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은 조선 시대 영조와 순조 사이에 씌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작가와 제
작 연대를 알 수 없는 소설로서 여러 이본(異本)이 있으나 특히 고전적인 가치
를 지닌 것으로 유명한 것은 <열녀 춘향 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이다.
남주인공 이몽룡은 서울 양반 가정의 출신이요, 여주인공 춘향은 성참판이
남원 기생 월매를 데리고 놀다가 낳은 딸이다. 이몽룡이 남원 부사로 부임한 아
버지를 따라 남원으로 내려왓따가 춘향을 만나게 되어 이두 사람 사이에 이루
어지는 이야기를 줄거기로 한 이 작품은 양반 관료의 작품 중에 대표가 되는
<구운몽(九雲夢)>과는 대조적으로 서민 계층의 대표작이다.
발단은 이몽룡이 광한루에 봄 놀이를 갔다가 우연히 춘향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은 데서 시작된다. 그러나 몽룡의 아버지가 갑자기 서울로 영전해 올라가게
됨으로써 두 남녀는 이벼랗게 된다. 여기서 새로 부임해 온 부사 변학도가 춘향
에게 수청들기를 요구하고 이를 거절한 춘향은 옥에 갇혀 갖은 고초를 다 겪게
되지만 변학도는 때마침 전라도 지방의 암행 어사가 되어 내려온 이몽룡에 의
하여 관직에서 쫓;겨나고 춘향은 구출되어 이몽룡과 재화하고 영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권선 징악의 경향은 유교적 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다. 또 사실 이 작품
은 유교적인 색채가 짙은 중국의 <서상기>에서 크게 영향을 받아 씌어
진 것이다. 다만 춘향전의 남녀 주인공은 신분의 차이가 현격함에 비해 서상기
의 남녀 주인공의 신분은 등급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춘향전은 당시의 인정 습속을 그대로 묘사함에 성공한, 계급을 초월
한 순수 연애와 그리고 상당한 수준의 평등 사상을 고취한 반봉건적 작품으로.
조선시대 최고의 애정 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춘향전
숙종대왕 즉위 초에 전라도 남원부에 월매 라는 퇴기가 있었으니, 나이 사십이 넘아 늦게 한 딸을 얻었다. 이름을 춘향이라 하였으니, 어질고 착하기 이를 데 없었다. 칠팔세가 되자 글읽기에 골몰하여 예모정절 을 일삼으니 춘향의 효행을 칭송치 않는 이가 없었다.
이 때 한양 삼천동에 사는 이한림이라는 양반이 있었으니 당시의 명가요 , 충신의 후손이었다. 하루는 임금께서 충효록을 올리게 하여 보시고 충신과 효자를 가려 내어 지방관으로 임명하시는데, 이한림에게 금산 군수를 제수하시었다가. 남원 부사 를 제수하시매 이로 하여 이한림은 남원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때는 놀기 좋은 화창한 봄날이었다. 온갖 새들이 서로 수작하고 짝을 지어 날아들고 춘정을 다투었다.
이 대 사또 자제 이도령의 나이가 이팔이요, 풍채는 당나라의 시인 두목지 와 같고 , 도량은 푸른 바다 같고, 지혜는 활달하고, 문장은 이태백이요, 글씨는 왕희지와 같았다. 하루는 방자 를 불러 말하였다.
“이 고을에 경치 좋은 곳이 어디냐? 시흥 과 춘흥이 도도하니 절승을 일러라.”
방자놈이 여쭈었다.
“글공부 하시는 도련님이 경치를 찾음은 부질없소이다.”
이도령이 말하였다.
“네 무식하구나. 예로부터 조상 문장 재사가 절승한 강산을 구경하는 것은 풍월과 글짓는데 근본이 되느니라. 신선도 두로 돌아 널리 보거늘 어이하여 부당하냐?”
이 때 방자, 도련님의 뜻을 받아 사방 경치를 말씀드렸다.
“서울로 이르면 자문 밖 칠성암 , 청련암, 세검정과 평양으로 이르면 연광정, 대동루, 모란봉, 양양으로 이르면 낙산사, 보은으로 이르면 속리의 문장대, 안의로 이르면 수승대 진주로 이르면 촉석루, 밀양으로 이르면 영남루가 어떠한지 모르오나 전라도로 이르면 태인의 평양정, 무주의 한풍로, 한벽루가 좋사오나 , 남원의 경치 들어 보시오
동문 밖에 나가면 관왕묘는 천고 영웅 엄한 위풍 어제 오늘 같사 옵고 남문 밖에 나가면 광한루 , 오작교, 영주각, 이 좋사옵고, 북문 밖에 나가면 파란 하늘에 금부용꽃이 빼어나 괴팍하게 우뚝 섰으니 기암 등실 교룡산성 좋사오니 처분대로 하시오.“
도련님 이르는 말씀이,
“애야, 네 말 들어 보니 광한루와 오작교가 절경인 모양이구나. 그리로 구경가자꾸나.”
도련님의 거동 보소. 사또 앞에 나아가 공손히 말씀드린다.
“ 오늘 날씨 화창하옵기에 잠깐 나가 풍월이나 읊겠사오며 시운이 나 생각하고자 합니다.
성이나 한 바퀴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사또 매우 기뻐하시며 허락하시고 분부하셨다.
“남주 풍물을 구경하고 돌아와되 시제를 생각하여라.”
“아버님 가르치시는 대로 하오리다.”
물러나와 방자를 불러 일렀다.
“나귀 안장 지어라.”
방자 나귀의 안장을 얹는다.
“나귀 등대하였소.”
도련님 거동 보소. 옥안 선풍에 전판 같은 채머리 곱게 빗어 밀기름에 잠재워 궁초댕기 석황 몰려 맵시 있게 잡아 땋고. 접동배 세백저 상침바지 극상세목 겹버선에 남갑사 대님 치고, 육사단 겹배자 밀화 단추 달아 입고, 통행전을 무릎 아래 늦추 매고, 영초단 허리띠, 모초단 도리낭 당팔사 갖은 매듭 고를 내어 늦추 매고, 쌍문초 긴동정, 중추막에 도포 받쳐 흑사디를 가슴 위로 눌러 매고 육분당혜 끌면서.
“나귀를 붙들어라.”
이리하여 광한루에 이르니 흰 나비 쌍쌍이 날아 너울너울 춤을 추고 황금 같은 꾀꼬리는 숲속으로 날아든다.
광한 진경(眞景)좋거니와 오작교가 더욱 좋다. 바야흐로 이르되 호남(湖南) 제일성이라 하겠다. 오작교 분명할진대 견우직녀 어디 있나? 이런 승지에 풍월이 없을소냐, 도련님이 글 두 구를 지으니,
드높고 밝은 오작의 배에
광한루 옥섬돌 고운 다락이다.
누구냐 하늘의 직녀는
흥나는오늘의 내가 견우로다.
이 때 내아에서 잡술상이 나오니, 한 잔 술 기울인 후에 통인 방자에게 물려주고 취흥이 되도하여 이리저리 거닐 적에 붉을 단(丹), 푸를청(靑), 흰백(白), 붉을 홍(紅), 고몰고몰이 단청(丹靑) 버드나무 꾀꼬리가 짝 부르는 소리는 내 춘흥을 도아 준다. 노랑벌 흰나비, 노랑나비도 향기 찾는 거동이다. 날아가고 날아오니 춘성(春城)의 안이요, 영주는 바야흐로 봉래산이 눈 아래 가까우니, 물은 본시 은하수요, 경치도 잠깐 천상 옥경과 같다. 옥경이 분명하면 월궁의 항아가 없을 리 있겠는가.
이 때는 춘삼월이라 하였으나 오월 단오날이었다. 일년 중 가장 좋은 시절이다. 이 때 월매 딸 춘향이도 또한 시서 음률이 능통하니, 천중(天中絶)을 모를소냐. 그네를 뛰려고 향단이를 앞세우고 내려와서 섬섬옥수로 그네줄을 잡고 살짝 올라 발을 구르니, 뒤 단장 옥비녀 은죽절과 앞치레는 밀화장도 옥장도 광원사 겹저고리 제색 고름이 모양이 난다.
도련님 혼비 중천 일신이 고단하다.
“통인아!”
“예!”
“저 건너 화류 중에 오락가락 희뜩희뜩 얼른얼른하는 게 무엇인지 보고 오너라.”
통인이 살펴보고 말하엿다.
“이 고을 기생이던 월매의 딸 춘향이란 계집이올시다.”
“장히 좋다. 훌륭하다.”
“제 어미는 기생이오나 춘향이는 도도하여 기생 구실 마다하고 백화초엽(百花草葉)에 글자도 생각하고, 여공재질이며 문장을 겸전하여 여염집 처자와 다름없소이다.”
도령이 허허 웃고 방자 불러 분부하였다.
“들은즉 기생의 딸이라니 급히 가 불러오너라.”
방자 분부 듣고 서왕모 요지의 자치에 편지 전하던 청조같이 건너간다.
“여봐라, 얘 춘향아.”
부르는 소리에 춘향이 깜짝 놀란다.
“무슨 소리를 그 따위로 질러 사람의 정신을 놀라게 하느냐.”
“애야 말 말아라. 일이 났다.”
“일이라니 무슨 일이냐?”
“사또 자제 도련님이 광한루에 오셨다가 너 노는 모양을 보고 불러오란 명령이 났다.”
춘향이 화를 낸다.
“네가 미친 자식이다. 도련님이 어찌 나를 알아서 부른단 말이냐? 이 자신 네가 내 말을 종달새가 열씨 까듯 했나 보구나.”
“아니다. 내가 네 말을 할 리 없으니 네가 그르지 내가 그르냐, 너 그른 내력을 들어 보아라. 계집애 행실로 그네를 뛸 모양이면 네 집 후원 담장안에 줄을 매고 은근히 하는 게 도리에 맞다. 광한루 구경처에 그네를 매고 네가 뛸 때 외씨 같은 두 발길로 백운간에 노니니 홍상자락 펄펄, 백방사 속곳 동남풍에 펄렁펄렁 박속 같은 네 살결이 백운간에 희뜩희뜩, 도련님이 너를 보고 부르시거늘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잔말 말고 건너가자.”
“네 말이 당연하나 오늘이 단오날이다. 비단 나 뿐이랴, 다른 집 처자들도 예서 함께 그네를 띄었으며, 그럴 뿐 아니라 또 설혹 내 말을 할지라도 내가 기적에 있는 바도 아니거늘 여염 사람을 함부로 부를 일도 없고 부fms다고 갈 리도 없다. 당초에 네가 말을 잘못 들은 모양이다.”
