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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령 충만을 받으라(엡 5:15-21)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마치 목자잃은 양처럼 앞이 캄캄하였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더니 훌쩍 제자들 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지난 주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희망은 바로 이 말씀이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오시면 그분이 예수님처럼 보혜사가 되셔서 저들과 함께 계시고 저들의 목자가 되어 주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저들은 그래서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루살렘의 마가의 다락방에서 함께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전혀 힘썼다고 하였습니다.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저들은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후 10일동안이나 오로지 전혀 기도에 힘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침내 오순절, 성령강림절에 그들가운데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경험하니까 기쁨이 회복되었습니다. 감사의 삶을 살게 되고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셨던 모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확실해졌습니다. 이제 두려울 것이 없어졌습니다. 담대해졌습니다.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전에는 예수님께 직접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했는데 이제 깨달음이 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고 그 말씀이 내 믿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어떤 위협과 핍박이 있어도 결코 타협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고 담대하게 믿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복음의 증인의 사명을 깨닫고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내가 듣고 보고 체험한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 사명임을 깨닫고 예루살렘 거리에 나아가서 복음을 외쳤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이 바로 오늘의 교회를 탄생시키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결코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해야 하나님의 백성답게 힘있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운데는 이미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고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과거에 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옛날 경험만 이야기하고 현재의 삶에는 성령충만한 모습이 결여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제가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기름없는 자동차와 같은 신자로 떨어진 것입니다. 소리만 요란하지 앞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고철덩어리와 같은 신앙인으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성령충만합니까? 하나님과 함께 평강을 누리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있습니까?
제가 생각하는 성령충만한 증거는 바로 사도바울이 고백한 갈라디아서 2:20 말씀에 비쳐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여기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앞에서 죄인중의 괴수인 것을 깨닫고 예수 십자가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가 죽었더니 이제 내안에 예수님이 내 생명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지배하시고 내 삶을 주도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믿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성경은 성령충만한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본문 18절을 읽겠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술 취하면 방탕하고, 환락에 빠지고, 주색에 빠지고, 무질서해진다는 말입니다. 결국 이 말은 성도는 세상에 취해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삶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나라 백성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살려면 반드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성령충만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이 말씀은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필수적으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분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도저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가 없다고 그래서 신앙생활에 자신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내 힘으로는 신앙의 시작부터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술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취할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 충만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뜻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또 오직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은 현재형입니다. 지난 날 경험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성령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펜스 존슨 이 쓴 ’선물‘(The Present)이란 책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바로 현재의 순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바로 지금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현재 이 순간 옳은 것에만 집중하면 우리는 다 행복할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성령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패배하고 오늘 뒤로 물러나면 영원을 실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이 바로 성령충만할 때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성령충만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오늘 성령충만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6절 말씀을 보면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현재 우리의 영적인 현실을 보면 때가 악한 시대입니다. 어둠이 온 땅을 덮으려고 공격하고 있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지 않으면 세상에 우리 영혼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지금 성령충만하라는 명령은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우리 자신을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지금 우리 모두가 성령충만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명령은 계속적입니다. 한번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적으로 숨을 들이마시듯이 성령충만은 계속적입니다. 주님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을 드린 성령세례는 성도의 삶에 단회적 사건입니다. 처음으로 성령충만을 체험한 사건입니다. 성령에 푹 젖어서 성령의 은혜를 체험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세례는 단회적 사건이지만 성령충만은 반복적 사건입니다. 사도행전에 5번이나 나와 았습니다.
마치 자동차를 운행하려면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지 않겠습니까? 한번 넣고 평생 타는 것이 아닙니다. 매번 떨어질 때마다 주유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성령충만을 날마다 하나님의 성령을 충만히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계속적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성령충만을 받습니까? 성령충만의 비결을 세 가지로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 성령충만의 비결 세가지
1)회개해야 합니다.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며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성령은 거룩한 영입니다. 죄악이 가득한 마음에는 성령님께서 임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찢고 죄를 뉘우치며 회개할 때,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죄에 대해서 제가 늘 말씀드리는 것처럼 자기 사랑이 죄입니다.
자기가 최고인 것처럼 자기가 주인되어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내 인생의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앞에 엎드려 주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중심에서 하나님중심으로 중심이 전환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본질적인 회개의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시는 첫 번째 조건은 우리의 진실한 회개입니다. 회개할 때 성령님을 선물로 받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2)성령충만을 사모하며 구해야 합니다.
