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틀스만큼 히트친 가전, 英 다이슨 창업자·CTO 제임스 다이슨

먼지 봉투 없는 청소기, 날개 없는 선풍기. 누구도 청소기에 먼지 봉투가 없을 수 있다고, 선풍기에 날개가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영국 산업 디자이너였던 제임스 다이슨이 개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다이슨은 기존 생각의 틀을 깨고 이런 제품들을 탄생시켰다.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을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 혁신적인 제품으로 개발한 것이다.
제임스 다이슨이 1993년 설립한 기업 다이슨은 '일상의 문제를 기술로 해결한다' '성공은 99%의 실패로 이뤄진다'는 철학으로 새로운 제품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다. 처음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개발할 때에도 5년 동안 시제품만 5127개를 제작한 끝에 처음으로 사이클론 기술을 이용한 진공청소기를 선보일 수 있었다. 이 청소기는 영국에 출시한 지 18개월 만에 매출 1위를 차지했고, '비틀스 이후 가장 성공적인 영국 제품'이라는 찬사를 받기까지 했다. 올해 처음 선보인 헤어드라이기도 일상의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물음으로부터 나왔다.
다이슨은 독특한 디자인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다이슨은 '기능을 먼저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디자인이 나온다'는 기조하에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다이슨의 창업자이자 현재 최고기술자인 제임스 다이슨은 최근 일본 도쿄에서 진행한 매일경제 더비즈타임스팀과의 인터뷰에서도 모든 면에서 디자인보다는 '기능'을 강조한다듯이 가장 편하고 수수한 옷차림이었다. 다이슨 창업자는 "좋은 디자인은 겉모양이 아니라 그 제품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것(Good design is about how something works, not just how it looks)"이라고 강조했다.
이하는 일문일답.
―다른 회사들과 달리, 제품의 기능을 우선시하고 그 기능에 맞춰 디자인하는 철학이 있다. 기능만 중시하다가는 소비자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디자인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은지? 일부 타사 제품들은 기능적으로는 훌륭하나 투박한 디자인 때문에 판매 실적이 낮은 경우가 있다.
▷영국왕립예술대학(the Royal College of Art)에서 공부할 때 나의 개별지도교사(tutor)였던 버나드 마이어스는 나에게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다이슨에서는 디자인보다는 제품의 기능이 모든 것을 좌우하며, 문제로부터 시작해 해결책을 만들어낸다.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은 제대로 작동하는 제품을 원한다. 다이슨에서 '디자인'은 별도로 분리되지 않는다. 실제로 다이슨 RDD(Research, Design and Development) 센터는 엔지니어링과 전체 디자인을 함께 고민하는 '디자인 엔지니어'로 구성돼 있다.

―계속해서 실패하고, 그것이 성공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패로 인한 좌절감만큼은 극복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지금처럼 빠르게 변하고 있는 시기에는 빨리 성공하는 것이 더 좋아 보일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성공을 원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성공이 빠를수록 더 좋다고 여긴다. 그러나 우리는 성공이 아닌 실패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 하루아침에 성공을 이룬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성공을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엔지니어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해볼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때로 실패는 사람들을 크게 좌절시킬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엉뚱하면서도 완전히 우둔한 생각을 해보기도 하는데, 이는 가끔 다른 누군가가 시도해보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게 도와준다.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번 신제품(헤어드라이어) 모터를 개발하는 데에만 4년이 걸렸고, 시제품만 4800개가 있었다고 알고 있다. 모터를 직접 개발하려고 노력한 이유는 무엇인가.
▷다이슨은 16년 전 모터를 직접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원하는 모터를 시장에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모터는 무겁고 전력 소모가 크며, 시간이 지날수록 마모가 되는 카본 브러시가 삽입돼 있지만, 다이슨 디지털 모터(DDM)는 지능적인 PCB(인쇄회로기판)에 의해 제어되기 때문에 유해물질(carbon dust)을 배출하지 않는다. 다이슨 슈퍼소닉 헤어드라이어에 탑재된 다이슨 디지털 모터 V9은 기존 모터보다 8배 빠르며, 무게는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손잡이에 모터를 배치해 무게의 균형을 맞춰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할 때 팔에 무리가 덜 가도록 했다.
