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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권과 아파트
2004년 1월 2일 대구FC는 안정적인 수입과 고정팬 확보를 위해 2004 K리그 대구경기 연간입장권
(시즌권)을 개막 3개월 전부터 일찌감치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12일뒤 1월 14일에는 파격적인 소식을 내놓게 되는데 연간입장권을 구입한 관중을 대상으로
개막전에서 추첨을 통해 무려 33평짜리 아파트를 경품으로 제공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연간입장권 2만매의 판매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대구FC는 아파트 한 채를 경품으로 내걸면서
내심 연간입장권의 판매가 증대될 줄 알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연간입장권 판매시작 2개월이 지난 3월이 되어서도 판매율은 16%(약 3천200매)에 불과했고
설상가상으로 3월 16일에는 대구FC가 공무원에게 연간입장권을 강매했다는 의혹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대구시공무원직장협의회는 대구시가 대구FC의 연간입장권을 기획관리실에 3700매,
행정관리국 1700매, 경제산업국 2250매, 도시건설국 1600매, 소방본부 300매, 상수도사업본부
500매, 지하철건설본부 500매 등 대구광역시 산하 부서, 공사, 공단 등에 총 1만7450매를
떠넘겼다고 밝혔다.
이에 대구광역시는 “꼭 팔아야하는 강제성은 없으며 팔지못하고 반환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라고 해명하게 되었으며 결국 공무원들에게 1만2천매를 되돌려 받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도 리그 개막일은 점점 다가오게 되었다.
2004년 4월 2일 대구FC는 아파트 경품추첨의 방식을 월드컵조추첨 방식과 로또추첨방식을
혼합하여 추첨하겠다고 밝혔다.
이윽고 2004년 4월 10일 대망의 대구FC 홈 개막 경기가 열리게 되었고 경기가 끝난 이후 아파트
경품추첨이 실시되었다. 추첨이 실시되고 행운의 연간입장권을 가진 사람이 발표되었지만
당첨자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구단 측에서는 혹여나 당첨자가 나중에라도 경품을 찾을 상황에 대비해 4월 16일 까지 당첨된
입장권을 가지고 사무국을 방문할 것을 당부하였다.
하지만 끝내 당첨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아파트 경품은 다음 홈경기로 이월되게 된다.
다음 홈경기가 치러진 4월 30일에 다행스럽게도(?) 아파트 경품의 주인공이 탄생했고 이렇게
대구FC의 2004년은 시작된다.
당시 추첨방식에 혼란으로 인한 대구FC의 공지(출처:대구FC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전지훈련
2004년 시즌 개막전 대구FC는 중위권으로 도약을 목표로 삼았다. 이에 2004년 2월부터
3월8일까지 터키 안탈리아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하였고 전지훈련동안 유럽의 8개팀과
중국의 칭따오 까지 총9개 팀과 연습경기를 치워 5승2무2패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후 국내에 돌아와서도 2004년 3월 26일에는 J리그의 아비스파 후쿠오카와 3월 28일에는
산프레체 히로시마와 연습경기를 가지면서 개막직전 마지막 전력점검을 실시했다.
터키 안탈리아에서의 전지훈련이 효과가 있었던지 후쿠오카에게는 3대2의 승리를 거두었다.
새로운 선수들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하여 시즌이 개막하기전 겨울 이적시장 기간동안 대구FC도 많은 선수들을
영입하게 된다. 기존 외국인 선수중 인지오만 대구FC에 남았고 호제리오, 로만, 라힘, 얀을
떠나보냈다. 하지만 브라질 1부리그 출신인 훼이종, 노나또, 다닐요를 영입하면서 전력보강을
이루었다. 그 외 임중용과 김학철을 비롯한 많은 선수들이 대구FC를 떠나갔지만 진순진, 황선필,
윤원일등을 영입하면서 전력누수를 최소화 했다.
볼경합에 능숙했던 훼이종은 노나또와 호흡을 맞추며 2004년 시즌동안 11골을 성공시키며
대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박종환 감독의 지도방식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훼이종은
시즌종료후 성남일화로 이적하게 된다.
흑형포스 제대로 뿜어주시는 훼이종의 모습(출처:풋케위키)
브라질리그에서 1998년부터 2003년 까지 87경기에 나서 31골을 기록하였고 2003년 브라질컵의
득점왕이었던 노나또는 2004년 시즌동안 19골을 몰아치며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리그에서도 당시 어마어마한 활약을 펼쳤던 모따에 이어 득점2위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훼이종과 마찬가지로 박종환 감독의 지도방식에 불만을 품고 이적을 요청하였으며
대구FC는 노나또를 시즌종료후 FC서울에 임대 보내게된다.
하지만 FC서울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채 고국인 브라질로 돌아가게 되었다.
별다른 포스는 느껴지지 않지만 골하나는 잘넣었던 노나또(출처:풋케위키)
훼이종과 노나또는 엄청난 활약을 보였지만 다닐요는 3경기 출장을 끝으로 기량미달 판정을 받아
방출되었다. 이후 여름이적시장에서 대구FC는 산티아고를 영입하게 된다.
