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글은
2017년 8월 23일 포스팅하였습니다.
창조의 빛과 어둠은 어둠의 빛이 말하듯
낮과 밤의 조화를 이루는 창조 질서입니다.
빛의 그림자라는 말에서
빛과 어둠의 대립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어둠은 빛의 이면이요,
그 빛의 배경으로 어둠은 우주적 조화의 극치입니다.
그러나 삶의 현상에서 빛과 어둠은 그 속성을 따라서
빛은 선이요, 어둠은 악으로 묘사되었습니다.
☞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시37:5-6)
☞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시107:10-12)
☞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시로다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시112:4-5)
☞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잠4:18-19)
☞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잠6:23)
☞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9:2)
☞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사30:26)
☞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사50:10)
☞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미7:8-9)
☞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곡식은 청년을, 새 포도주는 처녀를 강건하게 하리라(슥9:16-17)
☞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13:43)
☞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이렇게 하늘은 공의의 빛을 뿌리고
땅은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며 공의를 움돋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사역입니다.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는 말씀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임한 종말론적인 묵시입니다.
창조 질서의 빛과 어둠은 우주적 창조의 조화이지만
삶의 현상으로서의 빛과 어둠은 선과 악의 대립이요,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역사를 이루는 사역이 되었습니다.
피아노의 건반은 흑건과 백건의 조화로운 선율을 예술의 빛으로 만들어 내지만
바둑의 흑돌과 백돌은 천하대권의 판세를 다툽니다.
바둑의 착수는 신의 한 수라는 그 절묘한 수로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갈등과 대립의 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둑의 기술자는 양보의 미덕이나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는 말씀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
빛과 어둠, 백과 흑의 조화와 갈등은
백로와 까마귀에서 그 절정의 미학을 보입니다.
백로와 까마귀는 서로 갈등과 대립을 하지 않고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조화로운 생태 환경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백로와 까마귀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은
그 대립적 삶의 현상을 백로와 까마귀에 투영합니다.
백로와 까마귀에 투영된 시를 살펴보면
지연의 조화에 대립과 갈등을 주입시켰습니다.
조선 태종 때 이직의 시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겉희고 속검은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정몽주 모친의 시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빛을 샘낼까 염려된다
맑은 물에 기껏 씻음 몸 더럽힐까 하노라
조선 광해군 선오당 이시(李蒔 )의 시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희고 힌 것에 검은 때 묻힐세라
진실로 검은 때 씻을 길이 없어라
백로와 까마귀에 대한 시정은
한결같이 조화보다는 대림과 갈등을 묘사하였습니다.
어쩌면 까마귀 무리에 백로가 섞여 살 수 없고
백로의 무리에 까마귀가 섞여 살 수 없다는 격언과 같은 시입니다.
어쨌던 우리 시대 백로와 까마귀는 존재하고
작금의 탄핵 반란은 합법을 가장한 권력찬탈에 안성맞춤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모의 역린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선진화를 이루는 마지막 관문인 사법화를 이루는 마지노선의 능선을 넘으면서
살신성인의 그 한 수 가 되었습니다.
서청대의 박근혜 대통령은 역모의 역린으로 살신성인의 길을 걸으며
선진화를 이루는 사법화의 십자가를 졌습니다.
사법개혁을 16년 동안 부르짖으며 헌신하였던 헌법수호대 곽여호수아 대표는
허준 선생 TV와 2시간 동안의 인터뷰를 하면서 사법부의 반란을 질타하였습니다.
여호수아, 그 이름이 말해주듯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가나안을 정복한 여호수아의 정의를 가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22번의 신청을 하였고
22번째 당첨되어 재판을 관청하였습니다.
모든 재판의 심리가 끝나고 일반 재판정과 거꾸로 피고가 먼저 자리를 떠나고 방청객이 떠나는 자리에서
8명의 검사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서는 조용히 외쳤습니다.
검사들... 당신들은 당신들이 말한 그대로 증인과 국민의 마음 속 욕망을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으니까
헌법 84조를 깨고 반란을 일으킬 욕망을 품었으므로 너희들은 모두 총살이야!
말이 끝나자 말자 경위에게 끌려 나갔고 끌려 나가면서 판사에게 감치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하여
그 요청이 받아들여져서 감치 재판을 받고 5일 동안 서울 구치소에 갇혔습니다.
