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권한을 부여해준 대장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글쓰기 권한을 주셨으니 글을 올
려야 함이 도리인데 함께 여행을 하지 못했기에 함께한 글은 올리지 못하고 작년 회사 직원
들과 함께 여행한 베트남(북부)여행기를 올립니다.오래된 글이라 상했을지 모르니 조심해서
읽으십시요.다음에는 싱싱한 글을 올릴수 있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참고로 이글은 여행후 사내 게시판에 올렸던 글이니 정서적으로 상이 할수도 있음을 알려 드
립니다.
2004-03-26
여유를 부리다 또 늦어버린 공항 도착시간.
인솔자가 보딩을 끝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여권과 항공권을 전달받고 부랴부랴 환전을 하고 담배를 샀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 나를 기다리는 22번 게이트로 뛰었다.
낯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본다. 답배가 몹시도 피고 싶다.
평소에는 하루에 5~6 개피의 담배를 피는데 오늘은 유난히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긴장하는 탓일까?
어렵게 흡연실을 찿아 담배를 피워 무니 이제 정신이 돌아옴과 동시에 떠오르는 일
들.
아플싸 ! 약국도 들러야 했고 집에 전화도 해야 했으며 사무실에도 연락을 해야 하는데...
'할수 없지 뭐' 이제부터 본격적 으로 여행이 시작 되는 것이려니….,
낯선 사람과 낯선 곳 으로의 여행. 두려움이 밀려온다.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 보다 돌아와
서 또다시 얼마나 그리워하고 아파 해야 할지가 더 두렵다. 그러면서도 또다시 떠나게 되고
가벼운 전율마저 느끼는 것을 보면 ‘여행은 분명 마약이 분명하다’ 라는 생각을 하는 순
간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으니 4~5년 전 함께 근무한 직원이다. 반갑다고 해야 할지 귀찮다
고 해야 할지. 이번 여행은 혼자 즐기고 싶었는데…,
그렇다면 이번 여행도 함께 어울리고, 말도 많이 하고, 아는 척도 좀하고, 푼수 짓도 적당
히 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자. 이렇게 마음을 고쳐 먹는다. 이 직원분은 여행 내내 나와 가
장 많은 시간을 함께 했으며, 내게 많은 도움을 준 사람으로 남아있다. 역시 셋이상이 모이
면 그중에 스승이 함께 한다는 옛말이 틀림이 없었다.
비행기는 시간을 맞춰 이륙하고 시장기를 느끼기 시작한다. 이륙시간이 17시30분 이니 배고
플 때도 됐다. 소고기 볶음과 닭고기 조림 중 선택 이란다. 나는 비빔밥 으로 달라고 했더
니 없단다. 소고기 볶음밥 으로 했다. 고기가 약간 질긴 느낌이다. 대한항공 기내식은 비빔
밥이 최고인데 아쉽다.
조금은 지루함을 느낄 즈음 약4시간30분의 비행 끝에 도착한 하노이 공항, 베트남 수도의 국
제공항 이라 하기에는 초라했다.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보다도 작은 느낌 이다. 입국수속을
기다리는 동안 함께한 직원이 담배 한대 피자고 해서 이리저리 흡연실을 찿았지만 찿을 수
가 없어서 화장실에서 몰래 한대 빨기로 하고 화장실 앞에서 담뱃불을 붙이는 순간 공안이
다가온다. 어이쿠! 베트남 구경도 하기 전에 징역 가는구나 했는데 화장실서 피지말고 나와
서 피란다. 둘러보니 어른베트콩 얼라베트콩 모두 피고 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고 듣던 대로 현다이 버스다. 첫날
밤을 치를 호리즌 호텔로 향한다. 한밤중 이라 주위가 어둡다. 베트남이 이방인에게 쉽게 얼
굴을 보여주기 싫은 것일까? 가로등도 희미하고 상가에 불빛도 없다. 이곳이 사회주의국가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첫모습 이다.
2004-03-27
룸메이트의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며 눈을 떴다. 시간을 보니 현지시간 새벽 3시,좀
더 눈을 붙여야 하겠기에 화장지를 말아서 귀를 막았다. 연주가 계속 이어 진다면 차라리 잠
을 잘수도 있으련만 중간중간 끊어지는 연주에는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 연주자는
일정 내내 나를 하루에 3시간씩만 재워 여행이 아니고 극기훈련으로 인도한 손모 씨다.
