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여인숙에서
송경동
사랑을 잃고
가을바람에 날리는 거리의 검정
비닐처럼
길을 헤매다
하루 저녁
어느 낯선,
외등
하얀,
오래된 여인숙
명부에
가늘어진 이름 석 자
다소곳이 적어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생수 한 병 요쿠르트 하나 수건 한 장
받아들고 들어가
깨진 벽 유리처럼 구겨진
커튼처럼
녹슨 창살처럼 벽지무늬가 다른 네
벽처럼
우두커니 섰다가,
한순간
무너져
때 탄 이불보로 입막고
흐느껴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씨팔년 더러운 년 나쁜 년 치사한 년 퉤퉤
하며
마지막 자위를 해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삶이 왜 잠깐
들렸다 가는 여인숙처럼 미련 없는 것이어야
하는지를
세상이 왜 아무도 가져갈 것 없이
다만
잠시 쉬었다 가는 여인숙 같은 것이어야
하는지를
왜 또 저 하늘에는 저렇듯 많은 정거장들이
빛나고 있는지를
비루한 여인숙
가끔은 어느 절간이나
성당보다
더 갸륵하고 평온한
내 영혼의 안식처
이 세상의 여행자 숙소로는 여인숙과
여관과 모텔과 호텔 들이 있을 것이다.
이 여행자의
숙소마저도 계급과 서열이 있고,
이 계급과 서열에
따라서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출신성분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된다.
여인숙은 최하천민인
떠돌이--나그네들(부랑자들)이 잠을 자는 곳이고,
여관과 모텔은
중간계급의 사람들이,
그리고 호텔은 상류
사회의 사람들이 잠을 자는 곳이다.
송경동 시인의 ‘오래된 여인숙’은 “사랑을 잃고/
가을바람에 날리는
거리의 검정 비닐처럼/
길을”
헤매던 부랑자들이
잠을 자는 곳이고,
“생수 한 병
요쿠르트 하나 수건 한 장 받아들고 들어가/
깨진 벽 유리처럼
구겨진 커튼처럼/
녹슨 창살처럼
벽지무늬가 다른 네 벽처럼/
우두커니
섰다가,
한순간
무너져/
때 탄 이불보로
입막고/
흐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더럽고
추한 심정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랑을 얻은 사람은
삶의 상승기류를 타고 이 세상의 그 모든 곳으로 여행을 다닐 수도 있지만,
그러나 사랑을 잃고
가을바람에 날리는 검정비닐처럼 떠돌아 다니는 사람에게는 그 모든 가능성이 다 막혀버리고,
“깨진 벽 유리처럼
구겨진 커튼처럼/
녹슨 창살처럼
벽지무늬가 다른 네 벽처럼/
우두커니
섰다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이
세상의 삶의 낙오자에 지나지 않게 된다.
“씨팔년 더러운 년
나쁜 년 치사한 년 퉤퉤 하며/
마지막 자위를
해보지”만,
그러나 이빨이 없는
독설은 그 어느 누구도 물어뜯지를 못한다.
사랑은 돈을 좋아하고,
돈은 명예를
좋아하고,
명예는 권력을
좋아한다.
사랑은 가난한
자들,
즉,
사회적 천민들을
교수형에 처할 범죄자로 몰아넣고,
사랑은 돈과 명예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줄세워 놓고,
그리고 그들과
함께,
달콤하고 맛있는 잠이
쏟아지는 호텔로 들어간다.
이에
반하여,
돈과 명예와 권력이
없는 사람들,
즉,
사회적 부랑자들은 그
모든 사랑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이 세상의 최후의
종착역과도 같은 여인숙으로 들어가게 된다.
인간은 평등하지만,
계급과 서열은
끊임없는 불평등과 차별을 생산해낸다.
부자와 가난한
자,
극단적인 사치와
극단적인 빈곤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쫙 갈라져 있지만,
아무튼 사랑은 계급과
서열을 좋아하고,
사회적 부랑자와
싸구려 여인숙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회적 부랑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은 이 세계가 가장 나쁜 곳이고,
삶이란 싸구려
여인숙에서 잠시 잠깐 쉬었다가 가는 찰나와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는 그
어떤 미련도 없고 가져갈 것도 없지만,
그러나 이 허무하고
부질없는 삶은 자본주의 사회가 끊임없이 되풀이 재생산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 또 저 하늘에는
저렇듯 많은 정거장들이 빛나고 있는지”라는 시구는 모든 별들과 별들이 우주여행의
싸구려 여인숙과도 같다는 것을 뜻하고,
송경동 시인의
허무주의와 패배주의는 이 세상과 우주를 온통 까만 어둠과 절망으로 색칠해 놓는다.
비루한 인생의 비루한
여인숙,
그러나 송경동
시인에게 있어서는 이 ‘오래된 여인숙’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절간이나
성당보다/
더 갸륵하고
평온한”
잠을 잘 수가 있었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여인숙,
최초의 출발역이자
최후의 종착역인 오래된 여인숙!!
송경동 시인의 ‘오래된 여인숙’은 이 세상의 떠돌이--나그네들의 영혼의 안식처이자 이 지구별에서의
영원한 성당이라고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