방자 광한루로 다시 돌아와 도련님께 여쭈니 도련님 그 말 듣고 말한다.
“기특한 사람이다. 말인즉 바른 말이로되 다시 가서 이리저리하여 보아라.”
방자 전갈 듣고 춘향에게 건너가니 그 사이에 제 집으로 돌아갔거늘 저의 집을 찾아가니 모녀간 마주 앉아 점심이 한창이다.
“너 왜 또 오느냐?”
“황송타, 도련님이 다시 전갈하신다. ‘내가 너를 기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들으니 네가 글을 잘 한가기로 청하는 것인, 여염집 처녀 불러 보는 것이 소문에 괴이하기는 하나 험으로 알지 잠깐 와 다녀가라’하시더라.”
춘향이 홀연히 생각하니 갈 마음이 나나 모친의 뜻을 몰라 한참이나 말 않고 앉았더니 춘향모 썩 나앉으며 정신없이 말한다.
“꿈이라는 것이 전혀 허사가 아닌 모양이다. 간밤 꿈에 난데없는 청룡 한 마리 벽도못에 잠겨 보이기에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하였더니 우연한 일이 아니다. 또한들으니 사또 자제 도련님 이름이 몽룡이라 하니, 꿈몽(夢)자에 용룡(龍)자라 신통하게 맞히었다. 그러나저러나 양반이 부르시는데 아니 갈 수 있느냐, 잠깐 다녀오너라.”
춘향이가 광한루로 건너가니, 이도령 입을 열어 말한다.
“성현도 성이 같으면 장가가지 않는다 하였으니, 네 성은 무엇이며 나이는 몇 살이냐?”
“성은 성가이옵고 나이는 열다섯이옵니다.”
“허허 그 말 반갑다. 네 나이 들어 보니 나와 동갑 이팔이요, 성씨 들어 보니 나와 천정 연분 분명하다. 이씨와 성씨는 좋은 연분, 평생 동락하여 보자.”
춘향이 거동 보소. 눈썹을 쫑그리며 붉은 입 반쯤 열어 옥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바꾸지 않는다는데, 도련님을 귀공자요 소년는 천첩이옵니다. 한 번 정을 맡긴 연후에 버리시면 일편단심 독수공방 홀로 누워 우는 한은 이내 신세 내 아니면 뉘 알리오, 그런 분부 다시는 마소서.”
“우리 둘이 인연 맺을 때 금석맹약 맺으리라. 네 집이 어디냐?”
“방자 불러 물으소서,”
“내 너더러 묻는 말이 허황하구나! 방자야!”
“예.”
“춘향의 집을 네 일러라,”
“저기 송정 죽림 두 사이로 은은히 보이는 것이 춘향의 집이 올시다.”
“장원이 정결하고 송죽이 울울하니 여자의 절개 행실을 족히 알 만하구나.”
춘향이 일어나며 다소곳이 말한다.
“시속 인심 고약하니 그만 놀고 가겠습니다.”
“기특하다. 오늘 밤 ?? ?? 너의 집에 갈 것이니 괄시나 부디 말아라.”
춘향이 대답한다.
“나는 몰라요.”
“내가 모르면 쓰겟느냐. 잘 가거라. 오늘 밤에 상봉하자.”
도련님이 춘향을 애연히 보낸 후에 잊을 숭 없는 생각 둘 데 없어 책방으로 돌아와
만사에 뜻이 없고 다만 춘향 생각뿐이었다. 말소리 귀에 쟁쟁하고 고운 태도 눈에 삼삼하여 해지기만 기다린다.
이도령 퇴령 놓기를 기다리다가 방자를 불러 물었다.
“퇴령 놓아나 보아라.”
“아직 아니 놓았소.”
조금 있으니 퇴령 소리 길게 난다.
“좋다, 좋다. 옳다, 옳다. 방자야, 초롱에 불 밝혀라.”
삼문 밖에 나서니 좁은 길 사이에는 달빛이 영롱하고 투기 하는 소년들은 밤에 청루에 들어갔으니 지체말고 어서 가자. 그정저렁 당도 하니, 좋은 밤은 쥐죽은 듯 고요하고 좋은 계절이 아름답지 않은가?
이 때 춘향이 칠현금 비껴 안고 남풍시를 희롱하다가 침석에서 조는데, 방자는 개가 짖을까 자취없이 가만가만 춘향 방 영창 밑으로 살짝 들어간다.
“얘 춘향아, 잠 들었느냐?”
춘향이 깜짝 놀란다.
“네 어찌 오느냐?”
“도련님이 와 계시다.”
춘향이 이 말 듣고 가슴이 울렁울렁 속이 답답하여 부끄럼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열고 나오더니 건너방으로 건너갔다.
“애고 어머니, 무슨 잠을 이리 깊이 주무시오?”
“아가, 무엇을 달라고 부르느냐?”
“누가 무엇을 달라고 했소.“
“그러면 어째서 불렀느냐?”
“도련님이 오셨소.”
춘향모 문을 열고 방자 불러 묻는다.
“뉘 왔느냐?”
“사또 자제 도련님이 와 계시오”
춘향모 그 말을 듣고 향단을 불러 일렀다.
“뒤 초당에 좌석과 등촉을 마련해 두어라.”
당부하고 춘향모 나오더니 공수 하고 우뚝 선다.
“그 사이 도련님 문안이 어떠시오?”
도련님 반만 웃고 말한다.
“춘향이 모친이라지...... 평안한가?”
“예, 겨우 지냅니다. 오실 줄 진정 몰라 영접이 불민하옵니다.”
“그럴 리가 있나?”
춘향모 앞에 서서 인도하여 안으로 들어가니 해묵은 별초당에 등촉을 밝혔는데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못 가운데 쌍오리가 손님 오신다 두둥실 떠 서 기다리는 모양이요, 처마에 다다르니 그제야 저의 모친 영을 받들어 사창을 반쯤 열고 나오는데 뚜렷한 일륜명월 이 구름 밖에 솟았는듯 황홀한 그 모양은 측량키 어려웠다. 부끄러워 당에 내려 천연스레 서 있는 거동은 사람의 간장을 다 녹인다. 도련님 반만 웃고 묻는다.
“곤하지 아니하여 밥이나 잘 먹느냐?”
춘향이 부끄러워 대답지 못하고 묵묵히 서 있거늘 춘향모가 먼저 당에 올라 도련님을 자리로 모셨다.
“귀중하신 도련님이 누추한 집에 와 주시니 황공하고 감격하옵니다.”
도려님 그말 한 마디에 말구멍이 열리었다.
“그럴 리가 있나. 우연히 광한루에서 춘향을 잠깐 보고 꽃을 찾는 취한 마음, 오늘 밤에 온 뜻은 춘향모 보러 왔거니와 자네 딸 춘향이와 백년언약 맺고자 하니 자네 마음 어떠한가?”
춘향모 대답한다.
“가세가 부족하니 사. 서인 상하에 다 미치지 못하니 혼인이 늦어져서 주야로 걱정이던 중 도련님 말씀은 춘향과 백년 가약한다는 말씀이오나 그런 말씀 마시고 노시다가 가십시오.”
이 말이 참말이 아니라 이도령님 춘향을 얻는다 하니 앞일을 몰라 뒤를 눌러 하는 말이었다. 이도령 기가 막혔다.
“좋은 일엔 흔히 마가 끼는 법이라네. 춘향도 미혼이나 나도 미혼이라 재차 언약이 이렇고 육례는 못할망정 양반의 자식이 일구이언을 할 리가 있겠소?”
“도련님의 속마음이 말과 같을진대 알아 행하시오.”
“그건 두 번 다시 염려 마소.”
이와 같이 이야기하니 청실홍실의 육례를 갖추어 만난다 한들 이위에 더 뾰족할 것인가.
“내 저를 첫장가같이 여길 터이니 염려 마소.”
이와 같이 이야기하니 청실홍실의 육례를 갖추어 만난다 한들 이위에 더 뾰족할 것인가.
“내 저를 첫장가같이 여길 터이니 염려 마소. 대장부 먹은 마음으로 박대 하는 행실을 할 것인가? 허락만 하여 주소.”
춘향은 이 말을 듣고 이윽고 앉았더니 몽조가 있는지라 연분인 줄 짐작하고 홀연히 허락하였다.
“봉이 나매 황이 나고, 장군 나매 용마나고, 남원의 춘향 나매 이화춘풍 꽃답다. 향단ㅇ, 주반(酒飯) 등대하였느냐?”
“예.”
이도령 잔을 받아 들고 탄식하여 말한ㄷ.
“내 마음대로 한다면 육례를 행할 것이나 그렇게는 못 하고 개구멍 서방으로 들고보니 이 아니 원통하냐, 얘 춘향아, 그러나 우리 둘이 대례 술로 알고 먹자.”
한 잔 술 부어 든다.
“내 말 들어라. 첫째 잔은 인사주요, 둘재 잔은 합환주(合歡酒)니 이 술을 근원 근본으로 삼으리라. 우리 백살까지 살다가 한날 한시 마주 누워 순후없이 죽게 되면 천하에 제일 가는 연분이 아니겠느냐.”
이 때에 춘향모 향단 불러 데리고 건너가고 춘향과 이도령이 마주 않아 놓으니 그 일이 어찌 되겠는가.
“치마를 벗어라.”
춘향이가 부끄러워 몸을 틀며 이리 굼실 저리굼실, 도련님이 치마 벗겨 제쳐 놓고 바지와 속곳을 벗길 때에 무한히 힐난한다. 이리 굼실 저리 굼실 동해의 청룡이 굽이치는 듯하였다.
저고리 치마 속곳까지 벗겨 놓으니 춘향이 부끄러워 앉았을 때, 도련님 답답하여 가만히 살펴보니 얼굴에 구슬땀이 송실송실 맺혔다.
“얘 춘향아. 이리 와 업히어라.”
이도련님 춘향을 업고 추킨다.
“앗따 그 계집애 똥집 장히 무겁다. 네가 내 등에 없힌 것이 마음에 어떠냐?”
“더할 수 없이 좋소이다.”
“좋으냐?”
“좋아요.”
“나도 좋다. 좋은 말은 할 것이니 네가 대답만 하여라.”
“말씀 대답할 터이니 하여 보시오.”
“네가 금(金)이지?”
“금이란 당치 않소.”
“네가 그러면 무엇이냐? 날 홀려먹는 불여우냐? 네 어머니 너를 낳아 곱게 길러 내어 나를 홀려먹으라고 생겼느냐? 사랑사랑 사랑이야, 내 사랑이야, 네가 무엇을 먹으려는 것이냐? 생밤 진밤을 먹으려는 것이냐?
