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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4편
'차이'를 맨 위에 두고 모든 것을 재는 잣대로 삼는 이가 있다면, 그 순간 하나님은 밀려나고 삶은 자기와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숨고 숨기는 이가 있다치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도 일부를 접어 둘 것입니다. 당연히 그 숨김이 반복되면 삶은 얉아질 것입니다. 14편은 그와는 다른 길, 하나님을 상수로 두는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공주야! 아비가 알기로 시편은 비평이나 공부가 아닌 현재 나의 상황에 직접 적용 해야 하는 묵상이란다.
If anyone puts "difference" at the top and uses it as a yardstick to measure everything, at that moment God will be pushed out and life will be a battle against himself. If anyone hides and hides, he will fold some in front of God. Of course, if that hide is repeated, life will be dull. Part 14 tells of a different path, a life that puts God as a constant. Princess! As far as my father knows, the psalm is not a criticism or study, but a meditation that should be applied directly to my current sit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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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오독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시가 갖고 있는 특성을 살려 내 실존이 적나하게 표현될 때 비로소 감동이 살아난다고 본다. 특히나 탄식 시는 내 감정과 상황을 솔직하게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처분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 찬양으로만 이루어진 시편은 현실 반영이 무미건조 할 수 있다만, 탄식 시는 하나님이 인간을 책임 있는 인격적인 존재로 인정하셨음을 보여줄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는 자유를 통해 인간은 더욱 성숙한 사랑과 성실로 언약에 참여하는 존재가 된다.
Despite the danger of misreading, I believe that emotions can only be revived when my existence is expressed in a modest way by taking advantage of the characteristics of the poem. In particular, when you sigh, you should honestly know your feelings and situations to God and expect him to be disposed of. In a way, the praise-only specimen may be dull in reflection of reality, but the time of sighing will show that God recognized humans as responsible personal beings. Through the freedom to defy God, humans become beings who participate in the covenant with more mature love and since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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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시인의 탄식은 불신앙이 아니고 의(義)의 하나님이 기대하신 자발적 순종(믿음)이다. 언약에 기댄 우리의 의심이나 질문이나 탄식은 새로운 깨달음의 차원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된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못 배운 사람도, 지능이 모자란 사람도 아니다. 공부가 뒤지고 컴퓨터에 능하지 못한 사람도 아니다. 재테크 제대 못 하고, 정치적 판단이 예리하지 못한 사람도 아니다.
Therefore, a poet's sigh is not a distrust but a voluntary obedience (belief) that God of righteousness expected. It can be understood that our doubts, questions and sighs that lean on our covenant will pave the way for a leap to a new level of enlightenment. The stupidest person in the world is neither an uneducated person nor a person who lacks intelligence. He is not a person who is not good at computers and is not good at studying. He is not a person who has not been discharged from the military and has not been sharp in political judg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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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다 갖춰도 하나님 안 계신 듯 삶으로써 그분의 존재를 지워버린 유신론적 무신론자들,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요란스럽게 교회 드나들면서도 정작 삶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 자들이 진자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하나님 없다고 큰소리치고 자기 맘대로 제 지혜와 자원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어리석은 망나니들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신다. 다 알고 계신다. 속까지 들여다 보신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의 원리에 대한 깨달음도 없고 자기 한계를 인정하는 마음도 없다.
Theistic atheists who erased his existence by living as if there was no God even if they had all of those things, and those who say they believe in their mouths and go to church loudly but do not leave the initiative to God are the stupid people. God is watching all the stupid rags who boast that there is no God and live on their own wisdom and resources. You know everything. They look inside. There is no realization of the principles of the world ruled by God, and no heart acknowledging their lim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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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길에서 벗어나 서로를 더럽히고 선은 한줌도 행치 않는다. 자기들끼리는 그 실상을 눈감아주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낱낱이 드러난다. 어리석은 자들은 정당한 땀의 대가를 구하지 않는다. 돈과 권력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삼키고 가난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면서 얻은 이득으로 배부르다. 그러고도 만족이 없고 평강도 없다. 늘 권태와 두려움 속에 산다. 하나님을 얻으면 다 얻는 것이지만 하나님을 잃으면 다 잃게 된다.