뒤척이다 6시에 일어나 트레이닝복으로 호텔을 나섰다. 조금 걸으면 새벽시장이 있을 것 같
아 무작정 나섰는데 역시 조그만 노점시장이 서고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이방인 에게 해맑
은 미소를 보내준다. 현지 화폐를 준비하지 못해 흥정을 할수 없었다. 딸기가 먹음직스러웠
지만 내일 아침으로 미루어야 겠다. 돌아오는 길에 대문 앞을 쓸고있는 꼬마 아이가 귀여워
서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쑥스러운지 대문 안으로 숨는다.
아침은 호텔식이고 나의 주식은 언제나 계란후라이 2개다. 오렌지쥬스 한잔과 함께 상쾌한
아침이다. 잠이 조금 부족한 것을 제외하면 만족스럽다.
육지속의 하롱베이라 하는 닌빈으로 향한다. 함석조각으로 만든 조그만 배에 손씨 아저씨와
나 그리고 뱃사공(40세) 조수뱃사공(12세) 이렇게 유람이 시작됐다. 뱃사공은 모녀지간 이란
다. 이곳에서 부터 파파라치와의 게임이 시작된다. 내가 원하건 원치 않건 우리가 배 안에
서 유람 하는 동안의 모습이 촬영된다. 그들은 유람중에 끊임없이 “누나,형님,오빠” 를 외
쳐댄다. 어느 관광객은 우리말로 심하게 욕도한다. ‘내가 왜 네 형님 이냐’라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물론 그 관광객은 우리 일행이 아니다. 이 단어 외에 또 자주 듣는 말
이 있으니 ‘원달러’ 여행 내내 지겹도록 듣는 말이다. 지겹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눈물겹
다. 이것이 이들이 현재 살아가는 모습이고, 우리의 누나 형님들 또한 6~70년대에 양키와 쪽
발이 에게 저렇게 소리쳤을 것이다. 이러 할진데 그들이 알아듣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을
향해 우리가 욕을 할수 있는 걸까?
약20분을 수로를 따라 올라가니 아름다운 모습을한 산과 동굴이 나타난다. 수심은 1미터 내
외이고 물빛은 탁하며 수로의 폭은 50여 미터 정도 되는듯 하다. 배 임대료로 1달러 사공의
팁 으로 1달러를 지불 한다고 하니 고생스럽더라도 적지만은 아닌 수입이다. 2달러면 그곳
농민 품삯으로 3~4명을 지불 할수 있다고 한다. 그곳의 산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
에 처음에 볼때는 기기묘묘한 모습과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내마음 속에서는 못된
버릇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이곳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 느껴야 하는데 우리나라와 비교하는
나쁜 습관이다. 이곳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형상은 기기묘묘하고 아름다운 것 같으
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산처럼 골기가 느껴지질 않으며 웅장함과 장엄함이 이곳에
는 없다. 이곳의 산천이 처음에는 보기좋은 쏘피아 로렌의 모습이라면 우리의 산하는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고 더욱 정감이가는 그레이스 켈리의 모습이리라.
이렇게 1시간 가량의 닌빈 여행이 끝나고 선착장에 도착하니 파파라치들이 떼를지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유람중 찍은 사진을 현상해서 각자 찍은 주인공과 흥정을 하는 것이다.가이
드 말씀이 15장에 3달러 이상을 주지 말라는 언질이 있었기에 모두들 계획된 가격에 흥정을
하고 있다. 처음 부르는 가격은 대체로 10달러 부터 시작된다. 아니면 1만5천원 부터다. 그
러나 결과는 비슷하게 3달러 내외에 낙찰된다. 그들과 싸다,비싸다 하면서 밀고 당기는 흥정
을 우리는 즐기는 것이다. 그 사람들도 어차피 3달러를 받을 생각을 하고 우리와 흥정을 하
며 그것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3달러에 흥정이 되지않고 출발 시간이 다가왔
을 때 버스는 출발하기 시작하고, 사진은 현지인 손에 있고 주인공은 사진을 못 받을까 안달
이 났지만 가이드는 걱정 말란다. 오토바이를 타고 따라와서 버스가 신호등에 서 있으면 그
때는 무조건 3달러에 사진을 받으면 된단다. 하지만 버스는 신호등에 섰지만 오토바이는 따
라오지 않았다. 주인공 줌마의 울음섞인 음성과 원망섞인 목소리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
동안 계속됐다. 가이드는 “걱정마라, 내일 그곳에 들어가는 팀에게 찿아 오라면 된다” 라
고 위로하지만 나는 찿지 못할것 이라 생각했다. 왜냐면, 그 사진사는 돈보다 자존심이 중요
했고, 또한 다음에 찿아오는 관광객을 길들이기 위해 따라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날 끝
내 그 사진은 찿을수 없었다. 파기 시켰단다. 4달러만 주었어도 사진을 찿을수 있었지만, 1
달러에 우리 한국인이 그들과의 자존심 싸움에서 진것은 아닐까? 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우
울함을 떨쳐 버릴수가 없었다.
