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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성산(聖山) 백두산(白頭山, 長白山) 1.> 3편 中 고영화(高永和)
백두산(白頭山)은 우리나라 함경남도·함경북도와 중국 동북지방(滿洲)의 길림성(吉林省)이 접하는 국경에 걸쳐 있는 우리나라에서 최고 높은 산으로, 높이 2,744m(중국 측 발표는 2,749.6m)이다. 중국에서는 장백산(長白山)이라 부른다. 산의 북쪽으로는 장백산맥(長白山脈)이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달리고 있으며, 백두산을 정점으로 동남쪽으로는 마천령산맥(摩天嶺山脈)의 대연지봉(大臙脂峰, 2,360m), 간백산(間白山, 2,164m), 소백산(小白山, 2,174m), 북포태산(北胞胎山, 2,289m), 남포태산(南胞胎山, 2,435m), 백사봉(白沙峰, 2,099m) 등 2,000m 이상의 연봉(連峰)을 이루면서 종단하고 있다. 북한지역에는 2000m가 넘는 산이 총 20개가 넘는다.
남한 최고봉 한라산(1950m)은 우리나라에서 22번째 쯤 높은 산이다. 2번째는 공식적으로 함경북도 경성군 주을읍과 무산군 연사면에 걸쳐 있는 관모봉(2,541m) 이다.
백두산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높이 2,500m 이상의 산봉이 16개가 있다. 이 산봉들의 명칭이 우리 문헌에는 병사봉을 비롯하여 망천후(望天吼), 비류봉(沸流峰), 백암산(白巖山), 차일봉(遮日峰), 층암산(層巖山), 마천우(麻天隅) 등만 밝혀져 있다. 중국 문헌에 의하면 백두산의 최고봉인 백두봉(우리나라에서는 병사봉, 또는 장군봉으로 칭한다)을 비롯하여 삼기봉(三奇峰), 고준봉(孤準峰), 자하봉(紫霞峰), 화개봉(華蓋峰), 철벽봉(鐵壁峰), 천활봉(天豁峰), 용문봉(龍門峰), 관일봉(觀日峰), 금병봉(錦屛峰), 지반봉(芝盤峰), 백운봉(白雲峰), 옥주봉(玉柱峰), 제운봉(梯雲峰), 와호봉(臥虎峰), 관면봉(冠冕峰) 등의 명칭으로 되어 있다. 이 중 최고봉인 병사봉(兵使峰)은 조선 영조 때 윤광신(尹光莘)이라는 인물에서 비롯된 명칭이라고 한다. 편자 미상의〈쇄편류초(瑣編類抄)〉에 의하면 “윤병사 광신이 일찍이 함경도절도사가 되었을 때 백두산 상상봉에 올라가 천지를 임하여 창을 들고 춤을 추어, 지금까지 사람들이 병사봉이라고 일컫는다(尹兵使 光莘, 嘗爲北道節度使, 上白頭山絶頂, 臨天池舞槍, 至今人稱兵使峰).”라고 분명히 밝혀 놓았다.
백두산에는 우리 민족뿐 아니라, 북방의 여러 민족의 발상설화도 얽혀 있다. 청나라에서는 자기들의 조상인 애친각라(愛親覺羅)의 발상지라 하여 숭상하여, 1677년에는 대신 각라식목눌(覺羅式穆訥)을 파견하여 백두산을 탐사하였으며, 1684년에는 장백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옹정제(雍正帝) 이후는 길림장군(吉林將軍)의 관리하에 춘추로 중월(仲月)에 제사를 지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백두산은 단순한 산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 배달겨레의 가슴마다 깊숙이 아로새겨 존재하는 민족의 영산이요, 국토의 성역(聖域)이요, 통일된 신앙이다.
단군왕검으로 줄잇는 민족의 생명이 이곳에서 시원하고, 바다 멀리 제주도·울릉도까지도 국토의 맥이 이곳으로 줄닿고, 민족 역사의 뿌리가 이곳에 터잡고 있음을 믿어 왔기 때문에, 반만 년 애환의 역사 속에서도 우리 민족이면 누구나 면면히 동경의 성산(聖山)으로 숭상하여 온 것이다.
역대 우리나라 한시 속에 나타난 백두산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으나 몇 작품만 보면 고려시대 이색(李穡)의 ‘송동북면한만호득월자(送東北面韓萬戶得月字)’라는 시제 속에 “솟아오른 장백산과 험준한 철령관이 수천 리에 가로놓여 있으니 하늘이 만든 험한 땅이라 가히 넘나들 수 없다…(長白山穹窿 嶺關峰山 岏亘幾千里 天險不可越……)”라는 한시가 있다.