둥글둥글 수박 윗동을 대모장도드는 칼로 뚝 베고, 강릉 백청(白淸)을 두루 부어 은수저 반간지로 붉은 점 한 점을 먹으려느냐?“
“아니 그것도 내사 싫소.”
“에라 요것, 안 될 말이로다. 어화둥둥 내 사랑이지. 애 춘향아, 내리려무나, 백사만사가 품앗이가 있느니라. 내 너를 업었으니 너도 나를 업어라.”
“애고도련님은 기운이 세어서 나를 업으시거니와나는 기운이 없어 못 업겠소.”
“업는 수가 있느니라, 도두 업으려 말고 빨리 땅에 자운자운하게 뒤로 잦은 듯 업어다오.”
도련님을 업고 툭 추워 노니 대중이 틀렸구나.
“애그 잡성스러워라.”
이리 흔들 저리 흔들하더라.
온갖 장난을 다 하고 보니 이런 장관이 도 있으랴. 이팔. 이팔 둘이 만난 벅찬 마음에 세월 가는 줄 모른다.
이 때 뜻밖에 방자 나와아뢴다.
“도련님, 사또께서 부르시오.”
도련님이 들어가니 사또께서 말씀하신다.
“여봐라! 서울서 동부승지(同副承旨)의 교지가 내려왔다. 나도 문부(文簿) 사정(査定)하고 갈 것이니, 너는 내행을 모시고 오늘로 떠나거라.”
도련님 부교(父敎)듣고 한편 반가우나 한편 춘향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여 사지의 맥이 풀리고 간장이 녹는 듯 두 눈에서 더운 눈물이 평펑 솟아 고운 얼굴을 적시거늘 사또 보시고 묻는다.
“너 왜 우느냐? 내가 남원에서 일생을 살 줄 알았더냐? 내직으로 승차되니 섭섭히 생각 말고 오늘부터 치행 등절을 급히 차려 내일 오전으로 떠나거라.”
겨우 대답하고 물러나와 내아에 들어가 사람의 상중하를 막론하고 어머니에게는 허물이 적은지라 춘향을 말을 울며 청하다가 꾸중만 실컷 듣고 춘향의 집으로 가는데, 설움은 기가 막히나 길거리에서 울 수 없어 참기는 하나 속에서는 두 간장이 끊어지는 듯하다. 춘향 문전에 당도하니 통째 건더기째 보태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온다.
“어푸어푸 어허.”
춘향이 깜짝 놀라 왈칵 뛰어나온다.
“애고 이게 웬일이오?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꾸중만 들으셨소?
노상에서 무슨 분함 당하셨소? 서울서 무슨 기별이 왔다더니 상부를 입으셨소?
점잖으신 도련님이 이게 웬일이오?“
춘향이 도련님 목을 담쏙 안고 치맛자락을 걷어잡고 고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이리 씻고 저리 씻으면서 달랜다.
“우지 마오, 우지 마오.”
도련님 기가 막혀 울음이란 게 말리는 사람이 있으면 더 울게 되는 것이었다. 춘향이 화를 낸다.
“여보 도련님, 우는 입 보기 싫소. 그만 울고 내력이나 말하오.”
“사또께서 동부승지로 승차하셨다.”
춘향이 좋아한다.
“댁의 경사요, 왜 운단 말이오.”
“너를 버리고 갈 터이니 내 아니 답답하냐?”
“언제는 남원 땅에서 평생 사실 줄 알았소? 도련님 먼저 올라가시면 나는 추후에 올라갈 것이니 아무 걱정 마시오.”
“그게 될 법한 말이냐? 네 말을 대부인께 여쭈었더니 꾸중이 대단하시더라. 양반의 자식이 부형을 따라 하행(下行)왔다가 화방작첩(花房作妾)하여 데려간단 말이 앞길에도 해롭고 조정에 들어 벼슬도 못한다고 말씀 하신다. 불가불 이별이 될 수밖에 없다.”
“허허 이게 웬일이오.”
춘향이 왈칵 달려들어 치맛자락을 와드득 좌루룩 찢어 버리고 머리도 와드득 쥐어뜯어 싹싹
비벼 도련님 앞에다 내던진다.
“무엇이 어쩌고 어째요? 이것도 쓸데없다.”
명경, 체경, 산호죽절 두루쳐 방문 밖에 탕탕 부딪치며 발을 동동 굴러 손뼉치고 돌아앉아 운다.
“여보 도련님! 지금 막 하신 말씀 참말이오? 우리 둘이 만나 백년 언약 맺을 적에 대부인 사또께서 시키시던 일이요? 핑계가 웬말이오. 광한루에서 잠깐 보고 내 집에 찾아와서 도련님은 저기 앉고 춘향이는 저기 앉아 저한테 하신 말씀, ‘금석맹약 어길 수 없다’고 전녁 오월 단오날 밤에 내 손목 부여잡고 우둥퉁퉁 밖에 나와 당중에 우뚝 서서 맹세키로, 내 정녕 믿었더니 말경에 가실 때는 뚝 떼어 버리시니 이팔 청춘 젊은 것이 낭군없이 어찌 살꼬. 애고 애고 내 신세야. 모지도다, 모지도다. 도련님이 모지도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존비귀천 원수로다. 여보 도련님, 춘향 몸이 천하다고 함부로 버리셔도 그만인 줄로 아지 마오. 팔자 사나운 춘향이가 입이 써서 밥 못먹고 잠 안 와 잠 못 자면 며칠이나 살듯하오? 상사로 병이 들어 애통하다 죽게 되면 슬프고 원통한 이 혼신이 원기가 될 것이니 존중하신 도련님께 그건들 재앙이 아니겠소? 사람의 대접을 그리마오. 죽고 싶구나. 애고 애고 서러워라.”
한참 이리 자진 하여 슬피 울 때 춘향모 영문 모르고 건너와서 도령님 앞에 달려들었다.
“나와 말 좀 해 봅시다. 내 딸 춘향을 버리고 간다 하니 무슨 죄로 그러시오? 춘향이가 도련님 모시던 근 일년 동안 행실이 그르던가, 예절이 그르던가, 바느질이 그르던가. 언어가 불순하던가. 잡스런 행실을 가져 창녀 같이 음란하던가, 무엇이 그르던가? 애고 애고 서럽구나, 몇 사람 신세 망치려고 아니 데려가오?”
이 말 만일 사또 귀에 들어가면 큰 야단이 나겠다.
“여보 장모, 춘향만 데려가면 그만 아니오.”
“그래 아니 데려가고 견뎌 낼까?”
“너무 덤벼들지 말고 여기 앉아 말 좀 듣소. 내일 내행이 나오실 때 신주 모신 짐이 나올 터이니 신주는 모셔내어 내 창옷 소매에다 모시고 춘향은 요여 에다 태워 갈 것이니, 걱정 말고 염려 마소.”
춘향이 그말 듣고 도련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하였다.
“어머니, 도련님 너무 조르지 마소. 우리 평생 신세가 도련님 장중에 매었으니 알아 하시라 부탁이나 하오. 이번엔 아무래도 이별할 수밖에 수가 없네. 기왕에 이별이 될 바에는 가시는 도련님을 왜 조르리까마는 우선 갑갑하여 그러는 것 아니오? 어머니, 그만 건넌방으로 가시어요.”
촛불을 돋워 켜고 둘이 서로 마주 앉아 갈 일을 생각하고 보낼 일을 생각 하니 정신이 아득하고 한숨질과 솟는 눈물에 흐느껴 울며 얼굴도 대어 보고 손발도 만져 본다.
“도련님 올라가면 살구꽃 피고 봄바람 부는 거리마다 취하느니 장진주요, 청루미색 집집마다 보시느니 미색이요, 곳곳에 풍악소리, 간곳마다 화월이라. 호색하신 도련님 주야로 호강하실 때에 나 같은 머 시골 천첩이야 손톱만큼이나 생각하리까? 애고 애고 내 일이야.”
“춘향아 울지 말아라. 한양성 남북촌에 옥 같은 아름다운 여자가 많건마는 규중심처 깊은 정 너밖에 없었다. 내 아무리 대장부라 한들 잠시인들 잊을소냐?”
서로 기가 막혀 못 떠나고 있을 때에 도련님을 모시고 갈 후행 사령이 헐떡헐덕 들어온다.
“도련님어서 행차하시지요”
춘향이 할 길 없어, 술 한 잔 부어 눈물 섞어 드리면서 말한다.
“한양성 가시는 길에 강가에 늘어선 푸른 나무들은 제 작별의 서러움을 머금었으니 제 정을 생각하시오. 말에 오른 채 지치시어 병이 날까 염려되오니 천금 같은 귀하신 몸 조심하옵소서. 푸른 가로수 우거져 늘어선 길에 평안히 행차하시고 종종 편지나 하옵소서.”
하루 아침에 낭군을 이별하니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세월을 보내더라.
이 때 도련님은 올라갈 때 숙소마다 잠 못 이룬다.
"보고지고, 내 사랑 보고지고. 낮이나 밤이나 잊지 못하는 우리 사랑, 날 보내고 그런 마음 속히 만나 풀리라."
날이 가고 달이 감에 딸 마음을 굳게 먹고 과거에 급제하여 미구에 도임할 것만 바라는 것이었다.
이 때 수삭 만에 신관 사또 났으니 자하문 변학고라는 양반이 오는데, 문필도 유려하고인물과 풍채도 활발하고 풍류속에 달통하여 외입속이 넉넉하되, 흠이 있으니 성정이 괴퍅하고 실덕도 하고 판경르 ㄹ잘못하는 일이 간간이 있으므로 아는 이들은 다 고집불통이라고 하였다. 신연 맞이 하인이 뵐 때 행군하는 풍악소리 성동에 진동하고 삼현육각 천마성은 원근에 낭ㅇ자하다.
광한루에 보진하여 옷을 갈아 입고 객사에 연명차로 남여 타고 들어갈 때 백성의 눈에 엄숙하게 보이려고 눈을 별로 궁글궁글하며 객사에 들어가 동헌에 좌기하고 도임상을 잡순 후이다.
"행수 문안이오."
행수 군관의 집례를 받고 육방관속의 현신을 받은 뒤 사또가 분부하였다.
"수노 불러서 기생 점고하렷다."
호장이 분부 듣고 기생 안책 들여놓고 차례로 이름을 부른다.
"명월이."
"나요."
"도홍이."
"나요."
"채봉이."
"나요."
"연심이."
"나요"
"......"
"......"
연연히 고운 기생도 그 중에는 많건마는 사또게서는 근본 춘향의 말을 높이 들ㅇㅆ는지라 아무리 들어도 춘향의 이름이 없는지라. 사또 수노 불러 묻는다.