다닐요(출처:풋케위키)
1997년 상지대를 졸업하고 실업팀 할렐루야에 입단했던 진순진은 1997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고 1998년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던 선수였다.
기세를 몰아 1999년 드래프트 1순위로 안양LG에 입단하였지만 입단 첫해
허리부상과 다음해에는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으면서 연이은 불운으로 침체에 빠졌다.
하지만 2002년 리그 후반기에 복귀하여 18경기에서 6골을 터트리고 2003년 리그에서는
40경기 10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부활을 알렸다.
이후 자유계약선수의 신분이 된 진순진은 2004년 대구FC에 합류하게 되었고 27경기에 나서
7득점 3도움의 기록과 함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활약을 펼쳤다.
안양LG시절 진순진선수(출처:풋케위키)
수원블루윙즈에서 대구FC로 이적한 윤원일은 23경기에 나서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으나
2005년 부진을 이유로 대구FC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다 인천유나이티드로 이적후
포항스틸러스를 거쳐 현재는 울산현대미포조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여름이적시장에서 합류한 브라질 출신 수비수 산티아고는 2004시즌 여름이적시장을 통해
합류해 2004년 시즌 동안 10경기에 출장하며 황선필, 박종진, 박경환, 민영기와 함께 수비진을
이루었다. 이후 1년 계약이 만료되어 2005년 여름 대구FC를 떠났다.
그 외에도 입단당시 좋은평가를 받지못했던 신인 황선필은 20경기에 나서며 대구의 중앙수비를
단단히 지켜 대구FC가 영입한 신인선수들중 가장 좋은 활약을 펼쳤다.
훗날 대구의 캡틴까지 차지하는 풋풋한 신인의 모습인 황선필선수(출처:풋케위키)
2004년 새로운 유니폼
대구FC는 2004년 용품후원 업체로 스페인 회사인 조마(JOMA)를 맞이하게 된다.
2004년 3월 16일 조마와 대구FC는 1년에 4억원가량의 용품을 지원하는 것으로 계약을 맺었고
조마가 새롭게 제작한 유니폼이 선보이게 되었다.
홈유니폼
엄청난 퀄리티를 자랑하여 흑역사로 남겨지고 5번밖에 입지않은 어웨이 유니폼(출처:대구FC)
시즌개막
2004년 4월 3일 광양축구전용경기장에서 대구FC는 중국에서 활약하다 7년만에 국내로 돌아온
이장수감독이 이끄는 전남드래곤즈와 개막전을 치뤘다. 하지만 당시 전남에 소속되어있던 모따와
이따마르에게 2골씩 헌납하며 후반32분 이경수가 1골을 만회하지만 4-1로 패배하게 된다.
개막전 이후 일주일뒤인 4월 10일에는 대구월드컵경기장(현재 대구스타디움)에서 광주상무를
상대로 홈개막전을 갖게 되었는데 새로 영입된 훼이종이 3골 노나또가 1골을 터트리며 4:2의
승리를 거두었다.
주주동산과 축구사랑카드
한편 홈개막 경기가 있었던 4월 10일에는 또다른 행사가 있었는데 바로 주주동산의 제막식 이었다.
경기장 옆 연못주변에 건립된 주주동산은 골대와 공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중심으로 구단연혁,
이사회, 발기인, 초대선수명단, 시민주주의 이름이 새겨진 조형물이 좌우로 10개씩 설치되었다.
주주동산의 모습(2012년 8월 촬영)
이와 더불어 한 달 뒤인 5월 11일에는 메인스폰서인 대구은행에서 대구FC 사랑카드 발급을
시작했다.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형태로 만들어진 카드는 홈경기 할인, 영화 예매 할인등의
혜택이 있었으며 카드 사용액중 일부가 대구FC 발전기금으로 적립되었다.
노상래의 은퇴
2004년 8월 18일 태풍 메기의 영향으로 전국에 뿌려진 많은 비속에서 치러진 삼성하우젠컵
11라운드 대구와 부천경기는 1:1이라는 경기결과나 대구FC의 리그컵 마지막 홈경기라는 의미
보다는 다른 의미로 주목을 받았던 경기였다.
경기가 있기 하루전날 은퇴를 선언한 노상래의 은퇴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상래 선수의 은퇴식은 항간의 소문과는 다르게 조촐하지만 뜻깊게 이루어졌다.(출처:대구FC)
숭실대학교를 졸업하고 1993년 실업팀이었던 주택은행에 입단하여 활약하던 노상래는 1995년
전남드래곤즈의 창단맴버로 K리그에 등장하게 된다. 데뷔 첫해 16골 2도움을 기록하여 신인상,
득점왕을 수상하면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이후 국가대표선수로서도 활약하였으나
김도훈, 황선홍, 최용수라는 쟁쟁한 공격수들에게 밀려 월드컵에는 출전하지 못하였다.