1) 장백산[長白山] / 이원손(李元孫 1498∼1554)
春盡雪猶在 봄의 끝자락에도 아직 눈이 남아 있는데
不秋添新白 가을이 아닌데도 흰 눈이 새로이 내리네.
凌凌蔽天多 하늘 가득 덮은 구름 속 쌀쌀한 날씨 속에
邊城日易夕 변방 지역에는 날이 쉬이 저물어 간다네.
2) 장백산을 바라보며[望長白山] 압록강은 이 산에서 발원한다(鴨綠江 發源于此山) 1537년(丁酉) / 심언광(沈彦光 1487∼1540)
蒼壁無梯土不毛 푸른 암벽으론 오를 수 없고 땅에는 식물이 자랄 수 없으며
層巒襟帶入靑霄 층층 산이 옷깃처럼 둘러 푸른 하늘 사이에 끼여 있다.
偏驚漠北寒涼地 서늘하고 차가운 북쪽의 드넓은 땅에 새삼 놀라는데
五月胡山雪未消 오월의 오랑캐 산에는 아직도 눈이 남아있다네.
山勢蜿蜒控海門 구불구불한 산세에 해문(海門)이 바로 보이는데
直衝朝竇礙行雲 곧바로 향한 좁은 문이라 지나가는 구름도 꺼려한다.
天公設險寧無意 하느님이 어찌 의미 없이 험한 곳을 만들었으랴
政爲華夷境界分 중국과 오랑캐의 경계로 구분해 다스리기 위해서겠지.
雪嶽千層白半邊 눈 덮인 천 층의 산들이 변방을 온통 흰빛인데
地分華夏隔腥羶 중국과 영토가 나뉜 곳에 오랑캐 냄새가 난다.
強胡往往來馳突 종종 무지막지한 오랑캐가 세차게 달려오기도 하니
尙恨山高未接天 높은 산이 하늘에 맞닿지 못해 도리어 아쉬워라.
3) 주온보(朱溫堡)로 가는 도중에 장백산(長白山)을 바라보다. / 김성일(金誠一 1538∼1593)
卓立浮雲外 우뚝하니 뜬구름 밖 솟아 있어서
層巒咫尺臨 묏부리가 눈앞 바짝 다가서누나
分疆雄塞障 경계 나눠 변새 보장(保障) 웅대케 했고
設險鎭戎心 장벽 되어 오랑캐들 마음 눌렀네
古戍鴉初集 옛 둔영에 까마귀들 모여드는데
荒城日欲陰 황량한 성엔 날이 흐리려 하네
輿圖曾想見 우리 강토 내 일찍이 상상하다가
面目此重尋 참모습을 내 이번에 다시 찾았네
4) 경성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인 영강 도중에 장백산을 바라보며[自鏡城回程 永康途中 望長白山] / 박영원(朴永元 1791∼1854)
長白山可挹 장백산에는 물을 길을 수가 있으니
莾蒼淡黛浮 푸른 풀숲이 우거지고 맑고 검푸른 물이 넘친다.
若使窮源去 만약 물의 근원을 찾아 나섰다면
到頭是白頭 여기 백두산 꼭대기에 이르리라.
<민족의 성산(聖山) 백두산(白頭山, 長白山) 2.> 3편 中 고영화(高永和)
백두산의 이름은 먼 옛날부터 여러 가지로 불리어 왔다. 중국 역사책 청사고 조선열전(淸史稿 朝鮮列傳)편 문헌에 의하면, 최초의 이름은 불함산으로 《산해경(山海經)》의 〈대황북경(大荒北經)〉에 “넓은 황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불함산(不咸山)이라고 이름한다. 숙신 땅에 속한다(大荒之中有山 名曰不咸 有肅愼氏之國).”라고 기재되어 있다. ‘불함’에 대하여 최남선(崔南善)은 ‘’의 역음으로 보고 그 뜻을 천주(天主)인 신명(神明)으로 해석했다. 또한 중국에서는 몽고족의 ‘불이간(不爾干)’, 곧 신무(神巫)의 뜻으로 보아 백두산에 신이 있다는 데서 연원한 것으로 보았다. 양측의 해석이 모두 ‘신(神)’으로 보는 공통점이 있다.