저녁식사후 사진을 찿지못한 주인공을 위로할 겸 시내 관광에 나섰다. 물론 몇분이 함께 했
지만 처음 목적지는 36통가 였다. 도보로는 무리였는지 중간에 길을 잃었고,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팀이 있었는데 그 팀은 잘 찿아 갔는지 궁금했다. 내 추측으로는 그 팀도 중간에서
포기하지않았나 싶다. 길을 물어보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짧은 영어로 물어 보았지만
알아듣지 못했고, 파출소를 들려서 물어봐도 헛일이다. 빌러먹을 놈들 학교다닐 때 영어좀
열심히 하지…., 일행 중에 누군가 이곳은 밤10시가 넘으면 거리에 사람이 없으니 빨리 돌
아 가잖다.늦은 밤에 위험 할수 있다는 생각에, 더구나 여자들이 동행 했기에 서둘러 돌아
왔고, 호텔 가까이 에서 생맥주 한잔씩 하기로 하고 처음으로 타이거 맥주를 한잔씩 했다.
술맛을 모르는 내게도 맛이 좋은 것 같다 . 알코올 함유량을 보니 5%다. 피곤함이 맥주 한잔
에 풀린다.오늘밤은 잠이 잘 올 듯 하다. 먼저 들어가서 내가 먼저 코골아 버려야지.
2004- 03 -28
시내관광 으로 시작됐다. 먼저 호치민 묘소로 갔다. 오늘 일정에는 없었지만 내일이 묘소 관
람불가 요일이기 때문에 오늘로 변경됐다.
호치민은 생전에 유골을 화장 하기를 원했지만 베트남의 영웅인 호치민을 베트남 인민들은
한줌의 재로 날려 버리기에는 너무 아쉬웠나 보다. 레닌과 스탈린의 예를 쫓아 베트남 국민
의 단결을 표상하기 위해 미이라로 보관하고 있다. 묘소의 외부에서는 촬영을 할수 있지만
내부에서는 불가능 하다. 유리관 속에 누워 있는 호치민의 모습은 평화로웠다. 평생을 베트
남을 위해 살다간 영웅의 잠든 모습은 아름답기 까지 했다. 편안하게 쉬고 있는 모습을 보
며 ‘우리국민은 언제쯤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위정자을 갖게될까? 하는 생각을 하며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호치민 생가도 둘러보고 박물관도 관람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여행중에 꼭가야 하는 곳
이, 첫째는 박물관이고 둘째가 시장이라 했는데 우리는 그 나라의 역사가 있고 그곳 사람들
의 생활 모습이 있는 시장을 가지 못했으니,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 모인 여행이 조금은 부
끄럽다는 생각이다.
화빈으로 이동이다. 이동중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집집마다 정원에 연못이 있다. 연못을 조
성할 만큼 부유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곳 사람 들은 생선을 보관 하지 않기 때문에 물
고기를 양식 하여 끼니때 마다 사용 한단다.또한 논 한가운데에 있는 조형물은 묘소이고 이
곳 사람들은 매장을 선호하며 98%가 매장을 한다 하니 얼마후면 이곳도 농토의 상당부분이
공동묘지로 변해 버릴 듯 하다. 화빈에서 산속으로 한참을 들어가니 해발 7~800미터에 고산
족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묘족이며 세력다툼에서 지고 산속으로 쫓겨 왔다고 한다. 살고
있는 생활모습을 가가호호 방문하여 기념 촬영도 하고 녹차도 얻어 마시고 기념품도 사고 모
두들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1시간 가량 생활모습을 보고 버스로 돌아올 때 누군가 묻는다.