"가생 점고 다 되어도 춘향은 안부르니 그 년은 퇴기란 말이냐?"
수노 여쭙는다.
"춘향모는 기생이나 춘향은 기생이 아니옵니다."
이에 사또가 묻는다.
"기생이 아니면 어찌 규중에 있는 아이의 이름이 높이 났느냐?"
"근본은 기생의 딸이옵고 덕색이 장하므로 구관 사또 자제 이도령과 백년 가약 맺고 도련님 가실 때에 과거에 급제하면 데려간다 하였기에 춘향이도 그리 알고 수절하고 있습니다.“
사또 골을 낸다.
“이 놈, 무식한 상놈, 그게 어떤 양반이라고 엄부시하요 장가 전 도련님 이 화방에 작첩하여 살까. 이 놈 다시 그런 말을 입 밖에 냈다가는 죄를 면치 못하리라. 내가 저 하나를 보려다가 못 보고 그저 가랴. 잔말 말고 불러 오라.”
춘향을 부르라는 명령이 내리자 이방, 호방이 여쭙는다.
“춘향이가 기생이 아닐 뿐더라 전 사또 자제 이도령과 맹약이 중하온데 같은 양반의 분의로 부르라 하시니 사또님 체모가 손상될까 걱정되나이다.”
사또 크게 노하여 소리친다.
“만일 춘향을 시각 지체한다면 이방 형방들 이하 각청 두목을 모두 파면 할 것이니 빨리 대령시키지 못할까?”
육방이 소동을 일으키고 각청 두목이 넋을 잃는다. 사령 관노 뒤섞여서 춘향집 문전에 당도하였다.
“이리 오너라!”
춘향이 깜짝 놀라 문 틈으로 내다보니 사령 관노들이 나와 있다.
“허허 번수님네 이리 오소, 이리 오소, 오시기 뜻밖이네.”
춘향이 나가서 김번수며 이번수며 여러 번수 불러들여 제 방에 앉힌 후 에 향단 불러 주반상 취하도록 먹이고 궤문 열어 돈 닷 냥을 내어 놓는다.
“여러 번수님네, 가시다가 술이나 잡숫고 가시오. 뒷일이 없게 하여 주오.”
돗 받아 차고 흐늘흐늘 들어갈 때 행수 기생이 나와 두손 땅땅 마주치며 말한다.
“여봐라 춘향아. 말 듣거라. 너만은 정절은 나도 있고 너 만한 수절은 나도 있다.
너만한 정절이 왜 없으며 너만한 정절이 왜 없으며 너만한 수절이 왜 없겠느냐? 정절 부인 아가씨, 수절 부인 아가씨, 조그마한 너 하나로 말미암아 육방이 소동하고 각청 두목이 다 죽어간다 어서 가자 바삐 가자.“
춘향이 할 수 없어 수절하던 그 태도로 대문 밖에 썩 나시며 말한다.
“형님 형님, 행수 형님. 사랑의 괄시 그리 마소 . 그대라고 대대 행수며 나라고 대대로 춘향인가. 인생 한번 죽으면 그만이요,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동헌으로 들어간다.
“춘향 대령하였소.”
춘향이 상방에 올라가 무릎을 여미고 앉았을 뿐이다. 사또 보시고 크게 기뻐서 분부한다.
“오늘부터 몸 단장 정히 하고 수청을 거행하라.”
“사또님 분부 황송화오나 일부종사 바라오니 분부 이행 못 하겠소.”
사또가 칭찬한다.
“아름답고 아리따운 계집이로다. 네가 진정 열녀로다. 네 정절 굳은 마음 어찌 그리 어여쁘나. 당연한 말이로다. 그러나 이수재 (이도령) 는 경성 사대부의 자제로서 명문 귀족의 사위가 되었으니, 한때 사랑으로 잠깐 희롱하던 너를 조금이나 생각하겠느냐? 너 혼자 평생을 수절하다가 고운 얼굴이 늙어지고 백발이 드리우면 불쌍하고 가련한 게 너 아니겠느냐, 네 아무리 수절한들 누가 너를 열녀라 칭찬하랴. 네가 말을 좀 하여라.”
춘향이 여쭙는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며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고 절개를 지킨다 함을 본받고자 하옵는데, 본부가 이러하오니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하오니 처분대로 하시오.”
“이 년 들어라. 모반 대역하는 죄는 능지처참하게 되고 관장을 조록하는 죄는 기시율 에 처한다고 써 있으며 관장을 거약한 죄는 엄형에 처하고 정배 보내느리라. 죽는다고 설워 말아라.”
“유부녀를 겁탈하는 것은 죄가 아니고 무엇이오?”
사또 기가 막혀 어찌나 분하던지 첫마디에 목이 쉬어 호령한다.
“이 년을 잡아 내려라!”
명령이 떨어지니 골방의 수청 통인이 달려들어 춘향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내렸다.
“급창!”
“예.”
“이 년 잡아 내려라!”
춘향이 뿌리치며 악을 쓴다.
“놓아라.”
중계로 내려가니 급창이 달려들었다.
“요년 요년, 어떠하신 존전이라고 대답을 그리하고 살기를 바랄소냐.”
대뜰 아래 내려치니 맹호 같은 군노 사령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감태같은 춘향의 머리채를 어린 시절 연실 감듯, 뱃사공의 닻줄 감듯 사월 파일 등대 감듯 휘휘 친친 감아 쥐고 동댕이치니, 불쌍하다 춘향신세. 백옥 같던 고운 몸이 육자백으로 엎어졌구나.
좌우에 나졸들이 능장, 곤장, 형장이며 주장을 짚고 늘어섰다.
“아뢰라! 형리를”
“머리 숙여라!”
사또는 어찌나 분이 났던지 벌벌 떨며 허푸허푸한다.
“여봐라! 골통을 부수고 물고장을 올려라!”
춘향을 형틀에 올려매고 형장이며 태장이며 곤장이며 한 아름 담쑥 안아 다가 형틀 아래 좌르륵 부딪치는 소리에 춘형의 정신 혼미하다.
“사또님의 분부 지엄한데 저런 년을 무슨 사장 두리까? 이 년 다리를 까딱 말아라.
만일 요동하였다가는 뼈 부서지리라.“
호통하고 들어서서 검장소리 발 맞추어 서면서 가만히 말한다.
“한두 개만 견디소. 어쩔 수가 없네. 요 다리는 요리 틀고 저 다리는 저 리 트소.”
“매우 쳐라!”
“예잇, 때리오.”
딱 붙어서 부러진 형장개비는 푸드득 날아 공중에 잉잉 솟아 상방 대뜰 아래 떨어지고 춘향이는 아픔을 참으려고 이를 북북 갈며 고개만 빙빙 두른다.
“애고 이게 왠일이여?”
곤장, 대장을 치는 데는 사령이 서서 하나 둘 세건마는 형장부터 법장이라 형리와 통인이 닭싸움하는 모양으로 마자 엎드리어 하나 치며 하나 굿고, 둘 치면 둘 긋고, 무식하고 돈 없는 놈이 술집 바람벽에 술값 긋듯 그 어 놓으니 한 일자가 되었구나. 춘향이는 저절로 설움에 겨워 맞으면서 운다.
“일편단심 굳은 마음은 일부종사의 뜻이오니, 한낱 매를 치신다고 일년이 다 못 가서 조금이라도 내 마음 변하리까.” 남원부의 한량이며 남녀노소 없이 모여 구경할 때 모두 눈물을 흘렸다.
두 번째 매를 친다.
“이부절을 아옵는데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내 마음 이 매맞고 아주 죽어도 이도령은 못 잊겠소.”
세 번째 매를 친다.
“삼종지례 중한 범 삼강오륜 알았으니 세 차례의 형문을 받고 정배를 갈지라도 삼천동에 계시는 우리 낭군 이도령을 못 잊겠소.”
네 번째 매를 친다.
“사대부 사또님은 사민공사 살피지 않고 위력 공사만 힘쓰니 사십팔방 남원 백성 원망함을 모르시오? 사지를 자른대도 사생동거 우리 낭군 사생간에 못 잊겠소.”
다섯 번째 매를 친다.
“오륜 윤기 그치지 않고 부부유별 오행으로 맺은 연분 올올이 찢어내도 오매불망 우리 낭군 온전히 생각나네. 오동추야 밝은 달은 임 계신 데 보련마는 오늘이나 편지 올까, 내일이나 편지 올까 무죄한 이내 몸이 악사 할리 없으니 잘못 판결로 죄수 만들지 마옵소서. 애고 내 신세야.”
여섯 번째 매를 친다.
“육육은 삼십육으로 낱낱이 고찰하여 육만 번 죽인대도 육천 마디 얽힌 사랑 맺힌 마음 변할 리 전혀 없소,”
일곱 번째 매를 친다.
“칠거지악 범하였소? 칠거지악이 아니거늘 칠개형문이 웬일이오? 칠척검 드는 칼로 동강동강 잘라서 이제 바삐 죽여 주오. 치라 하는 저 형방아 칠 때마다 살피지 마소. 칠보홍안 나 죽겠네.” 여덟 번째 매를 친다.
“팔자 좋은 춘향 몸이 팔도 삼백 수령 중에 제일 명관 만났구나. 팔도 삼백 수령님네 백성 다스리러 내려왔지 악형하러 내려왔나?”
아홉 번째 매를 친다.
“구곡간장 굽이 썩어 이내 눈물 구년지수 되겠구나. 구고청산 장송 베어 울차고 센 배 만들어 타고 한양성중 급히 가서 구중궁궐 나라님께 나라님께 구구히 억울한 사정 여쭈옵고 삼청동 찾아가서 사랑 맺힌 마음 마음껏 풀련마는.”
열 번째 매를 친다.
“십생구사(十生九死)할지라도 팔십 년 정한 뜻을 십만 번 죽인대도 가망없고 무가내요. 십륙 세 어린 춘향 곤장 맞아 원통한 귀신 되니 가련하고 가련하오.”
열 치고 그만둘 줄 알았더니 열한, 열둘..... 열다섯 번째 매를 친다.
“십오야 밝은 달은 데구름에 묻혀 있고 서울 계신 우리 낭군 삼청동에 묻혔으니 달아 달아 임 보느냐? 임 게신 곳 나는 어이 못 보는고.”
스물 치고 끝날까 하였더니 스물다섯 번째 매를 친다.
“이십오현 야탄월에 저 기러기, 너 가는 데 어디냐. 가는 길에 한양성 찾아들어 삼청동 우리 임께 내 말 부디 전해 다오. 나의 모습 자세히 보고 부디부디 잊지 말아라.”