요 3: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다고 했습니다. 성령충만함으로 모든 선한 일과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령충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갈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받아야 내 영혼이 삽니다. 받아야 합니다. 건강한 영혼은 갈급함이 있습니다. 갈급함으로 기도의 자리에 나와서 합십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기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충만하게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허락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3)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행 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성령님은 인격체이십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음성에 순종할 때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더욱 그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님을 무시할 때 근심하시고 나중에는 소멸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늘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갈 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 안에 늘 싸움이 있습니다. 즉 우리 안에 두 가지 힘이 서로 우리 삶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줄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보통 줄다리기 할 때 양쪽 팀의 힘이 50대 50이 되어야 서로 팽팽하게 맞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쪽의 힘이 30이고 상대 팀의 힘이 70이면 결과는 보나마나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처음 성령을 따라 살기 시작하면 20정도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소욕보다 육신의 욕심을 20대 80정도 더 따라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 끊임없이 미움, 분노, 질투, 정욕 등의 육신적인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점점 성령님을 더 많이 의식하고 성령을 따라 살면 육신에게 덜 끌려 갈 것입니다. 50대 50대이 되어 팽팽히 맞서다가 나중에서 70대 30정도로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것이 더 많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성령님의 전적인 통치를 받는 것이 성령충만한 삶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 순간 성령을 의식하며 성령을 더 친밀히 따라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성령충만한 삶의 특징 세 가지입니다.
1)찬송과 경배를 드리는 삶.
19절,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성령 충만한 삶은 항상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주님을 노래하며 찬송하는 삶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환경과 조건과 관계없이 늘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송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 내면에서 기쁨이 생수의 강처럼 흘러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요 7:37-38절.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성령이 충만할 때 우리 내면에서 기쁨과 감사와 능력이 넘쳐나오게 됨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 내면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칠 때 우리가 목마른 영혼들에게 생수를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님의 지배는 우리 속에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나타나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평강과 기쁨이 사라졌으면 성령충만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즉시 성령님께서 다시 충만하게 역사하시도록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성령충만을 유지하여 기뻐하며 찬송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늘 불평하는 사람들은 자아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자기 욕망과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늘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20절,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성령충만한 사람의 두 번째 특징입니다. 여기서 범사는 좋은 일, 나쁜 일 모두를 포함합니다. 이처럼 성령충만한 사람은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늘 감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미리 아시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아들의 형상, 곧 예수님의 성품을 닮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이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감사하도록 도우십니다. 일이 잘 안되어도 감사하게 하십니다. 일이 잘되어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최후 승리를 주실 것을 성령님은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한 사람은 현재의 상황과 형편이 어려울지라도 성령 안에서 감사하며 살게 되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환경은 우리에게 가장 최선의 것임을 믿으십시요. 모든 상황이 나빠보이고 실패처럼 보여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에 허락하신 줄 믿습니다.
현재의 어려운 상황은 나의 인격의 완성과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임을 알 때 우리는 범사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닥쳐도 항상 감사합시다. 감사하는 삶이 바로 성령충만한 삶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감사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감사는 질병을 낫게 합니다. 감사는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감사는 사단을 대적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범사에 성령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복종하는 삶입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굳은 마음을 가진 자들은 복종하지 못합니다. 순종과 복종의 차이는 순종은 이유가 타당할 때만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종은 그리스도 안에서 무조건 다른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것입니다. 21절을 보십시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성령충만한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피차 복종하는 삶을 삽니다.
엡5:22절,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엡 6:5.“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남편에게, 부모에게, 직장 상사에게 복종하며 사는 자가 성령충만한 자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는 질서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려면 질서와 권위가 존중되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가 자발적인 복종의 사람이 되도록 우리에게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권위자를 주십니다. 때로는 까다로운 상사를 붙여주십니다. 여러분에게 귄위자가 있다는 것은 영적인 축복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분들에게 순종할 수 있으면 여러분들은 자아가 죽고 성령충만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여러분이 권위자에게 반항하고 순종이 어렵다면 여러분은 자아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복종하지 않은 마음은 자아가 충만하여, 굳은 마음이요, 높은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빌 2:6-9)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의 뜻앞에 복종하고 섬김의 삶이 진리의 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섬기는 자가 아니라 섬김을 받으려 하면, 그래서 굳은 마음과 교만한 마음을 가지면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하나님의 뜻앞에 순종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퍅한 마음에서는 성령님께서 자유롭게 역사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내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임을 잊지 마십시오.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는 자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신 주님을 따라가는 자입니다. 우리안에 성령님을 여러 가지 환경과 사람을 통해 우리의 복종을 훈련하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우리에게 붙여주신 권위자들에게 자유롭게 복종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성령님의 훈련을 통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권위자에게 순종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무조건 우리의 마음이 굳고 교만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우리가 부드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권위자에게 무조건 순종할 수 있는 부드러운 마음이 바로 성령충만의 결과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령충만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우리의 모든 죄악을 회개하고 깨끗한 마음을 소유합시다. 하나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시길 소망하며 기도합시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과 능력으로 우리를 채워주시고 우리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쳐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채워지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충령충만한 삶을 살 때 우리는 항상 기뻐하며 시와 찬미로 하나님을 노래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피차 복종하며 은혜와 사랑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순종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