“무었을 얻어왔어요? ” 라고. 나는 집방문을 하지 않고 집가까이 있는 묘를 보고 와서 얻
어 온것도 기념품도 사지 못했다. 해서 “그 사람들의 마음을 담고 왔습니다” 라고 대답하
며 얼굴을 바라 보니 어쩌면 저리도 고울까? 참으로 어여쁘신 여인이다. 점심 식사 후 관람
한 묘족의 민속공연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공연은 민속주를 마시는 것으로 시작 됐으며 민
속춤은 우리의 전통춤과 흡사했다. 우선 靜적인 것이 많이도 닮았다. 물론 중간중간에 우리
민속춤의 백미인 어깨춤은 없었지만 動적으로 바뀌기 전에 오버하지 않는 모습이 친근감 있
다. 민속악기의 소리는 경쾌하고 아름다운 화음을 냈지만 우리의 악기처럼 심금을 울리는 깊
이는 느끼지 못했다. 남성들의 춤도 마찮 가지다. 정적인 민속춤을 추는 민족의 공통점이 대
부분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았다. 묘족이 이곳으로 찿겨온 것도 민속춤과 관련이 있을까?
약1시간의 공연이 끝나고 다시 우리는 하노이로 향한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서 풍요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까닭은 무얼까? 편도 1차로 도로에서 중앙선이 백색 점
선으로 이루어진 곳에서 사람과 오토바이,자전거,자동차가 뒤엉켜 잘도 달린다. 나는 도저
히 이곳 에서는 운전을 할수 없을 듯 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경적소리에 우리나라 사람들
은 내려서 멱살잡이라도 할듯한데 이곳 사람들은 무감각 무표정으로 잘도 달린다. 이것이 무
질서 속의 질서 일까? 베트남의 근대사는 호치민으로 시작하여 호치민으로 끝난다 한다. 호
치민은 베트남을 구한 민족영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치민은 베트남을 구했을지는 몰라
도 베트남 인민을 구하지는 못했다’ 라는 생각을 하며 하노이 대우호텔에 도착했다.
돼지 바베큐로 저녂 식사를 하고 호텔정원 벤치에서 하늘을 봤다. 서울을 출발할 때 보았던
장미희 눈썹같던 초승달이 이제는 제법 고현정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호텔 로비에서 커
피 한잔을 하고 있으려니 일행들이 한둘 모이기 시작한다. 하노이의 밤문화 체험을 하기로
하고 호텔 나이트크럽 으로 향했다. 참가인원의 명단은 비밀로 하겠다. 여자2명에 남자 6명
이다. 나중에 들은 여담이지만 그곳에 나이트클럽이 생긴 이래로 가장 예쁘고 매너좋은 손님
으로 기록 하겠다는 이야기를 마담으로부터 들었다. 믿거나 말거나….,
두대의 택시에 나누어 타고 클럽에 도착하니 약100여 평의 실내에 쇼파와 테이블이 극장식으
로 놓여있고 춤을 출수 있는 공간은 4~5평에 불과 했다. 좌우로 룸을 갖추고 있었으며 대부
분 그곳에서 술과 여흥을 즐기는 듯했다. 우리는 밴드가 있는 맨 앞쪽에 자리를 잡고 디스
코 음악이 나오기 만을 기다리며 한 모금씩 맥주를 마셨다. 무대에 춤추는 사람이 없었기 때
문에 모두들 마음속에 뭔가를 보여주려고 벼르고 있는듯 보였다. 우리의 앞선 춤문화를 월남
전에서 베트콩 잡듯이 멋지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이곳의 입장료는 별도
로 없었으며 테이블 사용료로 80달러를 원했고 맥주는 1병에 4달러를 받았으며 안주는 기본
으로 과일 한 접시가 나왔다. 그리고 업소에 소속된 콩까이는 250~280 여명이 대기중이라 하
며, 손님이 원하면 1시간당 8달러에 옆자리에 와 앉는다. 이제나 저제나 모두들 전투준비를
하고 디스코를 기다렸지만 음악은 계속 블루스와 포크송 으로 일관 했으며 춤을 추는 사람
은 아직도 한명도 없다. 웨이터에게 수차례 음악을 바꿔줄 것을 요구 했지만 곧 바뀐다고
만 할뿐 여전히 흐느적 거린다. 이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맥주는 계속 마셨는데 맥주가 많이
줄지 않는다. 안주도 계속 남아있다. 가만히 봤더니 이곳 콩까이 들은 안주발, 술발을 세우
지 않는다. 술 아까워하는 사람들은 좋겠다.