삼심삼천 어린 마음을 옥황전에 아뢰려고 옥 같은 춘향 몸에 솟느니 유혈이요, 흐르느니 눈물이다. 피눈물 한데 흘러 무릉도원(武陵桃源)의 홍류수(紅流水)라.
“소녀를 이리 말고 능지처참 박살하여 죽여 주면 죽은 뒤에 원조(怨鳥)라는 새가 되어 초흔조(招魂鳥) 함께 울어 적막공산 달 밝은 밤에 우리 도련님 잠든 후에 파몽(破夢)이나 하여지이다.”
춘향이 점점 악을 쓰다가 지쳐 더 말 못 하고 기절하니 엎드려 있던 형방통인 고개 들어 눈물 씻고, 매질하던 사령도 눈물 씻고 돌아서며 말한다.
“사람의 자식으로선 이 짓 못 하겠네.”
좌우의 구경하는 사람과 거행하는 관속들도 눈물 씻고 돌아서며 말한다.
“춘향의 매맞는 더동, 사람 자식은 못 보겠다. 모질도다. 모질도다. 춘향 정절이 모질도다. 하늘이 낸 열녀로다.”
남녀노소 없이 눈물 흘리며 돌아설 때 사또인들 좋을 리가 있으랴.
“네 이 년! 관청 뜰에서 발악하며 맞으니 좋은 것이 무엇이냐? 일후에도 또 그런 거역을 할까?”
반은 죽고 반은 산 춘향이 점점 악을 쓴다.
“여보 사또 들으시오, 죽기를 결심하고 먹은 마음을 어찌 그리 모르시오. 계집의 품은 원한은 오뉴월에 서리칩니다. 원통한 혼이 하늘로 다니다가 우리나라님 앉은 곳에 이 원정을 아뢰오면 사또인들 무사하랴, 덕분에 죽여 주오.”
사또 기가 막혀 명을 내린다.
“허허 그 년 말 못 할 년이로군, 큰칼 씌워 옥에 가두어라.”
큰칼 씌워 봉인하여 옥사장이 등에 업고 삼문 밖을 나올 대에 춘향모 이말 듣고 정신없이 들어오더니 춘향의 목을 안고 운다.
“애고 이게 웬일이냐? 조는 무슨 조며 매는 무슨 매냐. 집사님네, 이방님네, 내 딸이 무슨 조요, 애고애고 내 일이야. 칠십 당년 늙은 것이 의지할 데 없이 되었구나. 애고 내 딸 매맞은 자리 보소. 빙설 같던 두 다리에 연지 같은 피 비쳤네. 왜 못생긴 월매 딸이 되어 이 모양이 웬일이냐? 춘향아 정신 차려라. 애고 애고 내 신세야.”
옥중에 들어가서 옥방의 모양을 살펴보니 부서진 죽창 틈으로 살을 쏘나니 바람이요. 무너진 헌 벽이며 헌 자리에서 벼룩 빈대가 온몸으로 기어든다.
죽창 문을 열어젖히니 밝고 깨끗한 달은 방 안으로 든다마는 어린것이 홀로 앉아 달에게 묻는 말이,
“저 달아 보느냐. 임 계신 데 밝은 기운 비쳐라, 나도 좀 보자꾸나. 우리 임이 누웠더냐. 보는 대로만 네가 일러 나의 수심 풀어다오.”
애고 애고 슬피 울다가 홀연히 잠이 들어 꿈을 꾸다가 깨어 보니, 옥창 박에는 앵두꽃이 떨어져 보이고, 거울 복판이 깨어져 보이고, 문 위에 허수아비가 달려 있듯이 보이거늘, 나 죽을 꿈이로다 하고 수심과 걱정으로 밤을 새우더라. 밤은 깊어 삼경이요, 궂은비는 퍼붓는데 옥 밖으로 장님 하나가 지나가는데 서울 봉사 같으면 ‘문수(問數)하오’라고 외치련마는 시골봉사라,
‘문복(問卜)하오’라고 외치며 가니, 춘향이 듣고,
“여보 어머니, 저 봉사 좀 불러 주오.”
춘향모가 봉사를 부른다.
“여보, 저기 가는 봉사님.”
"거 누구요 ?"
"춘향의 모요."
"어째 찾나 ?"
"우리 춘향이가 옥중에서 봉사님을 잠깐 오시라 하오"
"날 찾기 의외로군. 가 보세."
봉사가 옥으로 들어갈 때 춘향모 봉사의 지팡이를 잡고 길을 인도하였다.
"봉사님 이리 오시오. 이것은 돌다리요, 이것은 개천이요, 조심하여 건너시오."
"애고 봉사님, 어서(보이지않음)"
봉사는 춘향이가 일색이란 말을 듣고 반가워한다.
"음성을 들으니 춘향 각시인가 ?"
"예 기옵니다."
"대체 나를 어째 청하였나 ?"
"예 다름이 아니라 간밤에 흉몽을 꾸었기로 해몽도 하고 우리 서방님이
어느 때나 나를 찾으까 길흉 여부를 점치려고 청하였소."
"그리하세."
봉사가 점을 치는데,
"저 태서의 믿음직한 말을 빌려 존경을 다하여 축원하옵나니 하늘
이 언제 말씀하시었고 땅이 언제 말씀하셨으리요마는 두드리오면 곧 응하
시는 것이 신령하심이니 옹감하시어 신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산토을 철겅철겅 흔들더니 말한다.
"어디보자. 일이삼사오륙칠, 허허 좋다. 좋은 괘로구나. 자네 서방님이
머지 않아 내려와서 평생의 한을 풀겠네. 걱정마오. 참 좋다."
춘향이 대답한다.
"말대로 그러하면 오죽이나 좋사오리까. 간밤꿈의 해몽이나 좀 하여 주옵소서."
"어디 자상히 말을 하소."
"단장하던 체경이 깨어져 보이고, 창 앞의 행두꽅이 떨어져 보이고, 문
위에 허수아비가 달린 듯이 보이고, 태산이 무너지고 바닷물이 말라 보이
니 나 죽을 꿈 아니오 ?"
봉사 가만히 생각하다가 얼마 있다 말하였다.
"그 꿈이 장히 좋다. 꽃이 떨어지니 능히 열매를 맺을 것이요, 거울이 깨
지니 어찌 큰소리 한 번 없겠는가. 문 위에 허수아비 달렸음은 만인이 다
우러러봄이라. 바다가 말랐으니 용의 얼굴을 볼 것이며, 산이 무너지면 평
지가 되리라. 좋다. 쌍가마 탈 꿈이로세. 걱정말게, 멀지 않네."
한참 이리 수작할 때, 까마귀가 뜻밖에 옥 밖의 담에 와 앉아서 '가옥가
옥' 울거늘 춘향이 손을 들어 날리며 말하였다.
"방정맞은 까마귀야. 나를 잡아가려거든 조르지나 말려무나."
봉사가 이 말을 듣더니 묻는다.
"가만 있소. 그 까마귀가 가옥가옥 그렇게 울었지 ?"
"예, 그래요."
"좋다 좋다. 가는 아름다울 가요, 옥은 집 옥이라. 아름답고 즐
겁고 좋은 일이 불원간에 돌아와서 평생에 맺힌 한을 풀 것이니 조금도 걱
정하지 마소. 지금은 복채 천냥을 준대도 아니 받아갈 것이니 두고 보고 영
귀하게 되는 때에 괄시나 부디 마소. 나는 돌아가네."
춘향은 장탄 수심으로 세월을 보내었다.
이 때 한양성 이도령은 주야로 시서 백가어를 숙독하였으니 글로는 이백이요,
글씨는 왕희지라. 국가에 경사있어 *태평과를 보일때에 서책을 품에 푸모 과거장에 들어
가 좌우를 둘러보니 수많은 백성과 허다한 선비가 일시에 절을 한다. 어악
풍류 청아한 소리에 앵무새가 춤을춘다. 대제학을 택출하여 *어제를 내리시매
소승지 모셔 내어 홍장에 걸어 놓으니, 글제에 하였으되 '춘당춘색이 고금동이라'
뚜렷이 걸렸거늘 이도령 글제를 살펴보니 익히 보던 바더라. 시제를 펼쳐 놓고 해제를 생각하여,
용지연에 먹을 갈아 당황모 무심필을 반중동 덤벙 풀어 왕희지 필법으로 조맹부 체를 받
아 단붓으로 휘갈겨 내니 상시관이 글을 보고 자자마다*비점하고, 구구마다*관주하였다.
용사비등하고 평사낙안이라. 금세의 큰 인재로다.
금방에 이름을 불러 어주 석 잔 권하신 후 장원급제 *휘장하시었다.
신래 진퇴 나올 적에 머리에는 임금이 내린 꽅이요, 몸에는 앵상이요, 허리에는 학대로다.
삼일간 거리에서 논 연후에 산소에 제사지내고 임금께 절하니 임금께서 친히 불러 보신 후에,
"경의 재주 조정의 으뜸이라."
하시고 도승지 입시하여 전라도 어사를 내리시니, 평생에 소원하던 바였다.
수의 , 마패 , 유척을 내주시니, 전하께 하직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철관 풍채는 깊은 산의
맹호와 같았다.
이튿날 서리 중방을 불러 분부하되,
"막중한 국사를 거행함에 있어 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죽기를 면치 못하리라."
추상같이 호령하며, 서리 불러 분부하되,
"너는 좌도로 들어, 진산, 금산, 무주, 용담, 진안, 장수, 운봉, 구례로 이 팔 읍을 둘러
아무 날 남원으로 대령하고, 홍방 역졸 너희들은 우도로 용안, 함열, 임피, 옥구, 김제,
만경, 고부, 부안, 홍덕,고창, 장성, 영광, 무장, 무안, 함평으로 둘러 아무 날 남원으로
대령하고, 종사, 너는 익산, 금구, 태인, 정읍, 순창, 옥고, 광주, 나주, 창평, 담양,
동복, 화순, 강진, 영암, 장홍, 보성, 홍양, 낙안, 순천, 곡성으로 둘러 아무 날 남원으로
대령하라."
분부하여, 각기 나누어 보내신 후에 어사 또 행장을 차리는데,모양 보소.
숫제 사람을 속이려고 모자 없는 헌 파립에 벌이줄을 총총 매어 갓끈 달아 쓰고 당만 남은 헌
망건에 갑풀 관자 노끈 당줄 달아 쓰고 의뭉하게 헌 도복에 무명 실띠를 가슴속에 둘러매고
살만 남은 헌 부채에 솔방울 *선추달아 햇볕을 가리고 내려올 때 한내, 주엽정이, 가린내,
싱금정 구경하고, 공북루 서문을 얼른 지나 남문에 올라 사방을 둘러 보니 서호 강남 여기로다.