―기술의 혁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불편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듭되는 실패와 불가피한 걸림돌을 넘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기술혁신을 '유레카 모먼트'로 여기고 있지만, 사실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기 전까지 견뎌야 하는 끝없는 실험의 반복과 셀 수 없는 실패의 결과다.
―다이슨이라는 회사를 경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적은 언제인가.
▷맨 처음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발명할 때가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많은 기업에 투자를 권유했지만 아무도 내 아이디어를 원하지 않았고, 대출을 받고자 했지만 어떤 은행도 응답하지 않았다.

―세상을 도와주는 기술을 개발하는 학생들을 지원한다고 들었다. 과거 힘들었던 경험이 이런 지원의 원동력인가.
▷전 세계적으로 엔지니어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영국은 2020년까지 64만명의 엔지니어가 추가적으로 필요한데, 한 해 졸업하는 엔지니어링 전공자 수는 6만명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34만명의 엔지니어가 부족한 것이다. 새로운 발명을 저해하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젊었을 때 나는 내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데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가진 돈도 없고 내 아이디어를 지지해주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어떤 느낌인지 이해한다. 내가 자선재단인 '제임스 다이슨 파운데이션(James Dyson Foundation)'을 통해 차세대 디자인 엔지니어들을 장려하고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다. 우리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고무하기 위해 올해 처음 한국에서도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James Dyson Award, JDA)'를 오픈했다.
―다이슨은 젊은 엔지니어를 많이 채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의 강점은 어디에 있다고 보기 때문인가. 베테랑들도 필요하지 않을까.
▷다이슨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엔지니어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RDD센터를 위해 전 세계의 대학 졸업생들을 채용하고 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그들이 어떻게 배웠는지가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는 방법이다. 나는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이 열린 마음으로 문제에 접근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젊은 엔지니어 외에도 개발 과정에는 경험이 풍부한 엔지니어들이 필요하다.
―엔지니어들에게 실패 기회를 많이 주면 오히려 나태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때는 어떻게 직원을 관리하는가.
▷우리는 엔지니어들이 실패를 경험해보고, 또 실패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도록 격려한다.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또 어떻게 개선시킬 수 있을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개발하기 위해 5127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최근 한국에서는 미세먼지, 공해 문제 등이 주 관심사이다. 즉 환경에 대해 우려하는 바가 많다. 다이슨도 공기청정기 제품을 개발하고 있는데 환경적인 측면을 고려해서 많이 제품 개발을 고려하고 있는가.
▷황사는 한국에서 심각한 문제이며 다이슨의 엔지니어들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다이슨 퓨어쿨 링크를 개발하는 동안 350개 이상의 시제품을 전 세계로 보내 실제 가정 환경에서 성능테스트를 진행했으며, 연구실에서는 하루 24시간 내내 담배를 피우는 장치를 만들어 연구했다. 담배에는 4000가지 이상의 화학물질이 들어 있고 냄새 또한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 테스트를 통해 다이슨의 공기 청정 선풍기가 매우 오염된 환경에서도 제 성능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이슨이 모든 제품을 일본에서 처음 출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신제품 출시도 일본에 집중돼 있는 느낌을 받았고, 상대적으로 한국은 크게 중요한 시장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이슨은 한국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뷰티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또한 한국 소비자들은 다이슨 엔지니어들처럼 기술에 대한 공통 관심사를 공유하고, 어떻게 기계가 작동되는지, 어떤 기술이 들어갔는지 이해하고 싶어하는 매우 수준 높은 사용자다.
―다이슨이 모터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새로운 제품군을 낼 때 철학이나 우선순위가 있을 것 같다. 기업 철학이 기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상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우선순위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기준인지.
▷다이슨은 일상의 문제를 기술을 통해 해결한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대부분의 제품들이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극복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크고 무거운 모터가 제품의 헤드 부분에 탑재돼 있던 기존 헤어드라이어의 경우 무겁고 시끄러우며 효과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이슨은 더 작고 가벼운 모터를 개발해 손잡이 안에 들어갈 수 있게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다시 묻자면, 일상의 문제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사회적 효과를 고려해 건강에 좋은 제품을 먼저 만든다든지, 아니면 잘 팔릴 제품을 먼저 만든다든지 하는 기술 발전 방향의 우선순위가 있을 것 같다. 어떠한가.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고민한다. 엔지니어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잘 이해하고 미래에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하는 일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기술을 개발할 때에는 제품의 자동화(automatic)와 사람들의 생활환경에 맞춘 것인지, 또 사람들이 어떻게 그 제품을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다이슨의 공기청정 선풍기 퓨어쿨 링크는 사용자에게 지금 공기가 어떤지, 어떻게 하면 제품을 더 잘 사용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나는 사용자들에게 보다 더 유익한 환경을 만들고 싶다.