지루하여 옆에 앉은 콩까이의 손목을 살짝 잡고 우리나라에서 하는 수작대로 맥을 짚어 주
고 손금을 봐준다고 꼬시니 직업이 의사냐고 묻는다. 나쁠것은 없어서 그렇다고 하니 맞은편
에 앉은 정대리(보는눈은 있어서…정대리는 知적으로 생겼다)를 가리키며 무슨 의사냐고 묻
길래 산부인과 의사며 낙태가 전문이라 했더니 콩까이 들이 뒤집어 진다. 나는 무슨 의사 같
냐고 했더니 비뇨기과 의사 같다고 해서 이번에는 우리가 경상도 말로 디비졌다. 이렇게 웃
고 떠드는 사이 콩까이들이 춥다고 남자들 품속으로 파고 든다. 이곳에서 나는 참으로 마음
이 따뜻한 여성을 만났다. 입고 갔던 긴팔의 티셔츠를 서슴없이 추워하는 콩까이 에게 벗어
주고 왔으며, 다음날 저녂에는 음식점에서 아기 콩까이 에게 뒷머리를 묶는 머리핀을 선물했
다. 머리핀을 받고 좋아서 펄쩍펄쩍 뛰는 아이의 모습이 오랬동안 머리속에 남았다.
사진값을 갖고 흥정하는 나의 모습과 서슴없이 갖고있던 소중한 물건을 남에게 주는 그분의
모습이 자꾸만 비교되며 또 하룻밤이 깊어 가고 있다. 이런분과 함께 여행을 할수 있슴에 감
사한다.
2004-03-29
시내투어로 시작된 첫 방문은 호텔서 멀지않은 국자감이다. 우리나라의 성균관과 같은 기능
을 한곳으로 과거 합격자 들이 정부에 진출하기 전에 모여서 공부를 하던 곳이다. 건물 내에
는 공자를 비롯 중국의 5대 성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그곳에서 공부하던 당시 모습이 그
림으로 남아있다. 첫 느낌은 우리의 고려시대 건축물과 흡사했고 하나하나 자세히 보니 역
시 중국의 건축양식을 많이 계승했으며 기둥은 중국과 달리 배흘림 기둥을 했고 지붕은 맛배
지붕과 우진각 지붕을 함으로써 화려함 보다는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다. 화강암이 귀한 관
계로 벽돌문화가 많이 발달 했으며 과거 합격자 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 비문을 받치고
있는 거북의 머리 모양이나 거북의 발톱 에서는 힘찬 기상을 느끼지 못했다. 이것이 화강암
과 석화암의 문화에서 오는 차이 이리라.
몇장의 기념 촬영후 호안끼엠 호수로 향한다. 호수 이름은 劍을 거북이로 부터 전해 받아 적
을 물리친 후 돌려 주었다는 전설에서 유래 됐으며 호수 주변에는 우체국,화랑,상가,식당 등
이 있는 도심지역 이며 이곳이 관광객 에게 익히 알려진 36통이 있는 곳이다. 인공호수로 수
질은 녹조현상 인지 탁한 빛을 띠고 있으며 조형미는 일산의 호수공원에 비교할수 없을만큼
열악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호수안에 아직도 검을 가진 거북이 살고 있다고 믿을 만큼 신성
시 되는 곳이다.
자꾸만 우리와 비교하는 못된 습관을 어떻게 떨쳐버릴수 있을까? 이곳은 이곳 만의 기후와
문화의 특징이 있기 때문에 타국의 문화와 예술을 우리와 비교하는 것 부터가 잘못된 사고라
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못된 버릇이 계속 되는 이유는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
과 상통한다. 내가 아는 것이 우리것 뿐이니 그 만큼 밖에 보이지 않는것이다. 언제쯤 더욱
많은 지식으로 여행의 격을 높일수 있을는지….,
점심식사전 잠시의 36통을 쇼핑할 시간이 주어졌다 약40분. 이곳 사람들은 식품을 사고 팔
때 갯수로 파는 것이 아니고 무게를 달아서 판다고 하기에 과일을 시험 삼아 사봤다. 과일
이름과 맛을 모르니, 먼저 시식을 했고 먹을만 하기에 1달러와 5,000동을 주니 몇그람인가
를 달아서 준다. 내가 덤으로 한 개를 비닐봉투에 담으니 정색을 하며 빼앗는다. 내가 잘못
달았으니 다시 달아 보자며 한 개를 또 담았으나 마찮가지다. 시식으로 먹은 것 까지 포함
이란다. 이곳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이 있다니……후후
점심식사후 에는 쇼핑점을 방문했다. 나란 인간은 쇼핑에는 관심이 별로 없으니 물건 사기보
다는 그곳 점원들의 모습에 더 관심이 간다. 아니 쇼핑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고 돈이 없
는 것일게다. 점원들은 우리나라 말을 잘도 한다. “비싼게 아닙니다” “많이 사면 깍아 줍
니다” “100달러 이하로는 단돈 1달러도 깍아 줄수 없습니다” 등등. 너무 우리말을 잘하니
까 오히려 밉깔맞다. 이녀석 들이 우리나라 관광객에게 바가지도 많이 씌웠지만 먼저 다녀
간 우리나라 사람들도 어지간히 깍았던 모양이다. 동남아시아의 판매점에서 느끼는 감정은
살것도 많고 또 한편으로는 살 것이 너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베트남의 하일라이트라 할수 있는 하롱베이로 이동한다. 황포돗대를 달고 아름
다운 3,0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하롱베이 얼마나 기대하던 곳인가! 약3시간30분의 자동
차 이동이다. 가이드의 해박한 베트남 고대사가 시작된다. 정말 박식한 분이다. 베트남의 정
치,경제,문화을 두루두루 꿰뚤고 계신다.
