍재(血泣-)의 유래가 비장하다. 조선초 정여창 선생이 성리학적 이상 국가 실현이 좌절되
자 망경대 아래 하늘샘(금정수터, 마왕굴)에 은거했다고 한다. 그가 은거지인 금정수에 가기
위해 이 고개를 넘다 통분해 울었는데 그 피울음 소리가 산 멀리까지 들렸다 하여 후학인 정
구(鄭逑) 선생이 혈읍재라 명명했다고 한다.
망경대 오르기 전 Y자 갈림길. 왼쪽은 이수봉으로 가고 오른쪽은 망경대로 간다며 ‘등산로 폐
쇄’라는 표지판을 걸어놓았다. 망경대를 오르지 않고서 어찌 청계산을 갔다 할 것인가. 간다.
암릉 길이다. 가느다란 밧줄이 달렸지만 절벽 트래버스가 조심스럽다. 망경대 두른 철조망 가
까운 암봉을 그나마 망경대로 여길 수밖에.
망경대는 본래 이 상봉에 오르면 눈 아래 만경(萬景)이 전개된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었으나
여말선초 문신인 송산 조견(松山 趙狷, 1351~1425) 선생이 마왕굴에 은거하면서 이곳에 자주
올라 고려의 수도인 개경을 바라보았다 하여 망경대(望京臺)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망경대
(望景臺)이기도 하다.
국조인물고의 이 대목은 사뭇 감동적이다. “(조견 선생은) 매번 가장 높은 석봉(石峰)에 올라
송경(松京)을 멀리 바라보며 통곡하였는데, 계수(溪樹)와 산운(山雲)도 슬퍼하고 아무 빛깔이
없었다. 공이 통곡할 때 검은 구름이 송악(松岳)에서 청계산까지 쭉 뻗치니 사람들이 기이하
게 여기면서, 다들 공의 충성에 하늘이 감응한 것이라 하며, 그 봉우리를 ‘망경대(望京臺)’라
불렀다.”
망경대 내리는 길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협곡 바위절벽이다. 밧줄 잡기도 어렵다. 참나무 부
둥켜안고 돌아 더듬더듬 돌부리 움켜쥔다. 소로의 등로와 만나고 철조망 따라 산허리 돌아 능
선마루에 오르면 석기봉이다. 청계산에서 조망이 가장 뛰어난 곳이다. 한참 머문다.
2. 청계산 옥녀봉 가는 길
3. 옥녀봉에서 바라본 관악산
4. 매봉 가는 길
5. 매바위에서, 가운데는 금암산과 남한산 연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6. 서울시내, 매바위에서
7. 멀리가 광교산과 백운산(오른쪽), 망경대 아래 바위에서
8. 관악산, 망경대 아래 바위에서
9. 가운데 왼쪽은 모락산, 멀리는 수리산
▶ 이수봉(二壽峰, 547m), 국사봉(國思峰, 542m), 바라산(428m)
석기봉에서 잠깐 내리면 군사도로로 연결되는 너른 헬기장이 나오고 이어 등로는 응봉, 청계
사에서 오는 길과 만난다. 등로는 신작로다. 이수봉이 금방이다. 큼지막한 정상 표지석에 이
수봉의 유래를 새겼다. 정여창 선생이 무오사화 때 이 산에 은거하여 생명의 위기를 두 번이
나 넘겼다 하여 후학인 정구 선생이 이수봉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국사봉 가는 길. ‘의왕대간(義王大幹)’이다. 의왕시에서 등로를 잘 다듬었다. ‘의왕’이라 하여
어느 왕인가 궁금해왔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의곡면(義谷面)과 왕륜면(王倫面)을 합
치면서 그 첫 글자를 땄다고 한다. 이수봉 내린 추동으로 462m봉을 오르고 그 내린 추동을 살
려 가파른 오르막인 국사봉을 오른다.
박성태 씨의『신 산경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남한에 국사봉은 77개나 된다. 한자 표기는 ‘國
師峰’이 대종을 이루고 이외에 國賜峰, 國史峰, 國士峰, 國事峰, 國寺峰, 國司峰, 國思峰 등 여
러 가지다. 이 국사봉(國思峰)은-유일하다-조견의 형인 조준(趙浚)이 이곳에 올라 고려의 멸
망을 슬퍼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전하니 그럴 듯하지만 모르긴 해도 ‘國師峰’-국사는 임
금의 스승이라는 뜻이다, 산은 그러하다-을 제외한 여타의 한자 표기는 유래와 무관한 요령
부득으로 보인다.