차차로 암행하여 내려올 때 수령들이 어사 났단 말을 듣고 민정을 가다듬고 *전공사를 염려
할 때 누구인들 편할까. 이방, 호장 넋을 잃고 공사의 회계하는 형방 서기 여차하면 도망할
준비로 신발끈을 감고 수많은 청상이 넋을 잃어 분주할 때, 이 때 어사또는 임실 구화뜰 근처를
당도하니 마침 농사철이라.
농부들이 농부가를 부르며 이러할 때 야단이었다.
'어려로 상사뒤요, 천리 건곤 태평시에 도덕 높은 우리 성군 강구연월 동요 듣던
요 임금 성덕이라. 어여로 상사사뒤요.
순 임금 높은 성덕으로 내신 성기, 역산에 밭을 갈고 어여로 상사뒤요.
신농씨 내신 따비 천추 만대 유전하니, 어이 아니 높으던가. 어여로 상사뒤요.
하우씨 어진 임금 구 년 홍사 다스리니, 어여로 상사뒤요.
은왕 성탕 어진 임금 대한칠년 당하였네. 어여로 상사뒤요.
백초를 심어 사시를 짐작하니, 유산한 게 백초로다. 어여로 상사뒤요.
청운 공명 좋은 호강 이 업을 당할소냐. 어여로 상사뒤요.
남북 전답 기경하여 *함보고복 하여 보세. 얼럴럴 상사뒤요. '
한참 이러할 때, 어사또 주령 짚고 이만치 떨어져서 농부가를 듣다가,
"올해도 대풍이로고."
또 한편을 바라보니 이상한 일이 있이었다. 중년이 넘은 노인들이 끼리끼리
모여 서서 등걸밭을 일구는데, 갈명덕 숙여 쓰고 쇠스랑 손에 들고 백발가를 부르는 것이다.
'등장 가자. 등장가자. 하느님 전에 등장 갈 양이면 무슨 말을 하실는지.
늙은이는 죽지 말고, 젋은 사람 늙지 말게. 하느님 전에 등장 가세.
원수로다, 원수로다. 백발이 원수로다. 오는 백발 막으려고 우수에 도끼들고,
좌수에 가시 들고, 오는 백발 두드리며, 가는 홍안 걸어 당겨 청사로 결박하여 단단히
졸라매되 가는 홍안 저절로 가고 백발은 스스로 돌아와, 귀 밑에 살 잡히고 검은 머리 백발 되니
조여청사 모성설이다.
무정한 게 세월이라. 소년 행락 깊은들 왕왕이 달라가니, 이 아니 광음인가.
천금 준마 잡아 타고 장안 대도 달리고저, 만고강산 좋은 경치 다시 한 번 보고지고 , 화조월석
사시가경 눈 어둡고 귀가 먹어 볼 수 ㅇ벗고 들을 수 없어 하릴없는 일일세.
슬프다. 우리 벗님, 어디로 가겠는고. 구추 단풍잎 지듯이 선뜻 선뜻 떨어지고,
새벽 하늘 별 지듯이 삼삼오오 스러지니, 가는 길이 어드멘고. 어여로 가래질이야.
아마도 우리 인생 일장춘몽인가 하노라.'
한참 이러할 때 한 농부 썩 나서며,
"담배 먹세, 담배 먹세."
갈명덕 숙여 쓰고 두덩에 나오더니 곱돌조대 넌짓 들어 꽁무니 더듬더니
가죽 쌈지 빼어 놓고 담배에 세우 침을 뱉어 엄지손가락이 자빠지게 비빗비빗 단단히 넣어
짚불을 뒤져 놓고, 화로에 푹 질러 담배를 먹는데, 농군이라 하는 것이
대가 빡빡하면 쥐새끼 소리가 나것다. 양 볼때기가 오목오목, 콧구멍이 벌름벌름,
연기가 홀홀 나게 피워 물고 나서니, 어사또 반말 하기는 공성이 났지.
"저 농부, 말 좀 물어 보면 좋겠구만."
"무슨 말 ?"
"이 고을 춘향이가 본관에 수청 들어 뇌물을 받아 먹고 민정에 폐를 끼친단 말이 옳은지 ?"
저 농부 열을 낸다.
"게가 어디 삽나 ?"
"아무 데 살든지."
"아무 데 살든지라니 ? 게는 눈콩알 귀콩알도 없나 ? 지금 춘향이는 수청 아니 든다 하여 형장
맞고 갇혔으니 창가의 그런 열녀 세상에 드문지라. 옥결 같은 춘향 몸에 자네 같은 동냥아치가
더러운 말을 지껄이다가는 빌어먹도 못하고 굶어 죽으리라. 올라간 이도령인지 삼도령인지
그 놈의 자식은 한 번 간 후 소식 없으니, 인사가 그렇고는 벼슬은 커녕 사람 구실도 못 하지."
"어, 그게 무슨 말인고 ?"
"왜, 어찌 됩나 ?"
" 되기야 어찌 되랴마는, 남의 말이라고 구습을 너무 고약하게 하는군."
"자네가 철모르는 말을 하매 그렇지."
수작을 파하고 돌아선다.
"허허, 망신이로고. 자, 농부네들 일하시어."
하직하고 한 모롱이를 돌아드니, 아이 하나 오는데 주령막대 끌면서 시조 절반 사설 절반
섞어 중얼거린다.
"오늘이 며칠인고. 천리길 한양성을 며칠 걸어 올라가랴. 조자룡이 강 건너던 청총마가 있더라면
오늘로 가련마는. 불행하다 춘향이는 이서방을 생각하여 옥중에 갇혀서 목숨이 경각에 달렸으니
불쌍하다. 몸쓸 양반 이서방은 한 번 간 후 소식이 없으니, 양반의 도리는 그러한가 ?"
어사또 그 말 듣고 묻는다.
"얘, 어디 사니 ?"
"남원읍에 사오."
"어디를 가니 ?"
서울 가오."
"무슨 일로 가니 ?"
"춘향의 편지 갖고 구관 댁에 가오."
"얘, 그 편지 좀 보자꾸나."
"그 양반 철모르는 양반이네."
"웬소린고 ?"
"글쎄 들어 보오.남의 펴닞도 어렵거든 황차 남의 내간을 보잔단 말이오 ?"
"얘,들어라.*행인이 임발우개봉이란 말도 있나니라. 좀 보면 관계하냐 ?"
"그 양반 몰골은 흉악하구만 문자 속은 기특하오. 얼른 보고 주오."
"후례자식이로고."
편지 받아 떼어 보니 혈서로 하였는데, 평안 낙안 기러기 격으로 그저 툭툭 찍은 것이 모두 다
애고로다. 어사 보더니 두 눈에 눈물이 맺거니 듣거니 방울방울이 떨어지니 저 아이 말한다.
"남의 편지 보고 왜 우시오 ?"
"어따 얘, 남의 편지라도 설운 사연을 보니, 자연 눈물이 나는구나."
"여보, 인정 있는 체하고 남의 편지 눈물 묻어 찍히오. 그 편지 한장 값이 열닷 냥이오. 편지값
물어 내오."
"여봐라, 이도령이 나와 죽마고우로서 하향에 볼일이 있어 나와 함께 내려오다 완영에 들렀으니,
내일 남원에서 만나자 언약하였다. 나를 따라가 있다가 그 양반을 뵈어라."
그아이 가로막고,
"서울을 저 건너로 아시오 ?" 하며 달려들어,
"편지 내오."
서로 다툴 때 옷자락을 잡고 힐난하며 살펴보니 명주 전대를 허리에 둘렀는데 제기 접시 같은
것이 들었거늘 물러나며 말하였다.
"이것 어디서 났소 ? 찬 바람이 나오."
"이 놈, 만일 천기 누설하였다가 성명을 보전치 못하리라."
당부하고 남원으로 들어올 때 박석치를 올라서서 사면을 둘러보니, 산도 예 보던 산이요,
물도 예 보던 물이다. 남문 밖 썩 내달아, 광한루야 잘 있었더냐, 오작교야 무사하냐.
*객사청청유색신은 나귀매고 청운낙수 맑은 물은 내 발 씻던 청계수라. 녹수진경 넓은 길은
왕래하던 옛길이라."
어사또 누에 올라 자세히 살펴보니 석양은 서에 있고 잠자려는 새는 숲으로 들어갈 때 저 건너
버드나무는 우리 춘향 그네 매고 오락가락 놀던양을 어제 본 듯 반갑도다. 푸른 숲 사이에 춘향
집이 저기로다. 저 안의 내동원은 예 보던 모습이요, 석벽의 험한 옥은 우리 춘향 우는 듯
불쌍하고 가엾다.
서산에 해지는 황혼에 춘향 문전 당도하니 행랑은 무너지고 몸채는 꾀를 벗었는데,
예 보던 벽오동은 수풀 속에 우뚝 서서 바람을 못 이기어 추레하게 서 있거늘 나지막한 담 밑의
백두룸은 함부로 다니다가 개한테 물렸는지 깃도 빠지고 다리를 징금, 낄룩 뚜루룩 울움 울고,
빗장 앞 누런 개는 기운 없이 졸다가 구면의 손님을 몰라보고 컹컹 짖고 내닫는다.
"요 개야, 짖지마라. 주인 같은 손님이다. 너의 주인 어디 가고 네가 나와 반기느냐 ?"
중문은 바라보니 내 손으로 쓴 글자가 충성 충자 완연하더니 가운데 중은 어디 가고 마음 심자만
남아 있고, 누운 용 같은 힘 있는 글씨 입춘서는 동남풍에 펄렁펄렁, 이내 수심 돋워 낸다.
그렁저렁 들어가니 안뜰은 적막한데 춘향모 거동 보소, 미음 솥에 불 넣으며,
“애고 애고 내 일이야. 모질도다, 모질도다. 이서방이 모질도다. 위경(危境)의 내 딸 아주 잊어 소식조차 없네. 애고 애고, 설운지고. 향단아, 이리와 불 넣어라. ”
하고 나오더니, 울 안 개울물에 흰 머리 빗고, 정한수 한 동이를 단하에 받쳐 놓고 땅에 엎드려 축원하되,
“천지지신(天地之神) 일월(日月星辰)은 화위동심(化爲動心)하옵소서. 다만 독녀(獨女) 춘향이를 금쪽같이 길러 내어 외손봉사 바랐더니 무죄한 매를 맞고 옥중에 갇혔으니 살릴 길이 없사옵니다. 천지지신은 감동하사 한양성 이몽룡을 청운에 높이 올려 내 딸 춘향 살려 주사이다. ”
빌기를 다한 후에,
“향단아, 담배 한 대 붙여다구.”
