忠孝傳家.
자그마한 돌판 넷에 한 글자씩 새겨 박공벽에 가로 붙였습니다. 이태 전부터 공공연히 다짐해 둔 새 집의 이름이 현신한 것입니다. ‘충효전가’는 우리 전주 이문의 파시조 익안대군(방의)의 유훈입니다. 대군은 조선 태종 임금의 형입니다. 마룻대의 상량문에도 ‘충효전가’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서예가 ‘시정(詩情)’ 선생께 상량문을 부탁드렸더니 우리 내외한테 묻지 않고 여백을 좇아 써넣은 것입니다.
예순아홉에 불구가 되신 장모님은 어느덧 아흔입니다. 건장한 남자들과 함께 장모님을 포대기에 받쳐 이층계단을 오릅니다. 드디어 세 식구가 ‘충효전가’에 들었습니다. 새 집에선 편백나무의 피톤치드와 홍송 향기로 생기가 넘쳐납니다. 어느 틈에 역한 냄새가 엄습합니다. 노친께서 오달지게 이바지를 해서 매대기를 쳐놓은 것입니다. 내 코는 몸서리를 치고 비위가 아우성입니다. 아무래도 아내는 코가 먹었나봅니다. 내 채근에 이불을 들추던 아내가 언성을 높입니다.
“이 평생원수야. 차라리 죽어죽어!”
강산이 두 번 바뀔 만큼 친정어머니 대소변을 겪어온 아내가 오늘따라 다시 보입니다. ‘평생원수’는 모진 세월의 벽을 넘고 애증의 강을 건너야 맺어지는 숙명의 사랑입니다. 이날 이때까지 누구하고도 ‘평생원수’를 맺지 못한 나는 국외자입니다. ‘충효전가’의 이방인입니다. 불원간 눈보라 몰아치는 오밤중에 문밖으로 쫓겨날지도 모릅니다. 조상의 유지를 받드는 이 앞에서 혈통은 아무 가치가 없어 보입니다. ‘평생원수’를 둔 아내가 대군의 적손이요 상속자인 셈입니다.
“어매 어매 우리 어매, 날 좀 어서 데려가소.”
요즈음 아내의 평생원수가 부르기 시작한 노래입니다. 아내가 장모님을 요때기 채 욕실로 끕니다. 나는 고작 힘을 조금 보탤 뿐입니다.
새 집에 어머니를 모시지 못한 아쉬움이 쉽사리 떨쳐지지 않았습니다. 무거운 마음에 노인 요양원을 찾았습니다. 어머니도 장모님처럼 거동을 못합니다. 두런거리는 소리에 거실에 누워있던 어머니가 번쩍 눈을 떴습니다. 꿈속에서 내 아들 소리가 들렸다합니다.
“새로 집을 지었다면서 집들이는 하였느냐?”
“ 집들이는 무슨, 이사 온 날에 아버지 추도예배만 드렸어요.”
“네 장모는 모시고 왔더냐?”
“ 예, 뒷방 한 칸 내어드렸는데 감옥이 따로 없어요. 어머니, 이곳은 천국이어요. 그 방에선 앞산도 보이지 않고 텔레비전도 없고요, 가끔 들르던 엽이 모친도 저세상 사람이 되었어요. 봐서 마땅한 요양원으로 모셔야 할 것 같아요.”
“네 장모가 짠하다.”
어머니는 가만히 눈을 감습니다.
열 살 먹은 진돗개 한송이가 초저녁에 가출하더니 밤새 소식이 없습니다. 잠을 설치면서 몇 번이고 마당에 나가봤지만 그림자도 없습니다. 새벽녘에 아내가 잠자리에서 채근합니다.
“좀 나가보세요. 개가 들어왔나 봐요.”
“기척도 없는데 별 쓸데없는 소릴 다 하오.”
“방금 한송이 냄새가 났거든요. 틀림없이 돌아왔을 거예요.”
아내는 후각이 나보다 한참 뒤떨어지는데도 ‘냄새’를 고집합니다. 미적거리다가 나가보니 한송이가 계단실에 앉아있습니다.
탈취제를 사왔습니다. ‘덩치 큰 동물’이 악취를 잘도 먹어치웁니다. 나는 샤넬 향기를 좋아합니다. 나무는 내가 뿜어낸 이산화탄소와 시큼털털한 땀 냄새를 먹습니다. 나는 나무가 만들어준 산소와 피톤치드를 먹습니다. 아내는 가만히 악취를 달래서 집밖으로 모셔냅니다. 나는 김이 오르는 커피 잔에 코를 박고 로즈마리의 몸을 더듬습니다. 아내는 사랑을 내어주는데 나는 맛있는 음식만 탐하고 가장 대접을 강조합니다. 나무는 내 텁텁한 날숨을 먹고서 어떻게 피톤치드와 산소와 방향을 내는 것일까요.
충효전가의 낯선 두어 달이 무심히 흘러갔습니다. 어느 날부터 장모님이 웁니다. 장모님은 평생을 마당 넓은 한옥에서 살았습니다. 스무 해가 넘도록 방 안이 세상 전부였지만 동리사람들이 이따금 얼굴을 보이고 갔습니다. 이웃집 엽이 모친은 자주 마을을 와선 온갖 소식이며 소문을 전해주었습니다. 백구 ‘한송이’도 장모님의 동무였습니다. 안방 문을 열면 철을 따라 목련꽃과 명자나무 꽃, 빨간 장미와 황매화와 국화꽃이 문안 했습니다. 직박구리는 매일같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이곳 충효전가의 낯선 이층에서 장모님은 오랜 벗들을 하나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우리 내외는 죄인이 되어 전전긍긍했습니다. 장모님의 울음소리가 날마다 서럽습니다. 아내가 달래보아도 별 소용이 없습니다.
장모님을 노인요양원에 모셨습니다. 장모님은 허울뿐인 ‘충효전가’에 계실 때보다 행복하실 겁니다.
다시 여러 달이 지나갔건만 빈 방에는 장모님 냄새가 돌아다닙니다. 지금 그 냄새가 왜 역하지 않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장모님이 부르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습니다.
나는 아무도 없는 거실에 누워 마룻대의 ‘충효전가’를 응시합니다. 길게 금이 간 ‘忠孝傳家’는 뜬 눈으로 밤을 새울 작정인 듯합니다.
이 글을 임병식 선생님의 ‘일어서는 소리’에 부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