유창한 해설을 들으며 의자등받이를 뒤로 젖힌다. 눈이 살살 감겨 온다. ‘이러면 안되는
데’ ‘이러면 안되…… 휴게소라는 마크 소리에 정신이 번쩍든다. 또다시 밀려오는 자괴
감. 이러게 입에 넣어 주어도 못먹으니 요모양 요꼴이지. 또다시 떠오르는 말 “아는만큼 보
인다” 어느덧 하노이를 출발한 버스는 하롱에 접어들고 있다. 이곳이 그 유명한 서산군청
김주사의 처가가 있는 곳이다. 김주사가 알면 나 혼날텐데…..
시내를 벗어나고 바다가 보이는 것을 보니 목적지가 지척임을 알수 있다. 갯뻘을 막아서 4차
선 도로를 반듯하게 냈다. 최근에 건설된 도로라 한다 약 석달전만 해도 선착장을 가기 위해
서는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 갔다 한다. 이곳도 개발 앞에서는 어쩔수 없나 보다.이곳도 멀지
않아 대부도에서 다리가 놓여진후 망가져가는 영흥도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으리라.
이렇게 우리는 하롱의 사이공 호텔에 도착했다. 이곳을 오기전 ‘머나먼쏭바강’ ‘지옥의묵
시록’ 을 보며 월남을 상상했는데 처음으로 사이공이라는 문구를 접하니 이곳이 월남 이구
나 느껴진다.
여기서 나는 기가 막힌 경험을 한다. 코고는 손씨가 무서워 가이드에게 독방을 부탁했고 계
획대로 독방을 배정 받아 룰루랄라 샤워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벨을 누르고 들어온다.
아 ! 어쩌란 말이냐? 문앞 에는 드라큐라 처럼 손씨가 서 있었다. "웬일이냐?" 고 했더니,
그래도 3일밤 같이잔 놈이 편할것 같아 찿아 왔단다. 찿아온 사람을 어찌 가라 한단 말인
가? 하룻밤만 자면 되는데…., 이렇게 나의 극기훈련은 마무리까지를 확실하게 하게 된다.
시내관광을 하고 싶어 저녂 식사후 로비에 앉아 있는데 직원이 내려온다. 이놈도 무척
이나 질긴 놈이다 일정 내내 내 옆에서 보낸다.
많은 동료들이 끼리끼리 어울려 나가고있다. 첫날 비행기 안에서 옆사람과 제대로 말도 못하
더니 이제는 여행 이라는 우산 아래서 여행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무척이나 친해진듯, 허물
없이 잘도 어울린다. 나에게는 함께 가자고 하는 사람이 없다. 그나마 직원만 함께 해주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처음에는 손씨가 나만 따라 다니 더니 이제는 제법 익숙한지 혼자
도 잘나선다 많이 컸다(죄송). 함께 가자고 하는 사람이 없어 '내가 여행을 잘못하고 있나?
내게 되묻고 있는 순간 내게 다가오는 여인이 있었으니, 우리 일행인지 개인 여행객인지 이
름도 소속도 모르겠다. 다만, 대단한 미인이라는 사실이다. 가슴이 방망이질을 한다. 16살
시절 영어 선생님을 보고 가슴이 뛴 이래로 이렇게 가슴이 마라톤을 한적이 없다. 한동안 바
라만 보다 말을 꺼냈다. 어디로 가시는 길이냐고? 목적지는 없고 산책을 나왔단다. 아 ~!