춘향모 받아 물고 후유 한숨 눈물지을 때, 어사 춘향모 정성 보고 ‘내가 벼슬한 게 선영 음덕으로 알았더니, 우리 장모 덕이로다.’하였다.
“그 안에 뉘 있나?”“뉘시오?”“내로세.”“내라니 뉘신가?”어사 들어온다. “이서방일세.”“이서방이라니! 옳지, 이풍헌 아들 이서방인가?”“허허, 장모 망녕이로세. 나를 몰라, 나를 몰라?”
“자네가 뉘기여?”“사위는 백년을 두고 대접해야 할 손님이라 하였으니 어찌 나를 모르는가?”
춘향모 반겨하며,
“애고 애고, 이게 웬일인고. 어디 갔다 이제 와, 바람이 크게 일더니 바람결에 풍겨 온가?”
여름날 구름이 기묘한 산봉오리처럼 엉기더니 구름 속에 싸여 온가? 춘향의 소식 듣고 살리려고 와 계신가? 어서어서 들어가세.“
손을 잡고 들어가서 촛불 앞에 앉혀 놓고 자세히 살펴보니 걸인 중에 상걸인이 되었구나.
“이게 웬일이오?”
“양반이 그릇되매 형언할 수 없네. 그 때 올라가서 벼슬길 끊어지고 가산을 탕진하여 부친께서는 학장질 가시고 모친은 친가로 가시고 다 각기 갈리어서, 나는 춘향에게 내려와서 돈천이나 얻어 갈까 하였더니, 와서 보니 양가 이력 말 아닐세.”
춘행의 모, 이 말 듣고 기가 막혀,
“무정한 이 사람아, 일차 이별 후로 소식이 없었으니, 그런 인사가 있으며, 후기지 바랐더니 이리 잘 되었소, 쏘아 놓은 살이 되고, 엎질러진 물이 되어, 누구를 원망할까마는 내 딸 춘향 어쩔랍나?”
어사 짐짓 춘향모의 하는 거동을 보려 하고,
“시장하여 내 죽겠네. 날 밥 한 술 주소.”
춘향모 밥 달라는 말을 듣고,
“밥 없네.”
어찌 밥 없을꼬마는 홧김에 하는 말이었다.
이 때, 향단이 옥에 갔다 오더니, 저의 아씨 야단 소리에 가슴이 우둔우둔 정신이 월렁월렁, 정처 없이 들어가서 가만히 살펴보니, 전의 서방님이 와 계시구나. 어찌 반갑던지 우르르 들어간다.
“향단이 문안이오. 대감님 문안이 어떠하시며, 대부인 기후 안녕하며, 서방님께서도 원로에 평안히 행차하시니까?”
“오냐, 고생이 어떠하냐”
“소녀 몸은 무탈하옵니다. 아씨 아씨 큰아씨, 마오 마오, 그리 마오. 멀고 먼 천리길에 눌 보려고 와 계시관대, 이 괄시가 웬일이오. 아기씨가 아시면 지레 야단 날 것이니, 너무 괄시 마옵소서.”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먹던 밥에 풋고추 절이김치 양념 넣고 단간장에 냉수 가득 떠서 모반에 받쳐 드린다.
“더운 진지 할 동안에 시장하신데 우선 요기하옵소서.”
어사또 반겨하며,
“밥아, 너 본지 오래로구나!”
여러 가지를 한데다가 붓더니, 숟가락 댈 것없이 손으로 휘저어 한편으로 몰아치더니,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하는구나. 춘향모 하는 말이,
“얼시고, 밥 빌어먹기는 공성이 났구나.”
이 때 향단이는 저의 아가씨 신세를 생각하여, 크게 울지는 못하고 훌쩍이며,
“어찌할거나, 어찌할거나. 도덕 높은 우리 아기씨를 어찌하여 살리시려오? 어쩔꺼나요, 어쩔꺼나요?”
실성으로 우는 양을 어사또 보시더니, 기가 막혀 위로한다.
“여봐라 행단아, 우지 마라, 우지 마라. 너의 아기씨가 설마 살지 죽을소냐. 행실이 지극하면 사는 날이 있느니라.”
춘향모 듣더니 말한다.
“애고, 양반이라고 오기는 있어서…….”
“대체 자네가 왜 저 모양인가?”
향단이 말한다.
“우리 큰아씨 하는 말을 조금도 괘념 마옵소서, 나이 많아 노망 중에 이 일을 당해 놓으니, 홧김에 하는 말을 일분인들 노하리까? 더운 진지 잡수시오.”
어사또, 밥상 받고 생각하니, 분한 마음이 북받쳐 올라 마음이 울적, 오장이 월렁월렁, 석반이 맛이 없다.
“향단아, 상 물려라.”
담뱃대 툭툭 떤다.
“여보 장모, 춘향이나 좀 보아야지.”
“그러지요, 서방님이 춘향을 아니 보아서야 인정이라 하오리까?”
향단이 어쭙는다.
“지금은 문을 닫았으니, 바라 치거든 가사이다.”
이 대 마침 바라를 댕댕 치는구나. 향단이는 미음상 이고 등롱 들고, 어사또는 뒤를 따라 옥문간 당도하니, 인적이 고요하고 사장도 간 곳 없네.
이 때 춘향이 비몽사몽간에 서방님이 오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이요, 몸에는 홍상이라, 상사일념 끝에 만단정희하는 차라.
“춘향아.”
부른들 대답이나 있을소냐, 어사또 하는 말이,
“크게 한번 불러 보소.”
“모르는 말씀이오. 예서 동헌이 마주치는데, 소리가 크게 나면 염문 할 것이니, 잠깐 지체하옵소서,”
“무어 어때, 염문이 무엇인고. 내가 부를테니 가만 있소. 춘향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며,
“허허, 이 목소리, 잠결인가, 꿈결인가? 그 목소리 괴이하다.”
어사또 기가 막힌다.
“내가 왔다고 말을 하소,”
“욌다 말을 하면 놀라 정신을 잃고 까무러칠 것이니, 가만히 계옵소서.”
춘향이 저의 모친 음성 듣고 깜짝 놀란다.
“어머니, 어찌 와 계시오? 몹쓸 딸자식을 생각하와 천방지방 다니다가 낙상하기 쉽소, 이 훌랑은 오실라 마옵소서,”
“날랑은 염려 말고 정신을 차리어라. 왔다.”
“오다니 누가 와요?”
“그저 왔다.”
“갑갑하여 나 죽겠소. 일러 주오. 꿈 가운데 임을 만나 만단정회하였더니, 혹시나 서방님께서 기별 왔소? 언제 오신단 소식 왔소? 벼슬 띠고 내랴온단 노문 왔소? 애고, 답답하여라.”
“너의 사방인지 남방인지, 걸인 하나 내려왔다.”
“허허, 이게 웬말인가, 서방님이 오시다니? 몽 중에 보던 임을 생시에 보단 말가?”
문 틈으로 손을 잡고 말 못 하고 기막혀 하며,
“애고, 이게 누구시오? 아마도 꿈이로다. 상사불견 그린 임을 이리 쉽게 만날손가? 이제 죽어 한이 없네. 어찌 그리 무정한가? 박명하다, 나의 모녀. 서방님 이별 수에 자나깨나 임 그리워 일구월심 한일러니, 이내 신세 이리 되어 매에 감겨 죽게 되니, 날 살리러 와 계시오?”
한참 이리 반기다가 임의 형상 자세히 보니, 어찌 아니 한심하fi.
“여보 서방님, 내 몸하나 죽는 것은 설운 마음 없소마는 서방님, 이 지경이 웬일이오?”
“오냐 춘향아, 설워 마라. 인명이 재천인데 설만들 죽을소냐.”
춘향이 저의 모친 불러,
“한양성 서방님을 칠년대한 가문 날에 갈민대우 기다린들 날과 같이 자진하던가. 심은 나무 꺾어지고, 공든 탑이 무너졌네. 가련하다, 이내 시세, 하릴없이 되었구나.
어머님, 나 죽은 후에라도 원이나 없게 하여 주옵소서. 나 입던 비단장옷 봉장 안에 들었으니, 그 옷 내어 팔아다가 한산세저 바꾸어서 물색 곱게 도포 짓고, 백방수주 진 치마를 되는 대로 팔아다가 관망, 신발 사 드리고, 절병 천은 비녀, 밀화장도 옥지환이 함 속에 들었으니, 그것도 팔아다가 한삼 고의 불초찮게 하여 주오.
금명간 죽을 년이 세간 두어 무엇 할까. 용장, 봉장, 반닫이를 되는 대로 팔아다가 별찬 진지 대접하오. 나 죽은 후에라도 나 없다 말으시고 날 본듯이 섬기소서.
서방님, 내 말씀 들어시오. 내일이 본관 사또 생신이라, 취중에 주망나면 나를 올려 칠 것이니, 형문 맞은 다리 장독이 났으니, 수족인들 놀릴손가, 만수운환 헝클어진 머리 이렁저렁 걷어 얹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들어가서 장폐하여 죽거들랑, 삯군인 체 달려들어 둘러업고, 우리 둘이 처음 만나 놀던 부용당의 적막하고 요적한 데 뉘어 놓고, 서방님 손수 염습하되, 나의 혼백 위로하여 입은 옷 벗기지 말고 양지 끝에 묻었다가, 서방님 귀히 되어 청운에 오르거든 일시도 둘라말고 욱진 장포 개련하여 조촐한 상여 위에 덩그렇게 실은 후에, 북망 산천 찾아갈 제, 앞남산 뒷남산 다 버리고 한양으로 올려다가 선산 발치에 묻어 주고, 비문에 새기기를 ‘수절원사 춘향지묘’라 여덟 자만 새겨 주오. 망부석이 아니 될까. 서산에 지는 해는 내일 다시 오련마는 불쌍한 춘향이는 한 번 가면 어느 때 다시 올까. 신원이나 하여 주오.
애고 애고, 내 신세야. 불쌍한 나의 모친, 나를 잃고 가산을 탕진하면 하릴없이 걸인 되어, 이 집 저 집 걸식하다가 언덕 밑에 조속조속 졸면서 자진하여 죽거들랑, 지리산 갈가마귀 두 날개를 떡 벌리고 두덩실 날아들어, 까옥까옥 두 눈을 다 파먹은들, 어느 자식 있어 후여하고 날려 주리.“
애고 애고 설리 울 제, 어사또,
“우지 마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느니라, 네가 나를 어찌 알고 이렇듯이 설워하냐?”