Away from the path of the covenant, they dirty each other and do not do a single word of good. They overlook the reality among themselves, but it is revealed in every detail before God. The fools do not seek a fair price for sweat. They are full of gains from swallowing God's people with money and power and shaming the poor. And then there is no satisfaction and no peace. Always live in boredom and fear. If you get God, you get everything, but if you lose God, you lose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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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로 피난처 삼아 어리석은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인생이 되자. 때가 되면 하나님은 지금 매이고 억눌린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되찾아 주실 것이다. 야곱(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새 언약을 주심으로 이 약속을 이루셨다. 그러니 다른 곳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자. 나는 하나님이 내 피난처인가? 하나님을 믿는다지만 삶의 주권은 여전히 쥐고있는 유신론적 무신론자는 아닌가? 믿음으로 사는 자를 찾으시는데 이제 어쩔 것인가?
Let's take refuge in the Lord and become a life that shames the foolish. When the time comes, God will save his people, who are now beaten and suppressed, to restore joy and joy. You will never forget the covenant you made with Jacob (Israel). In Christ, God made this promise by the Lord of the New Covenant. So let's not be a fool looking for joy and joy elsewhere. Is God my refuge? Isn't he a theistic atheist who believes in God but still holds the sovereignty of life? What will you do now to find a man who lives by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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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악행과 착함의 부재(1-3)
행악 자들의 무지(4)
의인 편에 계신 하나님(5-6)
이스라엘의 구원(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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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는(1a)
그 마음에 이르기를(1b)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1c)
저희는 부패하고(1d)
소행이 가증하여(1e)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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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하늘에서(2a)
인생을 굽어 살피 사(2b)
지각이 있어(2c)
하나님을(2d)
찾는 자가 있는가?(2e)
보려 하신즉(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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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치우쳤으며(3a)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3b)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3c)
하나도 없도다(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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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을 행하는 자는(4a)
다 무지 하는요?(4b)
저희가 떡 먹듯이(4c)
내 백성을 먹으면서(4d)
여호와를(4e)
부르지 아니하는 도다(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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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5a)
거기서 두려워하고(5b)
두려워하였으니(5c)
하나님이(5d)
의인의 세대에(5e)
계심이로다(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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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6a)
가난한 자의 경영을(6b)
부끄럽게 하나(6c)
오직 여호와는(6d)
그 피난처가 돼 도다(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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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구원이(7a)
시온에서(7b)
나오기를 원하도다(7c)
여호와께서(7d)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7e)
돌이키실 때에(7f)
야곱이 즐거워하고(7g)
이스라엘이(7h)
기뻐하리로다(7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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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모른다_ Foolish men do not know God.
하나님이 어리석은 자를 아신다_ God knows the foolish.
어리석은 자는 두려워한다_Foolish men f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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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난처가 되시는 주여, 오랫동안 무서운 박해를 받고서도 아직도 자기들의 죄나 불행을 못 깨닫는 유대인들의 시온이즘(Zionism)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구원이 시온에서 오신 것을 압니다. 특별히 이 시대의 남은 자로 여러 가지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애쓰는 착한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이 때문에 교회 안팎에서 외롭고 미움 받게 될 때 하나님의 위로가 있게 하옵소서.
My refuge, O Lord, pity the Zionism of the Jews, who have long suffered terrible persecution and still do not realize their sins or misfortunes. I know salvation is from Zion. Let the rest of this age be the good people who abandon their idols and try to live according to God's will. May God comfort you when you are lonely and hated both inside and outside the church.
2026.7.14.tue. Clay
신학 비평//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은 같은가? 짧은 신학 비평을 드리자면, 이번 묵상의 핵심은 시편 14편의 "어리석은 자"를 단순한 무신론자가 아니라 삶에서 하나님을 배제하는 사람으로 해석한 점입니다. 이는 본문의 신학적 의도를 오늘의 신앙으로 잘 연결한 통찰입니다. 특히 "하나님을 상수로 두는 삶"과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 유신론적 무신론자"라는 표현은 독자에게 강한 자기 성찰을 이끌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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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 가지 보완하면 더욱 균형이 살아날 것입니다. 시편 14편은 개인의 경건만이 아니라 사회적 불의도 함께 고발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부정할 뿐 아니라 "내 백성을 떡 먹듯 삼키고"(4절), "가난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6절) 사람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둔다는 것은 개인의 믿음만이 아니라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삶으로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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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시편 14편은 무신론과 유신론의 논쟁이 아니라 **누가 하나님을 실제 삶의 왕으로 모시고 사는가를 묻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입술보다 삶을 살피시며, 믿음을 말하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음의 반대는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믿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끝내 피난처가 되시고, 탄식은 기쁨으로 바뀌게 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