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왜 연합군] . 광개토대왕릉비를 임나일본부설의 증거로 볼 수 없습니다. 일본이 백제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동맹으로 지냈죠. .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백잔(百殘)과 신라(新羅)는 옛부터 속민(屬民)으로서 조공(朝貢)을 해왔다. "而倭以辛卯年來 渡□(海)破 百殘□□□(東征新)羅 以爲臣民." 그런데 신묘년(391년) 이래 왜가 바다를 건너 (조공을) 깨트렸으며 백제는 동쪽으로 신라를 정벌하여 신민으로 삼아 복속시켰다. "영락(永樂) 6년(396년) 병신에 왕께서 친히 군사를 이끌고 백잔국을 토벌하셨다." . 즉 왜국이 바다를 건너와 격파한 것은 백제,신라가 아니라 그들의 고구려에 대한 조공이죠. . 왜가 아닌 백제가 동쪽으로 신라를 정복하고 신라를 신민으로 복속시켰으니 이어서 396년에 광개토왕이 백제를 토벌한 것입니다. . 그 전에 왜군이 백제를 격파했다고 해석하면 396년에 광개토왕이 다시 백제를 토벌할 이유가 없죠. . 비문 전체에서 광개토왕은 백제더러 왜군과 연합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으며 396년의 백제 토벌도 백제 왜 연합 때문입니다. . 신라는 고구려의 신민인데 백제가 신라를 가로채서 복속시켰으니 광개토왕이 분노하여 건방진 백제를 토벌한 것이에요. . ======= 혹자는 왜가 아닌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를 격파했다고 해석했지만 고구려가 신라를 격파할 이유가 없습니다. .
첫댓글왜가 바다를 건너 백제 신라의 조공을 꺠뜨렸다고 하는 해석도 일본중심주의에서 탈피하지 못한 성격이라 임나일본부에 간접적으로 유리한 내용으로 볼수밖에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그 해석을 보면 대왕비의 해석 내용대로 고구려의 속민인 백제가 고구려에 조공하는 것을 왜가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의 고구려 조공을 파했다고 해석하면 백제가 마치 왜의 도움을 받는 나약한 국가로 인식되겠네요 그럼 이게 임나일본부와 다를게 무엇입니까? 차라리 왜가 바다를 건너왔다고 해석할게 아니라 이형구 교수의 해석처럼 신묘년부터 백제가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는 해석으로 해야 되는게 정상이죠
첫댓글 왜가 바다를 건너 백제 신라의 조공을 꺠뜨렸다고 하는 해석도 일본중심주의에서 탈피하지 못한 성격이라 임나일본부에 간접적으로 유리한 내용으로 볼수밖에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그 해석을 보면 대왕비의 해석 내용대로 고구려의 속민인 백제가 고구려에 조공하는 것을 왜가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의 고구려 조공을 파했다고 해석하면 백제가 마치 왜의 도움을 받는 나약한 국가로 인식되겠네요 그럼 이게 임나일본부와 다를게 무엇입니까? 차라리 왜가 바다를 건너왔다고 해석할게 아니라 이형구 교수의 해석처럼 신묘년부터 백제가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는 해석으로 해야 되는게 정상이죠