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불가사리
나희덕
눈도 없고
뇌도 없다
온몸으로 보고
온몸으로 느끼고
온몸으로 생각한다
깊은 바다 속에서도 알아차린다
포식자가 다가오는 것을
빛이 내려오거나 굴절되는 것을
심지어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을
다섯 색의 팔과 천 개의 석회석 렌즈로
먹이나 피난처를 찾을 수 있고
날렵하게 도망칠 수 있다
팔이 뜯겨나가도
신음 대신 빛을 내뿜으며 재생되는 몸
나는 절단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반응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도망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나아간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재생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증식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얽혀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교신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회절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변화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제 눈으로 생각하고
뇌로 보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거미불가사리처럼
거미도 불가사리도 아닌 어떤 극피동물처럼
- 나희덕 「거미불가사리」 전문. 『시와 물질』 (문학동네)
<감상>
거미불가사리는 “눈도 없고/ 뇌도 없다” 시인은 이 생명체가 “온몸으로 보고/ 온몸으로 느끼고/ 온몸으로 생각한다”고 표현한다. 거미불가사리는 극피동물문 거미불가사리강에 속하는 모든 동물들을 일컫는 말로서 좁은 의미로는 왜곱슬거미불가사리, 또는 거미불가사리 단 한 종을 지칭하는 말이다. 거미불가사리는 전체의 둘레에 무수한 다리가 나 있다. 모양은 닭다리 같고 다리에 또 다리가 나고 다리에 또 많은 가지가 있고 가지에서 또 작은 가지가 나오고 작은 가지에서 잎이 나와 천 갈래 만 가지가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는 생명체이다. 뇌가 없으니 신경도 없는 상태이다. 무척추동물로 조간대(潮間帶)에서 깊은 바다에 이르는 해역까지 서식한다. 팔이 극도로 가늘고 긴 것이 특징이고, 다양한 방향으로 유연하게 움직여 극피동물 중 제일 날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관족(管足)을 이용해 빛과 냄새를 감지한다.
시인은 “생명의 넝쿨은 어디로 뻗어갈지 알 수 없”(「세포들」)다고 말한다. 어떤 생물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생명이 넝쿨인 것이다. 신유물론은 육체(물질)와 정신을 구분하지 않는다. “물질이 스스로 변형 생성하는 능력을 가지며 어떤 모습을 부여하는 명령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시인은 시집 『시와 물질』 ‘시인의 말’에서 “살아 숨쉬는 물질로서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토로한다.
거미불가사리는 설령 “팔이 뜯겨나가도/ 신음 대신 빛을 내뿜으며 재생되는 몸”이다. 따라서 거미불가사리는 말한다. “나는 재생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환경으로 인한 내부 작용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밟는다. 따라서 위험한 상황에서 모종의 결정을 해야 할 행위성을 가지게 된다. “행위성이란 얽힘의 관계에서 내부 작용을 나타내는 것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세계와 얽혀 있고 피부로 느끼고 반응하는 동물 세계는 반응 자체가 대상을 인식하고 생각하는 방법이 아닐까?
시인은 말한다. 인간은 눈도 없고 뇌도 없지만 온몸으로 느끼고 온몸으로 생각하는 거미불가사리에게 배워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사유하는 존재의 선언이다. 존재의 근거가 외부가 아니라 내면의 의식활동에 두는 존재론이다. 이에 비해 “나는 재생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몸의 활동이다. 존재의 근거는 사유나 의식이 아니라 몸의 물질성, 즉 생물학적인 활동에 기인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누가 인간이 우월하다고 말했는가? “눈으로 생각하고/ 뇌로 보는 법을 거미불가사리에게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시는 인간의 동물 –되기(거미불가사리-되기)이다. 일반적으로 동물-되기는 인간을 비하하는 방식으로 표현하지만 인간보다 월등하게 몸의 기능을 작동하는 동물-되기이다. 거미불가사리가 팔이 뜯겨나가도 신음 대신 빛을 내뿜으며 재생되는 몸으로서 능동적이라면 산호초는 “미세 플라스틱을 삼키고/ 창백해져가고 있어 죽어가고 있어”(「플라스틱 산호초」) 소극적이라서 상호 대비가 된다.
인간중심적인 사고가 타자의 존재를 무시한 결과 지구를 황폐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식물과 동물에 대해 무관심했고 차별해 왔던 인간중심적인 사유를 벗어던져야 한다. 이 시는 얽힘의 관계에서 동물이 스스로 변형하고 생성하는 활동을 하는 신유물론과 연계된다.
- 감상자 이구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