2000년 이후로는 예전만큼의 플레이를 보기가 어려워졌고 결국 2002년에는 부상과 슬럼프로 인해
무득점으로 시즌을 마무리하자 전남으로부터 방출통보를 받게된다.
이때 미국진출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은퇴까지 고려하였지만 박종환감독의 권유로
2003년 대구FC에 입단하게 된다.
대구FC시절의 노상래(출처:대구FC)
입단이후 2003년 시즌에서 4골 1도움을 기록하며 프로통산 40-40클럽에도 가입하게 되었고
팀이 어려울 때 해결을 해주는 팀내 고참으로서의 역할도 묵묵히 해냈다.
하지만 2004년 시즌에서는 노나또, 훼이종, 인지오, 진순진에게 밀려 기회를 잡지 못하자
박종환 감독과의 상의 끝에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대구의 1호 은퇴선수가 된 노상래는 1995년부터 2004년까지 K리그에서 246경기에 나서
76골 40도움을 기록하였고 국가대표선수로서는 25경기에 출장해 6골을 기록하였다.
은퇴이후 김희태축구센터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로서 경력을 쌓아갔고
지금 현재 전남드래곤즈의 수석코치로 있다.
K리그가 레전드 대접을 해주지않는다는 소문의 진원지가 된 사진이자 비오는 경기장에서 노상래 선수가
경기장을 찾아준 팬들에게 큰절을 하고있는 모습 하지만 이건 은퇴식날 태풍이 왔던 날씨의 문제가 있었고
앞서 사진에서처럼 조촐하지만 뜻깊은 은퇴식도 있었다.(출처:미상....)
8번째 100승
2004년 10월 9일 대구FC는 포항스틸러스와의 홈경기에서 노나또의 골로 1:0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것은 박종환 감독의 통산 100번째 승리였고 2004년 당시로는 K리그가 탄생한 이후 8번째의
100승 기록이었다.
미래의 복선
2004년 11월 9일 훼이종과 인지오의 에이전트가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처음 대구FC에 인지오와 훼이종을 소개하면서 임대료가 있는 것처럼 속여 1억7천여만원을
빼돌린 정황이 포착되어 구속되었다.
대구FC는 주지 않아도 될 임대료 1억 7천만원을 에이전트에게 주면서 사기를 당하게 된 것 이었다.
당시 구단의 입장을 살펴보면 이러한 사기 사건이 이번 한번으로 끝나게 될줄 알고있는 듯 했지만
5년 후에 더 크고 엄청난 사건이 대구FC를 찾아오게 된다.
2004년 FA컵
2004년 K리그가 종료된 이후 2004년 12월 14일 경남 김해에서 펼쳐진 FA컵 32강에서
김포할렐루야(현재 고양HiFC의 전신)를 상대하였으나 후반에만 3골을 허용하며 3:1패배로
32강에서 탈락하고 만다.
최초의 수상자들
K리그가 개막했던 4월 첫 월간MVP에 선정된 선수는 다름아닌 대구FC의 훼이종이었다.
4월 3일 리그가 개막한후 4골 1도움을 뽑아냈던 훼이종은 4월 2째주 주간MVP에 이어 4월의
MVP를 차지했다.
2004년 리그가 종료된후 12월 29일 열린 K리그 시상식에서는 시즌동안 27경기
(정규리그,컵대회 포함)에 출전하여 7개의 도움을 기록한 홍순학이 영광의 도움왕을 차지했다.
앞서 열린 2004 스포츠토토 한국축구대상과 2004프로축구 골든볼, 골든슈 시상식에서도
어시스트상을 받았던 홍순학은 내년에도 도움왕을 차지하겠다는 말로 소감을 전했다.
2004년 도움왕 홍순학!(출처:연합뉴스)
2004시즌의 기록들
선수명단
기록출처 : 대구FC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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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랜만에 업뎃 하셨네요~잘 보고 갑니다.
답글이 늦었네요 ㅋㅋ; 곧 다음편 업뎃 하겠습니다~
잘보고갑니다ㅎㅎ
다음판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봤습니다~! ^^ 2002년 월드컵 직후라 그런지 외국인 선수들 면면도 지금보다 훨씬 화려한 것 같네요. 노나또는 바히아에서 주전 스트라이커였죠.
그 시절 군대에 있어서 잘은 못봤는데 터키 출신 국가대표 라힘이라는 선수도 있지 않았나요? 위키에서는 03년도만 뛴거 같은데 실제로 활약이 어땠나요?
라힘선수에 대해서는 2편 2003년의 대구FC를 이야기 할때 소개 되었습니다.ㅋㅋ 그 글을 참고하시면 되겠네요~^^;;
훼이종 노나또 듀오는 역대급 용병!!!! 용병 둘 잘데려오자 하위권팀이 수직상승했었죠.. 다닐료도 개인기는 좋았는데.. 그 포지션에 송정현,홍순학,정영훈까지 과포화였음... 성남전때 대전에서 온 정영훈의 감아차는 중거리포는 아직도 못잊고있어요 ㅎㅎ 고봉현도 터질듯터질듯했는데 끝내 안터졌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