한대(漢代)에는 백두산을 ‘단단대령(單單大嶺)’이라고 부른 바 있으며 남북조의 위(魏)시대에는 ‘개마대산(蓋馬大山)’이라 하였고 또는 ‘도태산(徒太山)·태백산(太白山)’이라 불렀다. 《북사(北史)》에 “말갈국 남쪽에 종태산이 있는데, 중국말로 태황이라 하며, 세상 사람들은 이 산을 받들어 모셨다. 사람들은 산상에서 오줌을 누어 더럽힐 수 없다 하여, 산에 오르는 자는 용변을 본 뒤 그릇에 담아갔다. 산에는 곰·범·이리가 있는데 모두 사람을 해하지 않고, 사람 역시 감히 죽이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위서(魏書)》와 《수서(隋書)》에 모두 도태산(徒太山)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북사》의 종태산(從太山)은 도태산의 오자일 것이다. 당나라 때는 태백산이라 불렀고, 금(金)나라 때에 이르러 장백산(長白山) 또는 백산(白山)이라 불렀다.
우리나라의 기록으로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고조선조에 백두산을 ‘태백산(太伯山)’이라 칭하였다. 또한 《고려사(高麗史)》의 광종 10년조에 “압록강밖의 여진족을 쫓아내어, 백두산 바깥쪽에서 살게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백두산’이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처음으로 문헌에 나타난다. 백두산의 명칭은 불함산으로부터 시작하여, 단단대령·개마대산·도태산·태백산·백산·장백산·백두산 등으로 불리어왔으나, 한대 이후 불리어진 명칭의 공통점은 백(白), 즉 희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백(白)을 굳이 ‘’의 차음(借音)으로 보고 있으나, 백두산의 모습으로 보아 그대로 백(白)자 자체의 뜻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백두산 산정은 거의 사계절 동안 백설로 덮여 있을 뿐 아니라, 산정부는 백색의 부석(浮石)으로 이루어져 있어 눈〔雪〕이 아니더라도 희게 보이는 데서 그 이름을 취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기록에 따르면,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장백산과 백두산 2가지로 불렀다.
백두산은 산세가 장엄하고 자원이 풍부하여 일찍이 한민족(韓民族)의 발상지로, 또 개국(開國)의 터전으로 숭배되어 왔던 민족의 영산(靈山)이었다.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수난을 같이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고, 천지(天池)를 비롯한 절경이 많은데다가 독특한 생태적 환경과 풍부한 삼림자원이 있어 세계적인 관광의 명소로서 새로이 주목을 받고 있는 산이다.
5) 장백산을 바라보며[望長白山] / 신익상(申翼相 1634∼1697)
東臨滄海千層浪 동쪽 창해(滄海)엔 천 층 파랑이요
北望胡天萬古雲 북쪽 오랑캐 하늘엔 만고의 구름일세
長白山頭橫勁氣 장백산 꼭대기에 굳센 기운 가로지르니
携來堪作袖中文 손잡고 올라와 소매 속에 문장 짓노라
長白山從大漠來 한없이 넓은 산맥을 쫓아온 장백산은
半天愁色雪崔嵬 하늘에 솟은 눈 봉우리에 우뚝하니 수심 가득하네.
安能抻我垂雲翼 드리운 구름에 날개 달아 어찌 나를 끌 수만 있다면
一蹴便登上上臺 단 한 번의 발길로 높은 대에 편히 올라가리라
6) 망 백두산[望白頭山] / 김광현(金光炫 1584∼1647)
西登長嶺上 서쪽 장령 위로 올라가
北望白頭山 북쪽 백두산을 바라본다.
磅礴雲霄裏 기세가 드높은 구름 하늘 속
陂陀莽蒼間 험준하고 아득한 푸른빛 사이에 서있네.
根盤迷界限 뫼 뿌리가 땅의 경계를 분간할 수 없고
勢大隘區寰 대단한 형세가 온 누리에 가득하다.
五嶽看丘垤 오악(五嶽)의 명산을 작은 언덕에서 바라보며
崑崙莫是班 곤륜산이 여기 늘여있다 말하지 말지어다.
[주] 곤륜산(崑崙山) : 중국 절강성에 있는 산으로, 옥이 많이 나오며 불사(不死)의 선녀 서왕모가 산다는 서방의 낙토(樂土).
7) 장령에 올라 백두산을 바라보며[登長嶺 望白頭山] / 민제인(閔齊仁 1493∼1549)
晴登長嶺上 맑은 날 장령 위로 올라가
一望白頭山 백두산을 한 눈에 바라본다.