국사봉 뒤 봉우리 또한 첨봉이다. 우회로 마다하고 직등한다. 성남시에서 우수 조망명소로 선
정하였으나 그다지 우수하지 않다. 여태의 적공을 탕진하여 뚝뚝 떨어져 내린다. Y자 분기봉
인 391m봉에서 멈칫했다가 다시 내리 쏟는다. 하오고개를 어떻게 넘는가? 예전에는 57번 도
로 중앙분리대를 잽싸게 넘거나 청계공동묘지 관리소 쪽으로 내려가 굴다리 지나서 하오고
개 절개지 가장자리로 올랐다.
도로 양쪽 절개지에 데크계단을 설치했고 육교를 놓았다. 의왕시가 이수봉에서 백운산까지
시계를 선점하여 의왕대간이라 명명한 명분은 이로 말미암아 충분하다. 난제 중 난제가 해결
되었다. 산꾼들에게는 고속도로가 뚫린 셈이다. 방송중계소 시설이 있는 367m봉을 수월하게
오른다. 이따금 뒤돌아 지나온 산릉 살피며 눈길 걷는다.
맞은편에 혼자 오는 사람이 짙은 색의 선글라스를 썼으나 낯이 익다. 이박사님이다. 반갑다
말을 다할까 두 손 맞잡고 그저 바라만보다 서로의 근황을 묻는다. 몸이 예전만 못하여 오지
산행은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겠단다. 그렇지만 매주 토요일마다 광교산에서 청계산을 가고
일요일에는 관악산이나 북한산을 간다고 하니 아무래도 엄살 같다. 못내 아쉬운 발길 돌린다.
△367.2m봉. 삼각점은 315 재설, 76.8 재설. 한때 여기서 길을 잘못 들곤 했다. 무심코 직진하
였다가 학의동을 갔다 왔다. 지금은 이정표와 여러 산행표지기가 바라산을 왼쪽으로 안내한
다. 설원을 간다. 산악자전거도 다닌다. 424m봉이 발화산이다. 모처럼 오르내리는 굴곡이 심
하다. 424m봉 내린 ┼자 갈림길 안부는 바라재다.
바라산이 설산의 첨봉이다. 가파른 오르막에 데크계단을 설치했다. ‘바라 365희망계단’이다.
15계단마다 24절기 각각의 의미와 내용을 적어놓았다. 곁들인 세시풍속화는 창석 이억영(蒼
石 李億榮, 1923~2009) 선생의 작품이다. 일일이 그림 감상하고 설명을 읽노라니 힘 드는 줄
모르고 어느새 바라산 정상이다.
바라산 정상은 널찍한 데크전망대다. 바라산이란 산 이름의 유래에 대한 그간의 나의 짐작이
틀렸다. 나는 바라산을 지리산 바래봉처럼 승려가 등에 지고 다니는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인
‘바랑’일 거라 여겼는데, 의왕시의 설명에 따르면 의왕 의일 주민들이 정월 대보름날 달을 바
라보던 산으로 발아산(鉢兒山) 또는 망산(望山)이라고도 불리었으며, ‘바라본다’는 말에서 유
래되었다고 한다.
10. 관악산
11. 가운데는 국사봉, 멀리는 광교산과 백운산(오른쪽), 석기봉에서
12. 오른쪽이 국사봉
13. 앞은 하오고개 육교
14. 망경대와 국사봉(오른쪽)
15. 바라 365희망계단의 절기 설명
15-1. 바라 365희망계단의 절기 청명의 세시풍속화, 창석 이억영(蒼石 李億榮, 1923~2009)
선생의 작품이다
16. 바라 365희망계단의 절기 소설의 세시풍속화
▶ 백운산(白雲山, △562.5m), 광교산(光敎山 시루봉, △582m), 종루봉(490m), 형제봉(448m)
바라산 총총 내려 ┼자 갈림길 안부인 고분재. 고분재에서 427m봉을 세 피치 데크계단으로
오른다. 첫 번째 피치는 예상대로 108계단이고, 그 다음은 47계단과 50계단이다. 427m봉 남
쪽으로 약간 아래 노송 그늘진 암반이 쉼터로 명당이다. 휴식 겸해 점심 먹는다. 맛이라기보
다는 아무튼 허기를 면하고자 먹는다.
완만한 설사면 고개 꺾고 진득하니 오른다. 눈앞이 환해지더니 백운산 정상이다. 박무로 조망
이 별로여서 곧바로 광교산을 향한다. 이제 의왕대간은 끝나고 수원 둘레길이다. 통신대 남쪽
사면을 굽이굽이 돈다. 통신대 철조망에 달아놓은 안내문이 주문은 영문이고 한글 번역을 부
기하였다.
“THIS AREA HAS BEEN DECLARED A RESTRICTED AREA BY AUTHORITY OF THE
CDR, U.S. FORCES. KOREA IN ACCORDANCE WITH THE PROVISIONS OF THE
DIRECTIVE ISSUED BY THE SECRETARY OF DEFENSE ON 20 AUGUST 1954,
PURSUANT TO THE PROVISION OF SECTION 21, INTERNAL SECURITY ACT OF 1950.
