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계 및 누리콜 노조, 300여 일간 끈질긴 투쟁
누리콜 공사 운영, 기존 운전원 전원 응시 쟁취
“투쟁 끝 아니다… 장애차별철폐 투쟁 시작할 것”
세종시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누리콜 공공운영 투쟁이 마무리됐다. ‘세종시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 및 공공성 강화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대책위원회(아래 세종시교통약자대책위)’가 결성된 지 319일, 천막농성을 진행한 지 176일 만이다.
세종시교통약자대책위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세종시 누리콜 지회(아래 누리콜 노조)는 7일, 세종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종시 장애인 차별철폐 투쟁’을 시작할 것이라 밝혔다.
지난해 10월 27일 3시, 전장연 등 장애인권단체는 특별교통수단 문제해결을 촉구하며 세종시청 건설교통국 국장실을 긴급 점거했다. 사진 전장연
- 300여 일간의 끈질긴 투쟁… 누리콜 공사 운영과 기존 운전원 전원 응시 쟁취
장애계가 세종시에 누리콜 공공운영을 요구한 건 지난해 9월부터다. 그동안 누리콜은 세종시지체장애인협회가 9년간 민간위탁으로 운영을 독점해 왔다. 세종시는 민간에 운영을 맡긴 채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 즉시콜 미운영, 부족한 차량 대수 등 불편함은 장애인 이용자의 몫으로 돌아왔다. 더욱이 운전원의 성폭력, 반말, 장애인 비하 발언 등의 문제도 불거졌다. 문제가 계속되자 장애계는 누리콜 공공운영을 요구했다.
세종시청 점거, 1박 2일 밤생 농성 등 장애계의 거듭된 투쟁 끝에 누리콜 증차, 바우처 택시 도입, 올해 예산 증액 등을 쟁취했다. 또한 지난 3월 진행된 세종시 특별교통수단 위탁공모에서 세종도시교통공사가 선정됐다. 공사가 민간위탁의 수탁기관으로 선정돼, 사실상 공공운영은 아니다. 공사는 3년간 한시적으로 누리콜을 운영한다. 이 같은 과제가 있지만 공공기관이 누리콜을 운영하게 되면서 공공운영의 첫걸음을 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세종대책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지난 4월 27일 오후 1시경 누리콜 운전원 고용승계 보장을 요구하며 세종시청을 점거했다. 사진 전장연
남은 건 기존 운전원 고용승계였다. 장애계와 시민사회단체는 공공운영과 함께 고용승계 보장을 요구했다. 누리콜 운영기관이 바뀐다고 해서 기존 노동자가 해고되는 일은 없어야 했다. 하지만 세종시와 공사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100% 고용승계는 없다”고 밝혔다.
이 또한 끈질긴 투쟁과 협상 끝에, 세종시는 기존 운전원 전원이 응시할 수 있는 자격기준으로 채용공고를 내기로 했다. 협상 시 세종시가 제안한 기준은 ‘세종시 관내 택시운전자격 경력 3년 이상 또는 장애인콜택시 운전 경력자’였다. 누리콜 운전 경력이 있으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었다.
세종시청 앞에서 지난달 20일, 누리콜 공공운영에 따른 고용보장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강태훈 누리콜 지회장이 “투쟁”을 외치며 왼쪽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은 단식 4일째인 지난달 23일의 모습. 교자상 위에는 아내가 챙겨준 십자가가 있으며, 그의 옆에는 그가 밤에 몸을 뉘는 전기장판과 이불이 놓여 있다. 사진 강혜민
하지만 지난달 14일, 공사가 올린 채용공고에는 협상과 다른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자격기준이 ‘세종시 관내 택시운전자격 경력 또는 장애인콜택시 운전 경력을 합하여 3년 이상인 자’로 바뀌었다. 이런 기준으로는 기존 운전원 22명 중 11명의 응시자격이 박탈당하는 상황이었다. 누리콜 공공운영을 요구한 한 운전원에 대한 ‘보복행정’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대로라면 사실상 해고였다.
장애계와 노조는 고용노동부의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세종시와 공사가 고용승계를 이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고용노동부도 이번 건에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는 게 맞는다는 견해를 거듭 밝혀왔다. 하지만 세종시는 이를 무시하며 채용을 원안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강태훈 누리콜 노조 지회장은 지난달 20일부터 세종시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바뀐 채용공고 내용. 기존 누리콜 운전원 모두가 응시할 수 있도록 자격기준이 완화됐다. 사진 세종도시교통공사 누리콜 운전원 채용공고 캡처
단식농성 15일째 되는 날이었던 지난 3일, 세종시는 기존 운전원 모두에게 응시자격을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공사가 7일 공개한 채용공고에 따르면 자격기준이 ‘현재 세종시 누리콜 운전원 중 1년 이상 재직 중인 자’, ‘세종시 관내 택시(개인택시, 법인택시, 장애인콜택시) 운전경력을 합하여 3년 이상인 자’, ‘장애인콜택시 운행 업무 경험자 우대’ 등으로 완화됐다. 응시한 이후에는 탈락할 가능성도 있기에 고용승계 100% 보장은 아니지만 이 또한 투쟁 끝에 얻어낸 성과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시청 앞 천막농성장 앞에서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전장연
강태훈 지회장이 투쟁보고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전장연
- “세종시에 장애인차별 사라질 때까지 투쟁할 것”
강태훈 지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세종시가 장애인 차별이 철폐되는 도시가 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 밝혔다. 강 지회장은 “세종시의 무책임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너무나 컸다. 176일의 천막농성은 오늘 끝나지만,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고 장애인을 차별한다면 천막은 언제든 다시 세워질 것”이라며 “오늘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세종시는 정부 가이드라인을 위반하지 않고 상식에 반하지 않는 행정으로 약자의 편에 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또한 강 지회장은 △세종시 장애차별철폐 위한 7대 요구안 실행방안 마련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도입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등을 세종시에 강력히 요구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또한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우리의 투쟁으로 세종시의 변화가 이제 시작됐다. 제대로 바뀌지 않으면 더 많은 차별이 쌓일 것이다. 그 전에 오늘의 힘으로 세종시를 바꿔내자”라고 말했다.
문경희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세종시의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로 바뀔 때까지, 누리콜이 24시간 운영되고 즉시콜이 가능할 때까지, 모든 노동자가 해고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세종시가 될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