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사랑의 속성이 물처럼 흐르는 것이 특징이듯, 하느님 사랑으로 가득 찬 이의 기쁨은 자신 안에 고여 있지 않고 밖으로 넘쳐흐릅니다. 위에서 흘러내린 하느님 사랑의 물로 비옥해진 사람은 그것을 자신만의 소유물로 가두어 두지 않고, 위로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로 돌려드리고, 형제들과의 수많은 만남 속에서 함께 그것을 함께 나눕니다. 오늘 엘리사벳과 태중에 있던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사랑을 품고 오신 성모님의 음성을 듣고 같은 사랑과 기쁨에 넘치게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루카 1,44)”
그리고 성모님은 하느님의 사랑에 가득 차 기뻐하며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부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뜁니다(루카 1,46-47)” 참으로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인 사람은 성모님과 같이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부릅니다. 참되게 하느님을 모신 사람, 그리고 그분 사랑 안에 머문 사람은 불신과 두려움을 물리치고, 그의 전존재를 통해서 기쁨이 넘칩니다. 그리고 그 기쁨이 자신 안에서만 고여 있지 않고, 물이 흐르듯 곁에 있는 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게 해줍니다. 그 사랑은 에제키엘 예언자가 증언한 대로 강물처럼 흘러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47,9)’
그렇다고 그 사람의 삶에서 고통이나 슬픔이나 시련이 없어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을 모시고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문 사람은 뭇 사람들이 겪게 되는 모든 고통과 슬픔과 시련을 똑같이 겪으면서도, 하느님께로부터 흘러 들어와 마음에서 끊임없이 샘솟는 주님의 사랑, 곧 성령께서 그의 피난처가 되시고, 위로가 되어주시며, 지혜가 되어주시기에, 그 모든 것을 능히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수많은 고난과 시련을 이겨낸 바오로 사도의 고백대로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로마 8,35.37)”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성모님의 기쁨과 찬송을 묵상하면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을 깊이 새겨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1코린 15,22)” 아버지와 하나이신 예수님 안에 머문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간직하게 됩니다. 그 사람에게서는 죽음도 절망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주님 안에서, 주님으로 말미암아 매일 새롭게 되살아납니다. 성모님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아들 예수님을 끌어안으신 가운데 그분의 부활-생명을 믿고 고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권능과 사랑이 성모님을 지키시고 일으켜 세우셨던 것입니다. 성모님은 절망과 죽음에 순명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사랑과 권능에 믿음으로 순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경축하는 성모님의 승천은 하느님의 모시고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문 이들의 최후의 결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늘로 불러올리심’은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9)’하며 자신의 온 존재와 삶을 주님 안에 맡긴 참된 신앙인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매일 주님의 말씀과 몸을 받아 모시는 우리도 성모님과 같이 감사와 기쁨의 찬가를 부르기를 원하십니다. 매일 주님의 말씀과 성체를 통하여 우리 안에 오심으로써 죄로 넘어지고 죽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살아나기를 원하십니다. 언제나 주님의 사랑과 권능 안에 머무르며 모든 악과 죽음을 이기고 마침내 성모님과 같이 믿음의 승리자가 되어 하늘에서 의로움의 옷과 영광의 월계관을 입혀주시고 씌워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원의(願意)에 우리도 매순간 성모님처럼 응답하여 그 영광과 생명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