그 여인이다 고산족 마을에서 내게 무엇을 얻어왔냐고 물어본 여인.. . 이렇게 조우를 하게
되다니....,하던 메모를 집어 던지고 직원과 셋이서 호텔을 나서 떼놈들이 경영한다는 로얄
호텔로 가서 카지노를 둘러봤다. 우리 일행은 없고 게임 할줄도 몰라서 그냥 나왔다. 진짜
루 그냥 나왔다. 룰렛 조차도 하지 않았다. 호텔을 나오니 갈곳이 마땅치 않다. 이리저리 둘
러봐도 불빛이 보이는 곳이 없다. ‘이를 어쩐다’ 여기서 숙소로 그냥 돌아가면 옆에 있는
아리따운 여성분 에게 너무도 미얀할 것 같고, 낼 아침에 내머리를 기둥에 받아 버리고 말
것 같다. 엄청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나를 구해준 사람이 있었으니 두명의 베트콩 이다.
씨클로를 끌고 와서 시내 투어를 하는데 한대에 2달러를 내란다. 1달러만 줘도 되는줄 알지
만, 이여인과 오래하고 싶어서 흥정없이 얼른 올라 탔다. 물론 직원은 혼자 탔다. 후후후.
천천히 움직이는 씨클로에서 바라 보는 바다가 무척이나 환상이다. 옆에 미인이 있으니 오
죽 하랴. 베트남에서 씨클로를 꼭타고 싶었는데 하노이 시내 에서는 기회가 없었다. 이곳에
와서 꿈에 그리던 여인과 함께하니 내기분이 어떻겠는가? 무아지경이다. 그여인의 이름은 밝
히지 않겠다. 굳이 말하라 하면 그레이스 켈리보다, 비비안리 보다 더 예쁘다 는거다. 이글
을 보고 혹자들은 참가자 명단을 한명 한명 사원찿기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헛품팔지 않
기를 바란다. 그 여인은 찿을수없는 꿈속의 신비한 여인이다. 영원히 내 가슴속에 묻어두고
조금씩 조금씩 나만 꺼내 보고 싶은 여인이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보니 도로 옆으로 디스코텍도 있고 실내 포장마차 처럼 생긴 음식점
도 보인다. 나를 구해준 베트콩에게 저녂을 사주고 싶어서 쌀국수를 주문했지만 쌀국수 대
신 라면이 나왔다. 입맛에 맞지 않는다. 베트콩 조차도 먹지를 않는다. 직원만 게걸(?)스럽
게 잘도 먹는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먹는 것으로 푼다 하던데 혹시? 직원 에게 미얀하다. 그
렇지만 어쩌랴 솔직히 너보다 이여인이 더 좋은 것을….,
호텔로 돌아오면서 하늘을 봤다. 잔뜩흐렸던 하늘이 어느새 어여쁜 별님과 달님이 우리를 내
려다 보고 있었다. 나는 오늘 또다시 새로운 사실을 깨닮았다. 인공의 아름다움은 자연의 위
대함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은 여인의 아름다움 앞에서 더없이 볼품 없
어 진다는 사실을….,
오늘밤은 잠이 오지 않을 듯 하다.
2004-03-30
드디어 하롱베이 관광이다. 유람선에 오른다.
한강 유람선과 비교하면 않된다. 한강 유람선이 분명 호화롭지만 여기에는 한강 유람선에 없
는 운치가 있다. 뱃고동이 울린다. 그런데 뱃고동 소리가 경박 스럽스럽다. 마치 덤프트럭
크락숀 소리같다. 대한항공 CF 에서 보는 황포돗대도 없고 시야가 맑지도 못하다. 이렇게 하
롱은 우리에게 다가 오고 있었다.
해무가 잔뜩낀 바다를 서서히 나아간다. 물결은 호수보다 잔잔하다. 이곳에서 낚시를 한다
면 민물 찌낚시를 해도 들듯하다. 바다 빛깔은 파란색도 아니고 검은빛도 아니다. 어떻게 설
명을 해야 할까? 그래, 중국 송나라 청자의 빛깔이 하롱의 바다빛을 닮았다.
약30분후 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해무속의 섬들이 신비롭게 다가온다. 대한항공 CF 를 촬영
한곳 앞에서 한동안 정박 했다. 아름답다. 정말 아름답다. 인간에게 지금의 모습 그대로 보
고 만들라고 해도 이렇게 만들지는 못하리라. 이곳의 아름다운 모습을 표현할 능력이 내게
는 없다. 아~! 하롱이여, 아~! 하롱이여~!
배가 움직이고 있다. 비로소 내입에서 흥얼거림이 나오고 있다. 두둥실 두리둥실 배떠나간
다 물맑은 밤바다에 배떠나간다 이배는 달맞으러 강릉 가는배 …, 내 감정은 이렇게 볼품없
다. 이 아름다움을 보고 나온다는 것이 이러할지니…, 부끄럽고 죄스럽다.