骨立層霄外 높은 하늘 밖에 우뚝 솟아
支分大地間 대지 사이에 나누듯 서있네.
江源南北出 강의 발원이 남북에서 시작되는데
雪色古今閑 눈의 색은 예나 지금이나 한가롭다.
安得騰身去 어찌하면 내가 뛰듯 날아 올라가
胡氛掃却還 오랑캐 기운을 다시 쓸어버릴 수 있을까
8) 백두산 이야기를 듣고[聽人談白頭山] / 이재(李縡 1680∼1746)
壯覿憑君得快論 그대에게 백두산의 장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白頭勢欲敵崐崙 백두산의 형세가 곤륜산과 대적할 만하다 여겼다.
北蟠大陸無天地 대륙의 북녘에 빙 두른 천지가 무슨 소용이람
東走千山若子孫 동쪽으로 수많은 산들이 자손처럼 뻗어있으니
緩嶺細開三水路 완만한 고개에는 세 갈래 물길이 가늘게 열려 있고
深淵遙發二江源 깊은 못에서 두 강의 발원이 시작된다네.
明朝試上南峰望 내일 아침에 올라가 남쪽 봉우리를 바라보니
積氣中間目力昏 중간에 쌓인 기운에 시력이 혼미했다네.
<민족의 성산(聖山) 백두산(白頭山, 長白山) 3.> 3편 中
장백산(長白山)에 관하여 이주전(李澍田)의 주편(主編) 『장백총서(長白叢書)』에서 말하길, “겨울 여름 사철 눈이 쌓여 있어 바라보면 이상하게 흰색이라, 고로 장백산이라 불렀다. 가운데 천지 못이 있고 못을 빙 둘러 기이한 봉우리가 많다. 큰 봉우(大峰)리가 6개 있는데 ‘백운 관면 백두 삼기 천활 지반’이라 일컫는다.(冬夏積雪 四時望之 色白異常 故名曰長白 中有天池 環池多奇峰 大者有六 曰白雲 曰冠冕 曰白頭 曰三奇 曰天豁 曰芝盤) (『長白叢書』吉林文史出版社 1981)”하였다. 장백(長白)이란 의미는 “해마다 쌓인 눈 위에 초목이 살 수 없어 보이는 건 모두 흰빛이다. 고로 장백산이라 칭한다.(山上經年積雪 草木不生 望之皆白 故名長白山)”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백두산(白頭山)이란 백두봉(白頭峰)을 지칭(指稱)한 것이다. 즉, 유건봉찬(劉建封撰)의 『장백산강강지략(長白山江崗志略)』에도 “장백산을 조선에서 백두산이라 한다. 참으로 남쪽에서 온 한인(韓人)은 보자마자 ’백두봉‘이라 하고, 마침 북쪽에서 온 자는 ’백운봉‘이라 하더니 동쪽에서 온 자는 ’천활봉‘이라 부른다.(長白山 朝鮮呼爲白頭山 誠以韓人自南來先見白頭峰 猶之自北來者先見白雲峰 自東來者先見天豁峰耳)”라 한 것으로 보아 백두산(白頭山)이라 부르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전체 산을 장백산이라 부르고 각각 봉우리를 ‘백운봉 관면봉 백두봉 삼기봉 천활봉 지반봉’이라 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백두산의 최고봉을 백두봉(白頭峰)이라 부르면서 전체 산도 백두산이라 일컬었음을 알 수 있다.
