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낙성식
히브리어에서 “가르치다”와 “낙성식하다”는 동일한 단어를 사용한다. 잠22:6을 보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가르치다”의 히브리어는 하나크(חָנַךְ)다. 또 신20:5을 보자.
“새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여기서 “낙성식하다”의 히브리어도 하나크(חָנַךְ)다. 왜 고대 히브리인들은 “가르치는 것”과 “집을 낙성식 하는 것”을 같은 것으로 보았을까? 언뜻 보면 둘은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집은 인간의 안식처다. 그런데 고대 히브리인들은 어린이에 대한 교육이 사라지면 인간의 안식도 사라진다고 본 것이다.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던 그들은 그런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애굽에서 해방된 이후 모세는 신:6:6~9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p.s.
하나크(חָנַךְ)는 “훈련하다, 헌신하다”는 뜻도 있다.
교육은, 배우는 자의 입장에서는 “훈련을 받는 것”이 되고, 가르치는 자의 입장에서는 “헌신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