동굴에 정박 했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동굴로써 20~30분이면 관람이 충분한 규모다. 우리
나라의 고수동굴과 같은 석회암 동굴이지만 아기자기함과 정겨움이 느껴지질 않는다. 물이
떨어지지 않아서 종유석이 없고 석순이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옆에서 누군가 하는 말이 들
린다. “나는 이런 동굴이 정말 싫어, 마치 짐승의 뱃속에 들어온 느낌이고, 마치 모양이 에
어리언 같아” 그러고 보니 맞는 것 같다. 나도, 그 여자분도 보는 시각이, 양놈들 문화속에
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여자분도 분명 학력고사 세대 일것이다. 참고로 그 여
인은 우리일행 중에서 가장 예쁜(내가보는관점에서) 분이다. 이 동굴 안에는 베트남의 역사
와 인물이 모두 있다고 한다. 삼라만상이 모두 이곳에서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승선후 하선한 곳은 띠똡섬 이다. 띠똡의 유래는 호치민이 러시아 유학시절 만난 친구
의 이름이다. 호치민이 베트남의 지도자가 된후, 러시아 해군제독이 된 친구를 초청하여 연
회를 베풀고 베트남을 도와줄 것을 청했다 하여, 제독의 이름으로 명명 했다 한다. 하롱의
백미가 이곳에 있다 하여 부지런히 정상으로 향했다. 해발 200미터 정도 되었지만 가파랐기
에 힘이든다. 정상에는 누각이 있고 그곳의 아래에는 하롱의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진다.누
가 산을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 했던가? 이 모습을 보기 위해서 인가 보다. 이제는 감
탄을 할만한 여력이 없을 만큼 감격스럽다. 지금 내 옆에 70살 먹은 백발의 할머니가 있다해
도 ‘사랑한다’ 라는 말을 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할 것 같다. 역시 조물주는 위대하다.
이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내 가슴에 담기에는 이 가슴이 한없이 작아서 안타깝고 안타까울 따
름이다. 이렇게 하롱은 내 가슴속에 커다란 경이로움을 심어놓고 이제는 돌아가라 한다. 예
쁜모습만 보고 그만 가라 손짓한다. 아쉬움이 남는다. 언제쯤 다시 볼수 있을는지……,
지금은 하노이 공항을 출발할 기내에서 앉아있다. 하노이가 눈에 밟혀 제일 마지막으로 게이
트를 빠져 나왔다. 트렉을 오르면서 하노이의 밤하늘을 보고 또 봤다. 언제 또 볼수 있을
지…
언제나 떠날때는 마음이 아프지만 베트남은 더욱 가슴이 져려온다.
베트남이 볼거리가 특별히 많아서도 아니고 유구한 역사를 지녔음도 아니다. 이곳 사람들의
티없는 눈빛에 나의 마음을 모두 빼앗겨 버렸다.
‘호치민이 베트남을 구하고 인민은 구하지 못했다’는 나의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분명 호
치민은 베트남을 구했지만 인민은 구할수 없었다. 인민을 구할수 있는 것은 호치민도 아니
고 지금의 지도자도 아니며 신 또한 아니리라. 베트남 인민을 구할수 있는 것은 그들 스스
로 가슴속에 있는 순수함 이리라.
눈을감고 잠시 멍하게 있는다. 잠시후면 인천에 착륙한다. 우리는 지금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고 또다시 떠나기위해 잠시 머무는 것이다. 4박6일간의 함께한 일행들 에게 일일이 감사
의 말씀을 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동안 함께 했던 일행의 말씀과 표정, 행동이 눈앞에 어른거른다.
행복하다. 이 행복감 때문에 여행을 하고 앞으로도 여행을 할것이다. 내가 걸음을 옮길 기운
이 있을때 까지 나는 떠날 것이다. 이제는 집에서 깊은 잠속으로 빠져야겠다.
카페 게시글
모놀가족 이야기
베트남(북부)여행기
밝은전망
추천 0
조회 158
05.05.11 11:28
댓글 2
다음검색
첫댓글 밝은 전망님. 베트남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신비에 여성은 누구 일까요?ㅎㅎㅎㅎ
이제사 읽었습니다. 밝은전망님은 진정 마음으로 베트남을 바라 보신 분입니다.저 역시 베트남을 꼭 가보고 싶네요. 앙코르에서 크메르인의 아픔을 느꼈듯이...베트남인을 만나고 싶습니다.. 밝은전망님...기회가 되면 꼭 뵙고 싶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