작별하고 춘향 집에 돌아왔다.
춘향이는 어둠침침 야삼경에 서방님을 번개같이 얼른 보고, 옥방에 홀로 낮아 탕식하는 말이,
“명천은 사람을 낼 제 별로 후박이 없건마는, 나의 신세 무슨 죄로 이팔청춘에 임 보내고 모진 목숨 살아, 이 형문, 이 형장 무슨 일고, 옥중 고생 삼사 삭에 밤낮 없이 임 오시기만 바랐더니, 이제는 임의 얼굴 보았으나 광채 없이 되었구나. 죽어 황전에 돌아간들 제왕전에 무슨 말을 자랑하리?”
애고 애고 섧게 울 제, 자진하여 반생반사 하는구나.
이튿날, 조사 끝에 근읍 수 ․ 령이 모여든다. 운봉영장 ․ 구례 ․ 곡성 ․ 순창 ․ 옥과 ․ 진안 ․ 장수 원님이 차례로 모여든다.
좌편의 행수 군관, 우편의 청령사령, 한가운데 본관은 주인이 되어 하인 불러 분부하되,
“관청색 불러 다담을 올리라, 육고자 불러 큰 소를 잡고, 예방 불러 고인을 대령하고 승발 불러 차일을 대령하라. 사령 불러 잡인을 금하라.”
이렇듯 요란할 제, 기치 군물이며 육각 풍류 반공에 떠 있고, 녹의 홍상 기생들은 백수 나삼 높이 들어 춤을 추고,
“지화자 둥덩실.”
하는 소리, 어사또 마음이 심란하구나.
“여봐라, 사령들아, 너의 원전에 여쭈어라. 먼 데 있는 걸인이 좋은 잔치를 당하였으니, 주효 좀 얻어 먹자고 여쭈어라.”
저 사령 거동 보소,
“어느 양반인데, 우리 안전님 걸인 혼금하니, 그런 말은 내도 마오,”
등을 밀쳐 내니, 어찌 아니 명관인가? 운봉이 그 거동을 보고 본관에게 청하는 말이,
“저 걸인의 의관은 남루하나 양반의 후예인 듯하니, 말석에 앉히고 술잔이나 먹여 보냄이 어떠하뇨?”
본관 하는 말이,
“운봉 소견대로 하오마는.”
하니 ‘마는’소리 훗입맛이 사납것다. 어사 속으로,
‘오냐, 도적질은 내가 하마. 오라는 네가 져라.’
운봉이 분부하야,
“저 양반 듭시래라.”
어사또 들어가 단좌하여 좌우를 살펴보니, 당상의 모든 수령다담을 앞에 놓고 진양조가 양양할 제, 어사또 상을 보니 어찌 아니 통분하랴. 못 떨어진 개상판에 닥채저붐, 콩나물, 깍두기, 막걸리 한 사발 놓았구나. 상을 발길로 탁 차 던지며, 운봉의 갈비를 직신,
“갈비 한 대 먹고지고.”
“다라도 잡수시오.”
하고 운봉이 하는 말이,
“이러한 잔치에 풍류로만 놀아서는 맛이 적사오니, 자운 한 수씩하여 보면 어떠하오?
“그 말이 옳다.”
하니, 운봉이 운을 낼 제, 높을 고(高)자, 기름 고(膏)자 두 자를 내어놓고 차례로 운을 달 제, 어사하는 말이,
“걸인도 어려서 추구권이나 읽었더니, 좋은 잔치 당하여서 주효를 포식하고, 그저 가기 무렴하니, 차운 한 수 하사이다.”
운봉이 반겨 듣고 필연을 내어주니, 좌중이 다 못 하여 글 두 구를 지었으되, 민정을 생각하고 본관 정체를 생각하여 지었것다.
이렇듯이 지었으되, 본관은 몰라보고, 운봉 이 글을 보며, 내렴에,
“아뿔싸, 일이 났다.”
이 때, 어사또 하직하고 간 연후에 공형 불러 분부하되,
“야야, 일이 났다.”
공방 불러 포진 단속, 병방 불러 영마 단속, 관청색 불러 다담 단속, 옥형리 불러 죄인 단속, 집사 불러 형구 단속, 형방 불러 문부 단속, 사령 불러 합번 단속, 한참 이리 요란할 제, 물색 없는 저 본관이,
“여보, 운봉은 어디를 다니시오?”
“소피하고 돌아오오.”
본관이 분부하되,
“춘향을 급히 올리라.”
고 주광이 난다. 이 때에 어사또 군호할 제 서리 보고 눈을 주니, 서리 중방 거동 보소, 역졸 불러 단속할 제, 이리 가며 수군수군 저리 가며 수군수군. 서리 역졸 거동 보소, 외올 망건 공단 쌔기 새펴립 눌러 쓰고, 석 자 감발 새 짚신에 한삼 고의 산뜻 입고, 육모방치 녹피 끈을 손목에 걸어 쥐고, 예서 번뜻 제서 번뜻, 남원읍이 우군우군. 청파 역졸 거동 보소. 달 같은 마패 햇빛같이 번듯들어,
“암행 어사, 출도야.”
외치는 소리, 강산이 무너지고 천지가 뒤눕는 듯, 초목 금수인들 아니 떨랴? 남문에서,
“출도야.”
북문에서
“출도야.”
동 ․ 서문 ‘출도’소리 청천을 진동하고,
“공형 들라.”
외치는 소리, 육방이 넋을 잃어,
“공형이오,”
등채로 후닥닥,
“애고, 죽겠다.”
“공방, 공방.”
공방이 포진 들고 들어오며,
“안 하려는 공방을 하라더니, 저 불 속에 어찌 들랴.”
등채로 두다닥,
“애고, 박 터졌네.”
좌수, 별감 넋을 잃고, 이방, 호장 실혼하고, 삼색 나졸 분주하네. 모든 수 ․ 령 도망할 제 거동 보소. 인궤 잃고 과절 들고, 병부 잃고 송편 들고, 탕건 잃고 용수 쓰고, 갓 잃고 소반 쓰고, 칼집 쥐고 오줌누기, 부서니지 거문고요, 깨지나니 북, 장고라. 본관이 똥을 싸고, 멍석 구멍 새앙쥐 눈뜨듯 하고 내아로 들어가서,
“어! 추워라,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물 마른다, 목 들여오라.”
관청색은 상을 잃고 문짝 이고 내달으니, 서리, 역졸 달려들어 후닥닥,
“애고, 나 죽네.”
이 때 어사또가 분부하였다.
“이 고을은 대감이 좌정하시던 고을이라 소란을 금하고 객사로 옮기어라”
좌정한 후에 다시 분부한다.
“본관은 봉고파직하라!”
“본관은 봉고파직이오!”
사대문에 방을 붙이게 하고 옥형리를 불러 분부하되,
“네 고을 옥수(獄囚)를 다 올려라!”
호령하니 죄인을 올리거늘 다 각각 문죄한 후에 죄 없는 자는 놓아 줄 때, 어사또가 묻는다.
“저 계집은 무엇이냐?”
형리가 여쭙는다.
“기생 월매의 딸인데 관청 뜰에서 포악하게 군 죄로 옥중에 있습니다.”
“무슨 죄냐?”
“본관 사또의 수청으로 불렀더니 수절이 정절이라 수청을 아니 들려 하고 관청 뜰에서 포악한 춘향이올시다.”
어사또가 분부한다.
“네년이 수절한다고 관청 뜰에서 포악하였으니 살기를 바랄소냐? 죽어 마땅하되 내 수청도 거역할까?”
춘향이 기가 막혀 말한다.
“내려오는 관장마다 모두가 명관이로구나. 수의사또 들으소서, 충암 절벽 높은 바위가 바람이 분다고 무너지며 청송(靑松) 녹죽(綠竹)이 눈이 온다고 변하리까. 그런 분부 마옵시고 바삐 죽여 주오.”
그리고 향단을 부른다.
“서방님 어디 계신가 보아라. 어젯밤에 옥문간에 오셨을 때 천만 번 당부하였더니 어디로 가셨는지 나 죽는 줄 모르는가?"
어사또가 분부한다.
“얼굴을 들어 나를 보아라!”
춘향이 고개를 들어 대 위를 살펴보니 걸객으로 왔던 낭군이 어사또로 뚜렷이 앉았구나. 반웃음 반울음으로,
“얼씨구나 좋을시고. 어사 낭군 좋을시고. 남원읍 내 추절(秋節) 들어 떨어지게 되었더니, 객사에 봄이 들어 이화 춘풍 날 살린다. 꿈이냐 생시냐, 꿈을 깰까 염려로다.”
한참 이리 즐길 때에 춘향모 들어와서 한없이 기뻐하는 말을 어찌 다 말하랴.
춘향의 높은 절개가 광채 있게 되었으니 어찌 아니 좋을손가. 어사또는 남원 공사 닦은 후에 춘향 모녀와 향단이를 서울로 데려갈 때, 위세가 당당하니 세상 사람들이 누가 아니 칭찬하랴.
춘향이 남원을 하직할 때 영귀(榮貴)하게 되었건만 고향을 이별하니 한편 기쁘고 또 한편 슬프지 아니하랴.
놀고 자던 부용당아
너 부디 잘 있거라
광한루 오작교며
영주각도 잘 있거라
봄풀은 해마다 푸르르건만
왕손(王孫)은 다시 못 온다더니,
다 각기 이별할 때 만세 무량하옵소서.
다시 보기 망연이라.
이 때 어사또는 좌우도(左右道)를 돌며 민정을 살핀 후에 서울로 올라가 어전에 절하니, 삼당상(三堂上)에 입시하여 문부를 사정한 후에 임금께서 크게 칭찬하시고 곧바로 이조 참의 대사성을 봉하시고 춘향으로 정렬 부인을 봉하시니, 은혜에 감사하며 물러 나와 부모 앞에 뵈오며 넓으신 은혜에 감사드리었다.
이판, 호판, 좌우영상을 다 지내고 벼슬을 물러난 후에 정렬 부인과 더불어 백년을 동락할 때에 정렬 부인에게 삼남 이녀를 부었으니 모두 총명하여 그 부친을 뛰어넘고 계계승승 직이 일품으로 만세에 유전하였더라.
첫번째줄 ' 얻어TEk.' 얻었다 로 고치고, 네번째줄 '충신의 후손이었따.' ->이었다 로 편집하는게 좋을듯 싶네요 ' I donot want write down it you student must go to Kyung-Ju university'이 것에 대해서는... 알아서 처분하시길,,
첫댓글 춘향전 자료를 올립니다. 필요하신 분은 자료를 재 편집 하여 읽으시기 바랍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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