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지산 507m 강원 평창
산줄기 : 치악백덕수정단맥(수정산)
들머리 : 도돈리 은고개 생태마을
위 치 강원 평창군
높 이 507m
# 참고 산행기[사네드레]
평창 독지산(507m)
약수쉼터~모래재~정상~호랑바위~생태마을
참으로 묘하게 생긴 지형이다. 말발굽을 닮기도 하고 알파벳의 'W' 자를 휘갈겨 쓴 것 같기도 하다. 어찌보면 철없는 아이가 파란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린답시고 화선지를 망쳐놓은 것 같다. 이렇게 생긴 강이 있으면 바늘에 실 가듯 산세도 당연히 그렇게 생겼다.
독지산(추지산, 507m)이 그것이다. 평창의 물푸레산(수정산, 989.5m)을 모산으로 세귀양지산(694.5m)을 지나 모래재에서 잠시 숨을 돌려 뻗어난 산세는 독지산에서 두 가닥으로 나뉘어 평창강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 갈라진 산줄기 하나가 사람의 콧등처럼 길게 뻗어 '진등'과 '콧등베기'의 이마에 솟은 산이 독지산이다.
콧등베기 산행을 위해 신승하(평창읍사무소, 51세), 김장래(태백시청, 47세), 그리고 태백여성산악회 회원들인 권영희(47세), 전옥녀(44세), 최재란(41세)씨가 약수리 약수쉼터에 모였다.
콧등베기가 시작되는 약수쉼터에는 맥반석수가 흐른다. 이곳에서는 31번 국도와 평창강이 콧등베기를 끼고 나가는 끝머리에, 산행 날머리가 될 매화마을의 진등 위로 성필립보 생태마을 건물이 보인다. 평창강을 등에 지고 독지산 산행 들머리가 되는 약수쉼터를 떠난다.
'입탄가는 길' 푯말을 지나 북쪽 약수마을로 들어선다. "이 마을의 모든 물은 맥반석 층에서 용출되는 맥반석수입니다. 여기 물을 마시면 약이 된다고 하여 마을 이름이 약수리 아니겠습니까?" 평창읍사무소에 근무하는 신승하씨가 침이 마르도록 약수 자랑을 한다.
평창땅은 황토가 많은 고장인데 입탄리의 대문격인 모래재에 닿으니 이름 그대로 모든 흙이 마사토다. 이곳은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1592년 평창 권두문 태수가 응암굴 전투에서 왜군의 포로가 되어 원주까지 압송된 후 탈출을 하여 이 고갯마루에 이르러 평창을 바라보고 너무도 감격하여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한다. 그래서 주민들은 노래재라 한다.
실제로 평창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것이 노래가 저절로 나올 만큼 조망이 좋다. 골골 아침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평창강 어름에는 닭벼슬 같은 능선들이 불끈불끈 솟은 것이 계림(鷄林)을 방불케 한다.
실질적인 산행은 이곳부터 시작이다. 도로공사로 절벽이 된 모래재의 왼쪽 절개지로 올라선다. 독지산을 향하는 능선에는 멋들어진 노송들과 곧 터질 것만 같은 진달래나무의 진홍빛 꽃봉오리, 노오란 생강나무 꽃이 만개하고 있다. 올괴불나무 꽃은 유심히 보아야 눈에 띈다. 그러나 소나무 허리에 송진을 채취한 톱날의 흉칙한 자국들을 보니 가슴이 져민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은 석유가 생산되던 산유국을 미국에 점령당하게 되자 석유 대신 쓸 송진을 우리나라 땅에서 공출이란 명목으로 마구잡이로 수탈해간 물증인 것이다.
40여 분에 봉우리를 3개 넘으니 해발 436.4m되는 김치밭골과 독지골 안부다. 안부에는 입탄리 소동원, 소굴원 마을과 동쪽의 약수쉼터로 이어지는 옛길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안부에서 독지산 정상이 빤히 올려다보인다. 정확이 150m 거리이고 안부와 정상의 표고차는 높이 70.6m이니 경사각이 짐작이 간다. 길도 없는 된비알에 잡목을 헤치며 10분쯤 가니 정원석 같은 바위와 굴참나무, 뒤틀린 노송들이 들어찬 독지산 정상이다.
조망은 우선 남남서로 평창강 건너 대상리 노가리 마을이 뚜렷하고, 남남동쪽 소나무 가지 사이로 휘도는 평창강 모습이 어릿어릿하다.
하산은 경사가 부드러운 동쪽 능선으로 한다. 차츰 남남동으로 이어지는 나이프리지를 따라 조랑바위, 콧등베기를 거쳐 꽃기마을을 보고 아양정까지 산행할 생각이다. 정상에서 동릉 따라 400m쯤 거리의 안부에 이르니 생을 마감한 쓰러진 고사목이 길을 막아섰고, 영지버섯과 꽃뱀도 보인다.
이곳에서 능선은 남남동으로 서서히 휘어 가더니 호랑바위가 있는 440봉이다. 몇 그루의 노송을 머리에 이고 아찔한 절벽 끝에 매달려 있는 호랑바위 모습도 일품이지만 노송의 밑둥을 끌어안고 절벽 아래를 슬그머니 내려다보는 경치는 입을 함박 벌리게 한다.