(……)
1950년 통과된 국내 보안법 21절의 규정에 의거한 1954년 8월 20일자 국방장관 지시에 의거
하여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이 지역은 제한 구역으로 선포되었음. (……)”
‘INTERNAL SECURITY ACT(국내 안전법)’는 1950년 9월 트루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도
불구하고 성립된 반공입법(反共立法)으로 제안자의 이름을 따서 ‘매카란법(McCarran Act)’이
라고도 한다. 제1부는 ‘파괴행위 방지법’이라고 하여 공산주의 단체의 등록, 방첩법의 강화를
규정하였으며, 제2부는 ‘국가비상시 구금법’이라고 하여 국가비상시에 태업(怠業) 또는 스파
이 활동의 용의자를 구금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지금 동법은 대부분의 조항이 삭제되어 사실상 효력이 없는 상태라고 하는데(장호순
교수, 『미국의 국가보안 관련 입법의 실제』), 그 미국 법에 의해 백운산이 통제되고 있는 것
이다. (우리나라 방위를 위한) 미군 통신시설이지만 우리나라 법이 아닌 미국 법에 의해 지금
껏 통제되고 있다는 점이 영 불편하다.
억새밭이라는 ┣자 갈림길인 야트막한 안부를 지나고 529m봉 넘으면 노루목이다. 광교산 주
봉인 시루봉은 능선마루에서 살짝 비켜 있다. 삼각점은 ‘수원 23’. 지나온 길과 가야 할 길을
아울러 볼 수 있는 경점이다. 수원의 진산이자 둘레길답게 많은 사람들이 간편한 차림으로 오
르내린다. 시루봉에서 경기대까지 6㎞. 토끼재 지나고 데크계단과 바윗길 번갈아 올라 종루
봉(비로봉, 490m)이다.
종루봉의 팔각정 누각이 조망처다. “산중에 좋은 친구는 숲속의 새요/세상에서 가장 맑은 소
리는 돌 위에 흐르는 물소리다(山中好友林間鳥/世外淸音石上泉)”. 누각에 갈린 무봉(霧峰)이
란 분의 서각이 눈길을 끈다. 종루봉 내림 길 도중에 오른쪽으로 70m 사면 돌아가면 김준룡
장군(金俊龍, 1586~1642)의 전승지와 전승비가 있다고 한다.
다니러간다. 바위지대 암면에 비 모양으로 하여 새겼는데 닳고 닳아 알아보기 어렵다. 김준룡
장군은 이곳에서 청태종의 사위이며 적장인 양고리 등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그런데 남한산
성 가는 길의 법화사지에는 두 개의 안내판이 있다. 하나는 “청태종의 매부인 양고리가 조선
의 원두표(元斗杓) 장군에게 패하여 전사하자 전쟁이 끝난 후 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양고
리(楊古利)의 고향인 법화둔의 지명을 따서 이곳에 법화암을 세웠다”고 하고, 다른 하나는
“양고리는 수원 광교산 전투에서 전라병사 김준룡의 휘하에 있던 박의에게 사살된 것으로 보
인다”고 한다.
양지재로 내려 형제봉 연봉 우러르고 긴 오르막 스퍼트 낸다. 형제봉 또한 경점이다. 수리산
을 위시한 서녘 첩첩한 산들이 가경이다. 나지막한 산릉 굽어보고 형제봉을 내린다. 등로는
생태복원한 대로다. ┼자 갈림길 안부인 백년수 지나고 천년수 가는 길이 뜻밖의 험로다. 평
지낙상하기 십상인 빙판이다. 나만이 아니다. 연이어 비명소리가 들린다.
호젓한 리기다소나무 숲길, 어느덧 황혼의 사광이다. 아껴 걷는다만 ┼자 갈림길에 이르고 말
았다. 오른쪽은 반딧불이 화장실로 가고 왼쪽은 경기대를 관통한다. 당장 하산하기 싫어 직진
한다. 경기대 정문이 나온다. 그만 스틱 접는다.
17. 오른쪽 가운데는 모락산, 멀리는 수리산
18. 왼쪽은 형제봉, 앞 오른쪽은 종루봉(비로봉)
19. 김준룡 장군 전승지에 있는 전승비, 닳아 알아보기 어렵다
20. 형제봉
21. 맨 뒤는 수리산 슬기봉과 태을봉(오른쪽), 그 앞은 모락산
22. 광교산 종루봉과 시루봉
23. 형제봉에서 경기대 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
24. 형제봉에서 조망
25. 백년수 근처
26. 경기대 가는 길
첫댓글 새해에도 건강하시여 행복한 산행 이어가시옵서소 ^^
청-광을 하셨군여 내년에도 산하시기 바랍니다...
옥녀봉에서 바라 본 관악산, 멋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