● 실학자 성해응(成海應)은 백두산의 다른 이름이 많다고 하면서 불함, 장백 외에 태백(太白), 도백(徒白), 개마(盖馬) 가이민상견아린(歌爾民商堅阿鄰), 백산(白山) 등을 언급하고 있다. 영의정 이유원(李裕元)도 『임하필기(林下筆記)』제32권, 백두산조에서 “옛날 이름은 불함산(不咸山)이다. 중국 사람들은 장백(長白)이라 부르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백두(白頭)라 부르는데, 산이 매우 높아 사계절 내내 얼음과 눈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古名不咸山, 中國人謂之長白, 東方人謂之白頭, 盖山極高, 四時長氷雪故名)”이라 하며 거의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홍세태(洪世泰 1653~1725)의 백두산 기문에 이르기를, “백두산은 북방 모든 산의 조종(祖宗)이다. 청조(淸朝)의 선조(先祖)가 여기에서 일어났으니 우리의 북쪽 국경에서 300여 리 쯤 되는 곳이다. 저들은 장백산(長白山)이라 하고 우리는 백두산이라 하는데, 두 나라가 산 위에서 갈라진 두 강으로 경계를 삼는다. 그러나 지역이 멀고 거칠어서 상세한 것을 알 수 없었다.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일찍이 전씨(田氏)란 손님이 와서 말하기를, “국내의 산천은 두루 다녀서 아무리 깊은 데라도 가지 않은 곳이 없다. 일찍이 백두산 절정에 올라가 보니 무산(茂山)에서 멀지 않더라.” 하면서 나에게 자세히 말해주었다. 상고해 보건대 《여지승람(輿地勝覽)》에, “백두산은 회령부(會寧府) 서쪽에 있으니 7~8일 길의 거리다. 이 절정에 못이 있는데 남으로 흐르는 것은 압록강(鴨綠江)이 되고, 북으로 흐르는 것은 송화강(松花江)과 혼동강(混同江)이 되고, 동북으로 흐르는 것은 소하강(蘇下江)과 속평강(速平江)이 되고, 동으로 흐르는 것은 두만강(豆滿江)이 되었다.”고 하였다.
김정호(金正浩)는 그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해설문에서 백두산에 대해 “산줄기가 요동 들판을 가로지르며 일어나 백두산이 되니, 이 산은 조선 산맥의 한아비라, 산에 삼층이 있는데, 그 높이는 200리가 되고, 넓이는 1,000리에 걸쳐 있다. 그 꼭대기에 못이 있으니, 이름을 달문이라고 한다. 둘레가 800리로서 남으로 흘러 압록강이 되고, 동으로 나뉘어 두만강이 된다. 백두산은 분수령 남북으로 길게 뻗쳐 연지봉·소백산·설한등령·철령 등에 걸쳐 있거니와 한 가닥이 동남으로 내달으며 치솟아 도봉 삼각산을 이루고 그 사이를 한강이 흐르고 있다.”라고 설명하였다.
9) 영액문에서 백두산을 바라보며[英額門 望白頭山] / 황경원(黃景源 1709∼1787)
三叉源出白頭山 세 강의 발원지 백두산,
雙峽陰陰絶壁環 음음한 골짜기 협곡은 절벽으로 둘러싸였는데
行人莫問深河戰 행인도 묻지 않는 심하 전투에서
十萬天兵半未還 십만의 천병이 절반도 돌아오질 못했다네.
10) 백두산[白頭山] / 홍양호(洪良浩 1724~1802)
白頭山在北斗邊 백두산은 북녘 변방에 있는데
行行終須到上巓 가다 또 가다보니 마침내 정상에 이르렀다.
今人不肯去攀 지금 세상 사람들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서
但道山高如天 다만 하늘처럼 산만 높다 말하네.
11) 백두산 돌아가는 길에 황양백(황최언)이 부쳐온 시에 차운하여 화답하며[白頭山歸路 得黃良伯(最彦 1711∼?) 寄詩 次韻答之] / 서명응(徐命膺 1716~1787)
十載三脂北上轅 십년 동안 세 번이나 북녘 땅을 임했는데
揚鞭今向白頭奔 오늘도 채찍을 치며 백두산을 향해 달려갔다.
河山鰈域開宗祖 백두산 강산에서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개국하여
分野燕雲列仲昆 중국 연운(燕雲)까지 형제들이 차례로 지배했었다.
蠟屐成三曾有約 나막신 세 켤레를 갖추고 일찍이 약속했는데
行裝少一倍傷魂 행장에 부족함이 많아 마음이 곱절 상했다.
荒原片石君休問 거친 들판의 돌조각에게도 그댄 물어보지 마시게
憤切當年蹙塞垣 분함이 사무친 그 해, 변방 담장도 괴로워했다네.
12) 길주성 너머 눈 덮인 장백산을 바라보며[吉州城外 望見長白山雪色] / 김익(金熤 1723∼1790)
吉州未落葉 길주에는 낙엽도 하나 없고
長白雪嵯峨 눈 덮인 장백산은 높고 험하네.
節候邊方早 변방의 절후는 너무 빨라
寒威特地多 유달리 추위가 심한 땅이네.
城陰斜照日 그늘진 성곽에 석양이 비치니
鴈影冷翻河 기러기 그림자가 차가운 강물에 나부낀다.
始覺關山遠 비로소 관산이 멀리 있음을 알겠노니
覊愁可奈何 나그네 시름 어찌하면 좋을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