―다이슨은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를 프로토타입(prototype)으로 만들어 완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완제품을 결정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그것이 바로 내가 많은 시간을 엔지니어들과 보내고 있는 이유다. 엔지니어들의 아이디어를 직접 보고 마음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테스팅하는 과정을 통해 다이슨 엔지니어들은 무엇 때문에 실패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사실 처음은 언제나 실패를 하게 돼 있다. 하지만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고 테스팅 및 관찰하는 일련의 경험을 통해 해결책을 개발할 수 있다. 이렇게 수차례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성공적인 아이디어로 발전할 수 있다. 우리는 기술을 이용해 더 나은 성능과 더 좋은 제품을 개발하는 것에 빠져 있다. 기준은 '우리 기술을 활용해 최선의 제품을 만들었는가'이다. 다이슨의 관심사는 더 나은 제품을 만들었느냐이지, 기술과 아이디어에 대한 비용이 아니다.
―다이슨은 R&D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는데, 헤어드라이어를 예로 들어 R&D 과정을 설명해 달라.
▷우리는 더 나은 헤어드라이어 모터를 개발하고자 했고, 기존 헤어드라이어 모터보다 8배 빠른 모터를 만들었다. 물론 여기에는 공차(tolerances), 베어링 설계(bearing design), 전자공학 설계(electronics design) 등 수많은 기술 개발이 포함됐다. 이는 달성하기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으로, 특히 공차를 설계하는 작업은 극도로 어려웠다. 다이슨 헤어드라이어에 탑재한 다이슨 디지털 모터(DDM) V9과 같은 모터를 개발하는 것에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연구와 테스팅에도 큰 비용이 소모된다. 다이슨은 무엇이 머리를 건강하게 만들고, 어떤 것이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할 때 물리적인 불편함을 유발하는지, 또한 헤어드라이어가 유발할 수 있는 손상은 무엇이며, 헤어드라이어가 어떤 상황에서 사용되는지 등을 연구했다.

―헤어드라이어를 개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왜 헤어드라이어를 개발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대답하자면, 헤어드라이어는 내가 어릴 적이나 내 어머니 세대가 사용하던 것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비슷한 종류의 모터와 비슷한 크기의 소음, 제품의 헤드 부분이 무거운 디자인까지 말이다. 그러던 중 모터를 급진적으로 변화시켜 헤어드라이어의 디자인과 콘셉트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보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이 많은 소비자들로부터 인정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다이슨의 계획은. ▷더 많은 신제품을 출시하고 새로운 카테고리로도 진출할 예정이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극비사항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다이슨은 계속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것이다.
―일흔 가까운 나이인 것으로 안다. 언제까지 엔지니어로서 참여할 것인지. ▷나는 내 아들이 자신의 조명사업을 내 사업과 합병시킨 것이 매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경험이 매우 풍부한 디자이너이자 엔지니어이며 비즈니스맨이다. 그래서 내 아들은 나와 함께하기로 결정하였고, 다이슨은 가족 기업으로 유지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다이슨은 내 아들이 이어받을 예정이다. 내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다이슨의 엔지니어로 남고 싶다.
■ He is…
제임스 다이슨은 1947년 영국 노포크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왕립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엔지니어링 회사인 로토크(Rotork)에서 일했다. 1979년 자택에서 청소를 하던 다이슨은 흡입력을 잃어가는 청소기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고 청소기를 여러 번 분리해 본 결과 먼지봉투의 미세한 구멍을 먼지가 막고 이것이 흡입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5000개가 넘는 시제품을 만들어 세계 최초의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DC01'을 탄생시켰다.
마흔을 훌쩍 넘은 나이에 창업했지만 그의 회사는 큰 성공을 거뒀다. 2015년 기준 매출 17억4000만파운드(약 3조원), 순이익 4억4800만파운드(약 7700억원)를 기록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48억달러(약 5조7000억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