예천 용궁면 대은리의 회룡포, 영월 북쌍리의 물도리, 정선 백운산에서 본 동강, 병방산 상장바위산에서 본 조양강 등 우리나라에서 내노라 하는 유명한 물도리 지형들이 여기를 보고 울고 가겠다.
경치는 산행을 하면서 보기로 하고 호랑바위를 떠난다. 이제는 고만고만한 높이의 콧등베기 능선에는 뒤틀린 소나무가 빼곡하고 사람의 흔적이 없는 소나무 아래는 키 작은 진달래나무 가지들이 얼굴을 때리고 할퀸다.
산짐승이 다닌 족적을 따라 걷는다. 고라니 배설물이 수북히 쌓여 있다.
"어! 평창 사람들은 인진쑥으로 만든 환약을 여기다 버려놓고 갔네. 아까운 것들..."
김장래씨의 농담을 받아 권영희씨는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 노래를 부른다.
감미로운 훈풍이 얼굴을 스친다. 오른족 발 아래로는 진바리 마을과 꽃기 마을이 따르고, 동으로는 천동리 마을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사방으로 강물이 넘실거린다. 어디서 어떻게 어디로 흐르는지 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봄꿈을 꾸는 듯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며 비틀거리며 자그마한 봉우리를 다섯 개나 넘으니 산불감시초소에 삼각점이 있는 430.5m봉이다. 여기를 내려선 안부에서 지금가지 산행한 콧등베기 능선을 여기서 이별하고 오른쪽 묘 잔등을 지나 꽃기 마을로 내려선다.
조용한 마을길과 밭뚝에는 멍이씀바귀, 머위 등의 봄나물이 쫘악 깔렸다. 도돈초등학교 옆길을 지나 31번 국도를 건너 매화마을 가는 포장길로 접어들어 한구비 돌아 산마루 등에 올라선다.
오른쪽 오솔길로 잠시 내려가니 아양정이다. 안전 시설이 없어 잘못하다간 적벽강(평창강)의 고기밥이 되겠다. 아양정에 앉아 옥녀봉을 건너다보며 시 한 수 읊고 산마루 진등까지 되돌아나와 큰길을 곧장 건너 성필립보 생태마을에 닿았다.
조망이 뛰어나다. 지금까지 산행한 독지산, 콧등베기, 그리고 평창강과 평창읍을 한눈에 바라보며 꿈같은 산행을 끝낸다.
*산행길잡이
약수쉼터-(30분)-모래재-(50분)-정상-(30분)-호랑바위-(30분)-산불감시초소-(35분)-아양정-(10분)-생태마을
산행들머리가 되는 약수쉼터에는 '약수리장 최정익 공덕기념비'가 놓여 있다. 31번 국도변에 이정표(진부 54km, 평창 4km, 제천 50km, 영월 29km)가 있다. 쉼터에서 북으로 약수리를 지나 입탄리 마을로 넘어가는 모래재를 찾아간다. 모래재에서 왼쪽 절개지로 올라 3개의 봉우리를 넘으면 독지산 급경사 오르기 전 안부다.
정상에는 능선이 남쪽으로 하나, 동쪽으로 하나가 뻗어 있다. 하산 때는 방향 감각을 잃지 말고 동쪽 능선으로 내려서야 한다. 또한 호랑바위 경치에 도취되어 실족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아양정 가는 길은 마을에 물어서 가는게 좋다.
*교통
평창버스터미널(033-332-2407)에서 영월, 천등, 주천, 마지, 대하리헹 버스를 타고 약수쉼터에서 내린다. 영월, 제천행 버스가 07:55~20:28에 하루 13회 있다. 영월행 시내버스는 10:00, 13:00, 16:00, 18:00에 있고, 주천행은 대하리 경유 06:40, 07:30, 10:00, 12:30, 14:40, 16:48, 18:30에 있다. 마지행 시내버스는 06:30, 09:10, 12:55, 17:30에 있다.
그밖에 평창 개인택시 사무실 033-333-4000, 고영배 개인택시 016-9331-2306, 전원석 개인택시 011-373-2493가 있다.
*잘 데와 먹을 데
약수리 느티나무가든(033-332-2847), 약수리 모래재 입구 송이나라(334-1954), 성필립보 생태마을(333-8066, 334-3411), 대하리 옥녀봉 아래 솔내음향토민박(333-4748), 평창읍터미널 앞 종부다리에 있는 너골뱅이? 나해장국!(333-8535). 잘 데는 평창읍 살구실 입구의 청성애원(332-0350), 노성장회관(333-4662), 백오파크(333-4748) 등이 있다.
먹러리는 평창 시내에 있는 산초두부전문(332-2363)이 별미며, 산행 먹거리 구입은 평창터미널 옆 영진슈퍼(332-2717)를 이용한다.
보다 상세한 산행문의는 평창읍사무소에 근무하는 신승하씨(018-337-9635)에게 연락하면 알 수 있다.
참고: 월간<사람과산> 200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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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벗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