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로가 로마에 불을 질렀다는 이야기는 수에토니우스가 지어낸 것이다. 이 저술가는 역사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기록했다.
-Philipp Vandenberg-
역사속의 인물 중에는 史觀이나 후대 역사가의 개인적인 판단에 의해서 악인 혹은 폭군으로 매도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
폭군의 대명사라 불리울 네로도 아마 그런 경우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로마 역사상 최악의 폭군은 코모두스황제를 꼽고 있는데, 일반인들은 그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네로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네로는 폭군으로 불리우게 되었을까?
그 근거로는 3가지가 있다.
1. 기독교 신자들의 학살
2. 로마를 불태운 일
3. 어머니와 아들을 죽인 패륜아
그럼 과연 네로는 그처럼 흉악무도한 폭군이었을까? 로마가 불타고 있던 때에 그는 어디에 있었을까?
영화 "쿼바디스"에서는 불타는 로마를 바라보며 악기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정신 이상자 같은 네로를 보여주었지만, 사실 당시 네로는 로마에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기록이다. Tacitus는 로마 대화재가 벌어진 지 불과 수년후에 쓴 책에서 불이 일어난 바로 그 시각, 네로는 화재 현장에서 80km나 떨어진 별장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불이 타는 지옥같은 광경을 신나게 쳐다보기는 커녕, 네로는 급히 로마로 가서 불을 끄려고 했다는 것이다.
일설에는 네로가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자, 일부러 불을 질렀다고 하지만, 그가 방화를 지시했거나, 이에 가담했다는 역사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로마 대화재가 일어난 것은 네로가 즉위한지 꼭 10년후의 일이다. 당시까지 네로는 로마인들에게 평판이 좋았다. 그러나 대화재 이후에 그에 대해서 평판이 바뀌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네로가 로마에 새 궁전을 지으려고 했던 장소가 화재 장소와 일치하여 네로의 방화설은 그럴 듯하게 퍼져갔다. 이런 소문이 확산되자, 네로는 기독교인들이 불을 지른 것이라고 화살을 돌리고 기독교인들에 대한 학살을 자행하게 된다. 그러나 이 또한 확실치가 않다. 초기의 기독교는 아직 민중의 신망을 얻지 못한 종파로서 마술을 일삼는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기독교도들은 네로와 로마의 속죄양으로 방화범의 누명을 씌우기에 안성마춤의 존재들이었다.
실제로도 로마 대화재 이후 체포된 방화범들 중의 상당수는 광신적인 기독교 극단주의자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처형된 이유는 '기독교도'가 아니라 '방화범'이라는 죄목으로 처벌되었다. 실질적으로도 당시 로마 이외의 그 어느 곳에서도 기독교 신자들이 박해를 받았다는 기록이 없다. 즉 기독교도 박해는 로마 시내에 거주하는 신자들에만 국한되었고, 1회성으로 끝났다. 당시 네로가 처형한 기독교도들의 최대 숫자는 300명이 넘지 않을 것으로 역사가들은 추론하고 있다. 그런데 어쩌다가 네로는 기독교 박해의 원흉으로 지목된 것일까?
사실 네로의 모습은 지극히 왜곡되어 왔다. 네로가 죽은지 한참 후에, 타키투스가 네로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바로 여기서부터 네로의 왜곡이 시작되었다. 네로는 생전에 전통적인 기득권들을 무시하고 문화 정치와 친서민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런데 이런 정책들은 보수적인 원로원 의원들과 마찰을 빚을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네로는 황제답지 못하게 스포츠와 노래부르기를 너무 좋아했으므로 로마 귀족사회에서는 이를 두고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네로가 포악한 황제로 자리잡게 된 평가는 기독교가 유럽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기독교 신자들을 학살했다는 평가는 네로의 평판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네로에 대한 연구를 했던 독일의 반덴베르크가 말하기를,
"기독교가 국교로 자리잡은 4세기가 되어서야 초기 기독교들의 순교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네로가 로마에 불을 지르고 이를 기독교도들에게 덮어씌운 이야기도 여기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흉흉한 민심을 부여잡기 위해서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당시 기독교도들이 불행하게도 여기에 말려든 것이었고, 그것이 오늘날 네로가 악랄한 기독교 학살자로 남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후대의 기독교는 초기 순교자들의 삶을 미화하기 위하여 역사적으로 신빙성은 약한 야사와 같은 자료들을 모아서 이를 기본으로 로마제국 말기부터 중세를 거쳐 지금까지도 네로를 악마처럼 취급해 오고 있다.
헐리웃 영화들은 이를 영상으로 확대 재생산하여 이의 이미지를 굳히는데 일조했다.
참고문헌
필리프 반덴베르크, 네로: 광기와 고독의 황제 (2003)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1998)
귄터 클라인, 역사의 지배자(2002)
첫댓글 의외군요. 그럼 마지막 3번째 패륜아 이야기는 사실인가요?
어머니 아그리피나를 죽인 건 맞습니다. 패륜아긴 하지요.
어머니 아그리피나가 정말 악녀였죠. 권력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가리는 여자였습니다. 아들과 성적인 접촉을 통해서까지라도 권력을 유지시킬려고했죠. 이런 아그리피나의 행동에 네로는 점점 정신적으로 이상해졌구요.
맞는데..... 엄마가 워낙 막장이여서 답이없음(엄마가 먼저 네로를 죽일려고 했다는 말을 본 적이 있음)
그런데 아그리파나의 악행도 과장된 측면이 많죠.
아들과 성적인 접촉이라는것도 후세에 신빙성없는 야사에나 언급된건데 자극적인 예기다보니 진실처럼 퍼진것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