헌법수호대 대표는 재판을 받으면서 헌법 84조를 깨뜨리고
내우외환의 죄가 아닌 뇌물과 강요와 직권 남용의 형사재판은 여기에 가담한 검사들은
모두 헌법에 따라 총살을 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헌법수호대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탄핵과 헌법 재판소의 파면과 구속과 재판은
불법과 위헌의 원인무효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서울구치소를 서울 기도원이라 부르면서 수감된 그 5일 동안 성경을 읽고
박근혜 대통령의 원인무효를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동안 방송과 언론이 제기한 그 모든 기사는
거의 대부분 허위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국회는 언론의 허위 기사로 탄핵을 소추하였고 언론의 거짓 기사로 기소한 특검은
스스로가 언론의 기사가 거짓이라는 것을 입증하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엉터리 소추안을 불법적으로 수정하였고
그 수정한 내용으로도 탄핵 인용을 결정할 수 없자 헌법수호의 의지가 없고
기업권리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대통령을 파면한다고 위헌적으로 선고하였습니다.
헌법 84조에 근거하여 대통령은 재직시 내우와환의 죄를 범하지 않고는
형사 소추를 받지 않는 다는 헌법을 위반하여국회와 특검과 헌법재판소가 위헌과 불법적으로
탄핵하고 기소하고 파면하였습니다.
언론과 방송의 거짓 보도, 국회의 불법 탄핵, 검찰의 불법 기소, 헌재의 위헌 선고 등
백로와 대척지점에 있는 까마귀들이 떼법으로 백로를 몰아냈습니다.
언론과 방송의 반란은 민주노총을 압박한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대한 반동과
그 산하에 있는 언론 노조가 김영란법의 통과로 검은 커넥션이 모두 끊어져
일제히 가짜 뉴스를 도배하며 거짓 언론과 방송을 주도적으로 왜곡 날조하여 보도하였습니다.
국회는 의원내각제 세력이 단합하여 대통령 중심제에서 의원내각제로 개헌하기 위해
당시 야당 국회의원과 협작하여 거짓 언론과 방송의 기사를 근거하여 불법적으로 탄핵하였습니다.
특검과 헌재 등은 국회의 탄핵에 동조하여 우파와 좌파의 사법부 사조직을 총동원하여
불법적 기소와 위헌적 파면을 선고하였습니다.
여기에 문화권력과 불량스런 사이비 헌법 농단자를 내세워
민주주의의 타락인 중우정치를 실현하여 광화문 광장의 촛불 해학을 만들었습니다.
어느 한순간 자유 대한민국은 까마귀 떼로 어두워졌으며
그 반동으로 일어난 태극기 휘날리는 바람은 계절의 봄을 맞지 못하고 백로의 긴 겨울을 맞았습니다.
적폐지대의 썩은 물은 백로의 서식처가 되지 못하였고
서청대의 청와새가 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어 선진화의 마지막 길목인 사법화를 이루기 위해
그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살신성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백로의 그림자가 된 태극기 휘날리는 바람은
마지막 능선의 아리랑 고개를 눈물로 애국의 골짜기를 이루며 넘어가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뒤집어 쓴 그 모든 죄는
사실상 모두 까마귀 떼의 오물입니다.
까마귀 떼의 오물로 뒤덮힌 삼천리 금수강산은
때가 되면 적성지대의 적폐를 청산하고 진실과 정의를 세울 것입니다.
백로의 날개깃에 가득 뒤덮힌 까마귀 떼의 오물은
위록지마의 적폐지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외로운 싸움으로 진실과 정의와 애국의 투쟁을 하는 서청대의 백로는
대한의 노아 방주, 그 대한 애국당의 적벽대전으로 승리할 것입니다.
사법부 사조직의 탐욕적 타락은 자유 대한의 적폐 세력이요,
헌법에 때라 총살되어야 한다는 그 외침은 자유와 정의와 애국이 살아있는 자유 통일의 깃발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대도 아직 언론과 방송의 개 돼지로 살아 가는 보통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까마귀 의식에서 깨어나지 못하나 정말 어찌할 것인가!
까마귀 떼의 오물로 살아가는 적폐세력은
백로의 은빛 날개짓을 할 때 그 적색 광풍은 완전 소멸될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세월에 묻힌 진실은 먹구름 뒤에 빛나고
거짓의 진실은 어둠을 밝히지 못하였습니다.
백로와 까마귀는 서로 대립하지 않고 창조의 질서를 따라 조화롭게 살지만
그 백로와 까마귀를 바로보는 인간의 마음은 인지부조화의 대립과 갈등의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편향된 시선의 백로와 까마귀, 그 차별의 벽을 넘어서
조화와 상생의 길을 찾는 인생의 연금술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